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메데인 한 달 살기
멕시코부터 시작해 라틴 아메리카 국가별 1주~1달 살이하며 6개월째 여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콜롬비아에서 한 달 살기하고 있어요.
혼자 좁은 원룸에서 살기 VS 콜롬비아 가족들이랑 동거하기
한 달 살기 숙소를 고를 때 나만의 취향이 있다. 집 전체를 빌리는 게 아니라, 콜롬비아 현지인들이 사는 집의 빈 방을 빌리는 것이다. 에어비앤비의 초창기 의도처럼, 현지인 집의 남는 방에 머무르는 방식을 선호한다. 외국인 친구에게 말하면 "부럽다, 어떻게 방 구했어?"라는 반응을 듣는데 종종 여기서 한국인 여행자들을 만나면 "안 불편하세요?"라는 질문이 먼저 받게 된다.
우선 한 달 살기 제한된 예산 내에 아래와 같은 숙소 선택지가 있다.
1) 작지만 혼자 쓸 수 있는 화장실과 방 (2~4평 남짓 원룸 형태)
2) 큰 아파트나 주택을 다른 사람들이랑 쉐어, 개인방이 있지만 화장실과 주방은 공유
3) 호스텔 도미토리 침대
일단 한 달 살기를 하는데 개인 프라이버시가 거의 없는 호스텔 도미토리 침대는 아무리 저렴하더라도 제한다. 도미토리 숙박은 한 번에 최대 7일까지가 한계이다. 화장실이나 외출할 때마다 배낭과 소지품 정리하고 락커 채우고 다니고 은근 스트레스가 심하기 때문이다. 그럼 3)번은 일단 제낀다.
1) 번과 2) 번 옵션이 있는데 한국 사람들의 경우 프라이버시를 중시하기 때문에 방이 좁더라도 남들이랑 동거하는 것보단 내 방과 전용 화장실이 있는 원룸을 선호하는 것 같다. 대학생만 놓고 보더라도 원룸 자취가 압도적으로 많고 하숙이나 아파트 쉐어 비중이 매우 적은 편이지 않는가. 반면 아파트 쉐어부터 남녀 혼성 기숙사가 일상인 외국인의 경우 2)번 옵션을 꽤 많이 선택한다. 아니 같은 가격인데 왜?
내가 매번 2)번 유형 방을 선호하는 이유를 먼저 말하자면 아래와 같다.
첫째, 널찍한 집에 살 수 있다. 개인적으로 원룸이나 고시원처럼 작은 방에 모든 걸 갖춰 사는 걸 못 견뎌하는 편이다. 대학생활 자취할 때도 3평도 안 되는 원룸에 사느니 차라리 같은 가격에 12평짜리 옥탑방에 사는 걸 선택한 나다. 개인적으론 개인방이 따로 있으면서 최소한 거실 등 누군가와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걸 선호한다.
둘째, 아파트일 경우 종종 원룸으론 절대 누릴 수 없는 인프라를 누릴 수 있다. 가령 지금 사는 아파트가 그러한데 중산층 이상이 머무르는 꽤 좋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뷰맛집 이기도 하다. 이래서 한강뷰, 도시뷰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여기에 주민 전용 수영장과 헬스장까지 있어서 정말 잘 이용하고 있다.
셋째, 현지 가족들이랑 살면서 스페인어로 교류할 수 있다. 돈 주고도 스페인어 학원 다니는 마당에, 현지 가족들이랑 살면서 스페인어로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큰 도움이 된다. 또한 혼자 한 달 살기 하면 느낄 수 있는 외로움이 덜하며, 무엇보다 기댈 수 있는 가족이 생긴 거 같아 마음이 든든하다.
높은 곳에 살아서 행복해요
콜롬비아 메데인은 "1년 내내 봄"이란 별칭이 있는 도시이다. 고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고 도시가 산으로 둘러 싸여 있다. 사람들의 살고자 하는 욕망은 높은 곳으로 꾸역꾸역 올라가 "와 저렇게 높은 곳에 사람이 살아?"라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높은 곳에도 각종 주택과 아파트가 솟아있다. 얼마나 높냐면, 어떤 동네는 케이블카가 주요 교통수단일 정도이다. 관광용 케이블카가 아닌, 매일 통근할 때 케이블카를 탄다.
