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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Dec 15. 2022

생일날 아리산을 올라간 이유는

오랜만에 만난 대만 01. 아리산과 칠면조 고기덮밥 

나는 대만과 인연이 꽤 깊은 편이다. 


01. 지금으로 부터 10년 전, 아직 꽃보다 할배로 대만이 여행지로 부상하기 전에 운좋게 대학생으로 '대만 청년 여행자'로 선정되어 대만 관광청 지원으로 대만 환도 여행 (대만 한바퀴 도는 여행)을 했다. 당시엔 중국어를 1도 모르는 상태인데다가 대만 여행 정보가 지금부터 풍부하지 않아서 (심지어 예스진지란 말도 없었다) 흔한 대만 여행 가이드북 하나 들고 떠난 여행이었고, 어린 나이의 패기로 "히치하이킹으로 대만 한바퀴" 여행 미션을 수행했다. 


02. 졸업 후 첫 커리어를 대만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스타트업 창립 멤버로 시작했다. 이 때 대만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대만 문화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03. 퇴사 후 첫 여행 역시 대만이었다. 당시엔 타이베이에만 머물렀는데, 꽃보다 할배 방영 이후 대만이 한국 여행자 친화적인 여행지가 됐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04.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대만에 다시 가야겠단 생각을 했다. 중국어를 못했을 때 경험한 대만과 중국어를 할 줄 알고 난 후 경험하게 될 대만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2022년 12월 1일~11일, 대만에서 10일 여행하고 돌아온 후, 대만 여행기를 브런치를 통해 연재해보려고 한다. 





생일 주간엔 혼자 여행하기에 '등산'이 더해졌다. 

대만으로 가는 하늘길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12월 초 대만 비행기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12월엔 내 생일이 있기 때문에 항상 혼자 어디론가 일주일 여행을 떠나는 게 내 리츄얼이었다. 코로나 이전엔 12월 홍콩 1주일 여행, 미얀마 1주일 여행 등 매번 한 국가에 1주일 머무르는 생일 여행을 했다. 


나에겐 새해를 맞이하는 것보다 생일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는 특이하게도 전국민이 1월 1일 동시에 한 살을 먹는 시스템인데, 12월에 태어난 나는 이게 꽤 억울했다. 그래서 나는 생일에 정말 내가 한 살 더 성숙해지는 분기점으로 삼아,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것을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여행을 한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터진 그 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제주도 한라산을 오르고 싶어졌다. 새해엔 보통 해돋이를 보는 것처럼, 난 내 생일에 뜨는 해를 보며 한 살 먹고 싶달까. 생일 전날, 제주에 도착했을 땐 눈이 펑펑 내렸고 아이젠을 급히 빌려 생일 당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한라산으로 올랐다. 

2020년 12월 한라산 백록담 

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찬 눈보라가 맞이한 백록담이었지만, 여전히 그 날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생일날, 친구들이랑 술 마시고 토할 정도로 마셔대던 20대와 달리, 깨끗한 정신으로 새로움을 주도적으로 맞이하는 것. 그래서 나의 생일 때 여행이란 리추얼에 '등산' 키워드가 합쳐졌다. 그러다보니 생일 대만 여행을 결심하자마자 떠오른 건 '아리산 일출 등산'이었다. 




아리산 등산 후 칠면조 고기 덮밥 먹으러 가야겠다는 결심 

아리산은 대만 3대 명산 중 하나로, 일출 운해 장관이 특히 유명한 산이다. 대체로 온난한 대만에서 서늘한 기후로 명차가 나오는 차 재배지로도 유명하다. 사실 아리산은 10년 전 대만을 첫 방문했을 때 그 문턱까지 갔지만 올라가진 못했던 곳이다. 


아리산에 가기 위해선 자이(嘉義)란 도시를 거쳐야 하는데, 대만 일주 여행을 할 때 '자이'에서 하루를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아리산에 가진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 기억 나지 않았는데 아마 그 땐 20대 초반, 아직까지 등산에 관심이 없었던 나이인데다가 기간과 예산 문제로 그러지 않았나 싶다. 혹은, 이후 방문할 나를 위해 미리 남겨놓기 위함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 '자이'란 도시 역시 내가 아리산에 가야겠다라고 다짐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푸드 다큐 중 '스트리트 푸드 아시아(Street food Asia)'가 있다. 서울을 포함한 방콕, 도쿄 등 아시아의 길거리 음식 초점으로 한 것인데 대만은 '타이베이'도, '타이난*'도 아닌 '자이'였다. 


*타이난은 대만의 미식을 대표하는 곳. 한국에서 먹방 여행을 하려면 남도로 가듯, 대만에서도 타이난으로 향한다.

다큐를 보기 전까지 '자이'는 그저 아리산을 위한 길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산간 지형 등으로 인해 자이는 오히려 외부로부터 영향을 덜 받으면서 고유 문화와 음식 등을 계승하고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이는 중국어보다 '대만어'를 더 많이 쓰는, 대만에서도 실제 대만 원주민 비율이 많은 곳이다. 


