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 Dec 30. 2022

어서와, 대만식 집밥은 처음이지?

04. 오랜만에 만난 대만, 타이난과 집밥

대만 남자도 가정적일까?

예능의 영향으로 중국 남자가 가정적이다라는 인식은 우리나라에도 널리 퍼진 것 같다. 물론 중국 대륙은 워낙 땅덩어리가 커서, 북방 지역 출신이냐, 남방 지역 출신이냐에 따라 요리와 가사를 남자가 분담하는 비율이 차이가 나는 편이다.


쉽게 일반화할 순 없지만, 대개 중국 북방 출신은 상대적으로 가부장적이고 마초 기질이 있어 남자가 요리와 가사를 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상하고 가정적인 중국 남성 이미지'는 북방보다는 오히려 상하이를 포함한 남방에서 많이 찾을 수 있다. 물론, 한 때 가정적인 중국남자의 표본이었던 우효광은 중국 북쪽 랴오닝성 출신이니, 이 역시 결국 사바사인 셈이다.


유교 탄생 국가임에도 우리나라보다 일찍 남녀평등과 동등한 가사분담이 정착한 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중국의 흑역사라고 불리는 문화 대혁명을 빼놓을 수 없다. 일명, '중국의 흑역사'라고도 불리는 문화 대혁명은 1966년부터 10년간의 대혼란을 가리킨다. "옛 것은 모조리 말살시킨다"라는 모토로 시대를 많은 전통 문화재들과 서적 등이 손실 파괴되었고, 지식인들을 죄다 옥에 가두거나 처형시키는 퇴행기였다. 이때 유교 사상을 기반으로 한 가부장 문화, 남존여비 사상 역시 지움의 대상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로 인해 여성들의 지위는 높아졌다. 이후, 여성들은 1980년대 개혁개방을 맞이하며 일을 하기 시작했다. 경제활동을 함께 남자와 함께 분담하니 가정에서의 역할 역시 분담하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주방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문득 대만의 경우는 어떨까? 궁금해졌다. 대만의 원래 뿌리는 중국에서 왔지만, 문화 대혁명 훨씬 이전부터 중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다. 오히려 일본 식민지 지배로 중국보다 일본의 영향을 더 받았다. 일본은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가부장 문화 사상이 강하면 강했지, 결코 약하진 않았을 터인데. 대만에서의 가사분담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중국남자처럼 가정적일까? 이 의문은 최근 결혼한 대만인 부부 집에서 이틀 머무르면서 어느 정도 풀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만에서도 남녀가 가사를 동등하게 부담하는 편이다. 그리고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대만남자 역시 대체로 가정적이고 다정하다. 일찍이 맞벌이와 남녀평등 의식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만은 성평등 아시아 1위 국가이기도 하다)


오느라 고생했어, 오늘 내 남편이 다 요리해줄 거야

내가 대만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진짜????" 하며 기뻐해준 대만 친구가 있다. 그녀를 A라고 칭하겠다. A는 타이중 출신으로, 1년 전에 결혼을 해 현재 타이난에 살고 있다. 손님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으니, 숙소 같은 거 잡지 말고 자기 집에서 머물다 가라는 고마운 제안을 했다.


타이난에는 오후 4시쯤 도착했다. A와 그 남편은 역까지 마중 나왔고, 나는 처음 보는 친구의 남편을 위해 오직 중국어로만 이야기를 했다. (A는 한국어를 매우 잘하는 편이다. 나의 중국어 실력보다 A의 한국어 실력이 월등하다) 이 부부는 나에게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었다.


 - 타이난은 아무거나 먹어도 다 맛있다고 해서 딱히 먹고 싶은 음식을 안 정해왔어.

 - 그럼 우리 장 봐서 집에서 해 먹을까? 내 남편이 요리할 거야

 - 아, 너무 좋지! 나 대만 집밥은 처음이야!


