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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Sep 27. 2023

How are you? 한국어로 어떻게 말해요?

Hi, Hello 가 "안녕"이라면 

멕시코부터 시작해 라틴 아메리카 국가별 1주~1달 살이하며 6개월째 여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콜롬비아에서 한 달 살기하고 있어요. 

How are you? 한국어로 어떻게 말해요? 

해외여행, 생활을 하면 "한국어 알려줘"란 요청을 자주 받게 된다. 안녕과 안녕하세요를 알려주는 건 쉽다. 물론 이 두 표현의 차이를 설명하려면 한국의 존댓말 문화 배경을 설명해야 하지만, 대개 낯선 사람에게 인사할 땐 "안녕하세요", 조금 더 친해지면 "안녕". 하지만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직급이 높을 경우 친해지더라도 "안녕하세요". 


영어권 국가인 친구들에겐 안녕이 양파에 해당하는 어니언(Onion)처럼 들린다는 것을 알고, 이후엔 어니언과 발음이 유사하다며 나름 기억하는 법도 알려주곤 한다. 스페인어권 친구들에겐 스페인어로 '1년'을 뜻하는 아뇨(año)처럼 들린다고 한다. 낯선 외국어를 들었을 때 각자 익숙한 모국어에서 가장 비슷하게 들리는 단어를 찾아 외우는 건 만국 공통 기억법인 듯 싶다. 


문제는 하오알유/꼬모 에스따 (How are you? / Como esta?)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스페인어권에선 Hi, How are you에 대응하는 표현으로 올라 꼬모 에스따(Hola, Como esta(s)? )를 씁니다. 


교과서의 통상적인 해석은 "어떻게 지내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친구를 만나거나 낯선 사람들을 만날 때, 정말 오랜만에 만난 경우가 아니면 "어떻게 지내니"란 말을 잘하진 않는 거 같다. 그래도 친구 사이는 상관없는데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면 뭔가 어색하다. 


그래서 How are you에 해당하는 한국어 표현 질문을 받았을 때, 화자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하고 그에 대해 답변하곤 했다. 만약 친구 사이라면 "잘 지내?" "별일 없어?"를 알려준다. 물론 이건 내 한국어 말버릇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쓰는 표현이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상점 주인, 낯선 사람이 나에게 이 표현을 물을 경우, "How are you"에 대응하는 표현이 없다고 알려준다. 굳이 찾으라면 있긴 한데, 힘들게 발음 익혀서 써봤자 오히려 어색하기만 할 거라고. 종종 영어, 스페인어와 1:1 대응되는 한국어 표현이 없을 수 있다고 알려주면 다들 "아?"하면서 의아해한다. 아무리 그래도 "How are you?"에 해당하는 한국어 표현이 없냐고 말이다. 


그때마다 난 매번 "음, 그냥 언어마다 차이가 있으니까"라고 대충 얼버무리곤 했다. 그러면서 내심 "한국 사람들이 낯선 사람들의 안부 묻는 것에 대해서 꺼려하는 문화 때문인가?"하고 자체 판단을 내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린 이미 인사말에서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녕하냐"는 질문 자체에 이미 상대방의 안부, 안녕을 묻는 뜻이 다 담겨 있지 않은가. 안녕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아무 탈 없이 편안한 상태"이다. 정작 숨 쉬면서 내뱉는 표현이지만, 안녕은 Hi, Hello라고 오래전부터 1:1 매칭되어 있어서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이걸 굳이 영어식 표현으로 대응하자면 안녕/안녕하세요 = Hi, Hello 보단, Hi, How are you? 까지 포함시키는 게 맥락상 자연스럽다. 우린 이미 "안녕"이란 인사에서부터 상대방의 안부, 안녕을 물어왔음에도 불구하고 How are you에 대응하는 표현을 계속 찾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안녕 내 사랑이라고 말하는 콜롬비아 


콜롬비아로 넘어오면서 느낀 두드러진 특징은 멕시코나 중미보다 인삿말과 표현이 조금 더 정겹고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가령, 멕시코에선 가게에 들어가거나 길거리에서 타코를 시킬 때 등 사람들과의 대화 시작은 무조건 아침인사/점심인사/저녁인사로 시작한다. 영어로 치면 굿모닝, 굿애프터눈, 굿이브닝처럼. 그리고 나선 으레 "찾고 있는 게 있나요?" 등 바로 본문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은근히 한국식이다. 