중국어와 대만어는 다른 언어이다. 장제스가 중국 대륙에서 대만 땅을 밟기 이전 대만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이 쓰는 말이 대만어이며, 사투리 수준이 아닌, 발음과 표기 체계 등이 아예 다르다. 대만에 사는 젊은 사람들 중에서도 대만어를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넷플릭스에선 자이의 야시장을 보여주었는데, 그 곳에서 메인 음식으로 나온 것이 바로 칠면조 고기 덮밥이었다. 자이에서 나고 자란 한 여성이 타이베이에서 대학 공부를 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칠면조 고기 덮밥 장사하는 이야기가 주된 골자였다. 화려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약 30분간 다큐를 보면서 그 덮밥을 꼭 먹어보고 싶다란 생각을 했다. 




대학생 때 스트레스 받으면 스쿠터 타고 아리산으로 질주했어 

아리산 일출을 보기 위한 방법은 두가지가 있었다. 


첫번째로 아리산 삼림열차 역에서부터 직접 등산하는 방법 

두번째로 아리산 삼림열차 일출 기차를 타고 올라가 일출을 보는 방법 


사실 첫번째 방법은 사전 조사를 하는데 그리 많은 정보가 나와 있지 않았다. 대부분 아리산 삼림열차 일출 기차를 타고 올라가 일출을 감상하고 그 기차를 타고 그대로 내려오거나, 걸어서 내려오는 듯 했다. 일단 나 역시 후자의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예전 중국에서 혼자 호도협 트레킹하다가 거의 조난 당했던 기억이 있어서 껌껌한 새벽에 혼자서 아리산을 오르는 것이 꺼려졌던 것도 있다. 


아리산 삼림열차 출발 시간은 매일 전날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일출 시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데 이 날은 오전 5시 20분이었다. 일출 시간은 6시 45분. 열차를 타고 일출 포인트까지 도달하는데 약 20분이라고 하니, 올라가서도 약 1시간 정도는 일출을 보기 위해 대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만 아리산 새벽 3시에 찍은 밤하늘의 별 

일단 전날 타이베이에서 심야 버스를 타고 아리산 삼림열차 역에는 오전 3시에 도착했다. 밤 하늘 별이 총총총. 원래 별이 쏟아질 거 같은 밤하늘도 카메라엔 안담기는데, 요샌 폰 카메라가 발달한 건지, 아니면 여기가 정말 별이 많아서 찍힌 건지 알 수 없지만 하늘의 별이 조금이나마 사진에 담겼다. 


기차를 기다리며 이것저것 앞으로의 대만 여행 루트를 대략적으로 짜다보니 시간은 훌쩍 지나갔고 열차를 탔다. 오전 3시에 도착했을 땐 역내 약 20여명 사람들이 있었는데 기차 탈 시간 되니 거의 80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외국인 여행객들도 있었지만 대만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이후 만난 대만 친구에게 물으니 대만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다 아리산 일출 보러 가본다고 한다. 자신은 어렸을 적에 가족들과, 타이난 출신 남편은 대학생 때 심야에 스트레스 받아 홧김에 스쿠터 타고 아리산으로 향했다고. 이 이야기를 하면서 "타이난 사람들은 참 순수해. 타이베이나 한국 사람들이었다면 스트레스 받으면 술 먹으러 가지, 누가 스쿠터 타고 아리산 가냐고" 하면서 친구와 함게 깔깔 거렸다. 




살면서 본 가장 기묘했던 일출 

아리산 일출은 엄밀히 따지자면, 아리산에서 바라보는 옥산(玉山) 일출이다. 아리산을 마주하는 옥산은 동아시아 최고봉 (3,950m)인데, 이 옥산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조금 당황스러웠던 것은 보통 해돋이를 본다고 하면 수평선이나 나보다 시선이 낮은 쪽을 향해 지켜보는 거라 생각했는데 여기에선 내가 서있는 곳보다 더 높은 곳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오전 5시쯤 아리산 
주변이 다 밝아졌는데 여전히 해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 

그래서 주변이 정말 환해지고 다 밝아졌는데 여전히 해가 나오지 않은 독특한 상황을 경험했다. 나는 오히려 이미 지금 해가 다 떴는데 우리가 놓친건가 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 그러다가 사람들이 "오오"하면서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고 저 높은 옥산 위로 해가 갑자기 쏙하고 얼굴을 내밀더니 엄청난 빛을 발하며 산 위로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일어나 어안이 벙벙했는데 그 와중에 햇빛이 쏘는 광선이 너무나 강렬해서 해의 형상을 눈 부셔서 보기가 힘들 정도. 카메라 비디오 녹화 버튼만 누른 채로 나는 손을 눈 위에 올려 어렴풋이 일출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갑자기 해가 뿅하고 솟아오르기 시작 
순식간에 올라온 해 

