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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Jan 16. 2021

꼭 취미가 밥 먹여줘야 하나요.

언젠가부터 취미 역시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 되기 시작했다. 

COVID-19은 직장인들이 기존 고정적으로 벌어오는 노동 소득에 플러스 알파 (주식 등 금융소득 포함)를 창출하는 길에 눈을 뜨게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한 것 같다. "직장인 부업, 투잡", "주식 부동산 클래스" , "중국 소싱 스마트스토어 창업" "월급 올리는 직무개발" 등 각종 광고들이 거의 공해급만큼 따라다녔고 많은 사람들이 이 중 1, 2개는 해봤을 정도로, 열풍이었다. 

COVID-19의 최고의 수혜를 받은 시장이 있다. 바로 취미 시장이다. 특히 온라인 클래스를 기반으로 한 취미 클래스는 몇몇 메이저 플랫폼에 의해 트렌드가 되었고 , 지금은 각종 돈버는 방법과 관련된 클래스들이 메인 스트림으로 자리 잡았다. 그걸 보며 마치 서점에서 베스트 셀러 탑 10 이 "자기계발 & 경제경영" 들이 다 차지하고 있는 그림이 떠올랐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어떠한 것을 하더라도 "생산성이 있는 활동"을 해야할 것을 강요받은 것 같다. 생산성이 없는 활동은 시간 낭비이며 애초에 할 가치가 없다라고 모종의 세력이 우리의 뇌 속에 주입시킨 듯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생산성'이라는 것을 측정하는 것은 상당히 모호하다. 그래서 가장 간단하게 그것을 정량화 하는 방법으로 "그래서 그게 밥먹여주는거야?" 라는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다. 


- 이것을 함으로써 내가 돈을 벌 수 있나 (YES) -> 얼마나 벌 수 있는가 (평균 ㅇㅇㅇ원) -> 좋은 취미 
- 이것을 함으로써 내가 돈을 벌 수 있나 (NO) -> 왜 하지? -> 쓸모 없는 취미 



이것을 어렸을 적부터 우리는 주입 당했다. 예술 쪽 진로를 하고 싶다고 하면 "그거 하면 굶어죽어" 등으로 뜯어 말리면서 동시에 "그런 건 커서해" 하면서 살살 달랜다. 그런데 그런 압박과 주입 속에서 자라난 우리는 언젠가 세뇌당해서 "밥 먹여주는 것이 아니면 하지 않는" 상태에 도달한 거 같다. 즉, "막상 커서 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좌절되고 만다. (물론 그것을 뚫고! 열정만으로 꿈을 좇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항상 존경하는 사람들이다) 


한국 사람들이 은근히 답을 힘들어하면서, 깊은 생각없이 대답하는 질문이 있다. 

"취미가 뭐에요" 


어렸을 적부터 교과서에서 만들어진 듯한 답변으로 "영화" "독서" "게임" "넷플릭스" 등 천편일률적인 답변만 나오는 것은 애초에 어떠한 취미를 가질 수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의 전체주의와 진배없는 교육 시스템에서 자라온 토종 한국인에게 "니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라는 말은 가장 어려운 질문이 될 수 있다. 그나마 요즘엔 외국물 먹은 사람들도 많고, 다양한 매체 등의 영향을 통해서 자신의 취향과 취미를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어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편화된 취미"를 가지고 있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취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시간 조차 가지지 못한다. 아니 몇 번 가져봤다해도 그것은 좌절된다. 

"그게 밥먹여주냐" 라는 질문앞에서. 


취미 플랫폼들이 각종 돈버는 방법 클래스, 직무계발 클래스을 메인으로 밀고 있는 것을 보면 씁쓸하지만 그들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취미' 역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돈이 되는) 취미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우리 사회에서 취미 플랫폼 및 관련 서비스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그에 맞는 재화를 제공하는 것이다. 


심지어 요새는 "취미로 돈을 벌 수 있다" 라고 해서 그 자체로는 딱히 돈을 벌 수 없을 거 같은 영역인데 그것을 활용해 어떻게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돈을 벌 수 있는지 알려주는게 트렌드이다. 예를 들어 단순 "아이패드 드로잉 클래스"로 파는 것보다 "아이패드로 이모티콘 그려서 연금 창출하는 법" 이 사람들에게 더 먹히는 것 처럼. 마치 이 취미를 하기 위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돈이 되는 방향"으로 연결해서 마케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역시 말이 되는게 취미란 것은 결국 내가 좋아서 꾸준히 해야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 좋아서 한 두번 해본 것을 취미라 말할 수 없다. 꾸준히 좋아서 하려면 정말 100% 순수 열정이거나 아니면 그만한 동력이 있어야 하는건데 그게 바로 돈이라는 보상이다. 사람은 돈을 벌면 벌수록 재밌어서 그것을 좀처럼 끊지 못하니까. 즉, '돈'을 벌어다주는 것이 원동력이 되어서 꾸준히 하게 되는 '취미'라는 일종의 역이전도가 일어난다. 

만약 모든 취미를 다 동일선상에서 놓고 무엇을 하건 돈을 벌어주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지금 현재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취미가 여전히 가장 인기 있는 취미일까? 


우린 무슨 일을 하건 간에 목적과 목표가 뚜렷하게 있기를 강요당해왔다. 단 기간에 급속 성장한 환경인만큼, 그것이야말로 빠르게 성공하는 길이며, 생산성이 없는 활동은 시간 낭비라고 치부당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를 여행한 경험마저 이력서 스펙으로 내세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여행에 열광하는 이유가 놀고 먹으면서 스펙이 될 수 있는 유일한 활동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무엇을 하건간에 "밥 먹여주니?"란 질문에 얽매여 주저하는 경우가 없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나 밥먹여주는 일은 따로 있지 않은가. 취미는 정말 100% 즐기기 위한 순수한 영역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너가 하고 싶은게 뭐야, 좋아하는게 뭐야?" 라는 뻔한 질문에 더이상 "근데 그게 밥먹여주니?" 란 덧붙임은 없으면한다. 우리는 생산성이 없는 활동도 자유롭게 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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