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ow jogging
어느 길을 달렸다. 마음껏 달려도 숨이 차지 않았고, 다리도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는 순간 이것은 꿈이라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달리지도 못하면서 도서관에 가서 달리기에 관한 책을 몇 권 빌렸다. 그들 또한 나처럼 달리기를 하다 중도에 달리기를 그만둔 적이 있었다. 여기서 나는 그들이 그걸 극복해 내는 과정을 알고 싶었다.
달리기에 관한 책들에서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한다.
“ 천천히 달려라 그리고 즐겨라 ”
어떻게 하면 즐기면서 달릴 수 있을까 생각했다. 또 책에서는 천천히 달려도 충분히 즐겁다는 글과 함께 슬로우 조깅을 소개해 줬다.
“슬로우 조깅??”
“그게 대체 뭐지??”
영상을 찾아보니 노인들이나 할 법한 아주아주 천천히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는 것처럼 달리는 것을 말한다. 심박수로 예를 들면 분당 120회를 넘지 않도록 하는 달리기였다. 뭐랄까 내게는 가볍게 몸을 풀 때의 심박수였다. 내용과 영상을 보고서 내가 기대했던 것에 비해 아쉬워하며 나중에 몸이 다 나으면 그때 본격적으로 달려보자 결심하고 그렇게 슬로우 조깅은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일을 마치고 저녁 산책하러 길을 나섰다. 반대편에서 어떤 젊은 분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폼은 달리고 있었다. 그걸 보자마자 아!! 하고 바로 슬로우 조깅이란 걸 알아차렸다. 그때부터 이상하리만치 슬로우 조깅을 하시는 분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마 부상을 당하기 전 내가 봤다면 “저게 뭐하는 거야??” 하며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쳐 갔을 것이다.
그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전에 봤던 영상을 되뇌며 슬로우 조깅을 해보았다. 몇 발자국, 몇십 미터 달려보니 발이 아프지 않았다. 아니 견딜만한 통증이었다. 한발 한발에 나아가는 것에 집중하며 내디딘 거리가 3km가 되었다. 온몸에 땀이 흘렀고, 만족감(엔도르핀) 또한 흘러넘쳤다.
다시 달릴 수 있었다. 비록 걷기와 같은 속도의 달리지만 말이다. 그제야 달리기 책들에서 천천히 달려라, 즐기며 달려라라고 강조하며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천천히 달려도 충분히 즐거웠다. 기록의 단축보다 구르는 한발 한발에 느껴지는 감촉이 좋았다. 지면과 대화를 하며 달리는 기분으 들었다. 그리고 전혀 힘들지 않았다. 기존의 경쟁을 위해서 달리는 것이 아닌 나 자신과 대화를 하면서 달릴 수 있어 달리는 내내 즐거웠다.
실은 달리다가 또 아프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럴 걱정은 없다. 오늘도 내일도 천천히 즐기면서 달리면 된다. 여기서 천천히란 1km를 10분 정도에 달리는 것을 말한다. 어쩌면 달리기라고 말하기가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도 있다. 말 그대로 슬로우 조깅이라는 단어로만 표현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나의 달리기 또한 경쟁과 기록 단축에서 천천히 즐기는 달리기로 바뀌었다.
이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전 이제 슬로우 조깅을 하러 나갑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으시고 달리러 나가시는 분이 계신다면
오늘은 한번 슬로우 조깅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