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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Dec 19. 2022

호텔 조식보다 허름한 식당의 아침식사를 기다리는 이유

02.오랜만에 만난 대만 - 가오슝과 아침식사 

2022년 12월 1일~11일, 대만에서 10일 여행하고 돌아왔어요. 레스토랑보단 노포와 길거리 음식 맛보는 것을 더 좋아해요. 


아침식사 거르던 내가 아침식사를 꼬박꼬박 먹게 된 이유  


많은 한국 사람들처럼, 난 20대 후반까지 아침 식사를 자주 거르곤 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잠순이라, 아침을 먹을 시간에 10분이라도 더 잠을 자는 것을 선호했으며 회사 출근 후 이른 점심으로 첫 끼니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가 아침을 꼬박 챙겨먹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은 서른이 되기 직전, 퇴사 후 중국 베이징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였다. 


중국은 아침만 되면 주거 구역을 포함한 학교, 회사 상권 내 아침 식사를 판매하는 노점상과 식당들이 활기를 이룬다. 대부분 중국 사람들은 집에서 아침을 직접 해먹기 보단 사먹는 편이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주요 아침식사는 차이가 있는 편이나 대개 빠오즈라고 부르는 만두류, 샤오롱바오,밀가루 반죽을 튀겨낸 요우탸오(油条)와 두유보단 마시는 두부에 더 가깝다고 본인이 주장하는 또우쟝(豆浆), 넓게 핀 밀가루 반죽 위에 계란과 야채를 포함해 기호에 따라 고기, 소시지 등을 넣고 접어 먹는 지엔삥(煎饼), 완탕 등이 주를 이룬다. 

아침 사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아침 맛집 


이들 노점상이나 식당은 대개 아침 식사 시간에 맞춰서 빨리 문을 열고 오전 10시~11시 이전에 문을 닫거나 철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점심 이후에 가면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당시 어학당 첫 수업은 오전 9시. 매일 오전 7시 30분에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면서 "오늘은 뭐먹지?" 기대하면서 학교로 향했다. 여유로울 땐 앉아서 먹고 갈 수 있는 물만두 한 판을 먹고 가기도 하고, 시간이 없을 땐 주먹만한 고기만두, 야채만두를 각각 1개씩 구매해 손에 들어 한 입씩 먹으면서 교실로 향했다. 


아침 식사를 사는 것부터 어학연수란 생각으로 매일 아침, 다양한 아침 식사를 맛보며 중국어 귀를 열었던 그 때부터 나는 한국에 귀국하고 난 이후에도 아침 먹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졸리지만, 아침 먹기 위해서 일어나야 해 


보통 여행지에선 알람을 맞추지 않는 편이다. 여행에서 만큼은 억지로 일어나기 보단 충분히 자고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에 아점을 먹더라도 천천히 일어난 후 밍기적 밍기적대며 오늘은 뭐하지? 하고 대강 생각해봤다가 씻고 준비하고 나가는 게 보통 내 여행 루틴이다. 


대만도 중국 대륙만큼 아침 식사가 발달한 나라이다. 나에게선 아침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놓치는 것은 그 날 여정의 1/3을 잃어버리는 느낌일 거 같았다.  그래서 이번 10일간 대만 여행에서는 딱 하루를 제외하고, 그 전날 몇시에 잠들던 상관없이 대부분 아침을 먹기 위해 오전 7시~8시 사이 맞춰둔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났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머무른 호텔들 대부분은 조식 포함이 아닌, 체크인시 선택해 추가 결제하는 방식이었다. 대부분 한화로 8천원선에서 1만 6천원 사이로 한국 기준으론 그리 비싸지 않았다. 그럼에도 호텔 조식을 굳이 포함하지 않고 매번 아침 밖을 나간 이유는 호텔 조식에선 맛볼 수 없는 현지인들의 아침 식사 맛집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굳이 아침 식사 맛집을 검색해서 나갈 필요도 없다. 반경 50m내외로 걷다보면 길게 줄 서 있는 식당부터 노점까지 다양하다. 


대략 눈치껏 기웃기웃 거리다가 줄을 선 후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주문하는지 관찰했다. 이런 곳의 아침식사들은 대부분 가격이 한국돈으로 1천 5백원선에서 3,4천원까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다양하다. 가격이 저렴한 대신,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위생 환경이 훌륭한 편은 아니다. 손님들이 떠난 스텐 테이블엔 여전히 음식 자국이 남아 있는 경우가 허다했고, 앉아서 직접 휴지로 테이블을 말없이 슥 닦아야 한다. 

