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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Jan 06. 2023

타이난 아침부터 패스트푸드점이 붐비는 이유

05. 오랜만에 만난 대만, 타이난 이색 아침

*본 내용은 앞의 브런치글과 시간 순서상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냥 읽어도 무난하지만, 앞의 글을 읽으면 더 큰 도움이 됩니다*

한국에 치맥이 있다면 대만엔 옌쑤지+밀크티가 있어


방금 저녁을 먹었는데 30분 후에 야식을 사러 갈 거라는 A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준비됐지?"란 말에 나는 헬멧을 쓰며 A의 스쿠터 뒷자리에 올라탔다. A가 꼭 나한테 먹이고(?)싶다는 야식은 다름 아닌 옌쑤지(盐酥鸡)였다. 옌쑤지를 직역하자면 솔트크리스피치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치킨과는 조금 다르다.

옌쑤지 노점상

노점상에 여러가지 재료 등을 갖춰 놓고 파는데 그 모양새는 우리가 흔히 마라탕 집 가서 직접 고르는 형태를 떠올리면 되겠다. 닭튀김을 포함해 야채, 떡, 고기, 내장 등등이 있는데 여기서 원하는 재료를 '하나씩' 집어 '소쿠리'에 넣으면 된다. 마라탕처럼 내가 먹을 만큼의 양을 그릇에 담는 게 아니라, 어떤 재료를 넣을지 선택하는 것이다.

이렇게 원하는 것을 1개씩만 담으면 된다

그럼, 주인장은 그 재료의 정량만큼 각각 넣어 튀긴다. 예를 들어 내가 바구니에 감자튀김 1개, 고기꼬치 1개, 닭튀김 1개를 담았다고 가정한다면 그 집에서 정한 정량 감자튀김 3개, 고기꼬치 3~4개, 닭튀김 3~5개 등을 바질과 함께 튀기는 것이다. 여기에 소금, 후추 등을 뿌려 종이 봉투에 가득 담아준다. 우리나라의 치킨보다는 살짝 짭짤한 맛이 더 강하고 바질 특유의 향이 베여 있다. 이국적인 모듬 튀김 야식이랄까? 튀김 스타일도 우리나라 바삭바삭함이 살아있는 크리스피 치킨보다 그 옛날 물반죽입혀 튀긴 치킨과 흡사하다.

짭짜름한 옌쑤지. 바질을 넣어 튀긴다는 것이 독특하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무조건 맥주를 부를 야식이다. 다만, 대만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만큼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선 간단히 맥주 한 잔마시는 게 일상이고, 야식에 술이 빠지면 뭔가 어색한 느낌인 반면, 대만 사람들은 술 없이도 늦게까지 수다를 떨며 밤을 보내는 편이다. 대신, 늦게까지 하는 밀크티 가게에 가서 차를 사서 야식과 곁들여 먹는다.

초점이 옌쑤지에만 가있지만. 앞에 있는 것은 대만 유명 밀크티 프랜차이즈 커부커 (可不可) 에서 구매한 버블티 & 매실주(?)

심지어 타이난의 밀크티는 타이베이에 비해 당도가 더 강한 편이다. 당도를 묻는 말에 내가 무심코 "반탕(半塘) - 당도 50%" 이라고 답했는데 A가 "조심해. 타이난에서의 반탕은 타이베이의 100%당도와 같아" 라고 주의를 주며 "웨이탕(微糖) - 당도 30% 을 시키면 타이베이의 반탕정도 될거야"하며 내 주문을 수정해줬다. 참고로 타이난에선 설탕이 아예 없는 우탕(无糖)을 시키면 웨이탕(微糖)에 가깝다. 어쩐지 타이베이에서 우탕(无糖)-설탕0% 을 시키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는데 A가 계속 자기 음료는 우탕을 주문하는 것이 의아했는데 이런 비밀이 있었다니.


늦은 시각에 짭짤한 튀김과 달달한 버블티의 조합은 나에겐 베스트 조합은 아니었다. 따로 따로 먹으면 맛있지만, 아무래도 난 한국 사람이라 그런지 맥주의 부재가 아쉬웠을 뿐.



아침 식사를 같이 하며 새 친구를 만나다

A는 MBTI 파워J형이고 나는 파워P형이다.  A는 무엇이든 다 계획을 짜고 이를 실행시키고 싶어하고, 나는 즉흥적인 여행을 하는 편이다. A는 아무 계획 없이 그저 "타이난은 대만에서도 먹으러 오는 미식 도시니까 걷다가 맛있는데 보이면 들어가지" 마인드로 온 나를 책임져야 겠다(?)는 생각이라도 들었나 보다. 옌쑤지와 버블티를 먹는 동안 그녀는 타이난 맛집을 자기보다 훨씬 잘 안다는 맛잘알 친구에게 라인 메시지를 보냈고, 이 친구와 함께 내일 타이난 음식 뽀개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이 친구랑 내일 아침 9시에 만나 아침 식사부터 같이하기로 했어. 괜찮지?"


다음날 아침, 눈이 팅팅 부은 채로 일어났다. 원래 눈이 잘 붓는 체질은 아닌데 간밤에 옌쑤지를 정말 많이 집어 먹었나보다. 누군가와 밖에서 아침 같이 먹자는 약속을 굳이 해본 적은 없는데, 오늘 처음 볼 친구와 눈이 팅팅 부은 상태로 아침 식사를 하며 첫 인사를 건넬 생각하니 괜히 민망해졌다.


