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멕시코시티 입성
걸어서 5분 거리인데 그 시간에 혹시 모르니까
내 비행기는 멕시코시티 베니토 후아레스 공항에 밤 11시 50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입국 수속 등 거치고 나면 언제 시티로 나가게 될지도 모르고, 24시간 체크인이 가능한 호텔이 아닌, 현지인 아파트 셰어 형태로 방을 빌렸기 때문에 새벽에 멕시코 시티 아파트 체크인하는 게 조금 부담이었다.
그래서 첫날은 멕시코 공항 인근 숙소에서 하루 쉬고, 다음날 오전에 멕시코 시티로 들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공항 내에도 숙소가 있지만 터미널이 달랐다. 멕시코 시티 공항 터미널 1, 2는 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 교통수단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밤늦게 그 이동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다가 에어비앤비를 통해 공항에서 도보 5분~7분 거리에 있는 현지인 숙소를 예약했다. 공항 근처 마을인 만큼 치안은 별 문제없겠지란 생각으로 예약하고 멕시코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나 밤 11시 50분쯤 멕시코 시티 도착 예정이라는데, 이것저것 입국 수속하고 짐 찾고 하다 보면 정확히 언제 나올진 모르겠어. 새벽일 텐데 그 시간에 체크인할 수 있을까?
-오케이. 가능해.
-거기 걸어서 5분 거리이지? 그 시간에 걸어도 될까?
-음, 걸어서 5분 거리는 맞는데 그 시간엔 혹시 모르니까 우버 타고 오는 걸 권해.
*멕시코는 승차 공유 시스템인 우버가 보편화되어 있다.
걸어서 5분 거리인데 우버를 타고 오라니. 호스트가 남긴 "그 시간엔 혹시 모르니까"란 말이 살짝 긴장됐다. (물론 호스트는 100% 안전하다고 확신하는 것보단 정말 만의 1%가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나이스하게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멕시코는 어딜 가나 한밤 중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걸어서 5분 거리에도 가는 길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걸까. 가뜩이나, 누군가가 공유해 준 "멕시코 공항에서 환전하고 나오다가 대낮에 노상강도 당했다" 란 글을 보고 밤늦게 환전은 안 해야겠다 생각하던 차였다.
캐나다에서 비행기를 타고 멕시코에 도착하는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긴장되기 시작했다.
나를 숙소까지 데려다준 공항 직원들
멕시코 시티 입국 심사는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비행기는 예상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다. 멕시코 내국인 줄은 상당히 길었고, 상대적으로 적은 외국인 줄은 짧았다. 멕시코 입국 심사는 스페인어로 해야지 하고 속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출입국 직원이 따스한 미소로 "얼마나 있을 거냐"라고 묻는데 나도 모르게 영어로 "3개월 정도 멕시코에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 외에 다른 질문 없이 도장 쾅 찍고 입국 성공. 누군가가 멕시코 입국할 때 리턴티켓이나 멕시코에서 나가는 교통수단 티켓 보여줘야 한다고 하길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입국(?)해버려서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더 늦어지기 전에 바로 짐 찾는 곳으로 달려가 내 배낭을 찾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 출구로 향했다. 이 공항 출구는 공항 우측 끝에 있었는데 나오니 택시 스탠드가 잔뜩 있었다. 그런데 공항 택시들은 내가 가려는 주소를 보더니 저쪽으로 걸어가라라고 말하고 거부. 하긴 나 같아도 공항에서 걸어서 5분 거리를 태울 거 같지 않았다. 그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횡단보도가 없는 도로였는데 저 멀리서 몇몇 공항 조끼를 입은 직원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중 야식을 사 오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 직원 두 명에게 내가 머무를 숙소 주소를 보여주며 "이쪽으로 가는 길이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들은 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손짓하며 "일루 가서 오른쪽으로 튼 다음 조금 걸으면 된다"라고 알려줬다. 근데 내 눈엔 아무리 봐도 횡단보도가 안 보이고 마을처럼 보이는 게 없어 "어떻게 이걸 건너냐?"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아 그냥 우리가 데려다줄게"하며 자신들이 온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아, 그럴 거 까진 없는데!"라고 말하며 그들과 함께 차만 있는 것처럼 보이는 대로변을 건넜다. 건너기 전엔 보이지 않았던 야식 노점상이 보였고 그곳에선 늦은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뒤로 비로소 보이지 않는 작은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 구글맵을 한 번 살펴보더니 익숙하다는 듯 걸어갔다. 늦은 시각이라 대부분 집 대문들은 굳에 닫혀 있었고, 마을 안으로 들어갈수록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약 5분 정도 걸으니 저 멀리 숙소 앞에 호스트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는 게 보였다. (공항 출구에서 나서기 전에 호스트에게 5분~10분 후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알렸고 호스트는 문 밖에 나와있겠다고 했다)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준 공항 직원들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나는 그 주소지까지 뛰어갔다. 다행히 에어비앤비 사이트에서 대화를 한 호스트가 맞았고, 대문 앞에 서성이던 그에게 "내가 OO이야"라고 말하자, "아 네가 OO이야?"라고 대답하더니 나를 얼른 안으로 들여보냈다. 영화 속에서만 보던 높은 철제 대문이었는데 내가 들어오자마자 호스트는 후다닥 문을 단단하게 걸어 잠갔다. 그 짧은 순간이 살짝 무서웠는데 혹시나 내가 잘못 온건 아니겠지란 불안감이 아주 살짝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안감을 가졌던 게 미안할 정도로 호스트는 친절하게 건물 안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약 2층짜리 건물이었는데 약 6~7개 방이 있었다. 그중 나는 2층. 화장실과 침대 등 기본적으로 갖출 것은 다 갖춘 속소였다. 20시간 동안 비행기 좌석에 앉아 오느라 퉁퉁 부은 종아리를 비로소 풀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오전 2시. 비행기에서도 잠을 못 잤는데, 15시간 다른 시차 때문인 건지 피곤한데도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그 와중에 새벽 2시~4시 저 바깥엔 무슨 축제를 하는 것인지 시끌벅적한 음악소리가 계속 들린다. 오는 길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대체 저 사람들은 어디서 음악을 틀어놓고 노는 걸까. 시끄러워도 잠은 잘 자는 편이라 그리 거슬리진 않았다. 오히려, 밤늦은 시간에 멕시코 괜찮을까? 란 긴장감이 스르르 녹기 시작했다. 어쩌면, 지나치게 긴장했던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