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Alex), 니카라과 그라나다
활화산에서 타는 썰매
그는 생전 만나본 적도 없는 나를 위해, 기꺼이 휴가를 내고 약 2시간 오토바이를 달려 그라나다(Granada)에 온다고 했다. 멕시코 여행 때부터 언어교환 앱에 여행 일기를 스페인어로 올리곤 했는데, 중남미의 많은 친구들이 여행 일기 첨삭을 도와주거나 여행을 응원해주고 종종 자신들의 도시에 오면 연락하라고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메시지들의 6할은 데이트 목적이 강해 대부분 메시지를 무시했지만, 개중에는 한국어 공부에 진심인 친구들도 있었다. 번역기를 돌리지 않고 자신이 배운 한국어로 더듬더듬 메시지를 보내려고 노력하는 게 보이면, 그들의 한국어 메시지를 고쳐주기도 하는 등 대화를 종종 이어가곤 했다.
알렉스도 그 중 한 명이었는데, 내가 엘 살바도르에서 그날의 일기 포스팅을 올리자, 알렉스는 혹시 니카라과도 올 계획이냐고 물었다. 온두라스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많은 여행자들이 스쿠버 다이빙 목적으로 온두라스 북쪽으로 향하는 게 아니면 치안 등의 문제로 온두라스를 그냥 스쳐 지나간다. 그 다음 방문할 국가가 니카라과라고 하니, 그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날짜가 정해졌냐, 니카라과 어디를 갈 거냐? 등 질문을 연달아 던지고는, 니카라과에 들어오면 자신에게 꼭 연락하라며 왓츠앱 번호까지 남겼다. 치안이 불안한 국가일수록, 동행할 수 있는 현지인이 있는 거 만큼 든든한 건 없다. 물론, 온라인으로만 사람을 만나는 건 상당히 위험할 수 있는데 나는 대화를 할 때 오는 촉과 직감이 항상 좋은 편이었다. 그걸로 꽤 위험한 순간을 아슬아슬하게나마 모면하곤 했는데, 수십번의 카우치서핑(Couch Surfing) 경험으로 단련되었다고 할까. 언어교환 앱에서 그의 프로필을 확인하니, 앱내 스페인어 라이브 방송 참여에 적극적이고 종종 외국인들의 스페인어 게시글을 첨삭해준 흔적도 남아있다. 꽤 괜찮은 친구일 거라고 생각해, 그의 이름 뒤에 ‘니카라과’란 이름을 붙여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엘 살바도르에서 하루만에 두 번의 국경을 넘어 도착한 니카라과 첫 도시는 레온(León)이었다. 이 곳에 온 이유는 단 한가지 였는데, 바로 ‘볼케이노 보딩(Volcano Boarding)’이란 액티비티였다. 니카라과는 불의 고리(Ring of Fire)라고 불리는 환태평양 지진대에 위치해 19개의 활화산을 보유한 화산국이다. 이 사실을 몰랐더라도 니카라과 국경을 넘어온 이후, 차량 창문 밖으로 거대하게 솟은 거무죽죽한 산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풍경을 보면 불의 고리에 들어왔구나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화산이 넘쳐나다보니, 니카라과엔 자연스레 화산 중심 관광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다. 화산 트레킹, 화산 분화구 구경하기 그리고 활화산에서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볼케이노 보딩. 레온 근교 쎄로네그로(Cerro negro)란 작은 화산으로 각자 썰매를 끌고 등산을 한다. 식생이 자랄 수 없는 이 검은 화산은 말그대로 잘게 부서진 화산 암석들이 쌓여있는 동산같은데, 바닥을 발로 슥슥 조금만 파도 땅의 열감이 여전히 느껴지는 살아있는 화산이다.
