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더 이상 여행지에서 스마트폰 분실 이야기를 다루고 싶지 않았는데, 어처구니없는 일을 연속으로 당할지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래 브런치 글을 읽고 오시면 맥락 이해하는데 도움 됩니다.
https://brunch.co.kr/@msk-y/131
택배 왔습니다.
한국에 살 때도 해외 직구로 고가 물품을 주문했는데 엉뚱한 물건이 오거나 메인 제품만 털려서 왔다는 이야기를 종종 접했다. 뿐만 아니라 중고 거래를 했는데 벽돌이 왔다는 등 썰이 한 때 SNS에서 나돌았지만 이런 일이 해외에 잠시 체류 중인 나에게 발생할 거라곤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아마존에서.
과테말라 여행 중 폰을 도난당해 여러 차례 폰을 구할 방법을 찾다가 결국은 아마존 미국 본사에서 과테말라까지 배송지원되는 아이폰 리뉴 상품이 있어 약 60불이 넘는 배송비를 지불했다. 아마존 일반 셀러가 아닌, 아마존에서 직접 상태 좋은 스마트폰을 매입해 이를 리뉴얼해서 판매하는 형태로, 아마존 자체 보증기한까지 있는 리뉴 프리미엄 상품이었다. 예상 배송 기한은 2주. 그에 맞춰 홈스테이 호스트에게 예정보다 1주일 숙박까지 연장했고, 나는 그저 마음 편하게 폰이 배송되기만을 기다렸다.
4시간 스페인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있었다. 이어 20분 뒤 문자가 와있었는데 DHL 오피스에 택배가 와있으니 수령하라는 것이었다. 집까지 배송받을 수도 있었지만, 치안이 좋지 않은 국가에서 괜히 고가 상품으로 배송 사고가 날까 봐 내가 직접 DHL 오피스에서 수령하겠다고 미리 앱을 통해 신청해 둔 상태였다. (DHL 배송 알림 문자를 받으면 링크를 통해 수령처를 변경할 수 있다)
예정보다 약 이틀 빨리 도착해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던 나는 오피스 문 닫기 전에 잰걸음으로 택배를 받으러 갔다.
택배가 오긴 왔는데요. 아이폰이 없어요.
DHL 오피스에서 여권을 제출하고 택배를 받고 집에 한 걸음으로 달려온 나는 홈스테이 패밀리 식탁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었다. 내가 아마존 박스를 내려놓으니 홈스테이 친구들이 숙제를 하고 있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통 택배 언박싱은 나 홀로 방에서 하는 편인데, 누군가가 있는 공개 석상에서 하기로 결심했던 것은 나름 600불이 넘는 고가 물건치고 박스 포장 상태가 부실한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큰 박스에 완충제도 쓰지 않았는지 박스를 흔들면 내부에 있는 작은 박스가 덜렁거렸을 뿐 아니라, 테이핑도 한 줄로 처리했는데 이 마저도 고르게 붙인 게 아닌 어긋나게 마무리한 게 찝찝했다.
택배 박스를 뜯으니 안에는 "Amazon renew"라고 적힌 흰 제품 상자가 나왔다. 조심스레 상자를 열었다.
아이폰이 있어야 하는 자리엔 아이폰이 없었다. 충전기와 케이블, 아마존 보증서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몹시 당황하자, 바삐 숙제하던 친구들도 손을 멈추고 "왜 그러느냐"하고 되물었고 아이폰이 없는 빈 박스의 모습에 그들 역시 "What??" 하며 지금 아이폰 없이 빈 박스가 온 거냐며 나에게 재차 확인했다. 과테말라에서만 내 아이폰을 두 번 도난당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여러 가설을 세울 수 있다.
1) 아마존에서 실수로 본품을 누락하고 보냈을 확률 : 그리 높진 않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발생할 수도 있다.
2) 물류 과정에서 아이폰인 것을 안 직원이 빼돌렸을 확률 : 종종 해외 직구 배대지 사고에서도 일어나는 사고로 가능성이 높다.
