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장 우루무치 톈샨
등산의 과정을 삭제한 등산
예전엔 "산이랑 바다"중 어느 것을 선호하냐는 질문에, 바다를 택하곤 했는데 요즘엔 산으로 많이 기울였을 정도로 등산을 좋아한다. 중남미 1년 넘게 여행하면서 거의 1주일에 1번씩 산을 오르곤 했는데, 개중엔 5000미터가 넘는 산도 많았다. 주변에 그런 산이 없는 경우 외국인들은 갈 일 없는 현지인들 뒷산을 가기도 했다.
등산에 빠지게 된 이유는 힘들게 고생한 만큼, 그 보람이 확실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배낭여행을 사랑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하다. 여행을 할 때 고됨이 있어야 도착해서 느끼는 감동도 배가되고, 그 여행이 기억에 많이 남기 때문이다. 뭐든지 쉽게 얻는 것은 그만큼 빠르게 휘발되기 때문에 종종 여행할 때 어쩔 수 없이 이용하게 되는 투어의 경우 그 과정이 삭제되어버린 탓인지 지루하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산은 모두에게 평등했다. 훌륭한 자연 경관을 누리기 위해 누구나 두 발로 걸어 가야 했고, 돈이 많건 적건간에 산의 정상에서만 볼 수 있는 뷰는 직접 그 곳에 오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랄까.
하지만, 언젠가부터 특히 중국을 포함한 다양한 아시아권 국가에선 케이블카를 만들어 산을 올라가는 여정을 삭제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선 산을 포함한 작은 오르막길도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국의 유명 명산들엔 어김없이 입구에서 셔틀버스, 셔틀버스에서 케이블카로, 케이블카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이 과정을 거쳐 해발 5000미터 이상 까지도 오른다.
특히 운남성의 옥룡설산은 5500미터 정도 되는데, 케이블카로 빠르게 올라가다보니 저마다 휴대용 공기통을 들고 가서 급작스러운 고도변화로 겪게 되는 고산병을 대비한다. 실제로 걸어 올라가는 시간은 케이블카 하차장에서 계단을 따라 잠깐 올라가는 30분도 채 되지 않지만, 휴대용 공기통을 입에 대고 "엄청난 등산을 했다"라는 것을 티내는 인증 사진을 찍는다.
등산을 좋아하지만, 중국 산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이런 인프라가 과하게 설치되고, 여행객들에게 그 비용을 전가하려는 듯 입장료를 비싸게 어마어마하게 챙겨간다는 것이다. 직접 걸어가겠노라고 하면, 모두가 뜯어 말리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입장을 막는 경우도 허다하다.
전세계에 산이 유명한 곳에 방문하면 항상 아시아 여행객들은 케이블카나 산악기차 등 빠르게 올라가는 옵션을 선택하는 방면, 항상 나와 함게 걷는 것을 택한 사람들은 대부분 유럽 사람들이었다. 종종 우리끼리 그냥 걸어가면서 케이블카나 셔틀버스를 보면 내뱉는 말이 있는데 "저건 fake야. 등산이라는 말을 하면 안되지".
돈이 없어서 케이블카와 셔틀버스를 타지 않는 게 아니다. 등산이란 건 내 발로 직접 걸어가는 과정이 핵심이고, 정상은 그 과정의 보상이다. 엄연한 과정을 삭제한 채로, 보상만 빠르게 추구하는 것은 대자연을 감상하는 것마저 극단적인 효율을 따져야 하는 건가 싶어 서글퍼진다.
10분짜리 케이블카에 4만원이라니
중국 신장 우루무치에서 약 1시간 거리에 톈산톈츠(天山天池)란 곳이 있다. 직역하자면 "하늘의 산, 하늘의 호수"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에메랄드 빛 호수와 설산, 푸른 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별도 투어를 이용하지 않고 버스터미널에서 톈산으로 가는 버스티켓을 구매했는데, 특이하게 가이드가 있다. 가는 시간과 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투어 버스인 셈인데, 중국인 가이드는 단체 여행객들이 티켓을 수월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신분증을 거둬갔다. 내가 이 버스의 유일한 외국인이었는데, 그는 내 여권을 보더니 난색을 표하더니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거라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당연하게도 케이블카 탈거냐고 물었다. 전날밤, 나는 톈산톈츠 등산 정보를 찾았고, 약 4시간 정도면 케이블카 없이도 오를 수 있다길래 케이블카를 타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돌아오는 버스 시간을 못맞출 거라고, 그러면 여기서 나 혼자 택시 잡아서 가야한다고 겁을 줬다. 그가 그동안 본 사람들 중 종종 케이블카 타지 않고 산을 오르겠다는 사람들 봤는데 그 중 딱 한 사람 성공했다고.
