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중재 시스템
많은 학부모와 교사들이 요즘 아이들은 가르치기가 참 힘들다는 말을 한다. 아이들이 예전보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권리에 대한 인식도 높아져서 예전처럼 ‘훈육’이라는 이름 아래 일방적인 지도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말의 뒷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요즘 아이들은 과연 예전보다 자기주장이 강해졌을까? 우리가 아이였을땐 자기주장이 없었을까? 왜 우리는 요즘 아이들처럼 어른들 앞에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펼치지 못하고, 권리를 내세우지 못했을까? 무엇이 우리의 입을 막고, 행동을 통제했던 것일까?
우리때는 체벌이 당연한 시대였다. 학부 심리학 시간에, 교수님으로부터 어릴 적 체벌을 받은 적 있는가, 어떤 체벌을 받은 적이 있는가, 그것이 아동학대라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200명이 넘는 학생중에 절반 이상이 체벌을 받은 적이 있고,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수위의 체벌을 받은 학생들도 있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체벌을 당연한 체벌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를 엎드려 놓고,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린다던지, 혁대로 아이를 때리는 것 등이다. 그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오 맙소사'를 연발하며 두손으로 내 입을 막는 제스처를 보여, 어렵게 말을 꺼낸 친구를 민망하게 만들었다. 반대로, 아시안 학생들이 날아오는 슬리퍼에 맞은 적이 있다는 말을 듣고 놀랐던 미국학생들의 표정도 잊지 못한다. 아이들의 천국이라고 생각했던 미국도 예전엔 체벌이 종종 있었고, 한국과는 다른 방법으로 아이의 신체를 때리거나 벌하기도 했다. 또한, 주에 따라서 체벌을 금지하는 정도가 다른데, 놀랍게도 많은 주가 엉덩이를 때리는 정도는 합당한 체벌에 속한다.
이제 사람들은 체벌이 법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왜 교육적으로 효과적이지 않은지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체벌이라는 주제 자체가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모와 교사들은 여전히 체벌 없이 어떻게 훈육하고 교육할 수 있는지, 그 방법론 앞에서 방황한다. 집에서든 교실에서든, 아이가 또래나 어른에게 기분 내키는 대로 욕설을 내뱉거나 폭력을 행사할 때, 우리는 체벌 대신 무엇으로 그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사랑의 매를 들면 한 번에 고칠 수 있다’고 말하는 윗세대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매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람을 오로지 육체로만 본다면, 육체를 때려서라도 훈육해야 한다는 말이 어쩌면 맞아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육체만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다. 신체를 때려 당장은 행동을 통제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내부에 있는 마음과 정신은 결코 통제되지 않는다. 더 큰 신체적 고통을 가해 정신까지 굴복시키려 한다면, 그건 한 인간을 파괴시키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육체에 가해진 고통은 일시적 복종을 낳을 수 있지만, 아이의 내면과 신뢰를 무너뜨린다. 그렇게 깨어진 관계 안에서는 더 큰 배움이 일어나기 어렵고, 스스로 깨우치는 능력 또한 자라기 힘들다. 배움은 신뢰 위에서 시작되고, 성장은 안정감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랑의 매’라는 말은 이제 진지하게 재고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도데체 어떻게 아이의 문제 행동 또는 도전 행동을 폭력과 무력없이 고쳐줄 수 있는가. 이전 에피소드에 자기조절방법의 하나로 카밍코너를 소개했었다. 카밍코너(Calming Corner)는 학생이 감정을 조절하고 스스로 진정하는 법을 배우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사회정서학습(SEL)의 핵심 구성요소로, 감정의 흐름을 인식하고 자신을 돌보는 기술을 연습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실제 교실 현장에서는 이 카밍코너의 본래 목적이 종종 오해되곤 한다.
