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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Dec 23. 2022

두유 잇 취두부?

03.오랜만에 만난 대만, 타이난과 취두부  

두유 잇 취두부?

중국에서 경험한 검은 취두부

중국의 어지간한 음식을 다 잘 먹는다고 하면, 으레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취두부도 드세요?"


이는 마치 한국 사람들이 외국 사람들에게 "두유 잇 청국장?"과 같은 질문과 비슷하다. 진정 그 나라 사람들의 입맛을 가졌다고 판단하는 척도가 냄새가 고약한 음식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객관적으로 해당 음식의 냄새가 고약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현지인들이 그 냄새를 정겹고 구수하며, 심지어 향긋하다고 느끼기까지엔 그 나라에 수십 년간 살면서 축적한 경험과 정서를 기반으로 한다.


즉, 고약한 냄새의 자국 음식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우리'와 '이방인'을 가를 수 있는 일종의 마지노선이자 현지인만의 유대감을 형성한다. 그래서 외국인이 우리만 향기롭다고 생각한 그 악취를 똑같이 좋아하고, 그를 즐기면 당황을 넘어서 경외감까지 느끼게 된다. "아니, 외국인인데 이걸 먹는다고?"


익숙해지기까지 시간과 노력을 거쳐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현지인의 영역을 어느 날 누가 봐도 이방인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중간 과정 없이 자연스레 동화된다면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현지인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만약 눈앞에 있는 외국인이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예상과 다르게 냄새가 고약한 음식을 잘 먹는 다면, 나름 여러 가지 가설을 내려볼 수 있다.


첫째, 이 외국인은 이보다 더 고약한 음식을 그 전에도 많이 접해봤다.

둘째, 상대방을 위해 맛이 없어도 애써 맛있게 먹는 척을 한다.

셋째, 감각이 둔해서 이게 고약한 지 모르는 걸 수도.


설마 셋째인 사람이 있겠냐고? 그게 바로 나였다.


나의 첫 취두부 경험

약 10년 전, 아는 중국어라곤 여느 한국인처럼 "니하오마" "하오하오" 밖에 몰랐지만 어린 나이의 패기와 대담함으로 대만을 한 바퀴 도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 당시엔 대만에서 맛보는 모든 음식들이 새로웠기 때문에 "이게 맛있는 건가, 맛이 없는 건가" 판단은 불가했다. 애당초 고기도 많이 먹어본 사람들이 그 맛을 안다고 하지 않나. 그저, 혀와 뇌를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노출시키며 무슨 맛인지에 대한 데이터를 쌓고 있었다. 새로운 음식은 처음 방문한 여행지처럼, 하나의 경험이었다.

2012년에 찍은 사진. 왜 이런 보정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이것도 겨우 찾았다.

영어로 야시장에서 음식 주문하려고 애쓰는 어리바리한 나를 도와준 대만 사람을 만났다. 마침 친구와 함께 야시장에서 먹을거리를 사러 온 그는 영어를 할 수 있었는데, 이 불쌍한 외국인이 굶어 죽는 것을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에, 야시장 투어를 시켜주겠다고 했다. 모든 음식들이 새로웠던 나에게 일일이 이건 진짜 개구리알이 아니다(이름 자체가 개구리알인 디저트가 있다), 저건 우유를 굳힌 거다 등등 설명을 해주며 야시장 가이드를 제대로 해주었는데, 그러다가 야시장 내 허름한 테이블에 앉게 됐다. 하나의 커다란 테이블에 여러 사람들이 합석을 해서 먹어야 하는 구조였다. 내 팔꿈치가 닿는 옆자리엔 모르는 여자가 식사를 하고 있었고 내 맞은편엔 이 외국인을 흥미롭게 쳐다보는 착한 두 대만 남자가 있었다.


그와 그 친구는 이것저것 다양한 음식을 시켰다. 야시장에서 간식으로 들고 먹는 음식이 아닌, 식사로 할 수 있는 그런 반찬거리와 나름의 메인 요리류들이다. 중국어를 하나도 못하는 외국인이라면 차마 엄두도 못 낼 난이도 극상의 음식 주문이었다.

2012년에 먹은 그 문제의 취두부 (내 생애 첫 취두부)


그중 하나로 나온 것이 취두부였다. 간장에 조린 듯한 갈색 비스무리한 색상의 두부, 그 위에 삭힌 양배추 등이 올라간 형태였다. 당시에 나는 취두부란 존재를 알지도 못했다. 그들은 으레 그렇듯, 이 어리바리한 외국인이 취두부를 맛보고 보일 재미난 반응을 기대했을 것이다.


두부를 하나 집어 먹었다. 그냥 우리나라의 두부조림과는 조금 다른 맛이긴 한데 나름 그 친구가 표현한 "한국 김치 같은 것"이라고 말한 삭힌 양배추와 식감 밸런스가 좋았다. 우리나라에도 두부김치가 있는데, 여기는 이렇게 먹는구나. 비슷하면서도 다르네 하면서 나름의 맛 평가를 했는데 내 앞에 앉은 이 두 친구들이 오히려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 맛있어요?

- 네, 맛있어요.


사실 맛이 엄청나게 있다기 보단 그냥 먹을 만했고, 그 사람이 사준 거니까 과장해서 맛있다고 표현한 거긴 했다.


-냄새 안 나요?