레딧이나 쿼라 등 구글을 통해 검색한 결과 아이폰이나 에어팟 등 작지만 고가 상품에 해당하는 제품군들이 유독 배송사고가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역으로 아마존 입장에선 어떨까? 전세계에서 가장 큰 이 쇼핑몰은 분명 이 같은 클레임을 수천만건 이상 받았을 거다. 개중에는 물건을 분명 받았음에도, 받지 않았다고 하는 고객들도 있었을 것이고, 이처럼 배송은 정상적으로 됐으나 물건만 사라졌다고 하는 경우 아마존 입장에선 진위 여부 확인이 어려우니 난처할 거 같다. 문제 해결이 결코 만만치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존 고객센터로 연락했다
아마존 홈페이지로 들어가 고객센터 실시간 채팅을 통해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첫 대답은 "반품해라. 박스를 받으면 확인 후 환불 처리해 주겠다"라는 것이었다. 빈 박스를 보내라는 건가. 다소 어이가 없지만 반품 비용은 아마존이 커버하겠지 싶어 시키는 대로 반품 신청을 하는데, 반품 사유 불문, 반품은 내가 원하는 물류사를 통해서 하되 반품 택배 비용은 20달러까지만 아마존이 커버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과테말라에서 미국까지 택배를 보내는 가장 저렴한 비용은 100달러에 달한다. 애초에 미국에서 과테말라 배송받기 위해 지불한 금액도 60달러였는데, 그건 아마존 측에서 보냈기 때문에 비교적 저렴하게 책정됐던 것이었고 내가 동일하게 DHL 오피스를 통해 반품 접수를 한들, 똑같은 비용으로 보낼 수도 없었다. 즉, 나는 본품이 없는 빈 박스를 보내기 위해 100달러를 써야 한다. 하지만, 이 마저도 반품된 이후 확실하게 환불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다시 아마존 채팅 상담을 요청했다. 아마존은 매번 상담할 때마다 상담원이 바뀌어 상담 내용을 매번 반복해야 하는 게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다시 상황을 설명하며, 빈 박스를 100달러를 자가 부담으로 보내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거 같다.라고 문의하니 이번엔 "그건 도난(stolen) 사건이니 일단 DHL 오피스에 가서 재확인을 하고 거기에 물건이 없으면 경찰서에 가서 폴리스 리포트를 작성하라"라는 답변을 받았다.
사건을 동일하게 설명했는데 상담원마다 프로토콜이 다른 게 의아했다. 폴리스 리포트를 받으면 어디로 제출해야 하는지 답변을 받기 까지도 시간이 한참 걸렸는데, (채팅 상담을 통해서는 문서나 사진 발송이 불가하다) 이때부터 난 아마존 고객 상담이 녹록지 않을 거란 걸 알아차려야 했다. 해당 상담원을 붙잡고 1) DHL오피스 확인 및 신고 2) 폴리스 리포트 작성 3) 이메일로 제출하면 그다음 관할 부서에서 처리하는 게 맞는지 여러 번 확인했다. 상담원은 그렇다고 답변했고 나는 일단 그걸 믿고 다음날 경찰서에 방문하기로 했다.
경찰서 찾아 삼만리
낯선 땅에서 경찰서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들 구글맵을 통해 경찰서란 단어를 현지 언어 혹은 영어로 검색을 해볼 것이다. 구글맵 검색 결과 여러 경찰서 옵션이 나왔다. 교통 경찰서, 여성 경찰서(가정 폭력, 성폭력 등을 주로 관할하는 경찰서인 듯했다), 관광 경찰서 등 다양하게 나왔는데 그중 종합적인 사건을 관할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경찰서가 센터에 있길래 방문했다.