많은 교사와 보조교사들은 학생이 도전 행동을 보이거나 수업 참여를 거부할 때, 그들을 카밍코너로 보낸다. “You need a break.” “Go take a break in the calming corner.” 상황에 따라 그 말 속에는 의도치 않게, '기분이 나쁠땐 남을 때리고 가서 쉬면 되' 라던지, '공부하기 싫거나 어려우면 회피해도 된다'는 의미가 담긴다. 아이들은 카밍코너를 ‘잘못해도 보상받는 곳’ 혹은 ‘공부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배우게 된다. 결국 카밍코너가 감정조절의 연습 공간이 아니라 학생의 잘못을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카밍코너는 결코 문제 행동의 결과로 가는 공간이 아니다. 감정이 격해지기 전에 스스로 진정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한 예방적 전략(preventive strategy) 이다. 자기조절을 한창 배워가는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른이라면, 아이가 감정이 고조되어 문제 행동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 그보다 먼저 아이의 감정 신호를 세심하게 읽고, 문제 행동이 나타나기 전에 카밍 코너로 안내해야 한다. 카밍코너를 이용하기도 전에, 아이가 이미 자신이나 타인을 해치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소리를 지르는 단계에 이르면 그 공간은 더 이상 감정조절의 연습장이 될 수 없다. 이미 폭발한 상태에서는 학습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감정 조절에 이미 실패해서 잘못을 저지른 후에 카밍코너에 보내는 것은, 학생의 잘못 된 행동을 다음에 또 하라고 부추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에 대한 대안으로 요즘 많은 학교들이 블루룸(Blue room) 또는 격리방(seclusion room)을 사용한다. 이 공간은 학생이 자신과 타인을 해칠 위험이 있는 상태에서 잠시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진정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장소이다. 이론적으로는 ‘안전 확보(safety)’와 ‘자기조절 회복(self-regulation recovery)’을 위한 보호적 중재 공간(protective environment) 이다. 문제는 이 공간이 ‘처벌용 격리실’ 로 오용될 때이다. 특히 일반학급에서 교사가 감정적으로 격앙된 학생을 벌이나 통제의 목적으로 이 방에 가두는 사례가 보고되면서, 미국 여러 주에서 격리방(seclusion room) 사용을 법적으로 엄격히 제한하거나 금지하고 있다.
미 교육부(US Department of Education, 2012)는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Seclusion and restraint are emergency procedures, not behavior management tools.' 격리와 신체 결박은 행동지도 전략이 아니라, 응급 상황에서만 사용 가능한 최후의 수단(emergency-only intervention) 이다. 학생이 자해하거나 타인을 위협하는 즉각적인 위험이 있을 때만, 교사가 교육청으로부터 Mandt나 CPI 같은 '비폭력 위기중재' 트레이닝을 받은 경우에 한해, 관리자에게 즉시 보고하고, 사건 기록 및 사후 회복 대화(debriefing)를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 이 모든 절차가 없으면, 그것은 위기중재(crisis intervention) 가 아니라 학대(abuse) 로 간주된다.
CPI(Crisis Prevention Institute)와 Mandt System은 둘 다 미국 공교육 현장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근거 기반 위기중재(behavioral crisis intervention) 프로그램으로, 학생이 폭력을 행사해 본인이나 다른이들을 위협할때, 모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학생을 중재하는 시스템이다. 교장, 교감, 학장등으로 이루어진 교육행정팀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도전행동을 다루는 특수교사들과, 몇몇의 일반교사들이 정기적으로 이 트레이닝을 받는다. 이 프로그램은 나중에 설명할 우리반의 Thinking Square의 운영 철학과 완전히 맞닿아 있다. 이글은 두 트레이닝의 공통 핵심 원리를 결합하여, “학생의 도전행동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를 교육적 관점, 그리고 연구 근거 중심으로 정리한 글이다.
CPI와 Mandt 두 체계의 철학은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된다. “We teach, not punish.” 도전행동은 ‘불순종’이 아니라 배움의 미숙함(Lack of skill) 으로 본다. 학생이 감정조절, 의사소통, 문제해결 등 사회정서적 기술(SEL skill) 을 충분히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감정 폭발이나 공격적 행동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의 역할은 처벌자가 아니라 조절을 가르치는 선생님(teacher of regulation) 이다. 학생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질 때, 교사는 “이 행동에 대한 벌을 주어야 한다”고 반응하기보다, “이 아이는 조절 기술을 배우지 못한 상태구나”라고 인식해야 한다. 그 순간 교사의 목표는 학생을 나에게 ‘순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조절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 이다.