콜롬비아 메데인에선 어디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경제 수준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단순 부촌, 빈민촌 구분이 아니라, 16 구역으로 세밀하게 구분되어 있다. 코뮤나 1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 코뮤나 16은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숫자가 높을수록 잘 산다고 보면 된다. 내가 사는 곳은 코뮤나 12로 중산층 이상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가장 가까운 전철역에서 집에 가려면 마을버스를 타야 하는데 꽤 가파른 경사를 굽이굽이 오르면, 중산층 아파트 단지들이 나온다. 종종 운동삼아 걸어서 올라가기도 하는데 숨이 차오르는 게 등산하는 기분이다. 얼마나 고도가 차이가 나냐면, 내가 사는 아파트에선 항상 서늘하고 시원한데 시내로 걸어 내려갈수록 점점 더워지며 땀이 주르륵 흐를 정도다. 그래서 종종 여기 사는 친구와 날씨 이야기를 하면 그 친구들은 항상 "오늘 너무 더워"라고 말하고 나는 "오늘 날씨 서늘하고 너무 좋은데?"라고 말하며 엇갈릴 정도이다.
고도가 높은 만큼 뷰가 엄청나다. 첫날 숙소에 도착해 숙소 호스트가 테라스를 보여주는데 난 그 순간 내가 집순이가 될 것을 직감했다. 테라스에는 해먹이 있었고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뷰는 마치 전망 좋은 카페나 바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 특히 야경이 압권인데, 거의 저녁마다 맥주 한 캔 따서 해먹에 누워 야경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고 한다.
매일 정오가 되면 비키니 입고 홀로 수영하는 아시아 여자가 접니다
교통이 조금 불편해도 이 숙소에 살아야겠다 다짐하게 된 계기는 바로 '수영장'이었다. 숙소 리스트를 보는데 '수영장' 항목이 눈에 띄어 호스트에게 "여기 머물면 무료로 수영장 이용할 수 있는지" 물어봤을 정도이다. 그 질문이 인상 깊었는지 호스트는 내가 숙소 체크인하는 날, "내일부터 수영할 거냐?"라고 물으며 방 소개하기 전부터 수영장 이용시간부터 알려주었다.
아파트는 총 24층 높이이고 수영장은 5층에 위치해 있다. 놀이터 및 공용 시설이 모두 5층에 있고 야외 수영장이기 때문에 아파트 테라스에서 수영장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처음엔 수영장에 워낙 사람들이 없어 조금 민망했을 정도이다. 안 그래도 이 아파트 단지 통틀어서 동양인은 내가 유일한데 비키니 입고 수영하자니 없던 부끄러움도 생길 지경이었다. 둘째 날까진 간만 보다가 셋째 날, 수영장을 내려다보는데 한 여자가 수영하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어 내려갔다. 비키니에 가벼운 원피스와 비치 타월을 가지고 내려가니 수영장이 아파트 호수와 내 이름을 물은 후 입장시켜 주었다. 수영 모자 필수 착용이라고 해서 잠시 난감해하니 관리인은 웃으며 수모를 빌려주었다.
날씨가 서늘해서 수영장 물도 꽤 차가운 편인데 소독약 냄새가 안 났다. 수영장 길이는 약 20M 내외, 깊이는 1.3M 정도라서 딱 수영 연습하기에도 좋았다. 덕분에 잘 못하던 영법을 마음껏 연습할 수 있었다. 수영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하루에 그리 많지 않아서 (평일엔 거의 나 혼자 약 1시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오전 시간대 방에서 할 일하다가 외출하기 전에 수영하고, 씻은 후 나갈 준비를 하는 루틴을 만들었다.