반면 콜롬비아는 이 인삿말에 "꼬모 에스따(como esta)"가 무조건 붙는다. "올라, 꼬모 에스따?" 영어의 "Hi, How are you?" 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친구간의 인사가 아닌, 식당이나 카페, 상점 등 낯선사람과의 인사할 때 상황을 말한다. 친구간 인사는 나라불문 올라, 다음에 안부인사에 해당하는 표현을 자연스레 붙인다.)


여기에 한국어로 직역하면 낯간지러운 말로 고객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가령, "Mi amor (내 사랑)" "hola bonita (안녕 예쁜이)" "hola hermosa (안녕 뷰티풀)". 플러팅이 아니라, 손님을 아예 다정하게 부르는 이들만의 표현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종종 살가운 아주머니들이 말하는 "자기"에 해당한다. 물론 여기에선 남녀노소 불문하고 "내 사랑(Mi amor)"이란 표현을 정말 많이 쓴다. 

자주 가는 단골집, 항상 "꼬모 에스타, 미 아모르 (안녕, 내 사랑)"하며 인사해줘서 덩달아 기분이 좋다. 

처음 콜롬비아 식당에 도착해서 메뉴판 달라고 요청했는데 "물론이죠, 내 사랑"이라고 답한 종업원의 목소리가 아직도 멤돌 정도로 인상깊었다. 이 사람만의 말 버릇인가 했는데 그 후 다른 식당이나 카페를 가도 은근 "내 사랑"이라고 손님을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걸 요청할 때도, "문제 없어, 내 사랑 (Sin problema, mi amor)" 식으로 대답한다. 물론 멕시코나 다른 중미권에서도 식당 종업원이나 사장이 이렇게 대답하는 걸 듣긴 했지만 콜롬비아처럼 빈도가 많지 않았다. 멕시코에서 이틀에 한번꼴로 들었다면 콜롬비아에선 하루에도 여러번 들을 정도. 


같은 라틴 아메리카여도 멕시코와 콜롬비아의 바이브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우리에겐 멕시코도 정말 유쾌하고 적극적인 인싸 중 인싸 느낌인데 콜롬비아는 멕시코보다 더 다양한 인종들이 섞인 곳이라 그런지 더 적극적인 인싸+능글맞음이 들어가 있다. 처음엔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언어는 문화를 반영하는 거울인 것처럼, 낯선 사람에게도 항상 따뜻한 말로 안부 인사를 건네고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드는 이들의 화법에 어느 순간 적응하며 나 역시 역으로 이들에게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스페인어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언어 

스페인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언어라는 말이 있다. 따뜻하고 긍정적인 표현,단어가 여타 언어 대비 풍부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비트겐 슈타인은 언어는 생각의 감옥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언어가 사고를 제한한다는 명제인데 생각이 언어보다 클 수 없으며, 우린 결국 각각 언어가 형성한 사고관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대한 반박 논리도 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생각도 많으며 생각은 언어보다 크다라는 것. 정답이랄 게 없는 물음이지만, 스페인어를 쓰다보면 세상 한국 현실주의자(때론 냉소적이었던)였던 나 마저 이 나라에선 긍정적인 낙천주의자로 캐릭터가 바뀌고 사고체계에도 영향을 주는 것을 느낀다. 


외국어를 쓸 때 마다 종종 인격이 바뀌는 거 같다란 말이 있는 것처럼, 그 나라 언어를 쓰면 조금 더 그 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더 가까워지는 거 같다. 처음엔 부담스러웠던 "안녕, 내 사랑 (Hola, como esta, mi amor/cariño)"이란 인사에 기분 좋게 받아치는 여유가 생겼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도 찌푸린 감정을 펴주는 역할도 한다. 하루에도 수십번 말하고 들어도 질리지 않고 항상 기분 좋게 만드는 마법같은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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