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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Oct 11. 2023

"곱창 2천원 치 주세요"

멕시코와 콜롬비아, 곱창타코와 춘추리야(Chunchurria)

한식 향수병은 없습니다만

현지 음식을 편견 없이 잘 먹는 편이라, 해외 생활하면서도 한식 향수병은 거의 없는 편이다. 사실 한국에서 살 때도 쌀밥을 일주일에 1~2번 먹을까 말까 할 정도로 서구화된 식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걸 지도 모른다. 물론, 가끔가다가 '얼큰한 국물맛'이 당기긴 하지만, 굳이 한식당을 찾진 않는다.


중남미에서 6개월째, 한식을 먹은 건 딱 2번이었다. 그것도 멕시코 한 달 살기 정리가 끝나고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할 때 그곳에서 만나 도움을 얻은 멕시코 친구들에게 한식을 대접하기 위함이었지, 내가 먹고 싶어서 찾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 나도, 유일하게 어쩌다가 한 번 미친 듯이 당기는 요리가 있다. 바로 곱창인데 한국에서 내장덕후로 통했던 나는 곱창만 들어가면 다 좋아한다. 구이부터 전골, 각종 국밥류까지. 순대국밥집 가면 내장국밥을 시키고, 곱창과 막창은 돼지, 소 가릴 것 없이 좋아한다.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백종원 삼교 곱창거리 콘텐츠를 접하게 됐는데, 그 이후로 곱창앓이가 시작됐다.


멕시코의 곱창 타코, 소 눈알 타코가 있다.
눈알 형체는 보이지 않는 소눈알 타코

멕시코엔 곱창 타코가 있다. 곱창을 흔히 '트리파(Tripa)'라곤 하는데 타케리아 가면 꽤 흔하게 볼 수 있는 메뉴 중 하나이다. 물론 이곳에서는 곱창뿐 아니라 소 혀, 소 머리, 소 입술, 소 눈알.. 까지 먹는다. 혀 타코는 우리나라에서도 우설을 먹으니 거부감 없이 곧잘 먹는 편이다. 다만, 편견 없이 음식을 잘 먹는 나도 소 눈알 타코는 모르고 한 번 시키고 한 입 베어 먹었다가 처음으로 으엑한 타코이다.


먹을 당시엔 소 눈이라는 사실을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젤라틴처럼 점성이 느껴지는 끈적임이 불길했다. 그래서 당시 종업원에게 "제가 이 타코를 주문했나요?"라고 되물었는데 종업원이 "소 눈알 타코인데 네가 주문한 거 아니니?"하고 반문했다. 메뉴판에 어렴풋이 눈(ojos) 단어를 본 적은 있지만 그걸 주문하진 않았던 터라, 당황스러웠다. 어찌 됐건 모르고 먹었던 소 눈알 타코는 내가 유일하게 다 먹지 못한 타코였다.


멕시코에선 곱창을 과도하게 튀긴다. 안 그래도 포화지방 덩어리인데,  곱창 냄새를 지우기 위함인 건지, 바삭바삭한 과자 수준으로 튀겨버린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이 곱창 튀기는 냄새가 얼마나 강렬한지,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홀린 듯 곱창 타코를 주문하게 된다. 물론, 한국인의 입장에선 곱 하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바싹 튀겨버린 이 곱창이 조금 아쉽지만, 꿩대신 닭이라고, 곱창 특유의 고소한 냄새를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좋았다.

길거리에서 맛본 소 입술, 소 곱창 타코

멕시코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곱창 타코는 멕시코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까사스에서 숙소 맞은편에 있던 작은 타께리아(타코 파는 가게)였다. 사실 사람들도 별로 없고 큰 기대 없이 들어간 곳인데 메뉴판 하단이 아닌, 메뉴판 상단에 시그니처 메뉴처럼 표시된 곱창 타코 글자에 반가워 3개 주문했다. 가격은 3천원이 되지 않는다.

멕시코에서 먹은 가장 맛있었던 곱창 타코


놀랍게도 이곳은 바싹 튀긴 곱창이 아닌, 한국식 곱창 볶음에 가장 가까운, 쫄깃한 식감이 살아있는 곱창이었다. 이후 이 집을 2번 더 방문했던 걸로 기억한다. 무심하게 또르띠야 위에 구운 곱창을 올려 매콤한 소스와 고수, 양파 등을 얹어 먹으면 근사한 타코곱창쌈으로 변신한다. 이 메뉴는 한국에서도 잘 팔릴 거 같은데란 생각이 들곤 했다. 물론 곱창이 비싼 우리나라에선 가격이 엄청나게 뛰겠지만.


