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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May 03. 2019

10. 나는 중고거래를 통해 장사를 배웠다.

1편 ) 초딩, MR.K를 통한 첫 중고거래의 경험과 지금. 


내 첫 중고거래 경험은 13살 때였다. 

그 때 당시 매달 나오는 틴에이지들을 위한 잡지 '미스터케이 (MR.K)' 에서는 마치 교차로 신문의 '벼룩시장'처럼 독자들끼리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는 난이 있었다. 요즘에는 카페에 게시글 뚝딱 쓰면 된다고 하지만, 그 때는 이 벼룩시장에 물건을 올리기 위해 엽서를 보내고 한달을 꼬박 기다려야 했다. 단 몇 줄 정도의 그 짧은 중고거래 글을 보고 기재되어있는 메일주소로 연락하면 되었다. 

근데 그 때 내 나이엔 무통장입금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월 용돈이 3만원인 내가 통장에 꼬박꼬박 돈을 넣을리는 없고, 은행에 가서 무통장입금증을 작성해서 돈을 보내는 방법을 어머니에게서 배우긴 했으나 수수료가 700원 정도 들었고 번거로웠다. 당시, 나같은 청소년들이 많았고 MR.K에서 주로 통하던 방법은 편지봉투에 돈을 넣어서 보내는 거다. 물론 봉투에 돈을 넣어서 보내면 안된다는 얘기가 있어서 당시 색깔있는 봉투로 최대한 돈이 안비치게 해서 보냈다. 이 경우 우편이어서 종종 배달 사고가 있는 듯 했는데, (배달 사고가 있는건지, 아니면 받는 사람이 받고도 시치미를 뚝 뗀건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리스크가 큰(?) 중고거래였다. 

희한하게 당시 내 기억엔 동전이 든 봉투도 왔었는데, 이게 190원짜리 우표로도 어떻게 부쳐졌는지 그게 더 궁금하다. 각종 동전으로도 거래를 할만큼 2천원부터 5천원, 1만원 푼돈 거래가 참 많았던 거 같다. 

나는 지금도 중고 구매보다는 판매를 주로 하는 쪽인데 바로 내가 이 시기에 사기를 당한 경험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무엇을 구매할려고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다만 꽤 비싼 물건을 엄청 싸게 구매할 수 있었던 걸로 기억난다. 5천원이었고 이 지폐를 분홍색 편지봉투에 넣어서 보냈다. 그리고 상대방은 연락이 없었다. 돈 보내기 전에는 열심히 연락해놓고 돈 보냈다고 하자마자 내 연락을 씹은 것이다. 당시 10대들이 주로 있는 벼룩시장에서도 이런 소액(?) 사기 문제가 꽤 심각했다. 여튼 그 때의 경험 때문인지, 나는 지금도 직거래가 아닌 중고구매는 잘 하지 않는다. 

여튼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 벼룩시장 코너가 참 재밌어서 미스터케이에서 제일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난 어렸을 때부터 신문을 볼 때도 후기사연 같은게 잔뜩 적힌 엠씨스퀘어 광고 등을 읽었다. 약간 뭔가 광고나 물건 사고 팔고 이런 글을 좋아하는 듯 하다) 

내가 그 때 팔았던 혹은 샀던 물건이 뭐가 있었는지 기억을 되짚어보면 

 "십자수 관련 용품"이었다. 

그렇다, 내가 6학년때는 십자수 열풍이었다. 손재주가 없는 내가 얼떨결에 C.A 활동으로 '수예반'을 들어가면서 십자수의 재미에 눈을 떴다. 십자수로 열쇠고리나 자동차에 붙이는 연락처 쿠션(?), 푸우 도안이 새겨진 쿠션 등을 만들었는데 난 정말 똥손이어서 다른 친구들보다 십자수를 손에 익히는게 느렸다. 심지어, 두껍게 수를 놓아서 남들과 다르게 참 진한 푸우가 새겨진 쿠션을 만들기도 했다. 

십자수에 미쳐서 당시 십자수 관련 쇼핑몰을 통해 십자수 실패함부터 수틀, 각종 도안, 천 등을 구매를 했었다. 정말 그 나이에 돈을 싹싹 모아서 수개월동안 거의 10만원 이상을 이 쇼핑몰에 바쳤다. 그러다가 십자수에 점점 질려갔고 나는 이 용품을 미스터케이 벼룩시장 코너를 통해 내놓았다. 