당연히 경찰서는 눈에 확실히 띄겠지 생각했는데, 경찰서란 것을 표시도 하지 않고 일반 사무실처럼 오픈되어 있어 당황스러웠다. 도착하고 나서 "이곳이 경찰서가 맞냐?"라고 물으니 무슨 일로 왔냐고 되물었다. 사실 이런 일로 경찰서에 방문하는 게 맞나라고 스스로도 머쓱했던 나는 일단 자초지종 스페인어로 차근차근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러자 이 경찰은 나에게 쪽지로 주소를 적어주더니 이 쪽 경찰서에서 아마 도움을 줄 것이다라고 안내했다. 그 주소를 그대로 구글 맵에 검색했는데 딱히 경찰서라고 나오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이 경찰이 안내했다면 구글맵엔 업데이트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겠지 싶어 약 15분 거리로 추정되는 그곳을 걸어갔다. 이번에도 정말 밖에서 보면 경찰서인지 모를 정도로 꼭꼭 숨겨져 있는 그곳을 주변 가게 상인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갔다. 막상 도착하니 관광 경찰서(Tourism Police)다. 내 사건이 관광 경찰서에 해당하는 건 아닌 거 같은데란 생각과 내가 관광객이니까 그냥 여기로 보냈나란 생각이 들었다.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지인과 수다를 떨고 있는 경찰로 추정되는 인물이 먼저 "올라"하고 인사를 건넸다. 나는 이번에도 스페인어로 "이걸 사기사건이라고 해야 할지 도난 사건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라고 말문을 떼고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내 말을 다 들은 경찰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담당 경찰에게 나를 데려갔다.
1시간 동안 진술하고 난 후
담당 경찰은 여유로웠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뭐 종종 그런 일이 발생한다"라며 컴퓨터 모니터에 앉아 폴리스 리포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내가 들고 온 박스를 확인하고, 그곳에 있는 구매내역 영수증을 나에게 보여주며, 영어로 된 부분 뜻이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문득,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경찰이 왜 관광 경찰서에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요청하는 대로 나는 성실하게 답했다. 이후, 그는 나에게 언제 구매했고, 어디서 어떻게 오픈했는지 자세한 경황을 물었고 과테말라에선 어디서 숙박하며, 무슨 일로 여행하는지 등 사적인 질문을 포함해 모든 내용을 다 폴리스 리포트에 작성했다. 그는 내 긴장을 풀어주기 위함인지 중간중간 농담을 던졌고 그 덕분에 처음 바짝 얼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는 약 1시간 동안 걸려 작성했던 폴리스 리포트를 프린트해 확인 후 서명하라고 요청했다. 모두 스페인어로 내가 그동안 한 말이며 사건 정황을 그대로 기재한 진술서 형태였다. "한국 국적 나이 OO세, 직업 AA인 OO는 최근 아마존에서 (상품명)을 받았는데 열어보니 본 품이 없었음"이란 문장으로 시작해 약 20줄 내외로 구구절절하게 적은 내용이었다. 다행히 진술서를 읽고 이해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고 나는 3장의 동일한 진술서에 서명을 했다.
그 와중에 내가 서명을 한국어로 표기하자 그는 그것에 흥미를 느꼈나 보다. 별안간 다른 빈 쪽지를 내밀며 자신의 명찰을 가리키며 자신의 이름을 적어보라고 했다. 영문도 모른 채 그의 이름을 그대로 종이에 베껴 쓰자 그가 그 아래를 가리키며 자신의 이름도 한글로 적어달라고 요청했다. 살짝 어이가 없었지만, 그대로 1시간 동안 친절한 태도로 나를 응대해 준 고마움으로 그의 이름을 기꺼이 한글로 기재해 주었다.
