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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Oct 18. 2023

메뉴판없는 콜롬비아 백반집

콜롬비아 골목식당

오늘의 메뉴 주세요

허름한 노포 식당을 좋아하는 편이다. 오랜 기간이 만들어낸 허름함, 전혀 인스타그래머블하진 않지만 관광객보단 아재들 혹은 할아버지들이 많이 보이면 일단 들어가 본다. 이런 식당들의 특징은 '오늘의 메뉴' 위주로 판매한다는 점이다. 간혹, 다른 메뉴들과 함께 '오늘의 메뉴'를 함께 파는 경우도 있지만 식당 운영 효율성을 위해서 '오늘의 메뉴'만 판매하는 곳이 꽤 많다.


'오늘의 메뉴'라고 해서 무조건 모두가 동일한 구성을 받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백반 구성이 밥과 국물, 메인 고기반찬, 기타 반찬 등인 것처럼 콜롬비아도 비슷하다. 콜롬비아도 밥을 주식으로 하기 때문에 밥과 국물, 고기반찬, 기타 반찬을 기본으로 한다.


이때 밥은 식당마다 다르지만 대개 룰은 비슷하다. 우선, 1) 코코넛밀크를 넣은 밥 2) 일반 흰 밥 중 선택한다. 이후 국물은 1) 감자와 당근 등이 가득 들어간 야채수프 2) 콩 수프(프리올레 : 강낭콩 등을 넣고 걸쭉하게 끓인 스튜 형태)에서 선택한다.  


고기반찬은 대개 많은 옵션이 있는데 1) 닭고기 2) 돼지고기 3) 소고기 등 다양한 고기 종류 중 선택하고 식당마다 제시하는 조리법 중 선택한다. 마지막 반찬은 선택권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데 대개 드레싱을 끼얹은 양배추 샐러드에 플라타뇨(*바나나처럼 생겼지만 요리를 목적으로 하는 과일, 시큼한 맛이 특징) 튀김이나 구이가 나온다. 경우에 따라 아보카도 등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집집마다 다르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음료까지 준다. 대부분 달짝지근한 과일맛 음료인데 물을 사 먹어야 하는 나라에서 이 정도면 정말 혜자다. 나름 탄, 단, 지가 꽤 고루 갖춰진 이 콜롬비아 백반은 한화로 약 5천 원~6천 원 내외로 먹을 수 있다.

흔한 콜롬비아의 백반


문제는 이 모든 선택을, 메뉴판 없이 매번 종업원이 와서 일일이 읊어주면 대답하는 방식으로 주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 방문한 식당에서 종업원이 대뜸 다가와 "일단 콩 수프랑 야채수프가 있는데 뭘로 할래요?"라고 묻길래 난 이 집 만의 특징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후 비슷한 식당들을 방문하면서 메뉴판 없이 운영하는 한국의 백반집 혹은 기사식당 같은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점심 시간에 맞춰가면, 이곳에선 혼밥이나 동료들과 밥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특히 콜롬비아 처음 도착했을 때 콜롬비아식 스페인어와 단어가 멕시코에서 쓰는 것과 달라, 매번 주문할 때마다 듣기 평가를 하는 느낌이었고 몇 번이고 "다시 한번 말해주세요?"하고 말을 해야 했다. 이들은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는 듯이, 오늘의 메뉴 선택해야 할 것을 랩 하듯이 읊어댔다. (심지어 콜롬비아 메데진 사람들은 콜롬비아에서도 '노래하는 듯 말하는 억양'으로 유명하다)


특히 메인 요리인 고기의 경우 대부분 5가지 이상 옵션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같은 조리법이라도 국가별로 각각 다른 단어로 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단어들을 익히는데 며칠이 꼬박 걸렸다.


이젠 메뉴판 없이 오늘의 메뉴 위주로만 운영하는 식당에 들어가면 자연스레 "오늘의 메뉴" 달라고 말을 하고 종업원이 읊는 랩을 듣기 평가하는 자세로 기다린다. 요즘도, 거의 매일 하루 1끼는 집 근처 다양한 노포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의외로 콜롬비아 음식은 입맛에 잘 맞았다

콜롬비아에 오기 전까지 콜롬비아 음식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다. 멕시코에서부터 콜롬비아까지 가로질러 오면서 멕시코, 페루,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브라질 식당은 들어봤지만 콜롬비아 식당은 딱히 찾지도 않았고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콜롬비아 음식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었는데 메데진의 백반집을 돌아다니면서 난 의외로 콜롬비아 음식이 입에 잘 맞았다.


멕시코 요리는 일부 사람들이 큰 기대를 걸고 먹었다가 실망을 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을 정도로 은근 불호가 많은데 콜롬비아 음식은 한국 사람이라면 오히려 호불호없이 무난하게 먹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콜롬비아 음식 괜찮은데?"라는 나의 의견에 대부분 내 외국인 친구들은 크게 동의를 하진 않지만.


