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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Jul 23. 2023

과테말라, 중고폰 당근 시도했다가 포기한 이유

과테말라, 안티구아

*이 글을 읽기 전에 아래의 브런치 글을 읽으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버스에서 내렸는데 폰이 없어졌다


왜 굳이 아이폰을 다시 사야 할까?


장기간 배낭여행인 만큼 언제까지나 폰이 없이는 살 수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과테말라 안티구아에서 약 2주 정도는 머무르면서 스페인어를 업그레이드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폰을 서둘러 구매할 필요는 없었다. 문제는 이곳에서 아이폰을 구하기가 조금 까다롭다는 것이다. 멕시코와 중남미에선 아이폰 가격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게 책정되어 있다. 여행 중에 새 아이폰을 덥석 구매하기엔 부담이 조금 컸다. 심지어 요새 아이폰은 100만 원도 훌쩍 넘지 않는가. 그래서 최대한 중고 아이폰을 구해보기로 했다. 적당히 사진 찍기에도 괜찮으면서 내가 썼던 익숙한 모델로.


물론, 아이폰이란 것만 포기한다면 이곳에선 갤럭시 보급형 모델부터 샤오미, 화웨이, 현지 통신사의 저렴이 모델들을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하면서 그래도 멋진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 그리고 맥북과 아이패드 등 애플 제품 위주로 쓰는 나에게 아이폰이 아닌 갤럭시 안드로이드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차라리 돈을 더 주더라도 아이폰을 구하는 게 낫다.


과테말라에서 중고 아이폰 구하기

과테말라에서 아이폰 중고를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나라처럼 아이폰 사용 비중이 높은 국가에선 중고 매물이 많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지만 하루 일당이 한화로 1만 원~2만 원인 나라다. 대충 봐도 길거리에서 아이폰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인들이지, 현지인들은 별로 없다. 하루종일 리서치를 하고, 현지인들에게 물어본 결과 아이폰을 중고로 구매하는 방법은 아래와 같았다.


1. 아마존 (미국)에서 과테말라 배송 지원되는 아이폰 리퍼 상품을 구매한다.

2. 과테말라 중고폰 매장에 방문해서 구매한다.

3. 과테말라 페이스북 그룹 '아이폰 거래 장터'에서 1:1 직거래를 한다. (일명 당근)


1번의 경우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아마존이 직접 리퍼한 상품들이고 1년 보증까지 된다. 과테말라까지 배송되는 아이폰 상품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래도 운 좋게 내가 원하는 모델이 적당한 가격으로 있었다. 문제는 배송되기까지 2~3주가 걸린다는 것. 배송비를 60달러나 넘게 지불하는데도 2~3주라니. 일단 이건 보류.

차선책으로 2번을 생각했다. 일단 내가 살고 있는 안티구아에 있는 유일한 중고폰을 살 수 있는 가게를 선생님으로부터 추천받았는데 다름 아닌 '전당포'였다. 돈을 빌리기 위해 폰이나 값비싼 물건을 맡기고, 돈을 못 갚으면 그 물건을 파는 그런 매장. 그리 자주 있진 않지만 종종 아이폰 매물이 있을 수 있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내가 찾아갔을 땐 아이폰은 없었다.

과테말라 전당포


그 외 중고폰 매장은 과테말라 수도인 과테말라 시티에 대거 포진해 있다. 과테말라 시티는 과테말라 사람들도 "절대 혼자 가지 말라"라고 신신당부할 정도로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이다. 여행자들도 과테말라 시티 공항에서 내리면 곧장 옛 수도인 안티구아로 오는 이유도 역시 그랬다. 괜히 폰 사러 갔다가 돈도 털리고 폰 털리는 게 아닐까 리스크가 꽤 컸다. 게다가 과테말라 시티 중고폰 매장 중 일부는 도난 분실된 아이폰 부품을 사서 재조립해 일명 페이크 아이폰을 만들어 판매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물론 기존 아이폰 유저들이라면 금세 이게 짜가란 걸 알아채겠지만, 아이폰 사용 경험 없는 첫 사용자들은 오랫동안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과테말라에서 아이폰 당근 시도 후기

