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판 <기생충>이라 불리는 현실적인 풍자 영화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 및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한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매년 오스카 시상식 후보작 지명 소식을 접하면 매 주말마다 영화관에서 오스카 지명된 작품들 몰아보기 하느라 바빴다. 정말 쟁쟁한 영화가 아니고선 대부분 하루에 1회 상영하는게 많았기 때문에 시간표를 잘 짜서 아침에 영화관 가서 저녁에 나오곤 했다.
올해는 넷플릭스로 각종 오스카 후보작품을 쉽게 볼 수 있어서 당분간은 뭐보지 하면서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됐다. 물론 한국에서 가장 화제인 <미나리>는 아쉽게도 넷플릭스에서 볼 수 없지만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도 한국에서 개봉하지 않았을 오스카 후보작을 볼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사실 오스카 후보작 지명 소식은 나온지 꽤 됐는데 지난 달 워낙 바빠서 이번 주부터 오스카 후보작 작품을 몰아보기 시작했다. 그 첫번째 타자는 가장 보고 싶었던 <화이트 타이거> 이다. 나는 발리우드 영화의 큰 팬은 아닌데 그래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도 영화는 곧 잘 챙겨보는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적응되지 않는 다는 영화 중간중간 생뚱맞게 삽입되는 뮤지컬 장면 (갑자기 인도풍 음악과 노래를 한다) 역시 나름 '인도 영화의 맛'이지 하면서 재밌게 본다. 그럼에도, 마음 한 켠에는 발리우드 영화는 인도의 대부분 모습이라기 보단 너무나 극소수, 단편적인 모습만 닮았다는 아쉬움이 자리 잡았다. 인도를 6개월 동안 여행했으나 당시 북인도쪽만 돌고 남인도 뭄바이 쪽을 가보지 않아서 그 쪽 문화는 잘 알지 못하지만 내가 겪었던 6개월의 인도는 오늘 소개할 <화이트 타이거 White tiger> 와 더욱 흡사하다.
참고로 <화이트 타이거>는 기존의 발리우드 영화 공식 전형과 다르다. 이야기의 흐름을 자칫 끊을 수 있는 뮤지컬 장면도 없고 영화 흐름 내내 진지한데 지루하지 않다. 다른 인도 영화와 굳이 비교하자면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비슷한 편인데 여기에 '악evil' 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고,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공식에서 벗어나 입체적 캐릭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인도의 카스트 신분 제도는 표면상 폐지되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이 나라는 보이지 않는 수천개의 카스트 신분이 사람들의 인생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것을 이 영화는 닭장 속의 닭으로 비유한 것이 인상깊었다. 영화 초반부에 수많은 닭들이 갇힌 닭장 가운데 한 남자가 살아 있는 닭을 꺼내 목을 비틀어 털을 뽑고 손질을 한다. 자기 동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그대로 목도하는 닭들은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 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 이외에 다른 운명을 목격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닭장의 문이 열려 있다하더라도 도망가지 않는다.
인도에선 그 사람의 성으로 어떠한 카스트 신분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영화를 보면 주인공 발람에게 운전을 가르치는 시크교도가 "너는 디저트 만드는 집안인데 디저트나 만들지, 왜 운전 하고 있어. 운전은 우리 처럼 과격한 신분들만 하는거야" 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발람은 짜이(인도식 밀크티) 와 달다구리 (스위츠, 디저트) 만드는 집안으로 짜이를 서빙하다가 고급 차에서 내리는 해당 마을의 지주와 그의 해외파 출신 아들을 보게 된다. 발람은 다른 사람과 달리 현실에서 계속해서 탈피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탈주로를 이 지주의 하인으로 일하는 것으로 찾는다. 마침 이 지주에서 운전수를 구한다는 것을 엿듣고 큰 마음 먹고 운전 강습을 받아 마침내 운전사로 취업한다. (아마 이러한 설정으로 인도판 <기생충> 이란 말이 나오는 듯 하다)
이후 발람은 미국 유학파 아들 아쇽을 모시며 기존 인도와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높은 카스트 신분이 낮은 카스트 신분을 마구 때리거나 걷어차는 등의 행위)이 문제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아쇽은 인도의 고질적 신분 문제와 변화 보단 기존 현상 유지를 원하는 사회상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인도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본인 역시 현실과 타협할 수 밖에 없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간적인 인물이다. 인간은 이상과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타협하며 자신의 길을 걷는 동물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완전히 미국적인 관점에서 인도를 강하게 비판하고 결국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인물은 아쇽의 아내인데, 그녀는 이번 오스카 시상식에 여우 조연상 후보에 지명되기도 했다. (이로써 영화 <미나리> 윤여정 씨와 경쟁구도가 된 셈)
그렇다면 왜 이 영화 제목은 생뚱맞게 <화이트 타이거> 일까. 영화 초반부에 닭장의 이야기와 더불어 화이트 타이거 (백호)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발람은 초등 학교에서 영어 수업 중간에 유창하게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한다. 선생님은 그에게 "한 세대에 딱 한 번 태어나는 희귀한 동물이 있는데 그게 바로 화이트 타이거,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자질이 있는 존재를 의미한다. 그리고 너가 그 존재가 될 수 있다" 라고 말한다. 그렇게 발람은 태어난대로 순응해 사는 닭이 아닌 화이트 타이거 처럼 살고 싶다는 의식을 잠재적으로 가지게 된 거 같다. 그리고 해당 영화의 여러 사건을 거쳐가며 그는 소위 말하는 "흑화(평범한 캐릭터가 모종의 이유로 갑자기 어두워지며 냉혹, 비정해지는 것)" 하면서 닭장 밖으로 뛰어나간다. 닭이 호랑이가 될 순 없는 노릇이니 흑화로 표현했다.
영화는 인도의 보이지 않는 계급 사회 현실을 풍자하지만 동시에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크게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기존의 사회 관습들이 새로운 풍파를 맞닥뜨렸을 때 두가지 부류로 나뉜다. 소란 일으키지 않고 그 관습을 그냥 조용히 이어가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에 순응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 인간은 본능적으로 요란한 변화보단 조용한 유지를 선택한다. 하지만 개중 일부는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가지며 사회를 바꾸려고 한다. 우린 닭장 속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속에서 계속해서 탈출을 시도하는 백호가 될 것인가.
이 영화는 인도 영화라는 마음의 장벽으로 놓치기엔 너무나 아까운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