총 3장의 폴리스 리포트에 서명했으니 당연히 나는 그중 1장은 내가 가져갈 몫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별안간 종이쪽지에 한 주소를 적어주더니 "내일 아침 여기로 찾아가서 오늘 한 내용을 똑같이 말해줘라"라고 하는 게 아닌가. 방금 1시간 걸려 작성한 폴리스 리포트는 내가 가져가는 게 아니냐고 되묻자 "이건 보관용인데 필요하면 사진 찍어라"라고 내밀었다. 다소 당황스러운 처사였는데 혹시 몰라 폴리스 리포트 사진을 찍었다. 적어준 주소는 경찰 상위 기관 개념인 것으로 보였는데, 그 주소마저 엉터리로 되어 있어서 다음날 유관 기관 방문하는데 또다시 물어 물어 가야 했다.
관광 경찰서 상위 기관 가서 2차 진술
전날 경찰이 적어둔 종이쪽지 주소를 구글맵에 검색해도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이곳은 구글맵에 공공기관 정보가 보안 문제로 나오지 못하게 막아두기라도 한 걸까. 결국 종이쪽지 주소 내 다양한 키워드를 조합해 여러 가지 시도한 끝에 시의회 건물(Municipalidad)이라고 추측하고 해당 위치로 찾아갔다. 그곳 경비에게 어제 경찰로부터 받은 종이쪽지를 보여주며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아니냐라고 물으니 "이건 OO로 가야 한다"며 약 2블록 정도 가면 있다고 안내해 주었다.
도착한 곳은 표면상 "관광 안내소"같았다. "Tourism Information"을 간판처럼 달고 있는 그곳 앞에 서서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경비원이 다가와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다. 이번에도 어제 받은 종이쪽지를 내밀며 "신고건이 있어서 왔다"라고 하니 기다리라고 하더니, 관련 직원을 불러주었다. 관광 경찰서의 상위 기관으로 외국인 여행객과 관련된 일들을 종합적으로 처리하는 부서였다.
오피스도 아닌, 문간에 있는 의자에 앉아 그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는데, 어제 경찰에서 폴리스 리포트받은 것 이외에 뭐가 필요한지 나에게 되물었다. 경찰이 폴리스 리포트를 주지 않았고, 이곳에 와서 2차 진술을 하라고 해서 왔다고 하니 "지금 필요한 것이 폴리스 리포트가 맞는지"를 나에게 재차 확인했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경찰서에 전화해서 보내달라고 요청하겠다고 답했다.
조금 답답해졌지만, 어제 폴리스 리포트를 읽으며 마음에 걸렸던 "사건 수사 상태"가 포함된 폴리스 리포트를 받을 수 있냐고 물으며 아마존에서 받은 이메일을 내밀었다. 아마존 측에선 애초에 폴리스 리포트 내에 "사건 완결 (Case completed / closed)" 상태가 반드시 기재되어야 하며 "수사 중/진행 중" 상태인 경우에 다음 절차 진행이 불가하다고 메일에 고지한 상태였다.
내가 받은 이메일을 확인한 그녀는 30분 정도 기다리라고 했다. 물론, 나는 그곳에서 1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고 한 남자 직원이 오더니 "내가 이 사건 진술을 도와줄 사람이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또다시 진술을 해야 하는 건가. 이젠 살짝 지친 상태였지만 그의 책상 앞에 앉아 처음부터 끝까지 말해야 했다. 심지어, 그는 내가 아이폰을 언제 어디서 주문했는지, 그 주문한 장소(호텔명)와 시간까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렇게 약 40분 걸려 받은 서류는 어제 그 경찰이 작성한 폴리스 리포트에서 조금 더 구구절절하게 내용을 서술해 분량이 약 3배 정도 늘어난 것에 불가했다.
그래도 어제 작성한 폴리스 리포트와 상세 진술서 2장의 서류를 받았기 때문에 조금은 안심이 됐다. 아마존 고객센터에서 받았던 폴리스 리포트 작성 관련 안내 이메일에 폴리스 리포트를 첨부해서 보냈다. 당연히 그 후 나는 그다음 절차로 문제없이 진행될 줄 알았다.
내용이 길어, 당황스러움의 끝판왕이었던 아마존 고객 상담 이야기를 후편에 다룰 예정입니다.
브런치 픽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