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롱바오, 셩지엔, 구어티에
상하이에 먹으러 간다라고 하면 중국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상하이보다 광동이나 쓰촨이나 음식 문화로 유명한 곳이 훨씬 많은데 굳이 상하이? 중국인들 관점에선 상하이는 음식으로선 존재감이 비교적 약한 편인데, 외국인의 입장에선 상하이는 그 여느 전 세계 대도시처럼 마치 음식의 용광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특히 중국 향신료나 자극적인 요리에 익숙하지 못한 외국인들에게 상하이의 대부분 음식들은 비교적 순한 맛이다. 또한 많은 외국인들이 살며 각자 음식 문화를 들고 와 발전시킨 만큼, 제대로 된 서양 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중국인들도 상하이에 방문하면 먹는 음식들이 있다. 바로 샤오롱바오(小笼包), 셩지엔(生煎), 구어티에(锅贴)인데, 외국인들 시각으로 보면 모두 "만두"로 묶어버릴 이 음식들은 상하이의 대표 음식으로 꼽힌다.
샤오롱바오(小笼包)
샤오롱바오는 상하이 근교 난샹(南翔) 지역에 기원한 음식으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만두 모양으로 빚어져 얇은 피와 소위 말하는 '육즙'이 가득한 만두로 유명하다. 샤오롱바오를 먹는 방법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일반 만두처럼 무턱대로 집어 그대로 입에 밀어 넣었다간 갓 녹은 돼지 지방(보통 육즙이라고 부른다)에 자칫하면 입천장을 델 수 있다. 샤오롱바오는 일단 피의 윗부분을 젓가락으로 살짝 찢어, 국물만 먼저 쭉 빨아먹은 다음 함께 나오는 초에 절인 생강채를 올려 나머지 부분을 먹는다.
상하이내 주요 관광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 샤오롱바오를 아예 왕만두처럼 크게 만들어, 빨대를 아예 꽂아 판매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빨대로 국물을 먼저 빨아먹고 만두를 즐기는 형태인데 나는 굳이 먹어본 적은 없다. 샤오롱바오는 그 이름처럼 작아야 제 맛이란 생각.
상하이의 대표 음식인 만큼, 상하이 곳곳엔 샤오롱바오로 미슐랭에 오른 집부터 저마다 명성을 알리고 있는 식당이 곳곳에 널려 있다.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미슐랭에 오른 집에 먼저 방문했는데, 워낙 대기 행렬이 길어 다른 집으로 향했는데 이 집 역시 워낙 유명한 곳이라 약 30분은 대기해야 했다.
내 옆엔 여행 트렁크를 끌고 와 상하이를 떠나기 전 마지막 피날레를 샤오롱바오로 장식하려는 한 여성이 서있었다. 사람들이 붐비는 맛집 특성상 혼자서 줄을 서게 되면 괜히 눈총 받을까 봐 초조해지는데, 마침 우리 둘 다 혼자라, 그 여성과 함께 합석하게 됐다. 2인 테이블이었지만 QR코드는 의자별로 따로 붙어있어 각자 주문할 수 있었는데, 맞은 편의 그녀는 게살을 넣은 샤오롱바오와 오리피 선짓국을, 나는 기본 샤오롱바오를 주문했다. (물론 각자 주문내역을 볼 순 없기 때문에 음식이 나온 것을 보고 그녀가 주문한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샤오롱바오가 나오기 전에 먼저 나온 그녀의 오리피 선짓국은 꽤 낯설었다. 매콤하게 끓여 비린내를 최대한 제거하는 방식으로 나오는 한국의 선지해장국과 달리, 이곳의 오리피 선짓국은 일단 맑았다. 그리고 선지를 깍둑설기 형태로 작게 잘라 듬뿍 넣어 계란국에 넣은 모양이었는데, 비린내가 나지 않을까 궁금했다. 나도 선짓국을 주문할까 살짝 고민하다가 이후 오리피 선짓국으로 유명한 난징을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곳에선 샤오롱바오만 즐기기로 했다.
