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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감성 Oct 29. 2023

수어를 배우는 중 입니다.

수화 아닌 수어 입니다.

  


  8년 전 어느 여름 날, 도서관 게시판에 걸려 있는 한 포스터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수화를 가르치는 수화교실을 개강한다는 내용이었다. 내 곁을 떠난 그녀가 잠시 내 안에 머물다 갔다. 


“수화나 한번 다시 배워볼까..??”


  나는 첫사랑으로 귀가 불편한 사람을 만났었다. 다들 그렇듯 나도 처음 하는 사랑과는 이별했다. 연애시절 그녀에서 배운 엉터리 수화는 그녀와 나 단둘뿐이 이해할 수 있는 손놀이에 지나지 않았고, 그녀와 헤어진 후 쓸 일이 없게 되자 기억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러다 올해 여름 도서관에서 수어 교실의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9월에 기초반이 개설된다는 내용이었다. 제발이 수강생들이 많아서 개강 되길 바랐다. 


  그렇게 9월 마지막 주 수어교실 개강 첫날, 수업에 들어가기 전 수어 선생님은 “수어를 왜 배우려고 하나요??”라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수강생들 모두 각각의 이유가 있었다. 나는 그저 예전 친구와 더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배운다고 하였다. 사실이었다. 그 답답함에 지쳐 헤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와 더 많이 그리고 더 깊은 대화를 하고 싶었다. 둘이 대화를 할 때 그녀는 나의 입모양을 보고 대부분 알아 들었지만, 나는 그녀의 어눌한 발음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게 조금씩 서로가 서로에게 답답해했다. 그녀는 자신의 어눌한 말투를 몹시 미워하고 싫어해서 말 대신 문자를 보내왔었다. 그리곤 점점 더 말이 없어졌다. 나는 그녀에게 주어서는 안되는 예민한 아픔을 안겨준 것 같아 가슴 한구석에 미안한 응어리가 져 있었다


 내가 수어를 왜 배우는지 이유를 설명하자, 수어 선생님은 농아인 친구와 사귀었다는 사실에 고맙다는 말을 해주었다. 전혀 미안해하지 말라고까지 말해주었다. 보통은 주변이나 가족 중에 청각장애인이 있으면 수어를 배우게 되는데, 나와 같은 경우는 전에 없었던 새로운 경험이라 힘들었을 거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수어는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말없이 몇 가지의 손동작으로 알아듣는 것이 신기했다. 하나의 수어를 배우고 또 그것을 연결시켜 또 다른 수어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문자는 한 단어가 되고 또 단어와 단어를 결합하여 한 문장을 만들어내면 어느새 대화를 주고받게 된다. 


  여기서 수어에 대해 조금 설명하자면 수어는 수지와 비수지 이 둘로 나뉜다. 손으로 표현하는 것을 "수지"라 하고, 손이 아닌 몸동작과 얼굴의 표정으로 표현하는 것을"비수지" 라 한다. 나도 처음에 수어는 손으로만 하는 거라 생각했다. 예를 들어 같은 수어도 의문을 갖는 얼굴을 표현하면 의문문이 되고, 기분이 좋을 때는 좋다는 수지와 함께 기쁜 얼굴 표정의 비수지를 해줘야 한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뜻하지 않게 선생님으로부터 굉장히 칭찬을 받았다. 비수지를 정말 잘한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아마 내가 예전부터 무언가 이야기를 할 때 눈으로 보이듯 표정과 몸동작을 자주 사용해서 하다 보니 저절로 몸에 밴 것이라고 생각된다. 

 

  예전에는 수화로 불렸지만 이제는 또 다른 언어라 해서 수어라 표현한다고 한다. 지금은 기초반을 듣고 있다. 그래서 중급반, 고급반을 수료하면 선생님처럼 잘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수어 동시통역사 시험 정도 합격해야 비슷한 정도가 된다고 했다. 모든 언어가 그렇듯 기초일 때가 제일 재미있고 금방 잘해질것 만 같은 시기 같다. 어느 정도 실력이 올라갈수록 배움에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언제나 새로운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늦은 나이에 언어를 배우려고 하니 배움의 속도가 현저히 느려져, 몇 번을 거듭 반복해야 며칠 기억된다. 나보다 더 많은 나이의 수강생들도 있다는 사실에 나는 큰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비 내리는 목요일 밤,

수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예전의 그녀를 다시 만난다면 

많이 배우지 않은 수어이지만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그때는 말 못했던 말 미안하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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