Vol.1 첫 만남
1999년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IMF의 여파로 집안 사정이 기울어 대학은 근처에도 못했다. 졸업 후 아무 할 일 없이 집에서 쉬고 있으니 엄마에게 눈치가 보여 3월부터는 엄마가 다니는 오뚜기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다른 곳보다 시급을 많이 주어 선택했지만 이곳에서 만난 인연이 내 가슴에 남아있다.
오뚜기 공장에는 사람이 모자랐는지 알바를 하러 왔다고 하니 다들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8과에서 일하는 엄마의 아들이라고 하니 더욱 챙겨주는 것 같았다.
첫날부터 힘쓰는 일에 배정받았다. 8초에 한 번씩 내려오는 박스를 트레이에 쌓는 일을 하였다. 첫날은 아주 죽을 맛이었다. 다른 하루는 벨트에서 줄줄이 케첩이 나오면 상자에 담는 일을 하였다. 쉴 틈 없이 나오는 케첩들이 꿈에서도 나올 정도였다. 하루씩 번갈아 가며 이 두 가지 일을 번갈아 하였다.
몸 하나는 건강하다는 것이 이곳에서는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 다른 과에서 사람이 모자라면 흔히 말하는 땜방으로 차출되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적응할만하면 이곳저곳에 돌아다니니 점점 힘들다고 느껴지던 때였다. 6월에 그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몇 개월이 지나 6월이 되고 20여 명 되는 중국인들이 이곳에 일하러 왔다. 살면서 어쩌다 지나가는 외국인을 본 적은 있어도 외국인과 일을 함께 한 적은 없었다. 게다가 처음 만나보는 중국인들이었다. 중국인을 마주하고서 외모는 별반 다름이 없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다른 언어를 한다는 자체가 너무 신기했다.
그들은 순차적으로 여러 공정을 돌며 일하는 법을 배워 갔다. 2주 정도가 지났을 때 내가 일하는 곳으로 10명 정도가 왔다. 그 사이에는 내 또래로 보이는 중국인도 있었다. 그들과 마주한 첫날 중국어를 할 줄 몰라 그저 눈웃음으로 인사를 하였는데 그들의 “안녕하세요”라는 어설픈 한국말에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을 할 때는 말이 안 통하니 일하는 법을 몸소 보여주고 따라 해보는 식으로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아도 말이 통하는 것처럼 어색함 없이 같이 일을 했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꽤 예전에 내가 오뚜기에서 일하기 전 엄마가 중국어로 인사와 여러 단어들을 연습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지금처럼 중국인들이 일하러 왔던 것이었다.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엄마에게 중국어를 물어봤다.
“엄마 중국어로 ‘안녕하세요’는 어떻게 말해??”
“중국어로 ‘니하오’라고 하면 돼”
“그럼 ‘고맙습니다’는??”
“고맙습니다는 ‘쎄쎄’ 라고 하면 돼”
“그럼 마지막으로 ‘미안합니다’는 ?”
“그건 ‘뛰부치’ 라고 하면 돼”
내가 물어보는 족족 거침없이 답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밤 배운 여러 단어를 잊지 않으려고 종이에 써가며 반복하며 중얼거렸다.
안녕하세요는 니하오
고맙습니다는 쎄쎄
미안합니다는 뛰부치
내일 만나면 꼭 중국어로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결심과 함께 말이다. 출근하자마자 어제 외운 중국어로 그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그들은 내가 중국으로 인사를 하니 따봉으로 내 중국어에 답해주며 좋아해 주었다. 그러자 내 또래로 보이는 한 중국에 가 내게 영어로 나이를 물었다.
“How old are you?”
“어 나이?? 내 나이?”
나는 손가락으로 2와 0을 만들어 스무 살이란 것을 말해주니 자신의 나이와 같다며 계속 “펑유 펑유” 라고 말하였다. 펑유가 뭐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옆에 계셨던 계장님이 펑유라는 말은 친구라는 뜻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렇게 나는 중국인 동갑 친구가 생긴 것이었다.
그들의 유니폼에는 한글과 중국어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보고 읽었더니 발음이 비슷했는지 알아듣고는 중국어 발음으로 내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녀의 한국 이름은 변동매’ 였다. 중국어 발음으로는 ‘빈동매이’라고 발음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내 이름을 한문으로 써 알려달라 하였다.
종이에 ‘閔 成 一’ 이라고 썼다.
보더니 ‘밍 청 이’ 라고 읽었다.
뭐 멍청이라고 ?? 한순간에 나는 멍청이가 되는 순간이었다.
다른 중국인도 다가와 내 이름을 슥 보더니 ‘밍청이 밍청이’ 라고 읽었다. 다들 멍청이라고 하는 것 같아서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앞 글자 하나를 지우고 成一 이란 이름만 읽어 달라 했다. 그대도 그들은 그때부터 날 계속 밍청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