수영장을 이용하는 입주민 대부분은 나처럼 수영을 쉬지 않고 1시간 빡세게 하는 것보단 대부분 날씨 좋을 때 수영장 옆에 누워 태닝을 하거나, 그냥 몸만 물에 들어가 지인들과 수다를 떠는 수준이었다. 아마 이들 눈에는 "저 아시아 여자애는 정말 1시간 내내 운동만 하네"라고 비치지 않았을까 싶다.
수영하다 보면 놀이터에서 노는 가족이나 아파트 단지에 방문하는 사람들 모두 수영장을 볼 수 있는 구조였다. 특히 수모를 쓰고 수영복을 입었다 하더라도 누가 봐도 여기서 흔치 않은 동양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나가면서 오랫동안 머무르는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 그럴 때마다 괜히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잠영을 해버리곤 한다. 우리나라였다면 뭔가 부끄러워서 비키니만 입고 당당하게 수영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을 거 같다. 심지어 여기에선 수영장 옆에 태닝 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자국 없이 태닝 하기 위해 브라끈까지 풀어 누워 있는 경우도 많다. 내가 확실히 외국에 와있구나 느끼는 순간이다.
콜롬비아 가족들이랑 사는 거, 오히려 좋은데요?
도시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은퇴한 콜롬비아 아저씨, 그 아들과 살고 있다. (아내는 현재 잠시 미국에 체류하고 있다) 원래 딸이 쓰던 방을, 딸 유학으로 인해 내가 쓰게 된 셈이다. 20대 초반인 아들은 인생을 즐기느라(?)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는 편이지만 은퇴한 아저씨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꽤 많아 내가 거실에서 일할 때 아저씨는 TV를 보거나 퍼즐을 맞추고 있다. 아저씨 성격이 정말 유쾌한데 종종 마을장이 설 때 나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같이 가기도 한다.
이들에겐 7살 먹은 반려견 '치키'가 있다. 검은 털에 허리가 길고 짧은 다리를 가진 이 아이는 평소엔 나에게 관심도 없다가 내가 냉장고에 가거나 먹을 것을 쥐고 있을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우며 엉덩이를 흔든다. 한 1주일간은 나에게 낯을 가리더니 언젠가부턴 내가 문 열고 들어오면 치키가 걸어오는 소리부터 들린다. 대리석 바닥을 치며 치키가 걸어오는 소리는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살면서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워본 적이 없었는데 "이 맛에 반려동물을 들이는구나" 느꼈을 정도이다. 거실 소파나 해먹에 앉아 일을 할 때마다 치키가 조용히 나와 내 옆에 앉아 있는데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계속 쓰다듬게 되는 것이다. 내가 집순이가 된 것은 순전히 이 녀석 때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밖에 어디 카페에서 일해야지"하고 다짐하다가도, 커피를 끓이고 있으면 어느새 옆에 다가와 엉덩이를 흔드는 녀석을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 주다가 나도 모르게 소파에 앉아 집콕모드를 하게 되는 것이다.
콜롬비아 메데인에 산 지 3주 차. 정작 이 도시 구경은 메데인을 2~3일간 빠르게 여행하는 여행자보다 덜한 상태이다. (보통 메데인은 2~4일 훑어보고 넘어가는 게 전형적인 일정이다) 함께 사는 가족들은 "대체 언제 여행하는 거야?"라고 종종 물어볼 정도.
매번 "이번 주엔 꼭!"하고 다짐하지만, "아니 다음 주엔 꼭!" 하며 마음이 바뀐다. 주변 사람들이 인정하는 역마살이 뜬금없이 콜롬비아에서 집순이 생활을 하다니. 막상 해보니 이게 은근 또 체질에 맞다. 원래 1개월 살기로 했는데 2주 추가 연장한다고 오늘 아저씨에게 말하고 이곳에서 사귄 콜롬비아 친구들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알렸다.
다들 "오, 그럼 파티해야지"하며 콜롬비아 집순이인 나를 끄집어낼 메시지를 보내왔다. 무거워진 엉덩이를 툴툴 털고 다음 주엔 좀 나가 놀아야겠다며, 곧 좌절될지도 모르는 의미 없는 결심을 괜히 한 번 해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