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칼, 과테말라 안티구아
선생님, 오, 나의 선생님. 오스칼(Oscal)
안티구아 대부분 어학원은 일대일 수업 위주로 진행된다. 정해진 교실이라는 건 없고, 어학원 안쪽에 잘 가꿔진 정원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과외를 받는 방식이다. 물론 이 곳이 어학원이라는 사전 정보가 없었더라면, 마치 누군가의 뒷마당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으로 비쳤을 것이다.
내 담당 선생님 오스칼은 집에 가면 손자를 돌볼 거 같은, 그런 푸근한 인상을 가진 60대 초반의 아저씨였다. 정원에 나무들이 가득해서, 그늘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청색 캡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그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는데, 어학원에서 내 스페인어 실력이 대충 중급 정도라고 판단하고 그를 배정한 것 같았다. 젊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선생님들은 스페인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외국인들에게 우선 배정됐다. 나와 같이 머물던 하숙생들은 매번 프린트물을 교재 삼아 문장 구성하고 만드는 법 위주로 배우고,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엔 선생님이 내 준 숙제를 하느라 바빴다.
반면 오스칼은 그 어떤 프린트물도, 교재도 들고오지 않았다. 사전처럼 보이는 두꺼운 책 한 권만 끼고 다녔는데, 문법에 관련된 질문을 하면 그 책에서 해당 부분을 찾아 설명과 예문을 가리키며 읽어보라고 시켰다. 누렇게 변색될 정도로 낡은 책이었지만, 사전 특유의 내구성 좋고 얇은 종이 덕분인지 찢어지거나 닳은 곳 없이 잘 관리되어 있었다. 마치 오래된 성경책처럼 말이다. 1시간이면 모를까, 4시간을 뚜렷한 주제 없이 대화의 공을 이리저리 튀기면서 흘러가는 대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에너지 소모가 상당하다.
한국식 체계적인 학원 수업에 길들여진 사람에게는 오스칼의 수업 방식이 답답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실제로 처음 며칠간은 나도 그랬으니. 하지만 따지고보면 외국어는 자기주도적 학습 방식이 중요하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교사가 이끄는 대로 수업을 받아왔지만, 말하기는 학습자가 스스로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할지, 조금 더 연습하고 싶은 문법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이를 선생님에게 요청해 맞춤형 레슨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4시간 수업 중간에 어학원에서는 자율적으로 20분 쉬는 시간을 가지는 것을 권한다. 오스칼과 나는 그 쉬는 시간에도 그 쉬는 시간에도 어차피 각자 화장실 잠시 갔다 오는 걸 제외하고는 여전히 스페인어로 잡담하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언젠가부턴 그냥 쉬지 않고 3시간 40분 수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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