썰매를 주관하는 가이드는 “여기 사는 우리 모두 이 활화산이 언제 폭발할 지 몰라요. 오늘 당장 폭발할 수도 있고, 5년 후에 폭발할 수도 있죠. 그냥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사는 거에요”라며 욜로(YOLO:You live only once)를 외치며 유쾌하게 오리엔테이션을 마쳤다.
볼케이노 보딩은 각자 무게가 꽤 나가는 특수 썰매를 직접 들고 산에 올라야 하는데, 타고 내려올 때는 방진복과 마스크를 착용해 최대한 화산재를 마시지 않도록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썰매타고 내려온 자국이 검은 사면에 선으로 선명하게 남아있다. 생각보다 경사각이 꽤 되어서, 겁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별다른 브레이크 장치는 없으며—오히려 있으면, 작용반작용으로 몸이 튕겨나가 더 위험할 거 같다— 몸의 각도를 앞으로 숙이거나 뒤로 젖히는 각도, 발 뒤꿈치를 놓는 각도에 따라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가장 빠른 속도로 이 곳을 내려간 사람은 무려 시속 172km였다고 한다. 물론 그 사람은 병원에 실려가 2주 입원을 해야 했다고.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볼케이노 보딩을 하고 난 후 숙소에 돌아와 알렉스에게 볼케이노 보딩이 너무 재밌다며, 또 하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도 볼케이노 보딩 재밌어서 10번은 넘게 해봤다며, 다음엔 서서 타는 걸 도전해보고 싶다며 허세를 떨었다.
니카라과 온다고? 휴가 내야지
알렉스는 니카라과 수도인 마나구아에 살고 있지만, 마나구아에 절대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마나구아엔 그리 볼 게 없으며, 무엇보다 상당히 위험하다고. 덩치가 큰 자신도, 마나구아에 살면서 대낮에 강도나 위협을 당한 적이 몇 번 있으니, 누가 봐도 외국인인 내가 마나구아에 간다면, 1순위 타깃이 될 거라고 했다. 대신 그는 마나구아에서 1시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그라나다를 추천했다. 니카라과 그라나다는 1524년, 스페인 정복자에 의해 설립된 중앙 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콜로니얼 건축물(식민지 시대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어 문화와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도시 주변엔 니카라과 호수와 몸바초 화산 등이 있어 근교 하이킹 여행하기에도 좋다.
그라나다에 뭐가 있는지 몰랐지만, 동명의 아름다운 스페인 도시도 생각나고, 알렉스가 이토록 추천하니 그 곳에서 3~4일 머물겠다고 말했다. 알렉스는 “너를 위해서 휴가를 쓸거야. 정확한 날짜를 알려줄 수 있어?”라고 했다. 소중한 휴가를 굳이 나를 위해 쓸 필요는 없다고 만류했으나 “이왕이면 우리나라의 좋은 모습을 잘 보여주고 싶어서 그래. 저번엔 일본인 남자 여행자가 놀러와서 그라나다 이틀 동안 구경시켜준 적이 있어” 하며 기어코 휴가 신청을 내버렸다.
니카라과에는 카우보이들이 있다
그라나다에 도착한 날, 축제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처음엔 니카라과 국민 맥주인 ‘또냐(Toña)’ 광고판과 천막들이 도시 여기저기를 뒤덮고, 사람들이 대낮부터 저마다 맥주를 들고 서있길래 맥주 축제인 줄 알았다. 발 뒤딜 틈도 없는 광장에서 알렉스를 찾기까지 한참 걸렸는데, —물론, 그가 아시아인 여자인 나를 먼저 알아봤다— 커다란 덩치에 비해, 선한 인상을 가진게 종종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을 도와주는 엑스트라로 출현하는 곰을 연상시켰다.