A가 소개시켜준다는 맛잘알 친구는 타이난에서 약 40분 떨어진 가오슝 외곽 도시에 산다고 했다. 이제부터 이 친구의 이름을 B라고 하겠다. 원래 타이베이에서 대학, 직장 생활을 하다가 코로나로 인해 휴직. 고향에 내려와 머무르는데 정작 같이 놀 고향 친구들이 없어 외로웠던 찰나에 대학 동기였던 A가 타이난으로 이사와서 무척 반가웠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매 주 주말마다 만나 점심먹고 *카페가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이 둘은 한국어학과를 전공했고 한국 유학 생활을 했다보니 한국식 문화가 몸에 베인 듯 했다.)

플라스틱 백 규제로 인해 요샌 이렇게 테이크아웃용 전용끈을 소지해 들고다닌다.

원래 대만에선 우리나라만큼 밥 먹고 카페가는 문화가 보편화되진 않았다. 물론 최근엔 점점 한국 카페와 비슷한 가게가 점차 생겨나고 있지만, 트렌드 좇는 걸 좋아하는 인싸들이 많이 가는 느낌이랄까? 우리나라처럼 매일 가기 보단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가는 공간이며, 음료 가격도 꽤 비싼 편에 속한다. 밥먹고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떠는 것보단, 식사 전후와 상관없이 밀크티를 테이크아웃해 손에 걸고 하루종일 움직이면서 마시는 게 이들 문화에 가깝다.



타이난스러운 아침 식사를 소개할게

타이난스러운 아침 식사를 소개해준다며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다름아닌 패스트 푸드점이었다. "딴딴버거(丹丹汉堡)"란 이름을 가진 이 곳은 타이난과 가오슝 등 대만 남부 일대에만 있는 패스트 푸드 프랜차이즈점이란다. 아무리 그래도 아침 식사를 먹자는데 패스트 푸드점이라니.


아니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아침 10시도 안된 이 시각에 이 패스트 푸드점에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는 것이다. 처음엔 자리가 하나도 없어서 A와 서로 흩어져 빨리 먹고 자리를 비울 것 같은 테이블 근처를 괜히 서성였다. B는 그 사이에 주문을 하기 위해 줄을 섰는데 거의 15분을 기다린 끝에 겨우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와, 원래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이야?"

"오늘은 주말이라 더 많은 편인거 같아. 약간 브런치 개념? 평일엔 가족들이 다 각자 밖에서 아침 사먹는데 주말엔 다같이 나와서 딴딴에서 아침 먹는 경우가 많아"

딴딴버거 아침 메뉴판

메뉴판을 보는데 뭔가 이상하다. 버거와 감자튀김, 콜라 세트로 구성되어야 할 세트 메뉴에 정작 감자튀김이 보이지 않는다. 감자튀김이 있어야 할 자리엔 커다란 죽같은 게 있었다. A와 B가 나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었던 아침식사는 바로 대만 패스트푸드점 세트메뉴에 포함된 '미엔씨엔 껑面线焿'이라고 불리는 죽같은 국수였다.

패스트푸드점에 아침 먹으러 온 이유

우린 각각 다른 맛의 미엔씨엔 껑이 포함된 세트 메뉴 2개를 시켰다. 1개는 닭고기튀김이 들어갔고, 다른 1개는 돼지 고기 튀김이 들어갔다. 세 사람이었지만 난 아침부터 햄버거를 먹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이 두 사람에게 햄버거를 양보했다. 나는 서로 다른 두가지 미엔씨엔 껑을 간단히 맛만 보려고 했는데 A와 B는 자기네들은 평소에 자주 먹는 거니까 나보고 이 2개를 다 먹으라고 밀어주었다. 일단 사이드라고 하기엔 양이 많았기 때문에 차라리 햄버거와 이 죽같은 국수 모두 메인 메뉴라고 하는 게 맞을 거 같았다. 엉겁결에 난 두 죽통(?)을 나란히 두고 번갈아 가며 먹게 됐다.

국수지만 손가락 1~2마디 길이로 얇게 잘린 면이 울면처럼 걸죽한 국물에 가득 들어간 모양이다. 따라서 젓가락이 아닌 숟가락으로 떠먹는 형태이다. 국물의 걸죽함은 흡사 탕수육 소스의 그것과 닮았는데, 모르고 보면 조금 어두운 빛깔의 탕수육 소스로 착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대만에서 곱창 국수를 먹어본 적이 있다면 그와 비슷한 재질이라고 보면 될 거 같다. 향이 강한 걸죽한 국물은 고수의 산뜻한 향과 잘 어우러진다. 고수를 못먹는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이 미엔씨엔 껑의 국물은 고수와 함께 어우러져야 비로소 완성된 맛을 자랑한다. 만약 고수를 빼고 먹는다면, 몇 숟갈 먹다가 느끼해서 금새 질릴 수 있다. 그 느끼함을 고수가 잡아주면서 독특한 풍미를 만든다.


국수 안에 들어간 닭고기 튀김은 부먹 탕수육처럼 소스를 잔뜩 머금어 눅눅한 상태였는데 난 이 후추 향신료 국물이 잔뜩 벤 닭고기 치킨이 꽤 마음에 들었다.


닭고기가 든 미엔씨엔 껑과 돼지고기가 들어간 미엔씨엔 껑은 국물 베이스는 비슷해 보이나 맛을 보면 고기에 따라 그 후추향과 맛의 농도가 확연하게 다르다. 둘다 이색적으로 맛있어서 번갈아 먹다보니 거의 2인분에 해당하는 국수를 다 비웠는데 아침부터 과식으로 스타트를 끊어버렸다.


먹잘알 B 따라 오늘 하루 종일 먹을 것이 산더미인데 벌써부터 배를 이렇게 채워버리다니. 영락없는 아마추어 푸파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제 시작이라며, A와 B는 다음 코스로 나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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