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 Sep 07. 2023

"안녕, 중국인" 하루에도 수십 번 듣다보면

남미 사람들이 나를 중국인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안녕 중국인, 예쁜이"

처음 마주한 남미, 콜롬비아 풍경 

6개월간 멕시코+중미 여행을 끝으로 콜롬비아, 드디어 남미로 처음 넘어왔다. 멕시코와 중미 국가들과는 다른 바이브가 확실히 느껴진다. 적극적이고 매우 저돌적이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도 호객 행위 빈도가 훨씬 잦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치나"를 듣기 시작했다. 심지어 치나를 귀엽게 표현한 "치니따(Chinita)"도 만만치 않게 자주 들었다. 호객 행위의 목적이 아니더라도, 뜬금없이 훅 다가와 "올라 치니따, 보니따(안녕 중국인, 예쁜이)"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캣콜링*(Catcalling : 길거리 지나가는 여성들에게 휘파람 불거나 추근 거리는 말을 하는 행위, 흔히 성희롱의 일종) 빈도도 훨씬 잦아졌다. 


중국인이냐는 소린 워낙 많이 들어서 이젠 다소 무덤덤한데, 그럼에도 썩 유쾌하진 않다. 아마 대부분 한국인들은 공감할 것이다. 역사상 숙적이라고 불리는 일본인이라고 불리면 기분이 그래도 덜 나쁜데, 중국인이라고 불리면 급 발진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한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반감이 커서 그런 걸까? 혹은 중국에 대한 국제 이미지가 좋지 않은데 괜히 동급으로 프레이밍되는 게 불쾌해서 그런 걸까.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나의 가설은 "우리나라보다 잘 살지 못하는 국가에서 온 사람 취급 당하는 것에 대한 불쾌감"이 기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동남아 및 개발도상국가에 대한 인종 차별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우리가 흔히 "동남아 사람 닮았다"라고 하면 기분 나빠하고, "서양인 혼혈처럼 생겼다"하면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일본인이라고 하면, 그래도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일찍이 경제 대국 반열에 들었고, 일본인에 대한 전반적인 이미지도 "예의 바르고, 폐 끼치지 않으며 깔끔함" 등 비교적 긍정적이다. 반면, 중국은 경제 규모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크지만, 1인당 GDP는 우리나라보다 낮다. 게다가 중국인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어서, 중국인으로 범주화되는 것에 유독 반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그녀는 정말 다정하게 나에게 "얘, 중국인"이라고 불렀다.

어제는 콜롬비아 해변 섬 투어를 했는데 한  콜롬비아 가족과 함께 했다. 셀카 찍는데 몰두한 이제 15살 생일을 맞이한 여자아이와 40대 부모였는데, 그리 대화를 많이 나누진 않았지만 이들이 간식을 많이 싸와 여행 종종 나에게도 먹을 것을 나눠줘 "감사하다"라고 몇 마디 건네고, 여행지에 대한 감상을 종종 나눴을 뿐이다. 

여행 후반부엔 이 가족들과 늦은 점심을 함께 먹었다. 콜롬비아의 해안가 도시이기 때문에 생선 요리가 유명하다. 어른 손바닥 2개를 합친 크기의 생선구이, 야채, 튀긴 플라타뇨(바나나처럼 생긴 구황작물 중 하나), 밥이 한 접시에 담겨 나왔다. 콜롬비아식 흔한 백반 차림이다. 생선을 발라 먹어야 하는데 젓가락은 고사하고 일회용 포크만 달랑 줘서 결국 손으로 생선을 찢어가며 먹어야 했다. 식사를 거의 다 마칠 쯤엔 생선 기름으로 손가락이 번들거렸다. 


아주머니는 식사를 거의 다 마치고 나에게 "혹시 손 닦을 물 티슈 필요하니?"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내가 잠시 휴대폰 사진 체크하느라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는데 내 이름을 까먹은 이 아주머니는 나에게 "얘, 치나 치나(Oye, China, China) 물티슈 줄까?"라고 말을 걸었다. 이름 대신 대뜸 "얘, 중국인 여자야"라고 부르는 것에 꽤 당황한 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정색하며 중국인 아니라고 말했는데 아주머니는 순진하게 놀란 표정으로 "오, 중국인 아니야?"라며 반문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악의 없이 나를 바라보는 아주머니의 표정에서 난 아차 싶어 잠시 굳은 표정을 풀고 "한국인이고, 중국과는 이웃 국가이다"라고 부연 설명을 했다. 


