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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리카 사람들의
럭키비키적 사고

디에고(Diego), 코스타리카 산호세

by 노마
코스타리카 산호세에서 일주일 살기

1502년, 크리스토퍼 콜롬버스는 코스타리카 카리브 해안에 상륙해 금 잔시구를 착용하고 있는 원주민들을 발견했다. 이들은 이 곳이야말로, 금이 풍부한 황금의 땅이라고 생각했으며 “부유한/풍요로운 해안”이라며 이 곳을 “코스타 리카 Costa Rica”라고 불렀다. 실상은 코스타리카엔 금광을 비롯한 자원이 그리 풍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콜럼버스의 오판이었다. 하지만, 오른쪽엔 카리브 해, 왼쪽엔 태평양을 끼고 있는 코스타리카는 아름다운 해변의 천국이었다. 정복자들이 원하는 자원은 다소 부족했을 지 몰라도, 잠시나마 세속의 번잡함을 잊을 수 있는 멋드러진 바닷가들이 가득하다. 코스타리카를 여행할 땐 취향에 따라 카리브 해변이나 태평양 해변 택일해 그 쪽으로 동선을 정한다. 바다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의외로 뚜렷하게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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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 해변 VS 태평양 해변 스타일

우선, 카리브 해변 스타일(Caribbean Style)인데, 하얀 백사장에 맑고 투명한 에메랄드 빛 바다, 잔잔하고 따뜻한 물결, 야자수와 트로피컬 분위기가 특징이다. 종종 섬에 표류하는 주제를 가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이 흰 모래 사장에 얼굴을 파묻고 눈을 뜨는 장면이 클리셰처럼 나오곤 한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카리브 해변은, 아무도 모르는 섬에 표류했다는 주인공의 비참한 상황을 더욱 부각시키곤 한다.


한편, 카리브 해변과 명확히 대조되는 태평양 해변 스타일(Pacific Coast Style)도 있다. 짙은 황금빛, 어두운색 모래 해변과 파도가 비교적 강하고 역동적이라 서핑 명소들이 많다. 카리브 해변이 우아하고 섬세한 여성적이라면, 태평양 해변 스타일은 그 이름처럼 역동적인 남성성을 과시한다. 한국인의 입장에선 태평양 해변 스타일보단 카리브 해변 스타일이 훨씬 이국적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파라다이스에 가까운 모습을 닮았다고 할까.


어떤 해변이든 상관없었다. 오랜만에 해변에 누워 하루종일 햇볕을 쬐고 책을 읽으며 늘어질 생각에 설렜다. 그전에 코스타리카 수도인 산호세에서 약 1주일간 밀린 원고를 작성하기로 했다.


여성혐오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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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바다와 향긋한 커피가 가득할 거 같은 코스타리카란 국가 이미지는 아이러니하게 코스타리카에서 가장 많은 인구들이 모여사는 수도 산호세엔 적용되지 않았다. 버스의 연착으로 예상치 못하게 밤 늦게 도착해 택시를 타고 도착한 첫 숙소 동네엔 으슥했고, 언젠가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칼 든 강도를 마주했던 트라우마를 야기시켰다. 물론 코스타리카는 중앙 아메리카의 인접 국가 수도에 비하면, 안전한 편이지만 밤만 되면 수상한 분위기를 풍겼다. 종종 저녁에 인적이 드문 구간을 지나갈 때면 마리화나 냄새가 풍기곤 했는데 그럴 때 마다 신경을 곤두세워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곤 했다. 그동안 스쳐왔던 국가들과 달리, 산호세는 가보지도 않은 뉴욕의 할렘가를 떠올리게 만들었고 위험감지 촉을 발동시켜 몸을 사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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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노마드들이 애용하는 대표적인 숙소 체인 중 셀리나 호텔 & 호스텔(Selina hotel & hostel)이 있다. 빠른 인터넷 속도와 넉넉한 코워킹 스페이스, 모닝 요가 프로그램에 매일 저녁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파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대개 셀리나 호텔 & 호스텔은 안전한 지역에 위치해있고, 시설 퀄리티도 꽤 훌륭하다. 대신 가격이 조금 비싼 편인데, 또다른 디지털 노마드와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꽤 인기가 많다. 내가 이전에 머물렀던 Co404과 다른 점이라면, 셀리나 호텔엔 재택근무하는 회사원보단, 유튜버나 블로거 등 Z세대 여행 인플루언서들이 유독 많았다. 1층 바를 중심으로 방이 둘러서 있는 형태인데, 저녁만 되면 파티를 즐기는 게스트들 때문에 꽤 시끄러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코워킹 스페이스가 건너편 건물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는데 이용하는 사람이 나를 포함해 하루 평균 3~4명에 불과했다.

IMG_6576.JPG 숙소에서 진행한 아침 요가 프로그램

1주일동안 셀리나 호텔 & 호스텔에 머무르면서 첫 날을 제외하곤 거의 일에만 전념했다. 중간에 장을 보기 위해서 대형 마트까지 걸어가는 것을 제외하곤 아침 옥상 요가를 시작으로, 하루종일 일만 했다. 하루는 마트에서 과일을 구매하고 있었는데 내가 장바구니에 넣은 스타푸르츠(Starfruits)를 보며 한 남자가 영어로 말을 걸었다. 키가 크고 금발의 곱슬머리를 가진 그 남자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과일 맛있어? 그게 뭔지 몰라서 사먹어본 적 없는데 너가 마침 넣길래 궁금했어” 그에게 어깨를 으슥하며 “그냥 난 신 것을 엄청 좋아해서. 만약 너가 신 것을 별로 안좋아한다면 추천하지 않아”라고 답했는데 대화가 트인 것을 기뻐한 그는 여기서 무엇을 하냐는 식으로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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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노마드로서 일을 하며 세계여행을 합니다. 한국 환승하면서 암 3기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 후 다시 배낭을 메기 시작했습니다. 뻔하지 않은 여행기를 쓰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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