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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Jul 28. 2023

"외국인이니까 돈 더 내세요"

과테말라, 안티구아 

인도에서 처음 경험했던 외국인 요금 


외국인 요금과 현지인 요금의 격차를 노골적으로 경험한 첫 나라는 다름 아닌 인도였다. 살면서 한 번쯤 가봐야 할 관광지인 타지마할에 들어가기 위해선 현지인들은 40루피만 내면 되고 외국인들은 25배 이상에 해당하는 1000루피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사실 1000루피란 숫자가 커 보이지만 한화로 환산하면 약 1만 6천 원 내외이다. 전 세계 유명 관광지 (특히 미국과 유럽에 있는 관광지)들이 별 것도 아닌 것에 10달러, 20달러 받는 거에 비한다면 타지마할 입장료 1만 6천 원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보통 우리는 가격 그 자체보다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돈을 더 많이 받는 것에 분통을 터뜨리곤 한다. 우리나라나 유럽, 미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요금 체계일 뿐 아니라, 대놓고 "자국인 요금" "외국인 요금"을 나란히 명시해 현지 물가에 비해 훨씬 비싼 요금을 치르게 하는 게 부당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자국인 요금은 현지 물가인데 외국인 요금이 바가지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금액 그 자체보단 관광지가 공식적으로 바가지를 씌우는 게 뭔가 괘씸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괜스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나 역시 인도에서 처음 이러한 요금 체계를 겪었을 때 어린 마음에 부당함을 느꼈던 거 같다. (그때의 나는 10년 전, 20대 초반이었다) 


멕시코와 과테말라에서 오랜만에 경험한 외국인 요금 

인도 여행 10년 후, 멕시코에 와서 오랜만에 외국인과 내국인 요금이 다른 것을 경험했다. 멕시코에 오면 방문할 가치가 있는 마야문명 유명한 피라미드인 치첸이사에서 오랜만에 외국인 요금을 경험했다. 인도만큼 25배만큼 차이는 아니었지만, 외국인은 약 614페소 (약 4.5만 원), 내국인은 약 272페소 (약 1.7만 원 내외)으로 약 3배 차이였다. 이후 과테말라로 들어온 이후엔 빈도가 잦아졌다. 

외국인 요금과 내국인 요금 구분된 치첸이사 
치첸이사

과테말라 최고 유명한 관광지인 티깔을 포함해 다양한 관광지에선 외국인 요금과 과테말라 사람 요금이 따로 있었다. 심지어 한 전망대는 외국인 요금, 과테말라 사람 요금, 라틴 아메리카 사람 요금으로 세분화되어 있었다. (외국인 요금 > 라틴 아메리카 사람 요금 > 과테말라 사람 요금 순) 


외국인이니까 더 내는 요금이 이젠 당연해졌다. 여기에 대한 감각이 어느 정도 무뎌졌고, 언젠가부터 난 외국인 요금과 현지인 요금 차별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외국인 요금 가격을 사진 찍어 "Unfair"라고 외치던 미국인

과테말라에는 유독 미국인 여행객들이 많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남아 가는 것처럼 가족 여행이나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해 첫 자유여행을 하는 미국인들이 유독 많은 나라다. 종종 이들이 한 번에 우르르 몰려 숙박하는 곳에 잘못 걸리면 밤새도록 이들의 파티 소음에 시달려야 한다. 

과테말라 마야문명 티깔 유적지 

과테말라 마야 문명 유적지인 티깔은 독특하게 새벽 4시 30분 출발하는 투어가 가장 인기 있다. 4시 30분 출발해 5시 30분쯤 도착, 6시에 입장한 후 6시간 동안 유적지를 둘러보는 투어인데, 그 이후에 가면 태양이 너무 뜨거워 더 이상 유적지를 둘러볼 힘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거의 잠을 설친 상태로 약 15명 내외의 외국인들과 함께 셔틀 차량을 타고 티깔로 향했다. 


매표소 앞에 도착해 약 30분간 매표소가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 와중에 기다리던 이제 갓 고등학교 졸업한 것으로 보이는 5명 정도 되는 남자애들이 외국인 요금과 현지인 요금이 적힌 입간판을 보고 낄낄 대며 사진(혹은 영상)을 찍었다. "우리가 *그링고니까 돈을 더 내라는 거지? 이건 정말 불공평해" 하면서 각자 SNS에 업데이트하는 듯했다. 