2천5백 원으로 즐기는 기사 식당

메데진에 도착하고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시장에서 장을 보고 오는 길에 배가 꽤 출출해졌던 참이었는데 오토바이가 잔뜩 세워져 있고 혼밥 손님이 대부분인 식당이 보였다. 직감으로 이곳은 콜롬비아 기사식당이다라고 판단했다.

간판없는 기사 식당

앉아서 주문받는 시스템이 아니라, 급식받는 것처럼 밥, 고기, 샐러드류 코너로 이동하며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 한 접시에 담아준다. 고기류도 약 4~5가지 정도 있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제육볶음이냐 닭다리 간장볶음이냐 뚝불이냐 수준의 선택지였다.

내가 선택해야 하는 고기 요리들

아재, 할아버지가 가득한 곳에 내가 들어와 있는 것이 신기한지 음식을 담아주는 아주머니는 유쾌하게 내 질문 하나하나에 큰 모션을 취하며 답변해 주었고 난 꽤 푸짐한 한 끼 식사에 야채수프, 망고 주스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기사식당 2천 5백원짜리 정식

어느 나라에 가나 가성비 국룰은 기사식당이 아닐까 싶다. 걸쭉하게 끓여낸 야채수프에 카레 파우더를 넣은 양념으로 조리한 닭고기, 쌀밥, 구운 플라타뇨와 콩조림, 망고주스는 질리지 않게 매일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집밥에 가까웠다. 간이 세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야채 가득 넣은 수프가 마음에 들었다.


식당을 유심히 살펴보니 월화수목금토일 나오는 메뉴를 기재한 메뉴판이 있긴 했다. 즉, 각각 다른 요일에 오면 매일 다른 구성의 백반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인데 3천원도 되지 않는 가격에서 이 정도 퀄리티라면 매일와도 질리지 않을 거 같았다. 물론 아쉬운 점은 내가 사는 곳이랑 거리가 꽤 되어서, 이 날 첫 방문 이후 이곳을 재방문하진 못했다. 이후 메데진 생활하면서 깨달았지만 이 식당은 메데진에서 내가 방문한 곳 중 가장 저렴한 식당이었다.


세 번 방문한 백반집

이곳에 처음 방문했을 땐 백반집 스타일일 거라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름 핑크빛 테이블에 깔끔한 인테리어를 갖춰져 있었고 'Restaurant'이라고 버젓이 간판도 달고 있었다. (많은 백반집은 이 간판조차 없는 곳이 많다. 그래서 검색이 어렵고 길 가다가 보이면 따로 표시를 해야 할 정도)


야외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을 가져다주길 기다리는데 유쾌한 흥을 가진 서버가 와서 "오늘 일단 소고기 스테이크 구이랑 생선구이, 닭가슴살 구이 등이 있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생선을 먹지 않았던 터라 생선을 선택했고 곧이어 야채수프, 콩 수프 중 야채수프를 선택했다.


 주문을 하고 식당을 둘러보는데 모자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보였다. 나에게서 주문을 받아간 서버는 아들이고, 주방에선 어머니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백반집치곤 식사가 나오기까지 다소 시간이 꽤 걸렸는데, 내 식사가 나왔을 땐 난 그 이유를 대번에 납득했다.


우선 생선이 통으로 나오는데 모두 깔끔하게 뼈가 발린 상태로 서빙됐다. 여태 라틴 아메리카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완벽하게 뼈가 발린 채로 나온 생선 구이는 거의 보지 못했었던 터라 신기했을 정도로. 생선도 알맞게 잘 구워져 있었고 부드러운 것이 흰 쌀밥과 제법 잘어울렸다.

'오늘의 메뉴' 생선 요리

무엇보다 이곳은 콩 수프(강낭콩 등을 넣고 가득 끓인 수프)에 대한 나의 편견을 없애준 식당이었다. 그동안 백반집에선 야채수프, 콩 수프 옵션에서 난 무조건 야채수프를 선택하곤 했는데 하루는 이곳에서 야채수프가 다 떨어졌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콩 수프를 받았다. 야채 베이스 육수에 콩을 잔뜩 넣고 끓인 이 수프는 정말 맛이 없을 것처럼 보였는데, 이게 의외로 반전이었다.

콜롬비아 콩 수프에 빠졌던 순간

오히려 내가 그동안 먹어 온 야채수프보다 더 깊은 감칠맛을 자랑했고 콩에서 나오는 특유의 걸쭉함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이 집에서 콩 수프를 먹은 이후 나는, 다른 백반집에서도 두 가지 옵션 중 무조건 콩 수프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정성 가득한 이 백반 차림은 한화로 단돈 약 5천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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