알렉스는 말 퍼레이드를 꼭 봐야한다며, 사람들을 비집고 맨 앞줄로 이동했다. 잠시 후, 카우보이 복장을 한 사람들이 말을 타고 퍼레이드 행렬을 펼치고 있다. 은색 수염을 멋있게 기른 노신사부터, 함께 친구하면 좋을 거 같은 쿨한 언니, 10살도 안되어 보이는 소년들까지. 개성이 넘치는 카우보이 모자를 쓴 이들은 능숙하게 장식된 말을 타고 행진했다.
말 퍼레이드 축제인 히피카(Hípica)는 매년 8월 15일 전후, 성모 승천 축제와 함께 니카라과 전역에서 열리는 대규모 축제이다. 목축업이 발달한 니카라과 북부에 가면, 전히 전통적인 카우보이 문화가 깊이 뿌리내려 있으며 여전히 현대식 카우보이, 카우걸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은 히피카 축제 시즌이 되면, 북부에서 마나구나나 그라나다까지 말타고 내려와 퍼레이드에 참여하느라 바쁘다고 한다.
중앙아메리카와 기마 문화는 선뜻 매치가 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니카라과 이웃 국가인 온두라스나 코스타리카에는 말 문화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왜 중앙아메리카에서 니카라과에만 말을 중심으로 한 문화가 자리잡은 걸까?
니카라과에 말이 처음 들어온 것은 스페인 식민 지배 영향을 받았을 당시, 스페인인들이 기병 중심의 군사 문화를 바탕으로 통치했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니카라과에선 평야 지대와 대규모 농장이 많았고 도로 인프라가 부족했기 때문에 말이 오랫동안 주요 교통, 노동 수단으로 쓰여왔다. 지배층은 말을 타며 대농장을 관리했는데, 그것이 오랜 관습으로 이어져 내려오며 오늘날까지 농촌 지역에선 말이 농작물 수송, 장거리 이동 등 일상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말이 오랜 세월을 거쳐 니카라과 사람들의 삶에 밀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통 축제나 문화 요소엔 말이 빠지지 않았다.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히피카는 화려하게 장식된 말을 타고 행진하며 자부심과 명예를 표현한다. 한 때 스페인 지배층이 높은 위상을 보여주기 위해 타고 다녔던 말을, 니카라과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표현하는데 쓰인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중남미에선 우리나라와 달리, 식민지 유산에 대한 인식이 관대한 편이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도 지정된 니카라과 전통극 엘 구엔구엔세(El Güegüense)는 말을 타고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자연스레 등장하며 스페인에 대한 풍자를 담는다.
그렇다면 니카라과가 중앙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말 문화가 뿌리깊게 자리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니카라과 북부와 가까운 온두라스에도 스페인 기병대가 도착했지만 험준한 산악 지형때문에 기마 문화가 니카라과만큼 퍼지지 못했다. 일부 농촌에서 말을 사용하긴 하지만, 이를 문화 자산으로 승화시키지 못했던 것은 극심한 사회불안·빈곤 문제로 생존하는 것이 우선순위였기에, 문화라는 것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니카라과 아래에 위치한 코스타리카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원이 거의 없고, 전략적으로도 위치가 애매했기 때문에 스페인에겐 전혀 매력없는 땅이었기에 스페인 식민 지배 영향을 거의 피해갈 수 있었다. 오늘날 중남미 경제를 파탄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대규모 대농장이 거의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규모 자작농 중심의 균등한 토지 분배가 이뤄졌고 일찍이 경제적 평등을 이룬 국가였다. 스페인 기병들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코스타리카에선 말이 유입될 일이 거의 없었다.
즉, 니카라과는 중앙 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기마 문화가 남은 국가로서, 국가에서도 말과 전통을 결합한 문화 관광 상품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니카라과인들에게 말은 단순 운송, 교통수단이 아닌, 권위, 생계, 공동체, 전통, 정체성을 아우르는 복합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현대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오늘날에도, 말은 니카라과 사회의 뿌리 깊은 문화와 삶의 방식을 대변하고 있다. 니카라과의 말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기에 말은 니카라과인들에게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꿈꾸게 하는 존재로서, 그 상징적 가치를 여전히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오토바이타고 화산으로 올라가다
알렉스는 자신의 몸집만큼 커다란 오토바이를 몰고 다녔다. 그 덕분에 그의 오토바이 뒷자석에 앉아 사실 뚜벅이론 거의 갈 수 없는 인근 화산과 호수, 국립 공원들을 편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내가 이 곳 그라나다에서 많은 경험을 하길 바라는 듯 했다.