CPI는 위기 중재의 첫 단계는 물리적, 정서적 안전 확보라고 명시한다. 학생의 감정이 폭발했을 때 교사의 개입은 최소한으로 유지하며, 거리 유지(proximity control) 와 환경 정리(environmental modification) 가 우선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학생이 자해적 행동을 보일 때는 그가 다칠 위험이 있는 물건(신발, 연필, 의자 등)을 제거하고 안전거리를 확보한 뒤 차분한 목소리로 반복적 지시를 제공한다. 이는 Mandt System이 말하는 'least restrictive intervention (가장 덜 제한적인 개입)'의 원칙과 같다. 교사는 학생을 통제하려 하지 않고, 환경을 통제하여 안전을 확보한다.
CPI는 교사가 위기 상황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10단어 이하, 10초 이하, 10도 이하의 톤으로 제한할 것을 권장한다. 말을 길게 하지 않는다. 큰 소리로 훈계하지 않는다. 감정이 섞인 어조를 피한다. 왜냐하면 학생의 편도체 (amygdala) 가 활성화된 상태에서는 언어적 지시나 설명이 전혀 처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는 교사의 비언어적 행동(Nonverbal behavior), 즉, 몸의 방향, 거리, 눈빛, 손의 위치가 훨씬 더 큰 메시지를 전달한다.
Mandt System은 이를 'The power of presence' 라고 부른다. 존재감으로 안정감을 주는 교사가 가장 강력한 중재자다. 그러므로 학생과의 관계는 문제 행동 예방의 시작이다. CPI와 Mandt는 모두, 행동은 관계 안에서 조절된다고 본다. Mandt는 이를 'Healthy Relationships = Safe Environments' 로 정의한다. 학생이 교사에게 신뢰를 느낄수록, 그 교사의 개입만으로도 도전행동은 빠르게 진정된다. 따라서 교사는 위기 직전이나 이후뿐 아니라, 평상시의 관계 구축(Relationship Building) 에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칭찬, 공감, 예측 가능한 일과, 안전한 환경. 이 모든 것이 ‘위기를 예방하는 구조적 장치’다.
신체적 개입은 마지막 단계이며, 반드시 기록되어야 한다. CPI와 Mandt 모두 신체적 개입(physical intervention)은 즉각적 위험이 존재할 때만 허용된다. 즉, 학생이 자기 목을 조르거나, 다른 학생을 가격하려 할 때처럼 명확한 신체적 위협이 있을 때에만 보호적 물리중재(protective hold) 를 사용할 수 있다. 이때 Mandt는 3원칙을 명시한다: 최소 시간(minimal time), 최소 힘(minimal force), 최소 통제(minimal restriction). 그리고 사건 후에는 반드시 incident report를 작성하고, 교사, 관리자가 함께 사후 회의/분석(debriefing)을 진행해야 한다. 이 과정이 있어야 학생의 회복뿐 아니라 교사의 정서적 회복도 가능하다.
그후 학생과의 관계 회복은 훈계가 아니라, 둘 사이의 리플렉션(reflection)으로 한다. 위기 후 학생이 진정되면, 교사는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보다 “다음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에 더 초점을 맞춰 함께 고민한다. 이는 Mandt가 강조하는 회복적 대화(restorative conversation)이며, CPI에서 말하는 위기후 가르침 단계(Post-Crisis Teaching Stage) 이다. “What was happening in your body before you got mad?” “What can we do next time when you feel that way again?” 이 대화의 목적은 학생 스스로 패턴을 인식하고 대안을 찾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은 자신의 실수를 배움의 기회(opportunity to learn a skill)로 경험한다.
우리 교육구는 Mandt Training을 통해 위기 상황에서도 ‘Teaching, not punishing’의 원칙을 지킨다. 내 교실의 Thinking Square는 Mandt Training의 원칙인 가르침을 통한 안전 회복(teaching safety through structure) 을 교실 수준에서 구체화한 실천 전략이다. 안전을 잃지 않으면서도 모두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아이와 교사 모두를 위한 클래스룸의 위기대응 시스템이다.
