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케이크를 사랑합니다. 요샌 1일 1당케 하고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케이크가 뭐에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개 사람들은 두부류로 나뉜다.
싫어하는 케이크만 말하고 딱히 좋아하는 케이크가 정해져 있지 않은 유형.
혹은 제일 좋아하는 케이크가 항상 정해져 있는 유형.
가령, "생크림 케이크 빼곤 뭐 그냥 다 좋아하는데. 치즈케이크도 좋아하고 등등"
이런 대답이 생각보다 흔하다.
케이크를 일상 생활에서 찾아서 먹는 사람들이 아닌 경우 이런 대답이 가장 흔하다.
반면 디저트 덕후의 경우 최애 케이크 종류가 몇가지 정해져 있다.
나 같은 경우엔 답이 딱 정해져 있다.
"전 당근케이크를 제일 좋아해요!"
당케는 흔히 당근케이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당근케이크를 줄여서 말하는 애칭이다.
마치 독일어의 Danke (감사합니다)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발음 자체가 귀여워서 나는 괜히 당케덕후를 당케당이란 이름으로 바꿔 부른다. 마치 민트초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민초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고백하자면 난 민초당이기도 하다)
내가 당케당케 거리다보니 주변에서도 당근케이크보면 내가 먼저 생각난다는 사람도 있다. 특히 이번에 파리바게트에서 제주도 구좌 당근을 활용한 특선 시리즈로 당근 케이크 및 당근 파운드 등이 나온 걸 보고 나에게 먼저 카톡 보내준 사람도 있다.
내가 당근케이크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내가 상상했던 맛과 실제의 맛이 너무 달랐던 것에서 시작된다. 난 어려서부터 음식이 나오는 그림책이나 소설책을 유독 좋아했다. 특히 서양 그림책이나 소설책에는 내가 이름만 보고 상상해야하는 디저트류가 유독 많았는데 각종 파이류 (펌킨파이, 시나몬애플파이 등) 부터 시작해서 수플레, 크림브륄레, 티라미수 등등이었다. 그 중 당근케이크도 하나 있었는데 난 사실 어른이 되면서 실제 당근케이크를 스타벅스에서 처음 접하기 전까지 이건 그냥 상상 속의 디저트라고 시작했다.
당근을 싫어하진 않지만 '당근'과 케이크는 도저히 상상히 되지 않는 조합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그림과 색감은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림책이나 소설책 속에 실린 삽화 속에는 주황색 당근이 케이크위에 올라와있는 모습이 실제 조화와는 상관없이 그냥 예뻤다. 그래서 먹어보진 않았지만 호감이 가는 그런 디저트 중 하나였다.
지금 고정 메뉴로 나와있는 스타벅스 호두 당근 케이크가 아마 내 첫 당근케이크로 기억한다. 지금은 고정 메뉴로 자리잡았지만 당시엔 시즌 메뉴처럼 나와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메뉴였다. 당시 스타벅스 덕후였던 나는 평소에 디저트를 잘 사먹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상 속의 '당근 케이크'에 홀려서 그대로 구매했다. 달지 않고 담백한 당근 시트에 꾸덕한 크림치즈, 그리고 기분좋게 씹히는 견과류에 은은한 시나몬향. 당근케이크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요소를 모두 갖춘 케이크였다. 특히 난 케이크를 먹을 때 티라미슈를 제외하곤 악마의 단맛보단 담백한 파운드 케이크 느낌을 선호하는데 당근케이크가 딱 그랬다.
엄청난 칼로리에 상관없이 그날 따뜻한 커피와 번갈아 먹으며 순식간에 당근 케이크를 비웠다. 혹시나 당근 씹는 맛이 싫어서 당근케이크 이름 듣자마자 "윽"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안심하길 바란다. 당근 케이크에서 당근이 씹힐 일은 별로 없다. 마치 야채 싫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그걸 다 다진 후에 음식에 넣는 어머니들처럼 당근 케이크에 당근은 들어가지만 단 맛을 내기 위한 목적으로 들어가지, 당근케이크 속에 든 견과류가 그 식감을 대신한다. (견과류 식감을 당근 식감으로 착각하지 않길)
이후, 어느 카페를 가건 당근 케이크가 보이면 그것을 먼저 주문하곤 했다. 물론 한국에 들어오면 많은 디저트들이 한국식 단맛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당근 케이크 다음으로 좋아하는 티라미수의 경우 그 변형이 가장 많은데 이탈리아에서 먹어본 그 집에서 이탈리아 마마들이 갓 떠서 퍼준 그 모양이 다 흐트러진 그런 홈메이드 티라미수보단, 뭔가를 넣어서 예쁘게 모양 잡혀 생김새만 그럴듯한 빵같은 티라미수를 우리 주변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다. 오히려 투썸의 티라미수가 그나마 이탈리아 정통 티라미수를 조금 닮은 듯해서, 티라미수가 먹고 싶을 땐 가까운 투썸으로 가기도 한다.
잠시 티라미수로 이야기가 빠졌다. 그나마 당근케이크는 티라미수만큼 많은 변형이 일어나지 않았다. 매니아성이 조금 강한 디저트라 그런지, '당근케이크 맛집' 하면 당근 시트와 견과류, 크림치즈, 시나몬향의 밸런스를 잘 지켜서 만드는 곳이 그래도 많은 편이다. 물론 개중에 크림치즈 대신 생크림으로 하는 곳도 있다. 처음엔 난 불호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나름 부드러워서 괜찮더라. 그냥 난 당근케이크 파운드를 좋아하는 걸로.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오히려 집에서 1일 1케이크를 하고 있다. 커피값을 아끼는(?) 대신 케이크로 위안을 삼으려는 심리였을까. 주변 당근 케이크가 있다는 카페와 베이커리는 다 들러서 하나씩 사서 테이스팅을 해본다. 혹시 다른 동네나 지역에 갈 일이 있으면 그 지역에서 당근 케이크 파는 곳에 꼭 들르는게 일상이 되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당케맵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요새 당케에 유독 집착한다. (이것도 코로나가 만들어낸 일종의 부작용인건가)
행복한 건, 파리바게트 같은 대형 베이커리 프랜차이즈에서 당근 케이크를 내놓았다는 것도 신기했고, 점점 당근케이크를 파는 곳이 예전보단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드디어 당케도 점점 대중화가 되어가는 길에 들어가는 걸까. 당케당으로서 매우 반가울 뿐이다.
*호불호가 매우 갈리는 민트초코와 달린 당근케이크는 먹어보지 않고 괜히 그 상상만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디저트이다. 일단 먹어보면 '불호'는 없을거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