다 모아놓으면 거의 10만원~15만원에 육박했던 용품을 싸게 팔기 위해 단 돈 3만원에 내놓았고 순식간에 팔렸다. 너무 싸게 팔았나 하고 속이 쓰라리긴 했지만 당시 나는 그래도 가만히 놔뒀으면 0원인데 이거라도 건진게 어디야 하고 위안했던거 같다. 


이후, 미스터케이는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그 홈페이지 내 '벼룩시장' 게시판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오프라인 잡지가 온라인을 통해 점점 소통하기 시작하는 그 단계였다. 그동안 '사진'과 '글자수 제약'이 있었던 잡지에서 독자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글자수 제한이 없는 게시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게시판으로 이동하게 된 것은 신의 한수 였다. 정말 폭발적으로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역시 매일같이 들락날락 거렸고 내가 잘 쓰지 않는 물건을 열심히 팔았다. 물건 사진을 위해 당시 유행했던 화상캠을 열심히 활용했다.

당시 옥션을 통해 한 장에 8900원에 구매했던 어깨 트임 티셔츠 (당시 엄청난 유행이었다. 소풍가면 다들 입고 오는 옷)를 미스터케이 벼룩시장코너에 9900원에 판매했던 것이 기억난다. 사진을 잘찍었던가, 설명을 잘했던건가. 여튼 내 구매가격보다 되려 1000원을 올려 팔았으니 장사꾼 기질이 있는걸로. 

*아마 중딩초반 때는 옥션, 지마켓을 이용하는 유저들이 적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이후, 영어학습지를 하면서 받은 공짜 미니카세트, 지역 축제 때 풍선 터뜨리기 해서 받은 인형 등 필요없다고 생각한 물건을 닥치는대로 팔아서 소소한 용돈을 마련했다. 정말이지, 물건 파는 재미를 제대로 봤다고 할까.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데 최고의 고객만족(?)을 시키겠다며 항상 물건 보낼 때 감사손편지랑 사탕 등 간식을 함께 넣어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고거래인데 내가 왜 그렇게 까지 오바했을까도 싶다. 특히 감사손편지... 항상 미스터케이에서 제일 못생긴 편지지 (예쁜 편지지는 내가 소장해야하기 때문이다)에 한장 빼곡히 "이 물건을 구매해주셔서 감사하다, 어쩌구저쩌구" 내용을 채워서 구매자에게 보냈었다. 지금 만약 쇼핑몰 운영자가 되었다면 일종 고객감동 서비스로 재방문율을 높이는 전략과 상응한다. 여튼, 지금 회상해보니 퍽 웃기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중고로 내놓는 물건은 거의 다 빠르게 팔았는데 

그 때부터 나는 물건을 빨리 팔기 위해서 나름 수를 많이 썼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지만, 그래도 당시 중고 물품을 빠르게 팔기 위해 "차별화"를 강조하기 위해 애쓴 내가 기특하기도 하다. 초중딩 여자아이의 중고물품 빨리 팔았던 비법은 아래와 같다.  


1) 가격은 당연히 시세보다 미묘하게 낮게. 혹은 시세에 맞출것. 시세가 비슷하다면, 상태가 최상급이란 걸 강조하면서 차별화를 둘 것.  
2) 설명은 최대한 디테일하게. 단순 상품 객관적 사실 1~2줄 나열하는 것보다, 이 상품을 잘 사용한 사용자로서 경험을 강조함. 
3) 비슷한 상품을 파는 사람들의 글은 항상 참고할 것. 
4) 사진은 최대한 디테일하게, 깔끔하게 찍을 것. 
5) 연관있는 상품끼리 묶어서 팔기 (예. Mr.K 과월호 2000년 1월호랑 wawa109 2000년 1월호 묶어 팔기 / g.o.d 나온 Mr.K 과월호만 묶어 팔기 / 화상캡이랑 썬캡 묶어 팔기 (추억의 하두리캠에서는 썬캡 쓰고 화상캠 찍는게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등) 
6) 많이 사면 배송비 깎아주기. 
7) 고객만족은 필수, 감동까지 시키기 (빠른 커뮤니케이션 , 택배보낼 때 손편지 및 간식 같이 보내기) 


....장사, 마케팅 전략은 세대시대불문하고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중고거래를 통해 나는 자연스레 장사하는 법을 체득했다. 

이쯤 문득 드는 생각. 아나바다 시장 같은 것을 실습 교육 과목처럼 만들어 자녀들이 직접 중고거래를 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주는 것은 어떨까. 아이들 입장에선 나름 흥정하는 법도 배우고 자신의 물건을 팔기 위해 나름의 전략을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뭔가 이미 하고 있을 거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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