살면서 많은 일출을 보아왔지만 기묘하면서 조금은 허탈했달까. 기대했던 운해가 없이 너무나 청명한 하늘이라 아쉬웠지만, 어찌됐건 생일날 아리산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는 것은 성공했다. 정말 한 살 먹었구나. 그런데 그래서 내가 이제 몇 살이더라? (서른이 넘은 후엔 뒷자리를 기억하지 않기로 했다) 



산과 도시를 잇는 완행버스를 타고 

아리산 하산하는 길 

다시 아리산역으로 향하는 삼림 열차 마지막편을 보내고 나는 아리산을 걸어서 내려왔다. 사실 생각보다 길이 잘 닦여 있고, 빙빙 돌아가는 길이 없이 다이렉트로 하산하도록 되어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약 2시간 만에 내려왔다. 영화 속 숲속의 정령들이 나올 거 같은 초록 이끼가 가득한 울창한 숲을 가로 지르며 든 생각은 "얼른 가서 칠면조 고기 덮밥 먹어야지" 


아리산역에서 자이까지 사실 되게 멀다. 자이가 아리산역 문턱이라고 하지만, 자이에서 아리산역까지는 61km. 버스타고 가면 약 2시간 30분이 걸린다. 즉, 나는 새벽 일찍 아리산을 올라 내려온 후에도 약 2시간 30분 이상 가야 겨우 첫 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름 생일 첫 끼인데 아리산 역 근처 편의점에서 배를 채우고 싶진 않았다. 자이의 명물이란 칠면조 고기 덮밥을 먹어야지! 란 생각으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리산에서 자이로 가는 버스는 완행 버스다. 아리산 산간 마을과 나름 도시인 '자이'를 이어주는 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버스를 타고 자이로 내려가는 풍경이 예뻐서 좀처럼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기점에서 종점까지 타고 가는 외국인 여행자의 눈으로, 이 버스에 올라 타고 내리는 대만 사람들과 그 공간의 풍경을 눈에 담기로 했다. 



맛은 소박하지 않았던, 가장 소박했던 생일 첫 끼, 

자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도시였다. 역전에 프랜차이즈 소금커피도 있었고, 글로벌 체인 등이 다 모여있었다. 10년 전 내가 방문했던 자이의 기억이 왜곡당한 걸까. 그 땐 그냥 정말 작은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어찌 됐건 내가 미리 점 찍어둔 칠면조 고기 덮밥 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구글 맵을 폭풍 검색해 찾은 현지인 추천 맛집이었다. 걸어서 약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처음엔 버스를 타고 갈까? 하다가 너무 오랫동안 버스에 갇혀 있어 몸이 좀 쑤셨던 통이라 자이 시내 구경도 할 겸 천천히 걸어갔다. 

마침내 도착한 자이의 '칠면조 고기 덮밥 火鸡肉饭' 현지 맛집 

칠면조 고기 덮밥 집은 대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포 식당 같은 곳이었다. 여기가 맞나? 싶을 때 멀리서 길게 선 줄이 보였다. 정말 작은 가게였는데 포장줄과 안에서 먹고 가는 줄이 따로 서 있었다. 실내 공간은 협소했지만, 테이블은 약 6개 정도 놓여 있었다.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난 운이 좋게 혼자라서 금새 자리가 났는데, 칠면조 고기 덮밥을 포함해 두부와 대만 소시지 반찬을 추가했다. 원래 소시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향신료에 빠지면서 언젠가 대만 소시지 특유의 맛이 좋았다. 그래서 대만 여행을 할 때 종종 소시지를 추가하곤 했다. 

소박한 생일날 첫 끼 - 칠면조 고기 덮밥, 소시지, 두부

생일날 먹는 첫 끼 치곤 다소 소박했지만, 칠면조 고기 덮밥 한 스푼을 떠먹는 순간 정말 생일 축하 받는 기분이었다. 타이베이에 그 전날 도착해서 먹었던 다양한 음식보다 이 칠면조 고기 덮밥이 훨씬 맛있었다. 단순하게 밥 위에 칠면조 고기 얹은 거 아닐까 생각이 들 수 있는데 고기의 육수가 촉촉하게 밥알에 고루 베여 있었고, 칠면조 고기의 부드러움이 입에서 녹았다. 

거기에 추가로 시킨 반찬을 조금씩 베어 먹으면서 나도 모르게 함박 웃음을 지었다. 내가 한국 사람인지 눈치 채지 못한 듯한 옆 테이블 여자가 내 앞에 있는 소스를 건네 달라고 부탁하면서 내 얼굴을 보면서 멈칫하더니 "맛있어요?"라고 되물었다. 


"그럼요, 한국에서 이거 먹으려고 왔는 걸요 当烂了,我为了这碗火鸡肉饭,我从韩国跑来的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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