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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감성 Dec 28. 2022

지금의 글쓰기


  이야기를 하자면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군대에서 짝사랑하던 사람에게 거의 매일 편지를 쓰게 되면서 자연히 글 쓰는 걸 좋아했다. 그냥 무작정 써 내려갔다.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나의 이 간절한 마음을 알리고 싶어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싶은 만큼 썼다. 그런 나를 군대에서는 ‘편지 학과’라는 별명으로 대신했다. 그 후로 글 쓰는 건 대학에서 과제물로 제출한 리포트가 전부였던 나였다.

 

  그러다가 이민 준비를 위해 필리핀으로 IELTS를 공부하러 갔다. 여기서 잠시 IELTS 영어시험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네 가지로 나누어서 영어능력을 평가하는 영어시험인데 그중에서 나는 쓰기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물론 선생님과 죽이 잘 맞아 친하게 된 것도 있지만 수업이 너무 재미있었다. 


  Writing 수업은 편지와 에세이를 쓰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해 첫 단어부터 뭐라고 써야 하는지 엄청 쩔쩔맸다. 영어로는 당최 무슨 말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지 머릿속이 정말 텅 빈 사람처럼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못 써보고 지나갔다. 물론, 영어로 편지와 에세이 두 종류를 쓰는 방법을 아주 기초부터 배우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편지는 친구에게 보낸다고 생각하니 그럭저럭 친근하게 다가왔다. 다만 영어로 써야 한다는 걸림돌에 아주 짧은 편지만 가능했다. 그래도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에세이가 문제였다. 이제껏 살면서 에세이를 단 한 번도 써본 적도 없었다. 또 에세이가 뭐 하는 건지도 몰랐다. 다시 에세이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서론, 본론, 결론으로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자기주장 혹은 생각을 나타내는 글의 한 형식이었다.    


 서론은 이 글을 쓰는 이유와 쓰게 된 배경 등이 포함되어야 하고, 본론은 무엇을 주장하는지와 그에 대한 몇 가지 이유와 그걸 뒷받침하는 근거 등을 제시하여야 했다. 가끔 반대 의견도 함께 포함시켜야 하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으로 결론에는 주장에 따라서 나는 어떠한 걸 내세우고, 모든 걸 정리하는 문장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편지를 쓸 때는 머리가 텅 빈 듯 하얘지더니, 에세이를 쓸 때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에세이를 한국말로도 잘 쓸 자신이 없었는데, 그걸 영어로 쓰라고 하니 나같이 영어 문외한에게는 감히 엄두도 못 낼 거대한 암벽을 만난 기분이었다. 영어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 달간은 영어가 하기 싫었다. 말하기와 읽기, 듣기, 쓰기 전부 노이로제가 걸려 버린 사람처럼 입이 굳어 말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아는 단어가 없어 읽히지 않았고, 언어의 구조를 몰라 써지질 않았다. 

  

비싼 돈 주고 왔는데 포기해야 하나 하는 순간에 나보다도 영어를 더 못했던 같은 동기들도 잘 버티는 걸 보고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한 달 동안 수업에 맘을 두지 못한 채 참석하고 있을 때였다. 매번 같은 걸 물어보니 외우긴 했지만 같은 대답을 술술 나오기 시작했고, 반복적으로 영어를 듣다 보니 쉬운 단어들이 내 귀를 두들기기 시작하더니, 아는 단어가 많아지니 조금씩 읽혀졌다. 그리고 쓰기도 편지와 에세이의 형식을 파괴하고 이야기를 써 내려가듯 배우다 보니 자연스레 영어로 써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두 달이 되었을 때는 모든 수업이 점점 재미있어지고, 다른 나라 친구들과도 친해져 서로 서투른 영어로 서로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노력하니 영어가 조금씩 향상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몸짓으로 표현하는 바디랭귀지 표현이 더 많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는 12주 동안 아주 재미있게 영어를 배우고 왔다. 

 

 마지막 Speaking 수업 때는 내가 선생이 되어서 축구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선생님은 내게 마지막으로 ‘talkative’ 란 별명을 붙여 주었다. 나는 좋은 의미의 별명인 줄 알았지만 ‘수다쟁이’란 뜻을 알고는 실망했지만 언어를 배울 때는 장점이 되는 별명이라 좋게 생각했다. 지금도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다. 그냥 어딜 나가든 죽지 않을 정도로 말하고 듣고, 읽고 쓸 줄 아는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2016년의 일이었다. 벌써 7년이 지난 일이다. 

  

세월이 지나 쓰임새가 없어 사용하지 않다 보니 거의 모든 부분에서 쇠퇴하였다. (원래 잘 못했으니 별로 없어진 것도 없지만) 다만 글쓰기는 그때 배웠던 것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글 쓰는 데 도움이 무척 많이 된다. 오늘과 같이 일반적인 글을 쓸 때는 써지는 대로 쓰면 되지만, 무언가 주제를 잡고 그것에 대해 글을 쓸 때는 예전에 배웠던 방법을 토대로 글을 쓰면 나중에 보더라도 아주 좋은 글이 되어 좋다.  

 

살다 보니 배워두면 다 쓸모가 있다는 옛말이 생각났다. 나도 영어를 공부하러 가서 글쓰기를 배울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유학비를 벌기 위해 막노동을 했을 때도 전기를 배웠는데 몇 달 동안 배운 것이지만 집에 있는 가전기구들과 등 기구들은 아주 간단히 고칠 수 있다. 자동차도 비슷하다. 타이어와 배터리 그리고 오일을 교체하는 법을 배워두니 일반 서비스센터 가서 교체하는 비용이 너무 아깝다. 모두 호주에 있었을 때 배워둔 것인데 실제로 해보면 정말 일도 아니게 너무 쉽다. 꼭 한번 해보시길 바란다. 오일은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타이어와 배터리는 정말 장난 아니다. 쉽게 말해 돌리고, 빼고 새 걸 넣으면 끝이라는 말로 정리된다.    


  다시금 자리를 잡게 되면 영어로 글을 써볼까 한다. 물론 아주 쉬운 영단어들로만 가득차 보기 민망할수도 있지만 이것 또한 쓰다보면 점점 더 좋아 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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