콜롬비아에서 만난 찐 길거리 곱창

멕시코에선 걸으면 발에 차이는 게 타코 노점, 타께리아였는데 콜롬비아에선 의외로 멕시코 타케리아가 그리 자주 보이진 않았다. 대신, 내가 사는 곳 근처엔 밤마다 다양한 길거리 음식들을 파는 노점들이 들어선다. 콜롬비아 길거리 음식인 치즈호떡을 떠올리게 만드는 치즈 아레파(Arepa de queso) 수제 소시지 구이, 어릴 때 먹은 설탕 묻은 도나쓰가 생각나는 기름 도넛, 엔파나다까지. 집에 가는 버스를 타려면 항상 이 노점상 거리를 지나야 하는데, 무조건 한 군데에선 들러 간식 하나를 입에 물고 귀가한다.


어느 날, 똑같이 이 노점상 거리를 지나는데 익숙한 곱창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대체 이 냄새는 어디서 나는 거지? 주변을 둘러보니 평소엔 아무것도 없던 곳에 한 노점이 들어서있고 그 뒤 간이 의자에 사람들이 앉아 뭔가를 먹고 있었다. 이건 무조건 곱창이다! 싶어서 바로 달려갔는데, 놀랍게도 한국에서 보는 곱창 비주얼이랑 가장 흡사했다. 멕시코에서 보던 곱창 타코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정말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곱이 가득한 그 곱창이 철판 위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있었다.

콜롬비아 길거리 음식, 곱창 - 춘추리야

사이즈 소, 중, 대 형태로 파는데 각각 1천 원, 2천 원, 4천 원 순이었다. 일단 맛보기로 1천 원짜리를 주문했는데 시식용 컵 사이즈에 곱창과 함께 이곳에선 또르띠야처럼 먹는 아레파(Arepa)를 같이 얹어준다. 사실 아레파 자체는 정말 아무 맛이 안난다. 퍽퍽하고 무맛인 이 아레파는 곱창이랑 먹어도 맛이 따로 놀정도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잡내 없이 잘 구워진 곱창의 맛은 감격스러웠다. 물론 우리나라 기준으로 치면 조금 더 튀긴 것에 가깝지만 곱창 쫄깃한 식감은 살아있다. 마음같아선 상추 사서 이 곱창들을 가득 얹어 먹고 싶을 정도였다. 알고보니 이 곱창은 춘추리야(chunchurria)라고 불리며 우리나라처럼, 이곳에서도 호불호 있는 대표적인 간식 중 하나이다.


다음날, 나는 또 방문했다. 어제 너무 감질나게 맛을 봤기 때문에 이번엔 중 사이즈를 시켰는데 양이 상당했다. 손바닥 만한 접시에 곱창으로 가득 채워주고 이번엔 아레파를 2개 얹어 준다. 우리나라에선 최소 1만 원 이상은 줘야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기본적으로 소금간이 되어 있어 조금 짠 편이지만 맥주 안주로 제격이다. 매콤한 양념장이 없는 건 조금 아쉽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하며 테라스에서 야경 보며 곱창 2천 원 치와 맥주를 마시다 보면 이만한 행복이 또 없다.

포장해온 곱창 2천원치

삼일째 연속으로 방문하니 그동안은 말없이 나에게 곱창을 담아주던 아저씨들도 내 정체가 궁금한지 슬며시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외국인들이 거의 살지 않는 구역이고 아시아인들은 더더욱 보기 힘든 곳이다.


여행으로 왔는지, 아니면 여기에서 사는 건지 물어보더니 곧이어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기네들끼리 얼굴을 서로 마주 보며 낄낄거리며 웃는다. 내가 일본 사람인지 중국 사람인지 대만 사람인지 내기를 했는데 한국은 예상치 못했다고. 특히 내가 대만 여자라는 것에 걸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남자는 "무조건 100% 대만 사람인 줄 알았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데 아니 대체 왜?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냥 자기가 아는 유일한 대만인 친구와 내가 비슷하게 생겨서라고 한다. 아마 다음에 또다른 아시아 여자가 이 곳에 방문한다면 이들의 내기 선택지에 한국인이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곱창 특성상 철판에서 익는데 시간이 걸려서 주문을 하면 "10분 기다려야 한다"는 등 대기 시간을 미리 알려준다. 첫날과 둘째날은 그저 곱창 굽는 것을 구경하고 말없이 서있었는데 이번엔 다들 말을 튼 김에 기다리는 10분동안 마이크 빌 틈 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항상 나오는 주제인 '남한과 북한 차이' 등을 언급하고 항상 던지는 농담을 던지면 주변 간이의자에 앉아있던 현지인들도 터지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동안 말을 걸고 싶었는데 외국인이라 말을 못 걸었다고. 마치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갖가지 질문 세례에 당황스러우면서도, 순수한 호기심으로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콜롬비아 사람들이 정겹다. 오늘도, 해가 지면 곱창 사러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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