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Juan), 엘살바도르 엘 뚱꼬
"한 때 세계에서 가장 위험했던 국가에도 서핑 성지가 있다"
중남미의 수십 개 도시를 스쳐 지나갔지만, 그 중 엘 뚱꼬(El tunco)라는 이름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나의 선생님 오스칼 때문이었다. 엘살바도르 여행을 앞두고, 오스칼과 마지막 수업을 끝내고 함께 광장으로 걸어갔다. 그는 엘 살바도르의 엘 뚱꼬란 해변이 아름답다고 들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엘 뚱꼬가 과테말라에서 무슨 뜻인지 아냐고 물었는데, 아무 뜻 없는 지명이라 생각했던 내가 알 리가 있나.
그는 사지가 절단된 몸뚱아리라며 주로 팔,다리가 없는 불구를 가리킨다고 했다. 순간 뜨악했다. 사지가 절단된 몸뚱아리를 가리키는 단어가 있다니. 그의 불필요할 정도로 구체적인 표현으로 인해 단어의 이미지는 뇌리에 깊숙히 박혀버렸다. 그 후로 엘 뚱꼬를 떠올릴 때마다 먼저 팔다리가 없는 몸통을 떠올렸다가, 엘살바도르의 평화로운 해변 마을 순으로 떠올리게 됐다.
다행히 엘살바도르에선 엘 뚱꼬는 “맷돼지”를 뜻한다. 해변에 맷돼지 모양을 닮은 큰 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맷돼지가 주는 야성적 이미지와 달리, 엘 뚱꼬는 평화로운 해변 마을이다. 좋은 파도가 밀려오는 서핑 성지로도 유명해, 서핑샵과 수영복, 해변 드레스를 판매하는 가게, 서핑 후 지친 몸에 에너지를 채워주는 작은 식당들이 아기자기 모여있는 작은 동네에서 엘살바도르 다른 도시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활기와 느긋함이 느껴졌다.
작은 보드만 끼고 들어가 거대한 파도를 마주하는 사람들이 모인 탓일까. 전 세계 서핑 성지를 여행하다보면, 유독 그 주변 해변 마을의 바이브는 비슷하다는 걸 느낀다. 이 특유의 평화롭고 긍정적인 분위기는 서퍼들이 만들어내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곳을 서퍼들이 찾아가는 것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비단 서핑을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한 때 전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였던 이 곳에서 엘 뚱꼬는 마치 그 모든 것과 무관하다는 듯 자신들만의 파라다이스를 구축했다. 이 곳에서 15년 넘게 서핑을 한 서핑샵 사장님 후안의 말에 따르면, 엘 뚱꼬는 항상 안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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