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 Apr 03. 2023

벚꽃이 부러웠던 멕시코 대통령이 저지른 일

04.멕시코 시티, 하까란다와 과일 요거트 

저 보라색 꽃 이름이 뭐야? 


멕시코 시티 시벨레스 광장에 핀 하까란다 

긴장반 걱정반으로 입성했던 멕시코 시티 첫째 날, 가장 먼저 탄성이 나왔던 순간은 로터리에 위치한 시벨레스 광장(Fuente de Cibeles)을 둘러싼 보랏빛 꽃들의 향연이었다. 한국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색감의 꽃이었는데 벚꽃을 닮았다. 


라일락 색상이 연상되기도 하는 이 꽃은 이 광장 이외에도 멕시코 시티를 포함해 다른 도시를 가더라도 어김없이 있었다. 도로나 공원 등 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항상 있었기에 멕시코의 국화인가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멕시코 시티 벚꽃 맛집 - 알라메다 공원 

이 꽃 이름이 궁금해서 답답해하던 차에, 멕시코 친구와 함께 근교 피라미드로 여행 가면서 드디어 물어볼 기회가 생겼다. 


-저 보라색 꽃 이름은 뭐야? 내가 어딜 가나 있더라고

-저거?? 하까란다 (jacaranda) 멕시코의 봄꽃이야. 봄을 알리는 꽃이지. 그 일본의 사쿠라와 비슷해 

-오, 그럼 멕시코의 국화 같은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아마 저거 일본에서 들어온 걸로 알고 있어 


벚꽃이 부러웠던 멕시코 대통령
멕시코 과나후아토 도시에 핀 하까란다 

잠깐 피고 지는 벚꽃과 달리, 하까란다는 의외로 그 생명력이 길었다. 3월 초 멕시코에 와서 만개한 모습을 봤는데 4월 초인 지금, 여전히 길을 걸으면서 하까란다를 매일 1번 이상은 보게 된다. 오늘 마트에서 장 보러 오는 길에 바닥에 떨어진 하까란다 꽃잎을 보면서 "이제 슬슬 하까란다 질 때가 되었나"란 생각을 하는 찰나, 인스타그램 뉴욕타임스 계정에서 멕시코 하까란다 관련 아티클이 내 피드에 떴다.


"멕시코 대통령은 벚꽃을 원했다 The Mexican President wanted cherry trees"로 첫 문장을 뗀 뉴욕타임스 기사는 꽤 길었지만, 조금은 궁금했던 하라깐다의 기원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1930년 멕시코 대통령, 파우스칼 오르티즈 루비오(Pascual Ortiz Rubio)는 미국 워싱턴 벚꽃을 참 부러워했다고 한다. 

미국 워싱턴은 1912년, 일본으로부터 벚꽃을 선물 받았으며 우리나라처럼 이맘때쯤 워싱턴 벚꽃 축제를 한다고 한다

그의 열망은 멕시코에 "정원사"란 직업으로 이민 온 한 일본인 이민자인 타츠고로 마츠모토(Tatsugoro Matsumoto)에게 닿았다. (그는 이민당시 '정원사'란 직업을 기재했지만 실제로는 건축가였다고 한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난 후에야 꽃을 활짝 피우는 벚꽃에게 멕시코의 겨울은 너무 따뜻해 재배에 적합하지 않았다. 핑크색 벚꽃은 포기. 대신 다른 것을 찾아보자. 그렇게 해서 찾은 꽃이 다름 아닌 오늘날 멕시코를 보랏빛으로 물들인 하까란다(Jacaranda)다. 


하까란다는 일본인에 의해 소개되었지만, 일본산은 아니다. 아마존 유역에서 자생하는 나무로, 그 이름은 파라과이의 원주민 언어(Guaraní)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타츠고로 마츠모토는 실제 정원사는 아니었지만, 결국 멕시코 전역을 무대 삼아 보랏빛 정원을 가꾼 찐 정원사가 된 셈이다. 어쩌면 건축가였기 때문에 그는, 대통령의 염원을 도시 설계 관점으로 접근 가능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보라색이 피면, 봄이 온다" 

멕시코 대통령의 '미국 벚꽃'에 대한 부러움과 감수성은 알록달록한 색채가 가득한 멕시코에 보라색을 더했고, 멕시코 사람들은 약 100년 째, 하까란다와 함께 봄을 맞이하고 있다. 



