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 Mar 28. 2023

맥주에 고춧가루와 토마토 주스 말아먹는다고요?

03. 멕시코 시티, 미첼라다 

"천상의 맛, 미첼라다" 

넷플릭스 시리즈 중에 <천상의 맛: 멕시코> 란 푸드 다큐가 있다. 멕시코에서 행복한 먹방 할 생각으로, 이 푸드 다큐를 보기 시작했는데 1화부터 충격적이었다. 제목인 "천상의 맛"이 반어법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내 기준에선 "괴식"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음식을 도전하고 오픈 마인드인 나 조차, "어허, 음식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되는데"하고 탄식을 하게 만든 건 바로 1화 에피소드인 미첼라다였다.  

넷플릭스 푸드 다큐 : 천상의 맛 멕시코

맥주에 사탕이나 해산물, 심지어 마른 고기 육포 등을 넣어 마치 장난치듯 만드는 이 음료들을 넷플릭스에서 미첼라다라고 불렀다. 아무리 상상해 봐도 저건 맛있을 수가 없는 조합인데? 하는 예측 가능한 그런 맛. 보통 푸드 다큐는 보면서 엔도르핀이 도는데 이 1화 미첼라다는 보면서 호기심반, 괴로움반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맥주를 가지고 장난치는 기분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에 가면 한 번쯤은 미첼라다를 마셔봐야겠다 다짐했다.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지만 최애는 아니야 


1L 잔에 서빙된 다크 에일 맥주, 가장자리엔 칠리파우더와 설탕, 소금 등이 묻혀 있다.

 

멕시코를 걷다 보면 밤낮이건 노천 테이블에서 저마다 500~1L 맥주잔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그 맥주잔을 유심히 보면 입이 닿는 테두리를 따라 검붉은 것이 잔뜩 묻어 있다. 타진(tajín)이라고 불리는 고춧가루와 소금인데, 끈적 지근하게 붙어 있기 때문에 마실 때 이들을 살살 이로 긁어내면서 맥주와 함께 마신다. 맥주는 대부분 일반 멕시코 로컬 맥주를 쓰는데 그 안에 라임과 굴 소스(혹은 핫소스), 레시피에 따라 토마토 주스 등도 넣는다. 


정통 미첼라다엔 토마토 주스가 안 들어가는데, 내가 여태까지 만난 멕시코 사람들은 대부분 일반 미첼라다보단 토마토 주스 클라마토(Clamato) 넣은 것은 좋아했다. 이를 '쿠바나' 스타일이라고도 부르는데 실제 쿠바보단 멕시코 국민 음료로 애용된다. 그래서 맥주를 받으면 맥주 색이 아닌, 오묘하게 갈색에 가까운 검붉은 색을 띠는데 맥주가 아닌 새로운 음료를 먹는 느낌이다. 

미첼라다 맛집에서 맛본 쿠바나 스타일 미첼라다 

사실 맥주라는 걸 모르고 마셨다면, "아 그냥 멕시코 사람들이 마시는 다른 음료구나"라고 여겼을 거 같다. 맛은 김 빠진 맥주에 핫소스와 라임, 토마토 주스를 넣은 맛이다. 오묘하게 신 맛도 나고 살짝 매콤한 맛도 나고. 그 와중에 가장자리에 잔뜩 붙은 고춧가루와 소금은 시간이 지나면 살살 녹아서 내리는데, 지저분해 보여 좀처럼 정이 가지 않는다. 


왜 맥주에 고춧가루와 소금, 토마토 주스를 넣어 먹는 거야. 아니 고춧가루와 소금을 테두리에 붙인 것은 그나마 괜찮다. 이건 맥주를 마실 때 굳이 이로 긁어내지 않는다면(?) 맥주와 섞여 나오진 않으니. 하지만 토마토 주스와 핫소스 혹은 우스터소스를 넣은 것은 내 기준에서 선을 넘은 맛이다. 


물론, 마실 수는 있지만, 굳이 이걸 돈 주고 사 먹을 의향은 없다. 참고로 멕시코 사람들은 이를 해장술 혹은 술 많이 마시기 전에 '상쾌환' 개념으로 마신다고 한다. 토마토에 비타민C가 풍부하기 때문에 술에 많이 취하지 않도록 돕는 역할 (혹은 술을 깨는데 돕는 역할)을 한다는 뇌피셜로 마시는 게 아닐까 싶다. 혹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숙취 있으면 매콤한 걸로 해장하는 것처럼 매운 것을 좋아하는 민족들은 해장도 맵게 하는 게 국룰인가 싶기도. 


사탕수수 주스, 아이스크림에도 들어간 칠리

맥주뿐만이 아니었다. 멕시코 사람들은 진심 어느 음식을 먹건 고춧가루를 뿌려먹는다. 엄연히 '음식'의 영역에만 사용되어야 할 고춧가루는 달콤한 주스에도, 아이스크림에도 들어간다. 멕시코 친구가 시장 구경을 시켜 주었는데 목이 너무 말라, 사탕수수주스 파는 노점 앞에 멈췄다. 친구가 재미난 것을 보여주겠다며, 음료를 주문했는데 눈을 의심했다. 일반 사탕수수주스라고 생각했는데, 그 위에 칠리 파우더를 잔뜩 뿌려 거의 표면을 다 빨갛게 뒤덮었다. 아.... 탄식이 나왔다. 


사탕수수 주스에 가차 없이 뿌려진 칠리 파우더 

마치 벌칙 같은 느낌이었는데, 친구의 권유로 먹은 사탕수수 + 칠리 파우더는 매콤하면서도 달콤하고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함이 가득했다. 이게 딱히 "역겨워"하고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고, 앞의 미첼라다처럼 "참 독특한 개성이 있는 음료수구나"라며 한 모금, 두 모금 그러다가 나중에 한 1/4 정도 분량을 내가 마셨다. 중독성이 있다기 보단, 이 맛이 뭘까 계속 탐구하고 싶어 조금씩 먹은 건데 나중엔 오히려 이 맛에 적응이 되었다. 아, 멕시코 사람들도 그냥 습관처럼 이렇게 단 음료에 칠리 파우더를 먹는 건가? 

(좌) 머쉬멜로우 아이스크림 (우) 망고 칠리 아이스크림 

멕시코 사람들의 단짠맵 (달고 짜고 맵고)에 대한 지독한 애정을 경험해보면, 이제 망고 칠리 아이스크림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망고 칠리 아이스크림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베이스가 된 망고 아이스크림이 워낙 훌륭해서였을까? 그냥 흔한 망고 아이스크림일 수도 있는데 여기에 칠리를 첨가하면서 뭔가 킥(kick)이 되어 준 느낌이었다. 맵부심 있는 한국인이지만, 멕시코 사람들의 칠리 사랑엔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되는 순간이었다. 진정한 사랑은 이렇게 시도 때도 물불 안 가리고 모든 것에 다 함께 하는 게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백종원이 극찬한 멕시코 내장탕에 실망했던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