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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Apr 07. 2023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와이파이를 없앤 이유

05.멕시코시티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인터스텔라 도서관이라 불리는 도서관

책을 좋아하는 것 여부와 상관없이 책이 있는 공간은 사람들에게 모종의 흥미를 가져다주는 것 같다. 수많은 책들이 주는 아우라와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광경은 종종 포토제닉 한 순간을 연출하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관광지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 책장 장면

멕시코시티 바스콘셀로스(Biblioteca Vasconcelos) 도서관 역시 그에 해당되는데 보통 "인터스텔라 도서관"이라고 불린다. 나는 처음에 하도 다들 "인터스텔라, 인터스텔라"하길래 정말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서재 장면을 이곳에서 찍었다던가, 아니면 영감을 받은 줄 알았다.


우리나라 포털 및 블로그 검색할 때 해당 도서관명을 검색하면 "인터스텔라"라는 키워드가 빠지지 않는 것에 반해, 구글이나 해외 블로그에서 영어 및 스페인어로 도서관명만 검색했을 때 그 어디에도 '인터스텔라'라는 키워드는 없었다. 굳이 인터스텔라란 키워드랑 도서관명을 함께 입력하면 외국인들 후기 리뷰에서 "인터스텔라를 떠올리게 한다" 정도를 볼 수 있다고 할까.


국내에서 누가 먼저 "인터스텔라 도서관"이라고 별명을 붙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찌 됐건 영화 <인터스텔라>가 어려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크게 흥행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는 확실히 성공했다.



외관은 감옥 같지만, 내부는 반전  

멕시코시티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은 주요 관광지가 모여있는 존과는 다소 떨어져 있었다.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하는데, 이동할수록 동네에 그래피티가 많아졌다. 멕시코에서 밤에 위험할 수 있는 동네와 아닌 동네를 알고 싶다면 그래피티 빈도로 대충 파악할 수 있다.

그래피티가 가득한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담벼락

정류장에 내린 후 도서관으로 추측되는 건물 방향으로 향했다. 입구를 못 찾아, 반대방향으로 걸었는데 높이 2미터는 족히 되는 담장이 얼핏 봐도 50미터 넘게 뻗어있었다. 담장 안에 분명 흰색 도서관 건물이 보이는데 좀처럼 문,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담장엔 누군가의 낙서와 오줌 지린 내가 가득했는데, 도서관 건물을 둘러싸고 이렇게 큰 담장이 서있다는 것이 의아했다.


마치 감옥 같잖아. 그러고 보니, 저 안의 건물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명성치곤 외관이 너무 평범하다. 감옥 같단 생각을 하니 더 감옥같이 보였는데 이후 리서치를 하며 알아보니 실제로도 외신에서 "감옥 혹은 거대한 책들의 무덤과 같은 칙칙한 외관"이란 표현을 볼 수 있었다. 한 10분 정도 담벼락을 따라 걷다가 도저히 입구가 나올 거 같지 않아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겨우 입구를 찾아 들어가 보안 검사(가방 검사)를 하고 들어갔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사진 속에서 본 것 그대로였다. 약 2백만 권의 책들이 공중에 떠 있다.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낡은 초록색을 띤 철제 책장들이 좌우 대칭으로 2~4층 높이로 층층이 공중에 떠있는 모양새였다. 한쪽이 막힌 책장이 아니라 정면에서 보면 마치 도미노처럼 나열되어 있는 모습이 뻥 뚫린 느낌을 준다. 나를 중심으로 책장들이 방사형으로 퍼진 느낌이 묘했다.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보통 도서관에서 책 찾으러 1층에서 4~5층까지 계단이나 엘리베이터 등을 통해 이동해야 한다. 이동하는 과정엔 책장이나 책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철저히 층별로 책 분류 코드를 보고 직접 가서 확인해야 하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반면, 이곳에선 일단 책장 수직과 수평 배열 사이를 가로막는 천장과 벽이 없기 때문에 책장 옆에 설치된 간이 계단으로 위아래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데, 이동하는 과정에도 책장 분류 코드 및 책 등을 볼 수 있다.

마치 방주와 방주 관리자들을 연상케 하는 좌석 배치

이 도서관을 설계한 알베르토 칼라치(Alberto Kalach)는 "책을 실어 나르는 방주"를 콘셉트로 했다고 하는데 그 말마다나 거대한 통 공간에 책장들을 공중으로 띄운 모양새가 거대한 배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 위압감이 들었던 거 같다.



왜 와이파이를 없앴을까


사실 이 날은 도서관에서 조용히 노트북으로 이것저것 작업을 할 계획이었다. 카페에서 일하면 1~2 시간마다 다음 카페로 매번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는데, 마침 도서관 구경도 할 겸, 노트북을 들고 와서 오늘은 여기서 하루종일 머무를 참이었다.