샤오롱바오는 찜통에 가득 담긴 채 그대로 서빙된다. 방금 쪄낸 샤오롱바오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온다. 혼자 왔다면 이거 하나만 주문하고 먹어도 배가 부를 양이다. 뜨거운 샤오롱바오는 맛이 없을 수 없다. 조심스레 피의 윗부분을 찢어 국물만 호로록 마신다음 초에 절인 생강채를 올려 먹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상하이에서 샤오롱바오는 굳이 유명 맛집 앞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서 먹을 필요는 없다. 이 집의 샤오롱바오는 훌륭했지만, 상하이의 샤오롱바오들은 이미 상향평준화되어 있어서, 이곳이 아닌 다른 식당에서 먹어도 대부분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셩지엔 (生煎)
옛날 상하이에 처음 왔을 때 셩지엔을 맛보고, 상하이에 올 때마다 난 나만의 의식처럼 셩지엔을 꼭 첫날 혹은 둘째 날에 먹으러 간다. 마치 분식집처럼 정신없는 곳에서 흰 접시에 성의 없이 담겨 나오는 첫인상과 달리, 한 입 베어 물면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맛있다.
셩지엔(生煎)은 교자만두와 조리방식이 비슷한데, 만두의 아랫부분은 굽고 윗부분은 쪄낸다. 바삭함과 촉촉함을 동시에 즐길 수 있고 살짝 두꺼운 피는 쫄깃한 식감을 준다. 교자만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육즙이 상당히 풍부하다는 점이다. 또한 새우면 새우, 돼지고기면 돼지고기 등 특정 재료로 아낌없이 꽉 차 있는 비주얼이 매력적이라 한 입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꼭 한번 베어 먹고 내용물을 확인하고 먹게 된다.
셩지엔 역시 상하이 대표 음식 중 하나인만큼 상하이 전역에 셩지엔으로 유명한 프랜차이즈가 곳곳에 널려있다. 대부분 쇼핑센터 내 식당가에 가면 좁은 면적에 사람들이 꽉 차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지나가다가 그러한 식당을 본다면 놓치지 말고 꼭 먹어볼 것. 양도 보통 만두 4알 정도 나오기 때문에 식간 간식처럼 즐길 수도 있다.
궈티에(锅贴)
궈티에는 우리의 군만두에 가장 가까운 모양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반달 모양의 만두로, 바삭하게 튀기듯 구워내는데 이 역시 만두소의 촉촉함을 살리는 것이 핵심이다. 사실 상하이만의 음식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중국 전역에서 흔한 분식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상하이 관련 음식 SNS 게시물을 보자면 상하이 특색 궈티에(锅贴)가 자주 언급되기 때문에 상하이나 인근 지역에 가면 궈티에(锅贴)를 맛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내가 방문한 궈티에 맛집은 상하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시인 난징시 한 동네 맛집이었는데, 아파트 단지 내 맛집이라고 생각했는데 도착하니 상당히 큰 규모로 운영되는 식당으로, 1)주문하고 계산하는 줄 2)만두 받아가는 줄 3)포장 줄로 대기라인도 총 세 갈래로 길게 늘어질 정도로 유명했다. 일부러 한산할 거 같은 시간대를 노려서 방문했음에도, 이 세 줄이 어마무시하게 길어 나처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 모두 멋모르고 만두 받아가는 줄에 잘못 섰다가 다시 주문하는 줄로 옮기는 등 헤멜 정도였다.
사실 우리나라 중국집 군만두를 그리 좋아하진 않아서, 가장 기대가 낮은 만두였는데, 먹고 나서 "와 이건 뭐지"란 반응이 나왔을 정도로 기대치를 뛰어넘은 만두였다. 바삭하게 구운 만두인데 속을 촉촉하게 유지해 고기소의 감칠맛이 계속해서 끌어당겼다. 군만두가 다 거기서 거기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는 음식이라고 확신한다.
2024년 11월 8일부터 한국인은 중국 관광, 비즈니스 목적으로 방문 시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상하이는 중국을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권장하고 싶을 정도로 중국에서 가장 여행 난이도 낮은 도시이기도 하며,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날릴 수 있는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상하이 방문 고려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