그 사람은 전문 산악인이었는데 4시간 걸렸다 그런 이야기였다. 그에게 "저 그래도 등산 경험 많고 보통 사람들보다 빨리 올라가요"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어찌 됐건, 그는 내가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직접 올라가겠다는 말에, 단호하게 그렇게 하면 안된다라고 이미 답을 내린 상태였다. 간밤에 이 톈샨톈츠 등산 정보를 조금 더 자세히 알아봤어야 했는데, 대충 알아본 게 화근이었다. 혹시나 진짜 난도 높은 산이라서 시간을 못맞추면 어쩌지. 그 생각에 넘어가 결국 케이블카를 구매하기로 했다. 고작 10분 탄다고 했는데, 케이블카는 거의 4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올 때 버스를 타지 않고 그 돈으로 택시를 잡고 우루무치에 왔더라도 그 정도 가격은 안나왔을 텐데. 평소엔 중국 사람들이 항상 과장하며 겁을 주는 것에 잘 속아 넘어가지 않는 편인데, 이번엔 순간 혹해버렸다. 중국 사람들의 장사 술수에 또 한번 당하다니. 뭔가 분한 마음이 들었다.
톈샨톈츠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래도 톈산톈츠는 양심있게(?) 사람들이 직접 두발로 오르게 만드는 여지를 만들어 뒀다. 케이블카 하차하면 호수가 나오는데 많은 어르신분들은 이 호수 위 유람선을 타면서 풍경을 즐긴다. 그 외 대부분 사람들은 나무 데크로드, 계단을 따라 제 1전망대, 제 2전망대, 제 3전망대까지 오르게 된다. 사람들 체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마지막 전망대까지 가는데 1~2시간 소요된다.
잘 만들어진 데크 산책로를 걸어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등산이라 하기엔 뭔가 애매하지만, 어찌됐건 산을 오르는 건 맞다. 중간 중간 계단에 앉아서 도시락을 까먹는 사람들도 있고, 곳곳에 설치된 쓰레기통엔 사람들이 오르고 내리면서 버리는 쓰레기들이 가득하다. 어딜가나 음식을 바리바리 싸가는 문화인데 이 곳 역시 예외는 아니다. 거의 10미터에 1개씩 설치된 쓰레기통을 보면서, 우리가 낸 비싼 케이블카 요금은 다 이런 거 관리하는데 들어가겠구나 싶기도 했다.
인위적인 조형물들을 제외하곤 톈샨텐츠는 아름답다. 오염 하나 되지 않은 듯한, 옥빛의 물빛의 호수를 둘러싼 겹겹의 산들은 그 프레임만 뚝 자르고 보면,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이런 곳이 부럽지 않다. 올라가는 길엔 이 그림같은 배경으로 말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은, 혹시 누군가가 일부러 의도한 오브제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 어쩜 이렇게 찰떡같은 프레임에 말이 들어와있을까.
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마지막 전망대에서 저 멀리 보이는 설산까지 구경 후 같은 길을 다시 내려가는 중이었다.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서 천천히 내려가다가 중간에 잠시 멈춰 찍은 사진들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한 남자가 중국어로 말을 걸었다. "힘들어요?(累了?)" 처음엔 나한테 하는 말인지 모르고, 그냥 계속 사진 정리하고 있는데 그 남자가 다시 한번 "안추워요?(不冷吗)"하고 말을 걸었다. 그제야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봤는데 산악용 고글을 끼고 윈드자켓을 입고 있는 남자였다.
내가 이날 아무 생각없이 나시에 얇은 거즈 셔츠를 입고 갔는데, 톈산톈츠 전망대는 고도가 높기 때문에 바람도 많이 불고 춥다. 패딩 입고 올라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내가 중간에 사진 찍으려고 거즈 셔츠를 벗었을 때 "아이고, 저 여자는 춥지도 않나봐"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 그 역시, 위에서 겨울옷을 입은 사람들 가운데 얇은 옷을 입고 빠른 걸음으로 올라가던 내가 눈에 띄었다고 했다.
