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훠궈(火锅)
우리나라의 흔한 외식메뉴가 삼겹살, 치맥이라면 중국에선 양꼬치와 더불어 훠궈를 꼽을 수 있다. 양꼬치와 훠궈는 중국 요식업 창업 1~2순위인만큼 중국 전역 어딜 가나 양꼬치와 훠궈집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훠궈는 연말 가족들과 새해를 맞이할 때, 친구들과 만날 때 먹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사람들과 함께 먹는" 소셜 의미가 특히 강하다. 애초에 훠궈는 혼자 가거나 둘이 가거나, 넷이 가도 사이즈가 같은 탕 국물을 제공하기 때문에 혼밥 난도가 높은 음식이다. 오죽하면 하이디라오에 혼자 가서 훠궈를 먹으면, 외롭지 말라고 맞은편에 커다란 인형을 놓아주는 과도한 친절 서비스로 인한 웃픈 짤이 SNS에 돌아다녔을 정도이니.
훠궈와 마라탕의 차이는 무엇일까
훠궈는 먹고 싶은데, 같이 먹을 사람이 없을 때 대체제로 마라탕이 있다. 훠궈와 마라탕 국물은 조금 차이가 있지만, 마라 알싸한 향에 다양한 재료를 넣어 즐겨 먹는다는 점이 유사하다. 물론, 훠궈는 마라맛인 홍탕과 야채나 버섯 육수로 만든 백탕, 토마토 등을 넣어 만들어 새콤한 맛이 특색인 토마토탕 등 그 국물 종류가 다양하다. 또한 다 같이 먹는 음식이지만 각자 먹고 싶은 재료를 넣어, 원하는 익힘 정도에 달하면 꺼내 먹기 때문에 함께 먹는 음식인지만, 서로 다른 취향껏 맞춰 즐길 수 있는 음식이다. 또한 마장, 기름장 등에 쪽파, 고수 등을 취향껏 만들어 먹는 소스도 빠질 수 없다.
마라탕은 반면, 집집마다 한 가지 국물맛만 있다. 맵고 알싸한 이 국물에 손님들이 담아 온 재료들을 넣어 익혀 나간다는 점이 훠궈와 다르다. 마라탕은 훠궈만큼 다양성이 조금 부족하지만, 혼자서 훠궈 먹고 싶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대체제이다.
물론 일찍이 1인훠궈집 콘셉트의 프랜차이즈가 있다. 샤부샤부(呷哺呷哺)인데 우리나라에도 지점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혼자서 먹기 좋긴 하지만, 주문할 수 있는 재료가 제한적이라는 점 때문에 직접 이용해 본 적은 없다.
상하이에서 처음 본 회전훠궈집
상하이를 여행하면 거대한 쇼핑센터 들를 일이 참 많다. 백화점과 아울렛 경계인 쇼핑센터들은 해당 지역구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푸드맛집부터 카페, 각종 상점까지. 핫한 프랜차이즈들이 입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 구경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상하이의 한 쇼핑센터에서 회전훠궈집을 처음 봤을 때 난 막 점심을 먹은 직후였다. 점심시간이 꽤 지난 시간이었음에도, 빈자리가 없어서 눈에 들어왔는데 빙글빙글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엔 다양한 훠궈 재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저마다 소소한 훠궈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회전훠궈라니, 이거 꽤 좋은 아이디어잖아?" 란 생각이 듦과 동시에 방금 다른 곳에서 점심을 먹고 온 게 살짝 후회가 되었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고 싶진 않아서 다음날 점심에 오기로 했다.
다음날 점심, 아침에 눈뜨고 호텔에 나서자마자 난 다시 이 회전훠궈집을 찾았다. 한창 점심시간이라 어제보다 사람들이 더 많았는데, 혼밥에 초점을 맞춘 곳이기 때문에 1인 자리는 금세 나왔다. 보통 단체로 훠궈 먹을 때는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며 먹는 게 매력인데, 이 회전훠궈 집은 대부분 혼밥 하는 사람들이라 조용히 자신만의 훠궈 먹는데 집중한다.