사실 스마트폰을 당근으로 구매하는 것은 한국에서도 리스크가 큰 방법이다. 어떤 사연이 있는 폰이 있을지 모르고, 고가 상품인 만큼 중고 거래하는데 누가 들고 튀면 어쩔 것인가. 그래서 나 역시 3번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과테말라 애플 페이스북 중고 거래 커뮤니티에선 생각보다 매력적인 가격 (우리나라 중고시세와 비슷한 수준)으로 매물이 올라왔다. 아마존처럼 2~3주 기다릴 필요도 없고 당장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치안이 그리 좋지 않은 나라에서 괜히 폰 거래하러 갔다가 돈만 털릴 수도 있다.


실제로 과테말라에서 중고폰 거래할 때 권장하는 사항이 '쇼핑몰 센터'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거래하고, 거래가 끝난 이후에도 쇼핑센터에 한참 머무르는 것이었다. 혹시나 거래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뒤를 밟혀 다시 폰을 도로 뺏길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과테말라 시티로 가지 않고 내가 거주하고 있는 안티구아에서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같은 곳에서 거래를 해야겠다 결심했다.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는 우리나라에선 거의 사용하지 않는 기능이지만, 외국에선 활발하게 이용하는 기능 중 하나이다. 물건명을 검색하고 내 주변 반경 ~KM 검색하면 그 반경 내에 나온 중고 물건 매물을 볼 수 있다. 매물을 올릴 땐 위치도 자동으로 표시되기 때문에 대략 어디에서 거래할지도 유추할 수 있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중고거래를 할 때 최대한 판매자 편의에 맞춰 장소를 정한다.

해외 당근마켓 역할을 하는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

나는 우선 마켓 플레이스 내 판매자들에게 일일이 메시지를 보내고, 장터에도 "원하는 모델명과 대략적인 예산, 원하는 거래장소"를 명시에 게시글을 올렸다. 처음엔 스페인어로 중고 거래할 때 어떤 표현을 쓰는지 몰라 어리바리하게 굴다가, 몇 번 대화를 해보니 감이 잡혔다. 여러 판매자들과 대화를 거치다가 한 판매자가 나에게 쪽지를 보냈는데 내가 딱 원하는 모델과 가격대였다. 위치는 다소 멀었는데, 판매자가 자기 가게가 따로 있다고 해서 살짝 신뢰가 갔다. 살짝 위험 감수하고, 저기까지 가볼까?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이기 시작했다.



오마이갓. 거긴 절대 가지 마. 우범지대야

문제는 그곳에 어떻게 가야 할지 도통 감이 안 잡혔다. 다른 곳처럼 구글맵으로 대중교통편 찾기 그런 것도 없다. 차량으로 가면 약 40분 걸리는 거리라 우버를 타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치킨 버스 노선 정보도 없어서 현지인들에게 물어봐야 했다. 우선 페이스북 과테말라 외국인 커뮤니티에 "OO에 가는 방법 아는 분?"이란 글을 올리고, 스페인어 수업에 들어갔다.


선생님에게도 "여기 가는 방법"을 아냐라고 물어봤는데 팔짝 뛰며 대체 거긴 왜 가려는지 되물었다. 결국, 폰을 도난당한 사실과 중고폰 거래를 하러 간다라는 사실을 말해야 했는데 선생님은 식겁하며 이곳은 빨간 구역 (Zona roja: 과테말라에선 우범지대, 위험한 구역을 빨간 구역이라 부른다. 대개 많은 갱들이 있는 곳으로 현지인들도 가는 것을 피한다)이라며 자기도 가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페이스북에 관련 구역 질문 올렸다가 올라온 댓글들



아, 그렇다면 피하는 게 좋겠다. 괜히 현지인에게 물어보지 않고 갔다가 험한 꼴 당할 뻔했다. 수업을 마치고 페이스북 그룹 게시글을 확인하는데 댓글이 난리가 났다. "거긴 절대 가지 마" "대체 거긴 뭐 하러 가" "미국 정부에 따르면 여행 금지 권고 내린 구역" "내가 거기 살아봤는데 매일 밤마다 총소리 들리는 곳이야" 등 이곳에 가면 안 되는 이유들이 잔뜩 나열되어 있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페이스북 프로필은 곧 당근 온도