계속 말을 하다가, 내가 한국인 임을 뒤늦게 알게된 그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니 "아, 외국인이었구나"하고 자신의 이마를 쳤다. 자세히 봐야 한국인과 일본인, 중국인이 구분되는데 본인이 고글을 쓰고 있어서 당연히 내가 중국인이라고 생각했다고. (앞으로 이 사람의 이니셜을 Z라고 하겠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내려가게 됐는데, Z는 엄밀히 따지자면 지금 일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미국 회사인데 주로 지방 출장 위주로 가는 업무라서, 종종 그 지역 명소 등 여행하는 자유 시간을 마음대로 가진다고. 어차피 대부분 출장과 고객 만나는 건 저녁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떄문에 회사에서도 일하는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는 간섭하지 않는다고 했다. Z는 등산이랑 트레일러닝을 주로 해서, 원래 톈산톈츠 여기 전망대 오르기 전에 호수 주변 따라 트레일 러닝할 계획이었다고. 그러다가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소요되는 걸 깨닫고, 포기하고 여기로 올라왔다고 한다.
카풀 차량타고 돌아가기
내려가는 내내 이야기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그는 나에게 어떻게 돌아가느냐고 물었고, 그냥 자기가 카풀 차량을 불렀는데, 한 자리 여유가 있으니 같이 타고 가자고 했다. 자신에겐 법카 찬스가 있어서 오늘 저녁은 자기가 쏘겠다며. 살다살다 중국인에게 법카 찬스로 밥을 얻어 먹게 되다니. 말도 썩 잘 통해서, 돌아가는 버스편 가이드에게 "나는 버스 안타고 따로 가겠다"고 위챗을 보낸 후 그가 미리 예약한 카풀 차를 타기로 했다.
해당 카풀차량엔 쓰촨 출신 다른 1명의 여성도 함께 탔다. 중국에서 디디를 많이 이용했지만 카풀하는 건 나도 이용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게 낯설었는데 이렇게 장거리의 경우 확실히 가격도 저렴하고 이용할만 하겠다 싶었다. 동북 지방 출신이지만 여행온 김에 카풀을 모집한 남자 드라이버에, 말 정말 빠른데 성격 시원시원한 쓰촨 여성, 중간에 내가 못알아듣는 화제가 있으면 그거에 대해 다시 설명해주는 Z까지. 도심으로 들어가는 구간에 차가 많이 막혀서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렸는데 그 사이에 스피커 빌 틈이 없이 정말 말이 엄청 많다. 억양과 발음 모두 다른 이 중국인들의 대화에, 처음엔 듣기평가 연습하는 셈치고 귀기울이고 들으면서 열심히 호응하다가 나중엔 기가 빨려서 예의상 듣고 있다는 호응만 해주고 멍 떄리기 시작했다.
법카 찬스로 저녁얻어먹기
우루무치 홍산공원을 둘러보고,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택시를 불렀다. 그는 기사에게 "여기 현지 음식 잘하는 식당 중 규모 좀 크고 비싼데 없냐"라고 물었다. 기사가 처음 추천한 곳이 야시장같은 곳이었는데, 그는 야시장 음식같은 건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처음엔 그냥 사람 많은 곳 아무데나 들어가서 먹으면 될 거 같은데 싶다가 그가 비싼 곳을 원하는 이유는 "카드 결제가 가능하며 영수증을 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법인카드로 저녁을 사먹을 수 있는데, 이건 위챗페이 등으로 청구할 수 없어서 그럴 듯한 레스토랑에서 먹고 카드로 긁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바일 페이로 모든 걸 다 할 거 같은 중국에서도 법카는 여전히 카드 방식이구나라는 걸 처음 알게 됐다.
그는 음식을 거침없이 주문하기 시작했다. 이 곳 현지식 경험이 많이 없던 나는, 그에게 전적으로 주문을 맡겼는데 양꼬치부터 각종 요리까지 과할 정도로 많이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 가짓수만 6개가 초과했는데 그 중 요리 메뉴만 4개가 넘었다. 이건 2명이서 절대 먹을 수 없는 양인데, 더이상 주문하려는 걸 막고 싶었지만 "어차피 우리 회사가 사는거야. 마음껏 써도돼"라며 호기를 부렸다. 돈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음식 남기는 걸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노파심에 그런 건데, 여전히 "음식 남기는게 미덕"이란 문화가 아직까지 남아있어서 그런가. 그는 그런 것에 대해선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물론 우루무치에서 먹어봐야 하는 특별 채소가 들어간 요리부터 큰 양꼬치, 밥 종류, 돼지간볶음, 면요리 등 조금씩 맛볼 수 있는 건 좋았다. 우루무치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샤총(沙葱: 직역하면 사막의 파)을 넣은 계란 볶음도 인상적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애초 이 샤총이란 걸 시도할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혼자 였다면 절대 못먹을 요리들도 있었으니까. 나름 최선을 다해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었지만, 항상 제한된 위 용량이 한탄스러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