-아, 네. 옆에 화장실이 있어서 냄새가 좀 나긴 하네요


그 맛에 이 둘은 자지러졌는데, 바로 그 화장실 냄새가 내가 화장실이라고 생각했던 곳(사실은 화장실이 아니었음)에서 나는 게 아니라, 두부에서 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이게 설마 음식에서 나는 냄새는 아니겠지라며 냄새는 철저히 배제하고(?) 미각에만 충실했을 뿐인데 얼떨결에 생애 첫 취두부를 아무렇지 않게 잘 먹는 외국인이 된 것이다. 물론, 남들보다 고약하거나 비린 냄새에 둔감한 것도 한 몫한다.


배불러 죽겠는데 취두부는 먹고 싶어


어찌 됐건, 난 별다른 마찰 없이 취두부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취두부는 나에게 굳이 찾아서 먹는 음식이라기 보단 '먹을 줄 아는 ‘음식이었다.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굳이 취두부를? 그런 음식.


취두부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1)내가 생애 처음으로 경험한 취두부처럼 두부조림처럼 생겼는데 그 위에 삭힌 야채 등이 올라가 있어서 반찬처럼 먹을 수 있는 취두부.

2)새까만 취두부 (튀긴 형태가 있고, 진짜 썩은 것처럼 보이는 반찬 같은 형태가 있다)

3)노란 두부 튀김처럼 생긴 취두부 (초보자들에게 가장 무난한 취두부)

4)국물 취두부 (탕에도 취두부 특유의 고약한 향 등이 베여 있다)


여기서 난 2)번은 중국 대륙에서만 맛보고 대만에선 맛본 적은 없다. 지역마다 선호하는 취두부 종류는 다 다를 것이라 생각이 드는데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이 접하고 본 형태는 3)번이었고, 가장 많이 먹은 것은 3)번과 4)번이었다. 그냥 먹을 만하다고 여겼던 취두부에 푹 빠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타이난에서 오랜만에 만난 대만 친구와 야시장에서 친구 남편의 저녁거리를 사면서였다.

대만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취두부 유형 3)
문제의 국물 취두부4) - 냄새가 강렬해서 존재감이 엄청난 편.

친구는 남편이 취두부를 좋아한다며 3)번과 4)번 형태의 취두부를 샀다. 친구는 대만에서도 이런 국물 취두부가 그리 흔치 않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이 국물 취두부는 간만에 "내가 먹어보지 못한 새로운 맛"이었다. "와, 이게 뭐지? 이 고약한 국물은?" 하면서 계속해서 국물과 두부를 떠먹으면서 혀와 뇌에 학습시켰다. 냄새가 얼마나 강했냐면, 그날 다 먹고 양치를 하고 다음날 일어났는데도 그 특유의 국물 향이 여전히 속에서 느껴질 정도였다.


처음 국물 취두부를 먹은 그날 바로 "와 이거 존맛탱"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로부터 3일 정도 지난날, 저녁 배불리 먹고 숙소에 가서 혼자 쉬고 있었다. 그날은 야시장에서 이것저것 정말 많이 먹은 날이었는데 소화를 시키기 위한 핑계로 맥주를 따던 차였다.

문제의 취두부집


갑자기 숙소에 들어오기 직전에 지나쳤던, 취두부 노점이 눈에 아른거렸다. (취두부는 야식으로 많이 먹어서 보통 밤늦게까지 노점 운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배불러 죽겠는데, 그 취두부 집이 너무 궁금해서 결국 다시 옷을 갈아입고 뛰쳐나갔다. 이곳은 마침 국물 취두부 위주로 취급하는 곳이었는데, 국물맛이 한 3~4가지 정도 있었다. 마침내 앞의 한 남자가 "전화로 마라 취두부 주문했다"며 픽업하고 있었는데 그 말에 홀려 나도 "마라 취두부 주세요"라고 말했다.

한밤 중에 날 뛰쳐나오게 만든 취두부 집

마라 취두부탕의 양은 거의 2인이 먹어도 될 정도로 양이 어마어마했다. 국물이란 사실을 배제하더라도 두부에 선지, 내장 등이 내용물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마라 특유의 향이 강렬함에도, 결코 취두부의 향을 꺾진 못했다. 여전히 취두부 탕의 냄새는 고약하면서 마라로 인해 혀가 아렸다.

문제의 마라 취두부



극강의 고약함과 마라 알싸한 맛이 번갈아가며 펀치를 날리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계속해서 그 국물을 떠먹고 있었다. 마침내 이 국물 취두부는 내 입맛에 맞는 '맛있는 음식'으로 분류된 것이다. 이것이 마라의 위력인 건가. 마라의 맛에 홀린 것인지, 아니면 국물 취두부에 제대로 빠진 것인지에 대해선 다음 대만 방문 시 테스트를 해봐야 할 것 같다.


물론, 이 국물 취두부는 일반 취두부를 못 먹는 사람들이라면 먹기 힘든 난이도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냄새에 민감하신 분들이라면 '도전'을 해야 하는 그런 영역이라는 점은 미리 알려주고 싶다. 그러면서 마음 한켠엔 "그래도 한국인들은 제2의 마라 민족인데, 오히려 입맛에 맞을 수도?"라는 도발 아닌 도발이 스멀스멀. 혹시 모른다. 의외로 이 마라 국물 취두부는 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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