예전 대만 여행을 할 때도 다른 대만 친구들 집에 머무른 적이 있었는데 집밥을 먹어 본 기억은 없다. 대만은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국가처럼 집에 주방이 없어 외식하거나, 밖에서 음식을 사 와서 먹는 문화가 발달했다. 이는 곧, 야시장과 길거리 음식 문화가 발달한 이유인데, 매일 저녁 퇴근 혹은 하루를 마치고, 야시장이나 길거리 노점상에서 저녁거리를 사는 게 흔한 대만 사람들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A가 제안한 대만 집밥은 그 어느 식당, 맛집들보다도 더 솔깃한 제안일 수밖에.


저녁 공판장에서 장을 보고

우리는 곧장 저녁에만 여는 시장으로 향했다. 흔히 생각하는 시장보단 공판장 개념에 조금 더 가까운데, 커다란 건물 내 마치 도매 시장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농수축산물을 소매로 판매한다. 나는 정작 한국에선 공판장에 가본 경험이 거의 없는데, 오히려 중국에서 생활할 때 과일을 대형마트보다 훨씬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주말마다 공판장에 가서 과일을 사곤 했다. 그래서 대만의 공판장 풍경도 꽤 익숙했다.

장보기를 주도하는 A의 남편

시장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다양한 종류의 채소와 청과류, 생선, 육류 등이 구획으로 나뉘어 대형마트처럼 효율적인 동선으로 원하는 것을 구매할 수 있었다. 시장 특유의 활기와 정, 싱싱함은 여전히 유지한 채로.

처음 보거나 경이로운 사이즈(?)의 야채들
축산 고기 코너

A의 남편은 다양한 야채를 가리키며 한국에도 이게 있는지, 없는지를 물었다. A와 나는 처음 보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대답했고 한국에 있다고 하면 과감하게 패스, 한국에 없는 거라고 하면 "그럼 한 번 맛을 봐야지" 하면서 장바구니에 넣었다.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은 타이난 외곽 도시였다. 원래는 아무것도 없는 농촌이었는데 이곳에 대만 반도체 TSMC 지방 지사가 생기면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신도시가 되어 최근엔 신축 건물들이 계속해서 들어서고 있다고 한다.


A의 신혼집은 4층짜리 맨션들이 모여있는 단지에 위치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우리가 아는 그 맨션이 아니라 일명 협소주택(혹은 땅콩집) 개념의 건물 5~6채가 나란히 서있고 그 맞은 편에도 똑같은 모양의 건물들이 마주하고 있었다.

노란색  표시한 구간이 A의 집 (1층 차고부터 4층까지)

각 건물동의 1층 차고부터 4층 다락방까지 한 가구가 쓴다. 1층 차고엔 대개 자동차 1대와 스쿠터 2대 (타이난에선 스쿠터는 필수 교통수단이다)가 주차되어 있고, 신발장이 놓여있다. 여기서 신발을 갈아 신고 현관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주방과 거실이 나오고, 3층엔 안방, 4층엔 손님방이 있는 형태였다. 우리나라 빌라, 아파트 가구 단위를 셀 때 1층에서 위로 올라가는 반면, 이곳에선 왼쪽에서 오른쪽, 혹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건물 동별로 센다.


타이베이보다 비교적 여유 있는 땅이 많은 타이난에서 흔한 주택 형태냐고 물었는데, A는 타이베이에서 이같은 집에 살려면 얼마나 들지, 감히 상상도 못할 거라고 답을 대신했다.


어서 와 대만식 집밥은 처음이지?


우린 2층에 장본 것을 풀었고, A는 이제 겨우 6개월 된 아기를 재우기 시작했다. 그 사이 친구 남편은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원래 남편이 주로 요리를 하냐고 물었는데, A는 원래 돌아가면서 했는데 최근 A가 아이 돌보는 것에 조금 더 집중하는 대신, 요리는 남편이 더 자주하는 것으로 협의했다고 한다.


요리는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식탁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미창과 대만식 소시지마늘 볶음

첫 번째로 올라온 것은 거의 어른 주먹 크기의 미창(米肠)과 대만식 소시지마늘 볶음이었다. 미창은 우리나라의 순대와 비슷한데 대창 안에 찹쌀밥과 고기, 콩 등을 넣어 만든 것이다. 물론 이는 A의 남편이 직접 만든 게 아니라, 최근에 사놓고 보관하던 것을 아까 "미창을 먹어봤냐"라는 질문을 하면서 그가 데워서 내놓은 것이었다.

