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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감성 Feb 13. 2024

고민

빛속에서 나는 또다른 나를 만나다.


  비가 많이 내리는 이번 겨울이다. 비에 젖은 길을 걸으면서 홀로 생각에 잠겼다. 춥고 바람도 거칠게 부는 날이었지만 오히려 마음은 차분했다. 홀로 걷는 길이라 그런지 편안함 속에서 먼 길을 걸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생각이 잠겨 정신없이 길을 걸을 때가 많았다. 헤아려 보면 고민이 있을 때마다 걸으려 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걷다 보면 그 길이 곧 답을 제시해 줄 때가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안고 있던 고민이 해결되어 되돌아가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답을 찾지 못하고 그 상태 그대로 돌아가기도 한다. 오늘은 후자의 길을 걸은 것 같다.


  답이 없는 물음에 의미를 찾으려니 이날은 오래도록 길을 걷고 또 걸어야 했다. 마음 같아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힘껏 달려 내 주위를 감싸고 있는 고민을 몸과 마음에서 떼어내고 싶었지만 내 두다리는 아직도 달리는 법을 잊었다.   


  되돌아오는 길 하천 중앙에 한 마리의 새(황새)를 보았다. 그 새는 비가 오 건, 바람이 불 건 여의치 않고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한곳만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길을 걷는 것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함이라는 목적이 있듯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새의 행동에도 그 어떠한 목적이 있으리라 생각을 하며 새가 보이지 않은 거리가 될 때까지 뒤돌아 걸었다.  잠시나마 내 고민을 새를 만나 떨쳐 내버릴 수 있었다. 


  그다음엔 어정쩡한 곳에 우뚝 서 있는 큰나무 하나가 보였다. 아무도 없기에 한번 지나가는 길에 나무에 말을 걸어보았다. 내가 하는 이야길 듣는지, 아니 들을 순 있지만 대답이 하기 싫은 것인지, 아니면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무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을 나무를 만져보고서 알게 되었다. 차가운 빗줄기 속에서 따뜻함 같은 것이 내게 전해져 왔다. 그 느낌은 분명 손을 통해 가슴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너의 걷는 모습을 늘 지켜보았노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두 눈을 감고 나무가 내게 전하려는 말을 느끼면서 나는 나의 고민을 살짝 털어놨다. 


  신발과 바지도 모두 젖은 상태로 집에 돌아오고 말았다. 원래 평소 성격이 비가 오면 잡았던 약속도 다음으로 미루는 성격인데, 모처럼 만에 빗속을 헤매다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니 따스한 포근함에 빠져 바로 잠이 들고 말았다.  


  몇 시간을 추위에 떨다 잠이 들어서 그런지 잠이 깨고도 한동안 멍했다. 따뜻한 커피에 마지막 한 모금을 다 마실 때가 되어서야 멍한 상태를 벗어날 수 있었다. 모든 고민은 내게서 생겨난 것이기에 그 모든 해결책 또한 밖에 있지 않고 내 안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곳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하루 동안 기쁜 일로 미소 지어지기도 하고, 슬픈 생각에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하고, 힘든 일로 고민도 하고, 인생이 내가 바라는 대로 되는 듯하지만, 생각만큼 잘 굴러가지 않아 오히려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오늘은 그간 고민이 없던 내게 고민거리가 많았던 날이다. 오랜만에 내안의 나를 만나게 되어서 좋았지만 슬픈 하루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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