스쿠터타고 와서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즐긴 후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어차피 손님들의 8할은 대부분 여기서 먹고 가기 보단 포장해서 집이나 직장에서 먹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아침 식사 파는 곳 식당에선 테이블은 일종의 보너스 개념이라고 할까? 허름한 테이블에 앉아 다른 손님들은 무엇을 먹는지, 그들은 어떻게 밥을 먹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관찰하는 것도 재밌다. 관광지를 가는 것보다 나에겐 아침식사가 여행의 시작이었다. 아침 식사가 기대 이상 훌륭했을 경우 "오늘 첫 출발이 좋은데?"하며 기분이 한층 더 들뜨게 되고, 아침 먹은 걸 소화시켜 맛있는 점심을 먹기 위해 오전부터 부지런히 걸어 다닌다. 먹고, 걷고 먹고 걷고 하다보니 대만 여행을 하면서 하루 평균 2만보를 꼬박 넘겼다. 


대만의 가장 흔한 아침 식사 - 계란오믈렛 (蛋饼)

대만에 처음 도착한 다음 날, 가장 먼저 접한 아침 식사는 딴빙(蛋饼)이라 불리는 대만식 계란 오믈렛이었다. 숙소 바깥에서 나와 기웃 거리는데 어느 노점 앞 줄이 길어 줄 서보니 딴빙이었다. 중국에서 접한 지엔삥과는 다른 느낌이었는데 전병을 각종 야채, 고기 등이 든 계란물에 부쳐 오믈렛 형태로 부쳐, 계란말이 크기로 잘라준다. 얼핏보면 계란말이인가? 싶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얇아 투명하게 보이는 전병이 단단하게 딴빙을 잡아주고 있다. 이 딴빙에 노점상, 테이블에 놓여 있는 소스 (가게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매콤한 칠리소스 등은 기본으로 갖추고 후추 등을 포함해 2~3개 정도 있다)를 기호에 따라 뿌려 먹는다. 사실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다. 


여기에 난 항상 따뜻한 또우쟝(豆浆)을 곁들여 먹는 편이다. 또우쟝은 우리나라 말로 흔히 두유라고 해석되긴 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두유와는 사뭇 다른 맛이다. 우리나라 두유하면 달콤한 느낌이 강한데 중화권의 또우쟝은 버블티 주문하는 것처럼 당도를 조절할 수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 당도 선택이 불가한 가게도 많다) 난 무설탕이나 설탕 조금 넣어서 먹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무설탕은 초심자(?)의 입장에선 '마시는 두부'란 느낌이 들 수 있고 밍밍해서 별로라고 여길 수 있으므로 처음 먹는 다면 설탕이 조금은 들어간 또우쟝 먹는 것을 추천한다. 

대만식 오믈렛 (딴삥) + 또우쟝 + 치즈 토스트

딴빙과 또우쟝만으론 조금 허전할 수 있어서, 그 날 상황에 따라 추가 메뉴를 시켜 먹곤 한다. 대개 많은 아침 식사를 파는 곳은 다양한 메뉴를 팔고 있기 때문에 선택사항이 많다. 대만 남부에 내려가니 유독 '토스트'를 많이 팔길래 치즈 토스트를 주문해보았는데 정말 빵에 슬라이스 치즈 하나만 끼어 나와 웃었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1천원짜리 토스트다) 마침 내가 딴빙을 주문해놓은 터라 이 빵 안에 딴빙을 끼어먹으니 딱 맞았다. 대만과 동남아 등에서 흔히 내놓는 토스트 식빵은 우리나라 식빵과 다르게 약간의 달달함과 감칠맛이 있다. 크기도 손바닥만한 정도로 작은 편이라, 사실 별다른 거 없이 식빵만 먹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먹자마자 눈 번쩍 뜨게 만들었던 가오슝 아침식사 


매일 매일 부지런하게 아침 식사를 먹었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아침 식사가 있다. 숙소에서 걸어서 2분 거리였는데 전날 구글맵으로 인근 검색하다가 아침식사로 평가가 엄청 좋은 곳이어서 "아 내일은 여기 먹을까?"하고 찜해놓았던 곳이었다. 오전 4시반에 문을 열어 오전 10시까지 장사한다는 곳이라고 하는데 오전 7시~9시엔 줄이 엄청 길다고 한다. 

