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살(내장) 비빔국수 蟹粉拌面, 蟹黄面
"미안한데... 솔직히 전혀 맛있어 보이지 않는 비주얼이야"
"술 먹고 누가 토한 거 같아"
중국 여행을 하면서 매끼 먹을 때마다 유럽인 남자친구에게 음식 사진을 보내곤 했다. 특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신기한 음식들일수록 반응이 좋았는데 처음으로 불호 반응을 받은 것은 다름 아닌 상하이 게살비빔국수(蟹粉面)였다.
게살에 내장까지 밥에 싹싹 비벼 먹는 한국인의 입장에선 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데, 그렇지 않은 유럽 사람의 시각에선 비주얼 테러에 가까운 음식인 것이다. 음식이 맛있어 보인다는 것은 개인의 경험에 기반한 주관적이면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많은 음식들은 먹어본 적이 없더라도 "맛있어 보이는 비주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만, 아무런 배경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접하면 주춤하게 만드는 음식들도 있다. 내장과 관련된 음식들이 유독 그런 거 같다. 순대와 곱창, 막창, 부속고기가 불판 위에서 구워지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내 침샘을 자극하는데 누군가에겐 입맛 돋우기는커녕, 오히려 속을 부대끼게 만들 수 있다. 게 내장도 우리는 게의 하이라이트라고 외치며 밥에 열심히 비벼먹지 않는가. 반면, 이를 게 내장을 살면서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의 입장에선 오히려 있던 입맛도 떨어질 수 있다. 게살비빔국수를 앞에 두고 신이 난 나와는 달리, 질색하는 반응을 보인 그의 반응에 다소 서운했지만,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게살과 국수를 섞으니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졌다.
상하이는 바다를 끼고 있는 항구도시인만큼 해산물을 활용한 다양한 요리가 유명한데 '게'만큼은 바닷게보다 민물 게요리가 유명하다. 황푸강, 양쯔강을 포함해 여러 호수가 있기 때문에 민물 생태계가 그만큼 풍부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가을 제철에 상하이를 방문한다면 많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선 민물 게를 활용한 요리들을 선보인다.
사실 이날, 상하이 게살 비빔국수를 먹어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찾은 것은 아니었다. 아침을 거하게 먹은 탓에, 소화시키느라 도시를 산책하다가 점심때를 놓쳤는데 허기를 느낀 때가 하필 대부분 맛집들의 브레이크 타임이었다. 먹을 만한 식당을 찾아 헤매는데 한 식당의 테라스 자리에서 한 중국인 커플이 테이블 가득 음식을 즐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 간판 글자 중 게를 뜻하는 '蟹'가 한눈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이곳은 항저우의 유명한 게살내장국수 식당의 상하이 분점으로 맛집 어플 리뷰만 수만 개가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테이블에 앉으니 종업원은 물을 가져다주며 테이블 QR코드를 통해 주문하라고 알려준다. 메뉴 종류는 그리 많지 않다. 이곳의 메인 메뉴로 보이는 게살내장국수(蟹黄面)를 주문하려는데 그와 함께 구성된 세트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돼지고기튀김이랑 간단한 음료와 함께 묶은 구성인데 단품에서 한 2천 원 추가하는 격이라 망설임 없이 세트로 주문했다.
음식은 상당히 빨리 나왔다. 마치 간짜장처럼 목재 트레이에 상당히 큰 그릇에 담긴 면, 아낌없이 발려 나온 게살과 내장이 한가득 담겨 나왔다. 다른 일반 국숫집과 달리 방울토마토, 목이버섯, 계란탕 등 간단한 반찬과 국물이 함께 나왔다. 면에 게살들을 붓기 전에 이들만 따로 스푼으로 떠먹어보았는데 우리가 종종 먹는 게살수프의 걸쭉함과 맛이 비슷하다. 짜다기 보단, 오히려 담백한 맛에 가까웠고 새롭다기보단 익숙한 맛이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단독으로 먹었을 땐 살짝 실망에 가까웠는데, 누군가가 공들여 발라놓은 게살과 내장들을 '맛'으로 먹는다기 보단 그냥 '게를 먹는다'에 의의를 두고 만든 음식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을 면에 부어 비비는 순간, 살짝 과장을 보태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느낌이었다. (애니메이션 라따뚜이에서 생쥐 레미는 치즈와 딸기를 따로 들고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이들을 함께 먹는 순간 폭죽이 터지는 장면이 나온다.) 1+1 = 2라는 그런 직관적인 조합이 아니라, 1+1 = 5 ~ 10 이란 궁극의 시너지를 이뤘다고 할까. 면 자체에도 이미 간단한 양념이 된 상태였는데 이것들이 게살과 내장들을 만나 감칠맛 폭탄이란 조화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짜장면 특유의 감칠맛에 게살과 내장의 풍부한 맛들이 들어가니 면이 입으로 쉴 새 없이 빨려 들어갔다. 정신없이 면을 흡입하는 와중에 거의 잊었던, 돼지고기 튀김이 도착했다. 돈가스의 비주얼을 하고 있지만, 탕수육 돼지고기 튀김 맛에 오히려 가까웠다. 함께 곁들어 나온 간장에 찍어먹었는데 다른 소스가 필요가 없을 정도로 튀김 자체의 맛이 풍부했다. (마치 탕수육을 소스 없이 간장에 찍어먹는다고 상상해 보면 이상할 거 같지만, 고기 튀김 맛이 훌륭하다면 은근 별미다)
게살 비빔국수와 돼지고기 튀김의 조합이 보기엔 어색해 보여도 둘 다 재료 본연의 맛이 담백하게 잘 살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화려한 소스와 양념 없이도, 재료 자체의 감칠맛을 끌어올린 이 음식은 수개월이 지나 글을 쓰는 지금 이 시점에서도 나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무엇보다 한화로 2만 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아낌없이 발려 나온 게살과 내장을 국수에 부어 비벼먹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지 않는가. 게살 발라먹기 귀찮아서 게를 안 먹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그들에게 한번 권해보고 싶은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