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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Aug 28. 2023

프랑스인 친구는 나에게 데이팅앱 사용을 권했다.

해외에서 첫 데이팅 앱 사용해 본 이야기 

여행하다가 한 번쯤 꿈꿔봤을 <비포 선라이즈> 

영화 <비포 선라이즈> 


대부분 여행지에서 운명적인 상대를 만난다던가, 혹은 불같은 하룻밤을 보낸다던가 그러한 로망 하나정도는 마음에 품고 있을 것이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등의 남녀 주인공처럼, 굳이 뜨거운 육체적 관계를 가지지 않더라도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고 아쉽게 헤어졌지만 언젠가 다시 재회하게 되는 그러한 사랑 말이다. 꽤 많은 사람들의 인생 영화로 꼽힌다는 것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토리라는 것을 방증한다. 


멕시코부터 중미까지, 약 6개월을 배낭 메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마치 영화 속처럼 "찌릿한" 감정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말이 잘 통하는 친구는 꽤 있었는데, 그들과 이야기하는 게 재밌어도 설레는 감정은 거의 들지 않았다. 한편, 나를 좋아해 주는 몇몇 친구들이 있었는데, 난 이들이 혹시나 로맨틱한 무드를 잡으려고 할 때마다 의도적으로 화제전환을 하며, 이를 회피했다. 


이들은 현지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나는 곧 떠날 여행자이기 때문에 진지한 관계로 발전은 어려울 거 같았고, 여전히 나는 관계에 있어선 유교걸에 가깝기 때문에 그냥 즐기다가 떠나는 관계는 조금 어려웠다. 물론 친구 이상의 감정이 들지 않았던 게 가장 크다. 여행할 때만큼은 누군가의 호감을 거절할 때 "곧 떠나야 하는 사람"이라는 최소한 그럴듯한 변명이 있다는 것은 좋다. 결국 그들 모두 친구로 남기고 나는 그 지역을 떠났고, 틈틈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락하며 지낸다. 


여행 중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면, 나는 잠시 이 방랑을 멈추고 그 도시에 머무를 수 있을까? 혹은, 그 사람이 나와 동행하기 위해 기꺼이 현실의 삶을 뒤로하고 함께할 것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는 있을까. 여행 중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가 양보를 하거나, 혹은 우연히 여행 루트가 같아 동행하면서 관계를 발전시키는 수밖에 없다. 


"데이팅 앱 사용 해보는 게 어때? 

멕시코 산 크리스토발에 살면서 거의 나와 비슷한 기간만큼 체류하며 친해진 프랑스인 친구가 있다. 우린 종종 다양한 토픽으로 이야기하는데 어느 날 맥주 한 잔 하시면서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할 일이 생겼다. 내가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는 꽤 됐고, 그 이후로 여행을 6개월간 하면서 이성과의 친구 이상의 연결고리는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 그녀는 매우 놀라워했다. 


"새로운 남자친구 만들거나 그런 거에 관심이 없는 거야?"

"그건 아닌데... 내가 여기 살 것도 아니고, 계속 여행 다니는 데 진지한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데이팅 앱 등은 이용해 봤어?"

"아니... 틴더에 대해 알곤 있는데 원나잇 상대 찾는 용도로만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흠... 나도 틴더는 이용안 해. B라는 어플이 있는데, 이거 한 번 이용해 봐. 틴더처럼 가볍진 않고, 나름 진지한 관계를 원한다면 여기서도 만날 수 있어" 


팬데믹 기간 동안 새로운 이성 만날 오프라인 기회를 상실한 사람들은 데이팅 앱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데이팅 앱 사용이 부쩍 늘었지만, 그럼에도 부정적 인식이 어느정도 남아있는 반면, 해외에선 이제 데이팅 앱으로 사람 만나는 게 사람 소개로 만나는 것을 대체하는 수준이다. 그녀는 나에게 처음부터 영원한 사랑을 만날 것을 생각하지 말고, 굳이 육체적 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노력부터 하라고 조언했다. (그렇다, 어쩌면 나는 여행이란 핑계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려는 노력 조차 하지 않는 거였다) 


그녀는 B어플이 틴더와 다른 장점으로, 서로 호감을 표현해 매칭이 된 이후에도 여자 측에서 먼저 메시지를 보내야 채팅이 진행된다고 했다. 즉, 서로 사진과 프로필을 보고 오른쪽으로 밀어서 매칭이 되더라도 최종 결정은 여자가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 데이팅 앱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선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싶었는데,  다른 앱에선 시작부터 이상한 사진을 보내는 남자들이 많다고 하니, 이게 꽤 큰 메리트로 작용하는 듯했다. 


그런데 나에겐 오히려 부담이 되었는데, 생각 없이 "좋다"는 표시로 오른쪽으로 밀었는데 갑자기 "매칭됐어요!" 화면이 떴을 때였다. 이때 마치 내가 빨리 메시지를 보내야 할 거 같은 부담감이 들었고,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도 그 사람 프로필을 여러 번 확인해 과연 좋은 사람인가 아닐까 괜히 몇 번 더 생각해 보고 시간 질질 끌다가 뒤늦게야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곤 했다. 


나름 멕시코 작은 도시에서 데이팅 앱에 뜨는 아시아 여자라 그런지 꽤 많은 픽을 받은 모양인데, 내가 한 100명 중 5명을 픽했으면 이 중 4명과 곧 매칭이 될 정도였다. (친구는 왜 이렇게 까다롭게 구냐고 했는데, 나는 매칭이 많이 될수록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정말 최대한 신중하게 픽했다) 하지만 매칭이 된 이후에도 대화를 하다가 서로 스케줄이 안 맞다던가, 혹은 그냥 말하는 태도가 뭔가 좀 찝찝해서 등 다양한 이유로 오프라인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프랑스인 친구가 "네가 이렇게 소극적으로 굴 줄 몰랐어"하고 놀랐을까. 


내 입장에선 그녀가 신기했다. 프랑스 사람이라 그런가, 연애에 매우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졌던 그녀는 B에서 매칭된 첫 상대를 우리 숙소 파티로 불러 모두와 함께 어울렸고 한 2주일 남자친구처럼 함께 여행도 가고 매번 우리와 술 자리를 함께 하다가 떠날 때가 될 땐 쿨하게 그와 관계를 끝냈다. 그와 별개로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녀도 여행자인만큼 떠날 때가 됐으니 관계를 정리한 것일 뿐이었다. "이게 바로 인생이지"라고 덧붙이며.


나는 그 도시를 떠나고 난 이후엔 이 앱을 거의 쓰지 않다가도 종종 밤에 할 일이 없을 때 앱을 열어보고 또다시 다양한 프로필을 보면서 넘기기를 하다가 잠들곤 했다. 다음날, 매칭이 됐다는 알림이 뜨면 괜히 망설여지는 거다. 이럴 땐 범블이 여성이 먼저 대화를 보내는 기능이 좋은 거 같다. 최소한 남자 측이 나에게 인사를 건넸는데 씹혔다고 생각할 일은 없을 테니. 


여전히 데이팅 앱 사용은 낯설고, 오히려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어제 코스타리카 수도인 산호세에서 매칭된 한 남자가 만나자고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마침 산호세에서 딱히 할 일 없이 따분함을 느꼈던 나는 큰 맘먹고, 그래 이번에 만나보자는 생각으로 약속까지 했으나 이번엔 그쪽에서 급한 일이 생겨서 파투 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 파토 소식에 괜히 마음이 놓였던 나였다. 데이팅 앱으로 사람 만난다는 부담감이 여전히 컸던 걸까. "연애"를 전제로 하는 1:1 만남은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여전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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