Thinking Square는 감정 폭발 이후, 학생이 스스로와 다른이의 안전과,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기 위한 훈련 공간이다. 스스로 멈추는 법을 배우는 자기조절 공간인 셈이다. 만약 학생이 자신이나 타인을 해치는 행동을 보이면 즉시 Thinking Square로 이동시킨다. 이때 교사와 학생모두 신발, 가방, 키, 워키토키, 목걸이 등 위험할 수 있는 물건은 모두 코너 밖에 둔다. 학생은 X표시가 있는 자리에 앉아 ‘안정된 몸(calm body), 안전한 손(safe hands), 조용한 입(quiet mouth)’을 보여야 한다.
학생이 어른의 지시를 따라 본인이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면, 교사는 시각 타이머(visual timer)를 사용해 각 구간을 10–20초 단위로 체크하고, 모든 구간이 끝나면 학생은 코너를 벗어날 수 있다. 만약 시각 타이머의 모든 섹션이 다 체크되기 전에, 다시 소리를 지르거나 발로차는 등의 행동을 보이면, 타이머는 지워지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스스로 앉아서 안전한 상태가 되지 않으면, 학생은 코너 밖으로 절대 나올 수 없다.
인간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안전함을 선택하지 않으면, 결코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물론, 학생이 스스로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할때까지, 교사도 코너 밖으로 나올 수 없다. 명확한 안전상의 이유없이, 학생을 혼자 코너에 가둬두는 것은 학대이기 때문이다. 나는 최대 3시간을 한 학생과 이 코너에 갇혀 있었던 적이 있다. 여러 학생이 돌아가며 문제 행동을 보이면, 어떤 날은 하루종일 코너에 서 있었던 적도 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지치고 힘들지만, 사실 한편으론 이시간을 즐기는 면도 없지 않아 있다. 이 지겹고 지독한 과정을 몇번 거치고나면, 학생이 결국엔 스스로 안전한 방법을 택하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낀다. 내가 반드시 너를 고쳐놓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학생이 겪는 모든 과정을 몸소 같이 겪으며 두눈을 부릅뜨고 지켜본다. "나는 너가 안전한 손과 발을 보여줄때까지 여기에 하루종일 있을거야. 너 나를 아직 잘 모르는구나."라고 말하며 씩 웃으면, 나를 노려보다가 서서히 스스로를 진정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코너 밖에 앉아있는 보조교사들과 학생들도 그 소리를 들으면, 한번씩 픽 웃는다. 그말이 너무도 진심이라는 것을 아는 웃음이다. "너 저 말을 지금 듣는게 좋을텐데"라고 놀리며 지나가기도 한다. 다들 나의 집요함을 한번씩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나는 언제나 장난끼 많고 웃음 많고 친절한 선생님이지만, 학생을 고쳐야 할땐 고쳐질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면이 있다. 그런 나의 지독함을 학생들은 무서워 한다. 내가 한번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그 학생이 해낼때까지 붙잡고 놔주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 종이 울리고, 스쿨버스가 와도 집에 보내주지 않는다. 학부모에게 전화해 직접 데리러 오라고 하고, 끝까지 Thinking Square안에서 기다린다. 어떤 학생들은 일부러 입안에 손을 집어 넣어 토하거나, 바지를 내려 소변을 보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절대 놔주지 않는다. 그때 보내주면, 그 학생은 앞으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일부러 토하거나 소변을 볼 것이다. 어떤 학생은 보란듯이 벽에 머리를 박거나 코를 쑤셔 코피를 내고 그 피를 온 벽에 바르기도 한다. 그래도 보내주지 않는다. 그때 보내주면, 다음번엔 더 심한 자해를 할 것이 불보듯 뻔하다.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스스로 고칠때까지 절대 나갈 수 없다. 그럼 아이는 별의 별 행동을 다 시도해 보다가, 스스로 생각해서 스스로 안전하고 올바른 선택을 한다. 그 꼴을 다 견디고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면, 결국 아이가 스스로 좋은 선택을 하게 되어 있다.
많은 경우 어른들이 그 꼴을 견디지 못하고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에게 똑같이 폭력을 쓰거나 포기하고 방치하는 것이다. 요즘엔, 방법을 몰라 오히려 도전 행동을 더 하게끔 부모와 교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부추기기도 한다. 아이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하는 행동에 속아 봐주게 되면, 그 아이는 다음에 더 강하고 더 위험한 방식의 문제 행동으로 보답할 것이다.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오늘, 지금 당장, 이를 악물고 끝까지 버티고 지켜봐 줘야 한다. 밤을 새더라도 말이다.
