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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Apr 13. 2023

어쩌면 미래 핫할 음식일지도, 메뚜기 타코.

06.멕시코 시티, 차풀테펙 성과 메뚜기 타코

계속 버려졌던 기구한 성, 차풀테펙 성

멕시코 시티 2주 살이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엔, 멕시코 대표 관광지인 '차풀테펙 성(el castillo de chapultepec)'이 있다. 차풀테펙 성은 누구에게나 상시개방된 차풀테펙 숲으로 둘러 싸여 있는데, 이 숲은 오늘날 멕시코 시티 사람들이 주말에 흔히 즐겨 찾는 나들이 장소이기도 하다.

멕시코 시티 차풀테펙 성


차풀테펙 숲은 무려 3,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곳인데, 발굴된 유물들을 토대로, 기원전 2,500년에 이곳에서 사람이 살았다고 추정한다. (숫자만 따지고 본다면 단군 할아버지 고조선 시대와 맞먹는 역사)


13세기, 메시카인(Mexica : 아즈텍 문명의 기원)들은 멕시코 북부 지역에서 이상적인 땅을 찾아 남쪽으로 이주하던 과정에 잠시 머물렀던 곳이 이곳 차풀테펙 지역이다. 그들은 주변 지역 세력들에 의해 쫓겨났다. 1325년, 그들은 오늘날 멕시코 시티의 중심에 국가를 세우고, 그들이 이전에 살았던 차풀테펙을 신성한 땅으로 삼았다.


1785년, 스페인이 지배하던 시절, 비세로이 베르나도 데 칼베스 총독은 이곳에 성을 건설하라고 명했는데, 이후 차풀테펙 성은 짓다가 건설 담당자들의 죽음으로 잠시 중단. 오랫동안 방치되고 에물단지로 남게 된다. 1864년 멕시코 황제에 의해 오늘날의 화려한 모습이 완공되었지만, 이 역시 당시 제국이 멸망하자 또 한 번 버려지게 된다. 결국 이후 멕시코 대통령들의 공식 관저로 사용되다가 1939년, 차풀테펙 성은 멕시코 국립 역사박물관으로 대중들에게 개방된다.  


지하철 노선으로 깨달은 차풀테펙의 뜻

차풀테펙 성 내 메뚜기 분수

차풀테펙 성을 둘러보고 출구로 나가는 길엔, 작은 분수대가 있다. 작은 메뚜기가 물을 뿜는 형상을 한 분수였다. 박물관 곳곳에도 메뚜기 관련된 그림이나 흔적이 있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메뚜기에 대한 사랑이 참 유별나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멕시코 시티 지하철 1호선. (좌측에서 4번째 - 차풀테펙 역 메뚜기 심볼)

차풀테펙이 메뚜기 언덕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오히려 그로부터 한참 지난 후, 생뚱맞게도 지하철 안에서였다. 당시 지하철 노선도를 꼼꼼하게 보고 있었는데 역마다 그 역의 상징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꽤 재밌었다. 글자를 못 읽는 사람들을 위해 도식 기호를 사용한 것으로 지레 짐작했는데 차풀테펙 역의 상징은 다름 아닌 '메뚜기'였다. 아, 설마 했는데 메뚜기를 스페인어로 사전에 검색했더니, '차풀린(Chapuline)'이었다. 왜 메뚜기 언덕이라 이름을 붙였는지는 확실한 이야기는 없지만, 아즈텍어에서 유래된 만큼 오래전부터 이곳에 메뚜기가 많이 나왔으니 그런 게 아닐까 지레짐작할 뿐이다.


첫 메뚜기 시식, 메뚜기 타코

멕시코의 이색 별미 중 하나로 '메뚜기'가 꼽힌다. 길을 걷다 보면 메뚜기를 포함한 말린 곤충 식자재(?)를 파는 상인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슈퍼마켓에 가도 이 포장된 건 메뚜기들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슈퍼마켓에 흔히 볼 수 있는 메뚜기 (양념된 맛과 오리지널 맛)

멕시코의 메뚜기 섭취 역사는 16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페인의 멕시코 정복 이전 시기, 곤충은 주요 단백질 섭취원이었다. 이후 스페인 군대들이 데리고 온 가축들로 주요 단백질 섭취원이 대체되었다. 명맥이 끊길 법한데, 멕시코에선 아직까지도 이 메뚜기를 즐겨 먹는 문화가 남아 있다. 보통은 가볍게 튀긴 형태로 먹는데 마늘과 라임, 소금, 고춧가루 등으로 만든 양념으로 시즈닝 한다.