 너무나 거대했던 5천 원짜리 요거트 과일 빙수 


봄꽃을 보면 유독 달달한 과일이 많이 먹고 싶다. 열매는 곧, 꽃의 결실이라 그런걸까. 멕시코의 봄은 한국의 초여름에 가까운 수준이라, 봄에 나오는 제철 과일도 훌륭하다. 항상 시내를 돌아다닐 땐 "과일 사서 숙소에 들어가야지" 생각하다가 막상 숙소에 들어갈 때 쯤되면 배가 너무 불러 과일을 사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만다. 


태양이 너무나 뜨거웠던 어느 날, 시장에 들러 돌아다니다가 어느 가게에 사람들이 아주 거대란 칵테일잔에 무언가를 가득 담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게 뭐지? 하고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주인장에게 영업 당해 홀린 듯이 자리에 앉았다. 


과일주스나 빙수 등을 전문으로 하는 거였는데 내 옆에 아저씨가 맛있게 먹고 있는 게 무엇이냐고 물으니 에스카모차스(Escamochas)란다. 과일이 수북이 쌓인 모습이 영락없이 빙수를 닮아, 미디엄 사이즈(미디엄과 그란데 사이즈가 있었다)로 주문했다. (물론 얼음이나 얼린 우유 같은 건 들어가지 않는다. 비주얼만 빙수)


곧바로 나온 이 에스카모차스는 너무나 거대했다. 내가 깜짝 놀라 미디엄 사이즈냐고 되물었는데 맞단다. 이후 적응됐지만 멕시코에선 그란데 사이즈를 시키면 거의 슈퍼 점보 사이즈급이므로, 한국인이라면 그냥 미디엄, 치코 사이즈를 시키는 것이 좋다. 


하단에는 구운 오트밀과 시리얼 등이 살구빛 요거트와 함께 한 사발 깔려 있었고 그 위에 바나나를 포함해 자몽, 파인애플, 사과, 딸기 등 제철과일들이 올라와있다. 달콤한 꿀과 튀긴 쌀로 마무리했는데, 내 기준엔 표준 당수치를 조금 초과한 수준이었다. 꿀이 없어도 괜찮을 거 같은데, 멕시코 사람들이 워낙 달게 먹다 보니, 어느 디저트를 먹건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엔 대부분 많이 달 수밖에 없다. 


밑에 살구빛 요거트가 궁금한데 위에 과일들이 많아 한참 건져먹어야 했다. 원래는 디저트 용도로 먹으려고 한 건데, 이 정도면 저녁 안 먹어도 되겠는데 싶을 정도였다. 마침내 요거트에 도달했는데, 한 스푼 떠먹는 순간 이 살구빛 요거트의 맛을 낸 과일의 정체가 너무 궁금해졌다


어딘가 익숙하면서 낯선 이 과일 느낌. 내가 정말 좋아하는 류의 과일맛이어서 이게 대체 뭐지? 하면서 몇 번이고 천천히 음미했다. 아저씨에게 "혹시 이 과일 이름이 뭐냐? 이 요거트맛"이라고 물었다. 그는 이름을 말해주었는데 그 이름을 내가 못 알아듣자, 아예 과일을 들고 나왔다. 이 과일은 다름 아닌 마메이 사포테(Mamey Sapote). 

친절하게 마메이를 가져와 설명해주는 아저씨

중남미 일대에 나는 과일인데, 파파야와 비슷한 주황빛을 띠고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는 과일 맛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망고나 파파야의 식감인데, 이들보단 좀 덜 달면서 특유의 상큼한 향과 맛이 있다. 어찌 됐건 이 과일은 추후 중남미 여행을 하게 되면 꼭 먹어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망고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내가, 멕시코에서 가장 많이 찾은 과일이기도 하다. 




<참고> 

‘Merchant of Landscapes’: The Lasting Footprint of a Japanese Gardener in Mexico



다음메인 픽,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맥주에 고춧가루와 토마토 주스 말아먹는다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