오전 9시 넘어서 갔지만 여전히 줄이 긴 아침 식사 맛집 
가오슝에서 만난 대만 아침 식사 - 탕바오 汤包

이 곳의 유명한 아침식사 메뉴는 탕바오(汤包)였다. 일반 고기만두처럼 보이는데 육즙이 있는 샤오롱바오처럼 속에는 고기와 육즙이 가득하게 나온다. 다른 메뉴도 파는데 이 탕바오가 워낙 인기가 많아서 탕바오 사는 줄이 따로 있을 정도다. 가게 바깥에선 계속에서 만두를 쪄내는 찜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탕바오는 생각보다 주먹 크기 이상으로 컸고, 탕바오 1개를 트레이에 올리고, 앞의 사람들 따라 아침 식사 반찬과 추가 메뉴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 곳은 탕바오 이외에도 다양한 반찬류, 요우탸오, 좁쌀죽 다양한 아침 메뉴를 팔았는데, 내 앞의 3사람들이 연달아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심지어 이들은 탕바오를 올리지도 않았다) 그 메뉴는 바로 참깨빵(烧饼 샤오삥)을 반으로 갈라 요우탸오를 반으로 잘라 끼어먹는 것이었다. 참깨빵과 요우탸오는 각각 따로 먹어보긴 했으나 저렇게 샌드위치처럼 끼워 먹는 것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앞 사람들이 주문한 그대로 달라고 하고 마지막 또우쟝까지. 평소보다 더 푸짐한 아침 식사를 완성했다. 

가오슝 아침식사 - 샤오삥+요우탸오, 탕바오, 또우쟝 

사실 중국에서도 참깨빵 (샤오삥)을 자주 먹어보긴 했으나, 식사빵처럼 별다른 맛이 없는 빵이라 큰 인상은 없는 그런 빵이다. 게다가 요우탸오는 그냥 밀가루를 기름에 튀긴 기름 스틱인데 이걸 빵 사이에 끼웠는데 기존 내 지식으로만 보면 그리 맛있을 거 같은 조합은 아니었다. 요우탸오는 우리나라 꽈배기와 달리 달달한 맛도 없고 정말 말그대로 간을 안하고 튀긴 밀가루 튀김이라고 보면 된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맛이 훌륭해서 눈이 커진 맛 

큰 기대 없이 참깨빵에 낀 요우탸오를 크게 한 입 베어먹는 순간 눈에 휘둥그레졌다. "아, 뭐지. 이게 왜 맛있지?" 어리둥절. 심지어 탕바오는 식기 전에 먹어야 하는데 그 사실을 잊을 정도로 방금 맛 본 참깨방 + 요우탸오 샌드위치(?)의 의외의 맛있음에 당황스러웠다. 재빨리 또우쟝을 한 모금 들이켰다. (원래 요우탸오는 또우쟝과 최고의 궁합을 자랑한다) 다시 한 번 한 모금 베어 먹었다. 일단 빵 자체가 맛있다. 


내가 대륙에서 먹었던 퍽퍽한 샤오삥이 아니라 방금 막 구운 빵인데다가 두껍지가 않다. 부드러운 빵 안에 바삭바삭과 눅눅함 사이의 요우탸오가 들어가 기름기를 더해주면서 고소함이 배가 된다. 여기에 설탕 조금 가미한 따뜻한 요우탸오까지 먹으니 고소함+살짝의 단 맛+튀김의 기름기가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었다. 


탕바오가 유명한 집인데 왜 아까 내 앞에 서있던 세 사람은 나란히 탕바오는 제껴버리고 이 참깨빵에 낀 요우탸오를 주문했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물론 탕바오도 훌륭했다. 커다란 고기만두를 베어 먹는 순간 츠르릅 흘러나오는 육즙, 맛이 풍부해서 내가 중국 어학연수 시절 줄서서 먹었던 만두 아침 맛집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탕바오는 다른 곳에서도 맛볼 수 있는 "맛있는 만두"였다면, 샤오삥에 낀 요우탸오는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별 거 이상의 맛을 내는, 게다가 아침 한정으로만 맛볼 수 있는 별미였다. 


이 곳 구글 현지인 리뷰 중 하나가 "여기가 너무 유명해져서 매일 줄서서 먹는 것이 현지인으로서는 불만. 하지만 어쩔 수 없다"가 있었는데 그 말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입이 즐거운 아침을 열어갈 수 있다면, 매일 아침 줄서서 먹는 번거로움 정도는 감내할만한 것이 아닐까. 우리집 앞에 이 아침 식사를 하는 곳이 있다면 나 역시 거의 매일 들락날락 거리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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