2박 3일동안 매일 오토바이를 몰고 내가 머무르는 숙소 앞까지 와서 달걀후라이와 검은 강낭콩을 섞은 밥, 플라타뇨 튀김 등으로 구성된 아침 식사를 함께 먹으면서 오늘은 어디에 가보자는 등 브리핑을 했다. 해가 질 때까지 오토바이 운전하는 것도 피곤할 법한데, 그는 매번 점심, 저녁을 내가 다 계산하려할 때마다 한사코 거절하며 “이 곳에서는 남자가 계산하는 거야”하며 본인이 냈다. 혹시 그는 사심을 가지고 이를 데이트로 여기는 걸까 싶었지만, 내가 그의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 그의 허리를 끌어안을 때를 제외하곤 스킨십이 없었다. 사실, 타인의 오토바이를 탈 땐 이게 괜히 불편해서 등 뒤 좌석을 두 손으로 잡는 걸 선호했는데 내가 그렇게 할 때 마다 은근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사람이 많았다. 알렉스 역시, 첫 날 내가 뒷 좌석 아래를 잡자 뒷 사람이 자신의 허리를 잡고 있어야 안정감이 생겨 그런거니 오해하지 말라고 말을 한 이후 괜히 머쓱해져서 오토바이를 탈 때마다 그의 허리를 잡았다.
오토바이를 항상 타고 다니는 도시 남자라 등산하거나 걷는 것을 유독 싫어하는 그지만, 내가 몸바초 화산과 마사야 화산 등 분화구를 보고 싶다고 하니 나름 투덜대며 함께 가주곤 했다. 특히 마사야 화산(Masaya Volcano)같은 경우, “요즘 분화구 근처에 다 가림막을 쳐놔서 내부가 거의 안보여” “그다지 갈 가치가 없어” 밑밥을 깔며, 일부러 내가 가지 말자고 하길 기다리는 듯한 눈치였다.
마사야 화산은 지금도 화산 활동이 활발한 활화산으로 분화구 아래 용암 호수가 존재해, 밤에 방문할 경우 분화구 속 붉은 빛을 어렴풋이 볼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차량이나 오토바이를 몰고, 분화구 직전까지 접근가능해 세계에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활화산 분화구이기도 한데, 어렴풋한 붉은 용얌 빛을 볼 수 있는 해질 무렵부터 저녁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 이미 과테말라때부터 활화산이 주는 매력에 푹 빠진 후였기 때문에, 알렉스가 마사야 화산에 대해 실망할 거다, 외국인 입장료는 더 비싸게 낸다 등 단점을 나열했지만 그 어떠한 것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마사야 화산 주차장까지 잘닦인 도로를 따라 오토바이를 타고 올라간다. 마치 커다란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깊숙하게 뚫린 분화구엔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안전 문제로 접근 제한된 곳이 많아 알렉스 말마따나 분화구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게다가 2024년 3월, 크레이터 내부에 큰 붕괴가 일어나 실제로 용암호가 잔해로 거의 덮여 용암을 보는 건 이제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까치발을 해서 보더라도, 뿌연 연기에 가려 대체 어디까지 뚫려있는 건지 조차도 알 수 없다. 16세기 초, 스페인 탐험가들은 이 곳을 “지옥의 입구(Gates of Hell)”라고 불렀다는 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거라곤 문은 커녕, 유황 냄새와 비슷한 이산화황 가스와 연기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동굴에서 통로에 있는 동굴 벽만 보고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 였다. 그저 저기 너머에 붉은 용암이 있대라고 상상만 허용되었고, 그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알렉스는 거봐, 내 말이 맞지하면서 의기양양해했다.