미창 - 약밥의 식감에 대창의 맛을 더한 맛(?)

찹쌀밥이 주먹밥 수준으로 많이 들어가 있어서 미창 하나만 먹어도 거의 한 끼 식사가 될 정도다. 식감은 우리나라 연잎밥과 비슷한데 연잎 대신 대창 안에 넣은 셈. 대창 특유의 누린내가 밥에 진하게 베여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에겐 호불호가 갈릴 거 같은 맛이다. 물론, 내장 잡내 따위 신경을 크게 쓰지 않는 나에겐 극호.


대만식 소시지는 한국에서 흔히 먹는 소시지와 다르다. 육즙 가득하고 촉촉한 소시지라기 보단, 오히려 육포에 가까운 맛이다. 특유의 향이 있고 달끈한 맛이 있는 것이 특징인데, 소시지 같은 가공육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대만 가면 소시지는 꼭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 마늘이랑 함께 볶아 먹는 게 가장 보편적으로 먹는 방법. (이에 대해선 백종원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타이베이편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다. 소시지와 마늘을 손에 쥐고 걸으며 먹던 백 선생님...)

두 번째로 올라온 것은 피단과 두부였다. 아까 장 볼 때 "피단도 먹어봤냐"라는 질문에 "당연하지, 나 피단 먹을 수 있어!"란 말에 오히려 A의 남편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흠, 테스트해 봐야겠어"하면서 구매한 그 피단이었다.


피단은 소금과 석회 등으로 삭힌 오리알 혹은 계란을 가리키는데 노른자는 검게 변하고, 흰자 부분은 회색 투명하게 변하는 것이 특징이다. 세계 10대 혐오 음식으로도 꼽히기도 했다. 사실 그렇게까지 혐오스러운 음식이란 생각은 안 드는데 단순 발효시켰다는 이유로 '썩은 오리알'이란 인식이 서양인들에게 강렬하게 남은 탓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피단 냄새가 고약하다고 하는데, 난 발효 냄새에 둔감한 덕(?)에 피단도 거부감 없이 잘 먹는 편이었다. 피단 두부 역시 문제없이 클리어.


대만의 흔한 집밥

이윽고 건두부버섯볶음, 양배추 볶음, 관자버터구이 등 대만의 흔한 집반찬 st까지 다 올라오고 난 후에야 비로소 식사를 시작했다. 우리나라처럼 쌀밥에 반찬, 요리를 올려 먹는 문화는 비슷하다. A의 남편이 해 준 요리들은 훌륭했다. 단순 예의를 차리기 위한 소리가 아니라, 정말 내 입맛에 잘 맞아서 배가 부른 데도 계속해서 젓가락이 갔다.

다 쓴 술병(?)에 채운 담금주(술병과 담금주는 무관하다)

식사 막바지에 친구 남편은 혹시 술을 하냐고 넌지시 물었고 당연히 한다고 대답하자, 매우 기뻐하며 회사 동료가 담갔다는 매실주를 꺼내왔다. 우리나라 과일 담금주처럼, 대만에서도 흔히 고량주에 과일 등을 담가 먹는다. 고량주는 독해서 잘 안 마시긴 하지만, 매실 고량주는 꽤 먹을 만했다. 소주는 못 먹어도 매화주는 잘 마시는 원리.


식사 후 매실 고량주로 마무리를 한 후 친구와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힘겹게(?) 숨을 쉬고 있는데 친구가 제안, 아니 통보를 했다. 순간 나는 내가 중국어를 잘못 알아들었나 귀를 의심했다. 내가 어?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친구가 한국어로 다시 말해주었다.


- 우리 30분쯤 후에 야식을 사러 갈 거야. 밀크티도 함께. 너도 같이 가자.


턱 끝까지 차오를 만큼 저녁을 먹고 난 후, 밤 9시였다. 이 부부는 혹시 내 배를 기어코 터뜨리기로 오늘 작정한 걸까.


이전 03화 두유 잇 취두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