나를 잘아는 학생들은 내 앞에서 만큼은 문제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저 여자는 건드리면 끝을보고, 상황을 아주 피곤하게 만들어 자신이 더 괴로워 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이 끈질긴 집요함이 아이들에게는 신뢰와 안정감을 준다. 안 되는 것은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어른의 단호한 태도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어디까지 행동해도 되는지 경계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그 경계 안에서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잡아주는 어른이 있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 매우 큰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 훈육에 일관성이 없고 정해진 룰이 없이 허용적인 어른은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하고, 그 불안을 떨치기 위해 아이들은 문제행동을 보인다. 어른이 바운더리를 정해주지 않으면, 아이는 울타리 없는 허허벌판에 혼자 남겨진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문제행동은 살기위한 수단이고, 숨쉬기 위한 선택이다. 굳이 큰 소리를 내거나 화를 내지 않아도, 일관적인 집요함이 신뢰있고 안정감있는 어른으로 만들고, 아이들은 그런 어른의 말에 무게를 두고 따르게 되어있다.
지금까지 울타리 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망아지를 다시 안전한 울타리 안으로 데려오는 과정은 힘들고, 험난하고, 때로는 고된 일이다. 그러나 그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부모이거나 교사일 수밖에 없다. 아이에게 울타리를 세워주는 일은 누군가 대신해줄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이면서 중요한 일이고 가장 사랑의 마음이 필요한 일이다.
카밍코너가 예방이고, 블루룸이 마지막 위기대응이라면, Thinking Square는 그 중간에 위치한다.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를 격리시키거나 결박하지 않고, 교실 수준에서 가능한 위기 중재다. 학생이 도전행동을 보였을 때 즉시 교실 내에서 진정할 수 있는 구조이며, 신체적 개입 없이도 안전 확보를 가능하게 한다. 블루룸/격리방으로 보내기 전, 스스로 조절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아이의 행동을 고치고 상황의 통제력을 되찾기 위해 가장 먼저 피해야 할 것은 감정적인 힘겨루기/기싸움(power struggle) 이다. 어른이 감정이 상하거나 자존심이 흔들려 아이와 말싸움을 하거나, 고집 대 고집으로 맞서기 시작하는 순간, 어른은 순식간에 아이의 감정적 에너지에 말려들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잃는다.
아이를 굴복시키고 내 뜻에 따르게 만들겠다는 마음이 앞서면, 정작 지금 가장 우선순위로 가르쳐야 하는 핵심 포인트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 포인트에서 벗어나는 순간, 교육적 개입은 사실상 끝난다. 아이를 굴복시키고 어른임을 보여주려고 신경전을 벌이는 태도 자체가, 이미 당신이 어른으로서의 통제력을 잃었다는 증거다. 그 자리에서 어떻게든 힘이나 논리로 아이를 이겨먹은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힘겨루기를 한 순간부터 당신은 아이에게 우스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힘겨루기와 기싸움을 면치 못하게 된다.
따라서 위기 상황에서 교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는 학생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어른과 아이의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도록 일관된 중립성(neutrality)을 유지하는 것이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짧은 ‘멈춤(pause)’을 두고, 부드럽지만 단호한 톤으로, 짧고 명확한 지시를 반복하는 것. 이것이 위기 대응의 핵심이며, 연구적으로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입증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아이의 때리는 행동을 고치는 중에 “너 말투가 그게 뭐냐”, “어른에게 태도를 그렇게 하면 되냐”, “눈 똑바로 떠라”, “다시 말해봐라.” 와 같은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말들은 문제행동의 본질에서 벗어나 단순히 어른이 자신의 위치를 회복하기 위해 시비거는 수준의 개입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의 감정을 더 자극하고, 상황을 악화시키며, 정작 가르쳐야 할 ‘때리는 행동을 멈추는 기술’과는 전혀 연결되지 않는 말들이다. 훈육할때는, 지금 바로 고쳐야 하는 핵심 행동 하나에만 초점을 맞춘다.