첫 메뚜기 시식은 한 칵테일 바에서였다. 한 멕시코 친구와 이곳에서 가볍게 술 한 잔 하기로 했다. 메스칼(데낄라와 비슷한 멕시코 전통 증류주) 베이스 칵테일과 함께 곁들여 먹을 안주거리를 고르는데  '차풀린 타코'가 눈에 띄었다. 친구 역시, 씩 웃으며 "너 차풀린이 뭔지 알아?" 라며 "일단 먹어봐"하고 덥석 주문했다.

(당시 나는 차풀린이 메뚜기란 사실을 몰랐다)

메뚜기 타코 (갈색이 으깬 메뚜기)

잠시 후 꽤 근사하게 플레이팅 된 타코가 나왔는데 바 조명이 어두워서 내용물이 잘 안보였다. 메뚜기는 짓이긴 상태로 시즈닝 되어 있었고 여기에 치즈와 허브가 올라가니, 메뚜기의 형체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징그러운 재료라도 형체만 보이지 않는다면(?) 먹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또르띠야의 일부를 떼서 메뚜기로 추정되는 속을 싸서 먹었다. 사실 맛이야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그렇게 특별한 맛은 없다. 살짝 바삭한 식감으로 먹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건새우 볶음을 먹는 느낌이랄까? 첫 메뚜기 시식 경험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집에서 만든 메뚜기 카나페


멕시코 시티에선 호스트와 함께 거주하는 방식의 에어비앤비에서 머물렀는데 (방이 여러 개 있고 방 1개에 숙박하는 형태) 호스트가 집에서 종종 자주 요리하곤 했다.


하루는 하루종일 집 밖을 나서지도 않고 거실에 앉아 노트북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호스트가 저녁쯤 퇴근하고 돌아와 주방에서 이것저것 만들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근황을 공유하며 요리하는 거 구경하고 싶어 다가갔는데 메뚜기가 잔뜩 있었다. 심지어 이번엔 형체가 오롯이 남아있는 메뚜기들이다. 호스트는 담백한 크래커 위에 과카몰리를 바르고, 그 위에 메뚜기들(?)을 예쁘게 올렸다. 그리고 취향에 따라 칠리소스를 끼얹어 먹으라고 권했는데, 별생각 없이 집어 들었는데 내 눈앞에 마치 메뚜기가 살아 서 있는 듯한 형체로 서 있으니 살짝 멈칫.

호스트가 만들어준 메뚜기 까나페

애써 외면하고 카나페를 한 입 크게 베어 먹었다. 중간에 메뚜기 몸통이 반쯤 잘린 형체(?)를 보면 입맛이 뚝 떨어질까 봐 일부러 남은 한 입 역시 먼 산을 바라보며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담백한 크래커에 과카몰리를 얹고 바삭바삭한 재료 거기에 칠리소스를 끼얹어 톡 쏘는 맛까지 더한 맛이다. 솔직히 맛있어서 내 플레이트에 올린 3개를 다 먹고, 남은 1개 카나페는 직접 해 먹었다.


따지고 보면, 옛날 우리나라도 농촌에서 메뚜기 튀겨먹고 했다는데, 굳이 메뚜기를 곤충이고 징그럽다는 이유로 혐오 음식이라고 기피할 필요까지 있을까 싶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번데기가 오히려 한 수 위인 거 같은데 말이다.



메뚜기가 고기보다 더 훌륭한 단백질이라고?

영화 <설국열차>에서 주인공들이 먹은 양갱의 정체에 충격을 받고 "설마 저걸 먹는 날이 올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최근엔 메뚜기 먹방을 하는 유튜버도 나오고, 종종 식용 곤충들을 활용한 비즈니스 등을 예전보단 자주 접하게 된다.


과학계에선 곤충을 미래 인류의 주요 식량으로 꼽았는데, 그중 메뚜기는 육류 단백질보다 더 질 좋은 단백질이라고 한다. 동물성 지방이 없고 비타민과 무기질 등이 풍부하다고 하니, 먼 미래에는 건강한 단백질 섭취 차원에서 메뚜기를 자연스레 먹는 날이 오지 않을까. 1인치의 메뚜기 비주얼 장벽을 극복한다면, 새로운 음식 세계가 열릴 수 있다.






<참고>

차풀테펙성 공식 홈페이지 https://www.chapultepec.org.m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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