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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감성 May 09. 2023

하수의 여행

하수와 고수와의 만남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 을 읽자마자 나는 알았다. 글은 바로 이렇게 쓰는 거라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바로 이런 글이라는 걸 말이다. 그는 고수였다. 하수들이 볼 수 없는 글의 길로 쓰는 것이다. 단어의 선택이며, 글의 흐름이며, 읽는 내내 가보지 않아도 그가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풍경이 내 눈에 그려졌다. 


  예전 네루다의 시를 읽으며 받은 충격을 다시금 받은 느낌이었다. 내 안에서만 놀던 말들을 그는 시란 형태로 잘 표현해 냈는데, 이번 김훈 작가의 글을 접하며 그동안 내가 대했던 산과, 바다와 음식 등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 안에서만 맴돌던 감각들을 그는 글로 아주 순박하게 표현해 낸 것이다. 


 바로 이런 글이 잘 쓴 글이며, 좋은 글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유명하기도 하고, 작가라는 칭호를 얻는 것 같다. 나는 머리를 한대 맞은 것처럼 띵했다. 그동안 여러 권의 책을 읽으며, 간만에 내가 갈구했던 글의 맛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은 이디스 워튼의 - 여름 - 이란 작품은 거리와 숲을 묘사하는 것이 맘에 들어 선택했는데 전체적인 내용은 다소 실망스럽게 다가왔다. 도통 내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함을 몰라서, 문화권이 다른 생활양식의 글이라서, 그것도 아니면 번역가의 번역이 그녀의 글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해서 일까. 나는 나를 탓하기 전에 괜한 번역가에게 그 죄를 떠넘긴다. 역시 하수(나)는 다르다.  


 그에 반하여, 김훈 작가는 우리나라 작가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우리말의 맛을 참 우려낸다. 단어들이 서로를 잘 감싸다가 튕겨내기도 하고, 한데 어우르다가 흩어지기도 한다. 말의 응용력이라고 해야 될까 읽는 내내 감탄을 여러 번 자아냈다.  


  책을 읽다가 공부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 이번 책은 그렇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영어를 공부하는 것처럼 새로운 단어들의 뜻을 찾아보게 된다. 가끔씩 우리나라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새로운 단어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사어((死語)라고 생각될 정도로 태어나서 한 번도 듣도 보지 못한 단어들을 참 많이 만난다. 


  TV에서 본 순박한 그의 외모와는 달리 그의 글은 날카롭고, 앙칼지며 날것 그 자체이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느껴지게 된다. 뭔가 있어 보이게 쓰거나 혹은 남들에게 읽히게 만들려고 멋들어지게 쓰는 요즘의 글과는 많이 다르다. 나보다 한세대 위인 아버지의 글은 다들 앙칼진 면모를 가진다. 우리 세대와는 다르게 그들의 삶처럼 유치하지 않고, 가볍지 않다. 가볍게 날려 읽씹이 돼버린 많은 카톡들과 달리 심히 생각하고 오랜 묵힌 글이자, 남들 볼까 숨기고 부끄러워하는 치부를 이곳저곳을 들추어내는 날카로움과 날것을 결코 숨기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항상 살아있는 순간만을 담아낸다.  


  좋은 글을 쓸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이 오늘은 마음 깊숙이 박힌다. 언제나 누구나 그렇듯 하수의 길은 멀고 보잘것 없이 형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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