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멕시코 시티, 내장탕 판시타(Pancita)
내장 덕후로서 가장 먹고 싶었던 멕시코 내장탕 '판시타'
대만에서 가장 좋아했던 음식 중 하나는 백종원 스푸파에서도 소개한 '대창 굴국수'였다. 약간 울면 느낌의 걸쭉한 죽 같은 국수에 대창이 들어가 있는데, 관광지와는 다소 거리가 떨어진 곳인 이곳까지 백종원 님은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현지인 맛집인 데다가 만족스러웠다. 이 계기로,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 대한 신뢰감이 한층 상승했는데, 멕시코 시리즈도 있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그의 한계는 어디까지 인가. 하긴, 스트리트 푸드하면 멕시코는 빠질 수 없다. 우리가 비싸게 주고 먹는 타코와 부리또 등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길거리에서 700원~2천 원이면 먹을 수 있다. 그야말로 길거리 음식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곳이 멕시코가 아닌가.
멕시코 스푸파 편을 보면서 가장 입맛 다셨던 것도 멕시코 내장탕 (소위 해장국이라도 불리는)인 '판시타(Pancita)'였다. 일전에 멕시코 친구를 통해서 멕시코에서도 곱창, 내장 이런 거 많이 먹는다란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한층 기대가 컸다. (한국인들이 멕시코에서 곱창 타코를 그리 좋아한다고) 빨간 국물에 각종 내장 부위가 잔뜩 들어가 있고, 그것을 또르띠야로 또 싸 먹는 백종원 님의 모습을 보고 "아, 저건 멕시코 첫 주에 꼭 먹어야지" 다짐했다.
로컬 시장에 위치해 있던 그 판시타 집
시장 한복판에 위치한 그 판시타 집을 찾았다. 이런 곳에 먹을 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각종 잡화, 물건들을 파는 정신없는 시장통이었다. 딱 특정 지점에서 꺾어서 들어가니, 푸드 코트처럼 구역별로 나눠 음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스푸파에 나온 그 집을 알아보기 까진 한참 걸렸다.
왜냐면 당연히 사람이 많은 곳 위주로 훑어봤는데 알고 보니 스푸파에 나온 그 집은 가장 넓은 구역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가장 사람이 없었던 곳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다른 곳엔 사람들이 붐비는데 왜 여긴 사람이 많이 없지? 혹시 촬영 때문에 일부러 비교적 쾌적하고 한산한 곳을 고른 건가? 란 의구심이 살짝 들었다.
내가 입구에서 머뭇머뭇거리니, 방송에 나온 그 아주머니께서 "올라(hola)"하고 들어오라고 손짓하셨다. 일단, 판시타 작은 사이즈(소년, 소녀를 뜻하는 chico/chica 사이즈라고도 한다)를 주문했다. 시장답게 음식은 주문하자마자 금세 나왔다. 빨간 내장탕과 종이 위에 큰 또르띠야 하나를 얹어주었다.
우선 내장탕 국물 맛만 보는데 뭔가 부족한 기분이다. 기대했던 내장 특유의 꼬릿 한 향과 향신료가 섞인 맛이라기 보단, 살짝 맹맹한 육개장 혹은 라면 국물 느낌이다. 여기에 우리나라 특유의 얼큰함 요소가 빠져있다. 차라리 맵기라도 하면 더 맛있을 거 같은데. 빨간 국물 색이 무색할 정도로 국물은 그리 맵지 않았다. 국물 안에 든 내장은 잡내 없이 무난하게 먹을 수 있었는데, 또르띠야를 찢어 내장을 얹고 그 위에 살사 소스 등을 얹어 먹었다.
우리나라 국물 음식처럼 퍼먹는 것보단, 건더기를 또르띠야로 싸서 먹는 것에 더 초점 맞춘 요리인 걸까? 물론, 우리나라가 유독 국물 사랑이라, 그 기준이 높아 이 내장탕의 국물 정도론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여행하다가 한국 국물 요리가 그리울 때 먹으면 좋을 대안 정도이지, 한국인 입장에선 굳이 이를 찾아서 먹을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 음식의 대안정도에 머무르는 요리와 현지 맛있는 요리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한국 음식의 대안 정도에 머무를 정도라면 굳이 한국에서도 팔리지 않을 거고, 그리움의 영역에 머무를 가능성도 적다. 하지만 현지에서 정말 맛있게 먹었고 그에 대한 대안 등이 생각나지 않을 경우, 한국에서도 종종 생각날 때가 있으면 그게 곧 나에겐 맛있는 현지 요리의 기준이다. (물론 입맛 차이가 다 다르겠지만, 지극히 아재 입맛을 가지고 있는 나로선 확신한다.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이 맛을 애매한 영역으로 여길 거라고)
국물은 아직 많이 남았는데 내가 또르띠야 한 장을 다 먹자 아주머니께서 또르띠야 한 장을 가져다주셨다. 혹시 이것도 계산하는 건가? 했는데 이후 알게 된 건 우리나라에서 반찬 리필 무료로 해주는 것처럼, 멕시코에서도 흔히 또르띠야 정도는 무료로 리필해 주는 경우가 허다했다.