창가와 좌우를 연결해 주는 통로에는 좌석들이 있어 책이나 개인 작업 등을 할 수 있는데, 창가는 창가 나름대로 바깥에 핀 꽃들과 녹음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좌우를 연결해 주는 통로는 이 미래지향적인 풍광을 뷰 삼아 공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뷰가 좋은 곳은 항상 사람들이 가득하다. 대부분 공부하는 학생들이었고 이날 여행자 신분으로 방문한 것은 나를 포함해 몇몇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맥북엔 유선랜 단자가 없어요...

노트북을 켜고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던 공공장소 개방 와이파이가 없었다. 도서관 와이파이처럼 보이는 와이파이 네트워크명도 없고 대신 '사람들이 켠 핫스팟'들이 수두룩했다. 어, 이게 뭐지. 설마 도서관인데 와이파이가 안 된다고? 내가 앉은자리를 찬찬히 둘러보니, 자리마다 유선랜이 삐죽 튀어나와 있다. 설마, 유선랜을 쓰라고? (내 컴퓨터엔 유선랜 단자가 없다)


노트북을 쓰고 있는 다른 학생들 모니터를 유심히 보니 인터넷 화면이 아니라 워드나 인터넷 연결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사용하고 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당황스러워서 한 학생에게 여기 와이파이 이용 못하냐고 물었는데 이 친구는 와이파이는 여기 도서관 회원 등록하고 이용할 수 있었는데 최근엔 이것마저 안된다고 한다. 즉, 인터넷을 쓰고 싶으면 도서관에 설치된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유선랜을 사용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오마이갓. 이래서 핫스팟 네트워크가 그렇게 많았던 거구나. 오늘 내가 할 것들은 대부분 인터넷 리서치를 필수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망했다 싶었다.


도서관 해외 후기 및 리뷰를 봐도 와이파이 안된다는 정보는 없었고 심지어 5년 전 리뷰에도 와이파이가 잘된다란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와이파이를 없앴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 어디에도 그와 관련된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름 도서관도 그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스스로 추측해 본 것은 두 가지 정도이다.


첫 번째 가설 : 공공 와이파이 개방하는 동안, 와이파이 쓰려고 아무나 들어와서 도서관의 물을 흐렸다.

두 번째 가설 :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읽으라는 책은 안 읽고 죄다 컴퓨터로 딴짓하는 걸 보고 못 참아서 와이파이를 없앴다.


실제로 멕시코 휴대폰 요금제는 데이터를 엄청 풍족하게 주지 않는다. 우리나라처럼 무제한 요금제나 월 10기가 바이트 넘는 요금제는 거의 없고 최대 1~5기가 바이트 요금제를 가입 후 데이터 다 쓰면 충전하는 형태로 쓴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밖에서 돌아다닐 땐 데이터가 많이 드는 영상이나 사진이 많은 콘텐츠는 거의 보지 않는 편이라 와이파이가 쓸 수 있는 곳에 도착하기만 하면 항상 연결부터 하고 봤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에 멕시코 현지인들도 충분히 와이파이 쓰러 이 도서관에 몰려들지 않았을까. 가뜩이나 이 도서관엔 사람들이 앉는 좌석들이 생각보다 엄청 많진 않다.


두 번째 가설은 나 역시 공감이 가는 부분인데 도서관이 아니라 요즘 카페 갈 때 항상 느끼기 때문이다. 어느 카페를 가나 "노트북 하기 좋은 곳"이나 "콘센트 여부"부터 확인하게 되는데 주인장 입장에선 그리 달갑지 않을 것 같다. 심지어 내가 들른 한 카페에선 오전 시간엔 일부러 아예 와이파이를 꺼 구글 리뷰 평점이 이 사유로 왕창 깎여 있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래도 도서관을 운영하는 입장에선 사람들이 죄다 컴퓨터를 들고 와 작업만 하고 본질인 책을 등한시하는 것에 대한 우려로 와이파이를 내리지 않았을까란 뇌피셜이다.

결국 청소년 책 독서 시도

퓨처리즘(미래지향) 느낌이 물씬 풍기는 도서관에서 와이파이 대신 유선 랜선을 쓰는 모습이 다소 아이러니하게 다가왔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책장에서 아주 얇은 청소년 권장 도서를 들고 와 나름 2시간 정도 읽었다. 만약 인터넷이 됐다면 난 여기서 도서관 풍경 사진만 찍고, 책을 읽어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도서관의 와이파이 없앤 전략은 나름 성공한 게 아닐지.




브런치 메인 픽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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