이보다 더 높이 위치한 옆 언덕을 오르면 분화구를 조금 더 볼 수 있지 않을까란 단순한 생각이 들었다. 알렉스는 가기 싫다고 투덜댔지만, 기어코 그를 끌고 꽤 자 조성된 길을 따라 올랐다. 활화산이지만 푸릇한 식생이 형성되어 있다. 인공적인 설치물 방해없이 파노라마로 푸른 화산과 저 멀리 호수까지 시원하게 볼 수 있는데 언젠가 올랐던 이름 모를 제주도의 한 오름을 떠올리게 했다.
마침 석양 시간에 다달았기 때문에 이 곳에서 해지는 것을 보고 내려갈 생각으로, 그 곳에 약 10분 정도 머물렀는데 갑자기 날씨가 어두워졌다. 투어로 온 사람들은 저 멀리 가이드들이 내려오라는 소리에 다급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빠르게 몰려와 갑작스레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비가 내리면 이 곳 트레일로는 폐쇄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이 성격급한 먹구름은 빗방울로 약 1분간 간보는 듯 하더니, 굵은 빗줄기를 한바탕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냥 지나가는 소나기라고 하기엔, 빗줄기가 예사롭지 않다. 주차장에 있는 투어 차량들은 서둘러 여행객들을 태우고 떠났다. 알렉스와 나를 포함한 몇 몇 오토바이를 타고 온 사람들은 약 8명 내외 정도 였는데, 우린 작은 정자같은 곳에 서서 빗줄기가 약해지길 기다렸다. 어두운 밤에 꽤 경사가 있는 내리막길을 빗길 운전하는 것은 꽤 위험하기 때문에 최대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려보자해서 그 곳에서 약 30분 가량 서로 비 이야기를 하며 보냈다. 그 와중에 분화구 관람대를 어슬렁 거리던 우비를 쓴 한 외국인 여자는 “저기봐”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돌렸다. “설마 용암이 보인다는 걸까?” 입고 있던 바람막이를 벗어 머리에 쓴 뒤 그녀가 있는 곳으로 뛰어 갔는데, 그녀는 흥분한 목소리로 “저기 빨간 거 보이지 않아? 선 같은 거 말야”하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폭우 때문인지, 분화구에서 나오는 연기는 더욱 짙었는데 그 색과 대비되는 주황빛이 미세한 틈으로 뿜어나오고 있었다. 물론, 이마저 순식간에 바뀐 연기의 흐름으로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그녀와 나는 “저거 분명 용암맞지?”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비록 화산재와 암석들로 뒤덮여 있지만 저 안에 팔팔 끓는 용암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작은 틈으로나마 본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한편, 이 화산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이 용암의 존재가 두려움의 대상일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연기를 계속해서 뿜으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저 아래에 잠김 용암호는 언젠가는 바깥으로 분출해, 상상하지도 못할 피해를 초래할 지 모른다. 그들에겐 이 용암호를 보겠다고 입장료까지 지불하며 멀리서 찾아오는 이방인이 얼마나 철딱서니 없이 보일까. 활화산에서 멀지 않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걸까.