*그링고(Gringo): 멕시코, 중미에서 미국인(넓게 보면 서양인)을 부르는 슬랭. 살짝 얕잡아 보는, 부정적인 어감이 있는데 우리나라 단어로 치면 "코쟁이" 같은 느낌이다. 

우린 운이 좋은 것이니까 돈을 더 내는 게 맞지 

멕시코에서 친해진 프랑스인 친구가 있다. 우린 산 크리스토발에서 같은 숙소에서 한 달을 지내며 절친이 됐고, 이후 여행으로 헤어졌다가 유카탄 반도 여행하면서 다시 만났다. 그날, 나는 치첸이사에 다녀온 날이었는데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외국인 요금 관련 이야기가 나왔다. 그녀는 여행 다니면서 흥정하는 것조차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친구였다. 


"비싸긴 하지만, 억울하진 않아. 우리는 상대적으로 운이 좋았을 뿐이고(Previliged), 돈을 더 내는 게 맞다고 생각해"

"그렇다고 현지인들에게 외국인 요금을 똑같이 적용할 순 없잖아? 현지인들은 당연히 언제든지 그 나라의 유산을 보러 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우리가 지금처럼 여행할 수 있는 것도, 이들은 쉽게 누릴 수 없는 사치잖아" 


<공정하다는 착각> 책에선  누군가가 성공하고 상대적으로 더 잘 사는 것에는 개인의 노력 이외에도 "운"이 작용하기 때문에 성과/능력주의가 오히려 더 불공평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똑같은 능력을 가졌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과 과테말라에서 태어난 사람은 각각 다른 미래를 바라보게 되는 것처럼. 


현재 과테말라 안티구아의 하숙집(홈스테이)에 머무르고 있다. 개인실에 아침, 점심, 저녁 무려 세끼가 포함된다. 하숙집을 운영하는 마르타(Marta)는 3명의 자식을 거느리고 있는 싱글맘인데 그녀는 정말 열심히 일을 한다. 현재 나를 포함해 7명의 외국인이 머무르고 있는 이 하숙집에서 그녀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한다. 그리고 다들 스페인어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점심을 준비하고, 역시 설거지를 하고 장을 보러 나간다. 이후 각자 원하는 저녁 시간대에 맞춰 식사를 준비한다. 일주일 중 일요일을 제외하고 모두 하숙생들에게 삼시 세 끼를 제공한다. 


함께 식사를 하는 친구들과 식사를 하며 "내일 뭐 할 거야?" 하면서 수다를 떨다가 잠시 우리에게 망고 주스를 주려고 테이블에 온 마르타에게 가볍게 "내일 일요일인데 뭐 할 거예요? 자유잖아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글쎄.. 대청소하고.. 그것밖에 없어"


이들에겐 우리에겐 당연히 가야 하는 자국의 꼭 가봐야 하는 대표 관광지도 가본 적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와 1:1 수업을 진행하는 60대 스페인어 선생님은 안티구아에서 2시간이면 가는 '아띠뜰란 호수'를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른 외국인 친구들도 각자 스페인어 선생님에게 어디 여행지를 가봤냐고 물었을 때 과테말라에서 가장 유명한 티깔 피라미드는 물론, 안티구아에서 많은 외국인들이 꼭 가보는 아까떼낭고 화산조차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평화로운 하숙집 일상 


이들이 경제적으로 불운한 것은 결코 이들이 게으르고 무능력해서가 아니라, 이곳에 태어나 좋은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들에게 불운을 제공하고 스스로 발전할 기회의 싹을 처음부터 도려냈던 것이 과거 유럽 열강과 오늘날의 미국이지 않나. 여전히 그 여파는 오늘날까지 남아, 개발도상국을 여행하면 여전히 여행객과 현지인들 간의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우리는 관광지를 놀러 다니고 현지인들은 청소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그들에게 다가가 물건을 사달라고 권유한다. 


과테말라를 포함해 개발도상국가가 외국인 요금(소위 그링고 요금이라 부른다)과 현지인 요금을 분리한 것이 '불공평(Unfair)'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광지 방문을 위해 각자가 기꺼이 낼 수 있는 비용의 심리적 격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1만 원이란 금액이 이들에겐 하루종일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라면, 이들에게 "평등하게 해야 하니까" 똑같이 1만 원을 내라고 강요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외국인이라서 내는 더 요금은 언젠가 외국인 요금과 현지인 요금 구분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 나라가 발전하는 마음을 담은 투자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다. 






브런치 픽 & 다음 메인 픽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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