우선 훠궈 국물을 좌석마다 붙은 QR코드를 통해 주문해야 한다. 마라향이 강한 홍탕 이외에도 토마토탕, 백탕 등 선택지가 많다. 토마토탕과 마라홍탕 사이에서 살짝 갈등했지만, 그래도 훠궈 근본은 마라홍탕 아니겠는가. QR오더를 통해 마라홍탕을 주문해 놓고, 소스바에 가서 나만의 소스를 제조한다. 하이디라오만큼 다양성은 덜하지만, 마장부터 향유 등 흔히 먹는 기본 소스 재료들은 다 구비되어 있다. 소스를 만들어 자리에 돌아오면, 어느덧 주문한 홍탕이 내 앞에 놓여 있다. 테이블 하단엔 불 세기를 조절할 수 있는 스위치가 있다.
수십 가지 신선한 재료가 컨베이어 벨트 위를 돌아다니고 있다. 고기, 해산물과 일부 야채, 완자들은 모두 나무 꼬챙이에 꽂혀 있다. 비싼 재료들은 꼬챙이 2~3개가 재료를 관통하고 있고, 저렴한 야채 재료들은 꼬챙이 1개이다. 면이나 알배추처럼 꼬챙이로 꽂기 애매한 재료들은 집게나 플라스틱 용기로 정량했다. 회전초밥집이 접시 수로 계산한다면, 이곳에선 꼬챙이와 집게 개수로 셈을 한다. (일부 생고기, 양념이 되지 않은 고기들은 QR을 통해 접시 단위로 주문할 수 있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사람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만큼, 모든 재료들은 상당히 신선하고, 재료명과 함께 이를 어필하는 문구들이 쓰여있다. 구불구불하게 설계된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공간 활용도도 높고, 혼자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회전율도 상당히 높다. 일정 인원 이상만 채운다면 꽤 근사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회전훠궈가 매력적인 이유는 1) 다양한 탕국물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 2) 소분되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재료를 조금씩 맛볼 수 있다는 점 3) 먹고 싶은 것만 먹기 때문에 음식물 낭비가 덜하다는 것이다. 또한, 4) 오롯이, 신선한 재료와 국물이 어우러지는, 훠궈의 맛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내 옆에 앉은 여자는 독특하게 고기를 하나도 먹지 않고 야채와 면 종류만 여러 개 시켜서 먹고 있었는데 내심 채식주의자가 아닐까란 추측했다. 생각해 보면 채식주의자들은 훠궈 모임에서 소외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채식주의자는 우리나라만큼 소수에 가깝고, 다 같이 즐기는 훠궈 국물부터 고기 기름이기 때문에 이들에겐 훠궈 외식이 힘들 수밖에 없다는데, 회전훠궈는 이들에게도 훠궈를 즐길 권리를 제공한 셈이다.
먹고 싶은 만큼, 훠궈를 원 없이 즐기고 넓적 당면까지 말아 마무리한다. 계산은 계속 돌아다니는 종업원들을 부르면, 이들이 와서 꼬챙이와 집게 개수를 센다. 주문한 국물과 추가한 생고기까지 함께 계산해 금액을 알려주면 위챗/알리페이로 계산하면 된다. 남김없이 알차게 먹었는데, 금액은 한화로 1만 원 내외로 나왔다. 보통 훠궈집에서 다 같이 먹을 때 N빵 할 때도 한화로 최소 2만 원 이상 부담하는 경우가 많고, 재료를 낭비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회전훠궈는 그런 것 없이 먹은 만큼 계산할 수 있어 합리적이다.
혼자지만, 다 같이 많은 재료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점에서 훠궈의 기본 속성을 갖추면서, 눈치 볼 필요 없이 훠궈를 합리적으로 즐길 수 있는 회전훠궈. 훠궈 먹고 싶지만,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 마라탕이나 인스턴트 훠궈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훠궈를 마음껏 편하게 먹을 권리를 판매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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