착한 사마리아인, 아니 니카라과인
1시간을 정자에서 기다렸지만, 밤하늘은 칠흙같이 어두워졌고 빗줄기는 강해지면 더 강해졌지, 결코 그 기세를 꺾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까지 함께 기다리던 한 독일인 오토바이 여행자는 “그냥 내려가야겠다”며 떠나버리자, 우리도 언제까지 여기서 머무를 순 없어서 헬멧을 평소보다 더 단단이 고정하며 오토바이에 올랐다. 밤길이었지만, 그래도 내려가는 길에 다른 차량 등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수월했다. 방수 기능이 있는 바람막이는 폭우의 기세를 못이겨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나마, 헬멧이 있어서 다행이다란 생각이 들었다. 헬멧마저 없었더라면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한창 내려가는데, 오토바이 한 대가 길가에 세워져 있고, 한 커플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오토바이를 만지고 있었다. 알렉스는 오토바이를 세워 그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데, 그들의 오토바이 엔진이 꺼져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구형의 오토바이로 남자는 계속 발을 구르며 오토바이 엔진 시동을 걸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이에 알렉스 역시 그의 오토바이를 유심히 살펴보고, 어딘가를 손보는 듯 했지만 별다른 공구가 없어 주변 보안 관리소로 찾아가 물어보는 등 적극적으로 그를 도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상대방 여자와 나는 길가에 멀뚱멀뚱서서 그들이 하는 행동을 지켜볼 뿐이었다. 20대 초반 남짓을 보이는 이들은 니카라과 마나구아에 사는 커플로 주말을 맞이해 이 곳에 여행왔다고 한다. 남자는 예전에 와봤지만, 여자는 처음 와봤다고. 이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한 10분 정도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결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알렉스는 급기야 수도 마나구아에 가서 필요한 공구를 들고오거나, 오토바이 수리 업체에 들러 도움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이 곳에서 마나구아까지 오토바이로 1시간 30분은 족히 걸린다. 그가 일면식도 없는 이방인을 위해, 이 폭우를 뚫고 기꺼이 마나구아까지 가서 도움을 베풀겠다고 말하는 걸 보고 내심 “와 대단하다”싶은면서 “지금 감기걸려 죽을 거 같은데 저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하며 원망이 들었다. 설마, 진짜 마나구아에 가겠다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그 역시 그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남자가 오토바이에 타면, 그가 뒤에서 밀어주는 걸 계속 시도했다. 두발 자전거 밀어주는 것도 아니고, 오토바이가 저렇게 한들 엔진이 켜질까 싶은데 구형 오토바이 엔진 꺼지는 문제는 종종 이런 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한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이 길가에 이 두 남자는 티셔츠가 비에 쫄딱 맞아 몸에 달라붙은 채로, 오토바이를 계속 굴렸다. 그 와중에 알렉스의 표정이 빗 속에서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해맑은 게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약 30분 가량 씨름을 벌인 끝에 덜덜덜 거리면서 엔진이 켜지는 소리가 들렸으니. 어찌나 드라마틱하게 소리가 났는지, 일동 만세를 하며 서로 껴안아 주었다. 그들은 연거푸 알렉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들이 사는 마나구아는 밤늦게 도착하면 정말 위험해지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에선 더욱 서둘러야 했을 것이다. 떠난 그들을 바라보며 알렉스에게 “너 정말 착하구나”하며 엄지를 날리니, 그는 별 일 아니라고 손짓한다. “나도 오토바이를 타기 때문에 저 심정이 어떤 지 알아. 나에게도 저런 일이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지, 그래서 내가 도울 수 있을 땐 최대한 도우려고 해. 그럼 언젠가 누군가가 또 나를 돕지 않을까?”
아아, 이토록 착한 사람이라니. 조금이라도 그가 나에게 뭔가 바라는 게 있어서 사심이 있어서 이렇게 까지 잘해주는 건가 생각했던 나 자신이 속물같이 느껴졌다. 오히려 진심으로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돕는 그의 모습을 보고 살짝 마음이 흔들린 건 내 쪽이었다. 그의 허리를 잡고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오는데 느닷없이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한 건, 비에 홀딱 젖어 몰려오는 오한인건지 그를 향한 두근거림 때문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이토록 착한 니카라과인은 그라나다 시내에 들어와 늦은 저녁을 사서 내 손에 쥐어주며 숙소 앞까지 데려다주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유유히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