멕시코를 남미라고 부르는 한국인들도 꽤 많다 

10살이 되기 전 나에겐 서양인은 곧 미국인이었다. 당시 프링글스를 포함해 각종 수입 과자는 모두 "미국 과자"라고 불렀고, 서양 사람처럼 생긴 사람들만 보면 미국인으로 간주했다. 서울이 아닌 지방 소도시에 살았기 때문에 외국인 보는 것 자체가 희귀했는데, 한 달에 1번, 2번 외국인을 볼까 말까 했을 정도다. 나의 작은 세계관은 동양은 한국과 일본, 중국이었고 서양은 곧 미국이었다. 


나에게 미국인 취급을 당한 유럽 사람들은 기분이 나빴을까? 그들의 눈에는 그저 "아직 세계관이 좁은 아이"가 하는 말로 이해하지 않았을까 싶다. 즉, 어린 나는 아직 세상에 다양한 나라가 있다는 것에 대해 무지했을 뿐이고 내가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그들이 그저 미국인이라고 단정했을 뿐이다. 즉, 이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외 별다른 의도는 없다. 


나에게 중국인이라고 말하는 남미 사람들이 내 눈엔 어린 시절의 나로 보였다. 흔히 길거리에서 "치나 치나"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한국을 들어봤을지 언정, 한국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어떤 나라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한국과 중남미 대륙은 가장 먼 거리로 서로 떨어져 있지 않은가. 이들에겐 살면서 가장 많이 본 아시아인들이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중국인이었을 뿐이고,  비슷하게 생긴 한국인이나 일본인을 보더라도 "중국인"이라고 편의상 부를 뿐이었다. 또한 대부분 교육 수준이 높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들 대부분은 10대 어린 나이부터 커피 농장에서 커피콩을 따거나 길거리에 나와 팔찌를 팔거나 식당에서 설거지를 한다. 살면서 본 아시아인들의 대다수가 중국인이었을 거고 미디어에서 중국 관련 이야기를 많이 접했을 뿐이다. 


따라서 여행할 때 중국인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그렇게 까지 기분 나빠할 필욘 없다고 생각한다. 차별이나 놀리려는 의도로 부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는 순수하게 무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상적인 교육 과정을 거친 사람이 냅다 "중국인"이라고 하는 경우엔 다른 의도가 깔려 있을 수 있다.) 


역으로 생각하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중남미, 멕시코를 깡그리 묶어 남미라고 하는 것과 같다. 난 아직 남미에 도착도 안 했는데, 내가 멕시코 여행할 때부터 꽤 많은 주변사람들에게서 "남미는 어때?" "남미 좋아 보인다"라고 메시지를 꽤 많이 받았다. 특히 멕시코는 엄밀히 따지자면 미국, 캐나다와 함께 북미에 속하는 편인데도 남미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래도 라틴 아메리카란 이미지가 강하고, 라틴 아메리카는 남미란 인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 내가 만난 멕시코 친구 중 한 명은 "멕시코도 엄연히 따지자면 북미인데 종종 중미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멕시코가 잘 못 사니까 중미로 묶는 차별적 행위"라고 말한 적이 있다. 


결국 역지사지이다. 서로가 각자 가지고 있는 세계관에서 사람을 쉽게 범주화하는 것은 비단 이들뿐 아니라 우리도 자주 저지르는 오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인이라고 불릴 때마다 화를 내기보단, "한국인"이라고 친절하게 정정해 주는 것이 이들의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를 중국인이라고 부르는 대부분 사람들에겐 별다른 악의는 없다. 그저, 이들의 일상 속에 낯선 사람이 들어와 말 한번 걸어보고 싶었을 뿐이다. 






 브런치픽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