결국 다시 다른 판매자를 찾아야 했다. 내가 공개적으로 "아이폰 산다"란 게시글을 올리고 10명 넘게 나에게 자신이 가진 매물 정보를 보내왔는데 대부분 하나씩 문제가 있었다. (컨츄리락이 걸렸다던지, 용량이 너무 적다던지, 가격이 너무 높다든지 등) 그중 1명이 또다시 마음에 드는 오퍼를 했는데 원하는 아이폰 사양인 데다가 가격도 좋았다. 이번엔 업자가 아닌 개인이었는데, 내가 사는 동네의 옆동네에서 거래가 가능하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 옆동네는 치안이 괜찮은지 물었는데 다들 안전한 곳이라고 알려주었다.


상대방이 메시지를 쓰는 스타일이 꽤 정중하고, 맞춤법도 틀린 것 없이 쓰는 것에 믿음이 갔다. (왜 우리나라도 당근마켓 메시지 주고받는데 단답으로 일관하는 사람보단, 뭔가 대화 말투 등에 신뢰를 부여하는 것처럼) 다만 걸리는 것은 페이스북 계정 생선한 게 2023년이었고, 프로필 사진이 자동차라는 거. (마치 중고차 업자를 연상케 하는 그런 프로필)


페이스북 계정엔 개인 사진이 없었고 차 사진 몇 개와 폰 사진이 다였다. 원활한 연락을 위해 왓츠앱 번호를 받아 대화를 이어 갔는데 왓츠앱 계정 프로필 사진도 또 다른 차 사진이었다. 뭔가 중고거래를 위해서 만든 계정 같은 감이 왔다. 주말 아침에 쇼핑센터에서 만나자고 약속은 했지만 당일 아침까지 난 좀처럼 결정을 할 수 없었다. 현금거래이기 때문에 정말 두툼한 현금 다발을 들고 가야 한다.


이 사람은 이미 내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통해 내가 아시아 여자란 것을 안다. 그리고 쇼핑센터에 나타나는 순간 내가 웬만한 사람들의 한 달 월급 이상 되는 돈뭉치를 소지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아닌가. 상대방의 신원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이 중고거래를 하는 게 문득 망설여졌다. 아무래도 이 나라에선 고가 물품 중고 거래를 하지 않는 게 좋겠어. 결국 난 그에게 "미안하지만 일이 생겨서 오늘 거래가 불가능할 거 같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만약 그의 페이스북 프로필이 생성된 지 오래됐고, 페이스북 친구도 어느 정도 있으며 본인 사진이라도 몇 개 있으면 그나마 의심을 덜했을 텐데 올해 생성한 계정에 헌 차와 폰 사진은 결국, 거래를 취소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무엇보다 정말 좋은 매물이고 가격인데 공개적으로 그가 판매 게시글을 올리지 않고, 내 구매 게시글에 오퍼를 보낸 것도 이상했다. 내 기준에선 저 모델에 저 가격이면 올리자마자 팔릴 거 같은데. (한 2~3일 중고거래 커뮤니티를 다 뒤지다 보니 과테말라 현지 아이폰 중고 시세가 자연스레 다 파악이 됐다)

우리가 당근 거래할 때 평점만 거래 내역, 후기를 중요시 생각하는 것처럼 페이스북 마켓 플레이스에선 페이스북 프로필 내역이 은근 거래를 할지 안 할지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결국, 아마존으로 구매하기로 했다.

결국 시간과 비용이 더 들지만 안전한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안티구아에서 기존 예상했던 기간보다 1주일 정도 더 머물러야 하지만 괜히 치안이 불안한 나라에서 1:1 중고거래 리스크를 스트레스까지 받아가며 감수하는 게 오히려 비효율적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존으로 리퍼폰 주문을 완료하고 난 더 이상 폰에 대한 신경을 끄기로 했다. 남은 것은 중간에 택배 분실되는 일 없이 무사히 오는 것. 나는 무사히 폰을 받을 수 있을까.





브런치 픽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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