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감성 May 30. 2023

여름의 냄새

여름의 향기

  






  아직 5월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여름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습하고 진득한 것이 아침부터 내 코끝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5월의 냄새와는 전혀 달랐다. 여름은 이미 여름이 오기도 전에 와 버린 것이다. 꿉꿉함으로 가득한 아침으로 시작해 종일 이어지더니 중간중간 결코 가볍지 않은 소나기에 몇 차례 머리를 맞고 당황했다. 


  비가 오기 전 맡게 되는 비린내로 잠시 옛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비와 얽혀 이어진 시간과 장소, 사람들을 눈앞에 영상처럼 흐릿하게 비추기 시작해 비린내가 사라지면 영화는 종료된다. 


 요새 자주 눈가에 눈물이 맺힐 만큼만 울컥한다. 함께 울고 웃던 자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잘 살고는 있는지 그리워서 일께다. 궁금하며 던진 질문과 동시에 스스로 답하는 건 나이를 먹어서 생긴 버릇이다. 


  여름은 오는데 경제뉴스에서는 항상 세계경제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한다. 기상뉴스에서도 매년 같은 소릴 해댄다. 하지만 여름은 오고야 만다. 덥지 않은 여름과 춥지 않은 겨울이 왔으면, 나 또한 뉴스처럼 얼토당토않는 소릴 지껄여봤다.


 비와 함께 시작해서 무더위로 마무리하는 여름이 그리 미울 수가 없다. 짜증 내면 지는 것이지만, 앞으로 짜증 나는 일이 많아질 것 같아 미리 짜증을 내 나중 것을 좀 줄여본다.


   잠들기 아쉬운 비 오는 날의 여름밤은  여름 내내 나를 괴롭힐 것이다. 비가 세상과 부딪히며 들려주는 환상적인 화음을 들으며 꿈나라로 잠들고 싶지만, 아득아득 떠오르는 추억들이 나를 과거의 한 시점으로 불러내 잠들지 못하게 만든다. 추억여행을 마치고 시계를 보면 새벽 2시 아니면 3시인 경우가 많다. 이 시각이 내가 견뎌낼 수 있는 저항의 마지노선인 셈이다.


 성인이 되고도 10년이 지난 어느 날 언젠가 좋은 날 마시자며 산 술이 아직도 있다. 실은 기약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는 술의 맛을 모른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무자비한 술꾼이었던 아버지처럼 되기 싫었다. 술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아버지의 피가 내가 조금 남아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한다. 아버지 유언대로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 그때는 그를 위해서, 이제는 나를 위해서. 


 여름 냄새는 나를 이리저리 끌로 다닌다. 추억 속으로 데려가, 그리운 것들을 불려내기도 하고, 결국, 허상으로 끝나버리지만 이럴 때면 나는 냄새가 아득하고, 아련한 것까지 불러낼 수 있는 것에 감탄한다. 

오늘밤은 여름의 냄새를 만끽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5월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