다음날 멕시코 친구가 소개해 준 집 근처 판시타 맛집
멕시코 시티에 사는 친구에게 내가 '판시타' 관련 이야기를 하자, 내가 머무르고 있는 숙소 근처에 괜찮은 판시타 집이 있다고 구글맵 링크를 보내주었다. 시장 노포 스타일이 아닌, 꽤 번듯한 식당 형태를 하고 있던 이곳은 우리나라로 치면 연남동 핫플 상권에 위치해 있었다. 노포, 시장 음식을 좋아하는 나로선 핫플 음식에 대한 선입견이 살짝 있는 편이었는데, 판시타처럼 내장 등을 베이스로 한 음식은 더더욱 그러했다. 우리가 소위 돼지국밥집을 부산 시장통에 있는 허름한 집을 찐 맛집으로 찾지, 굳이 홍대 연남동 핫플 상권에서 찾지 않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아침 눈을 떴는데 이 집에서 아침을 먹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첫 판시타에 실망해서 이후 정말 맛있는 판시타들을 놓치는 게 아닐까 싶어서, 어제 먹었는데 오늘 또 먹기로 했다.
오전 10시 좀 넘어 도착했는데, 노천에도 테이블이 있는 곳이라 그곳에서 여유롭게 아침 식사를 즐기는 손님들이 있었다. 나 역시 노천에 앉아 판시타와 음료를 주문했는데, 어제와 달리 살사 소스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곧 나온 판시타는, 국물 농도가 훨씬 짙어 보이는 빨간색 국물에 내장이 정말 한가득 들어있었다. 가격은 어제 시장에서 먹은 것의 2배인데, 내부 건더기가 2배 이상 들어 있으니 사실상 그리 비싼 것도 아니었다. 이번엔 또르띠야가 아닌, 넓적한 튀김 같은 게 나왔다. 중국 요리에 비교하자면, 중국의 요우탸오(油条 : 튀김 스틱)를 납작하게 편 모양이었다.
이걸 어떻게 판시타와 먹지? 궁금해서 종업원에게 혹시 이게 또르띠야냐?라고 물었는데 "아 이건 또르띠야는 아니고 푸에르토 리코식으로 판시타와 곁들여먹는 거다. 잘 어울려서 맛있다"라고 설명해 줬다. 그러곤 "혹시 또르띠야 필요하니?"라고 물어서 "아, 내가 또르띠야랑만 먹어봐서"라고 답하니 이내 또르띠야를 한 4장 담아 주었다. (놀랍게도 이것 역시 가격에 별도로 포함하지 않았다)
얼떨결에 푸에르토 리코 스타일로 튀긴 것과 또르띠야 4장까지. 아주 풍족한 식사를 하게 됐는데 국물 맛이 이번엔 제대로였다. 물론, 우리나라 특유의 '얼큰함'은 해외에서 맛보기 어려운 만큼 논외로 치고. 일단 재료를 많이 넣어 끓인 게 티가 팍팍 날 정도로 국물색이 진했고, 씹히는 내장들의 식감 모두 훌륭했다.
중간중간 국물에 튀김을 찍어 먹으니, 그 튀김에 국물이 금세 스며들어 맛이 배는데 눅눅해지기 전에 재빨리 먹는다. 중간중간 또르띠야를 찢어 내장과 살사소스를 취향껏 올린 다음 먹고 틈틈이 국물도 떠먹으니 계속 손이 가는 맛이다.
멕시코에선 해장탕으로도 통한다는데, 간밤에 술을 먹지 않았음에도 계속해서 국물을 떠먹게 되고, 결국 그릇을 싹싹 비웠다. 어제 판시타로 생긴 실망감을 여기서 만회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백종원 님도 이곳에서 판시타를 먹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시장, 노포 음식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그 음식들이 항상 베스트라곤 할 순 없다. 주변 분위기 등을 제하고 순수 음식으로만 평가한다면 백종원 님도 이곳 판시타를 더 높게 평가하지 않을까.
꾸준히 메인 픽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