Thinking Square의 핵심 원칙은, 어른의 최소한의 개입으로 학생 스스로 몸을 통제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게하는 것이다. 물리적 접촉은 오직 안전 확보가 필요한 순간에만 허용된다. 그 외의 상황에서는 거리를 유지하고, 말을 줄인다. “show me safe hands!” “quiet mouth!” 이 정도의 짧고 명확한 언어만 사용한다. 이 시간은 감정이나 행동에 대한 긴 강의를 하거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설명하는 시간이 아니라, 학생이 행동을 스스로 조절하는 ‘멈춤의 훈련’을 하는 시간이며, 결국에는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규칙, 규범, 매너를 따르도록 만드는 곳이다. 따라서 Thinking Square안에서는 위로, 포옹, 쓰다듬기, 칭찬, 강화물 제공 등은 절대 금지된다. 그 모든 것은 학생이 코너 밖으로 나와 어른의 지시를 따르고, 자리로 돌아가 다시 학습 할 준비 자세(ready hands)를 보였을 때 보상(reinforcement) 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감정을 공감하고, 위로하고, 쓰다듬어주고, 칭찬해 주고 싶었으면, 학생이 도전 행동을 보이기 전에, 표정과 몸짓에서 보낸 작은 신호들을 읽고, 카밍코너로 보내 그곳에서 진작에 했어야 할 일이다. 이미 그 모든 힌트를 놓쳐 물이 엎질러진 뒤라면, 뒤늦게 어른이 대신 나서서 엎질러진 물을 급하게 쓸어담고 컵을 어루만질 일이 아니다. 그 순간 어른이 해야 할 일은, 학생 스스로 젖은 바닥을 깔끔하게 닦고, 컵을 바로 세우고, 다시 깨끗한 새 물을 받을 수 있도록 단호하게 훈련시키는 것이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단호해야 할때 위로를 하고, 위로해야 할때 단호하면, 아이의 문제 행동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Thinking Square는 학생이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경험을 반복하는 공간이다. 그 반복이 쌓이면, 학생의 내면에 ‘보이지 않는 Thinking Square’가 생긴다. 화가 나거나, 혼란스러울 때, 그 마음의 모서리에 스스로 멈추고 숨을 고르는 능력. 그게 바로 자기조절(Self Regulation) 이다. 자기조절이 내면화 되어 있는 아이는 자기효능감(Self efficacy)이 뛰어나서, 어느방면에나 자신감이 넘치고, 어느 상황에서도 단단한 자존감으로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 내가 나의 몸과 정신을 내가 스스로 다스리는 것을 성공해보는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를 달래고 얼러서 겨우 진정시키는 상황만 모면하는 어른들의 행동은 아이를 위해서 지금 당장 멈춰야 한다.
Calming Corner가 감정을 다스리는 훈련을 하는 장소라면, Thinking Square는 행동을 다스리는 훈련을 하는 곳이다. Calming Corner는 학생이 감정적으로 폭발하기 전에 조절할 기회를 주는 예방적 전략(preventive strategy)이고, Thinking Square는 이미 발생한 위기 혹은 도전 행동을 안정시키기 위한 반응적 전략(reactive strategy)이다. 이 두 시스템 모두 자기조절을 연습하는데 중요한 환경지원 전략이다. 자기조절의 내면화가 어려운 학생들에게 시각적인 장소를 마련해 줌으로서 환경 지원을 하면, 사회 정서 훈련과 도전 행동 교정에 큰 도움이 된다.
내가 교실에서 사용하는 이 시스템은 교육청의 위기대처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우리학교 심리학자와 협업하여 만들어낸 아이디어다. 물론 이 위기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정기적인 위기대응 훈련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기반 위에 반드시 더해져야 할 것이 있다. 서로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행정관리팀의 지지와 학부모의 협조다.
교사가 아무리 좋은 전략을 가져오고, 아무리 과학적이고 근거 기반의 아이디어를 준비해도, 공동체가 함께 협력하여 움직이지 않으면 한 아이를 바로 세우는 일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 결국 한 아이의 성장은 교사나 부모 한 사람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온 마을이 함께 협력하고 협업할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