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을 추억하다.
글을 쓰다 보니 기억들이 딸려 나온다. 내가 내 안에 묻고 질식시킨 기억들이다.
어릴 때 아버지가 좋았다. 그냥 그 느낌이, 아버지라는 형체가 그 자체로 좋았다. 난 겁이 많고 예민하게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그랬고 약했고 영악하고 또 어느 정도 교활했다. 이렇게 글을 써보니 여우과 동물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든든한 아버지가 좋았다. 내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아버지의 모습은 시골에서 농기계 수리 일을 하시면서 기름칠을 하고 용접을 하는 모습들이다. 난 집 안 작업장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기름 냄새도 좋아했다. 간혹 경운기에 들어가는 가솔린 냄새 그리고 퉁퉁퉁 거리며 움직이는 진동, 그리고 이상하게 배기가스 냄새도 좋아했다. 그냥 익숙한 그 모든 것이 좋았다. 그러다 보니 내 어릴 적엔 소독차를 쫓아다니며 그 하얀 연기 속을 질주하는 것이 또 그렇게 좋았다. 지금은 이상한데 당시엔 그런 냄새들 속에 나를 끄는 무엇이 있었다.
아버지의 용접은 늦은 밤에도 계속되는 일이 많았다. 지지직… 사방이 온통 어두워지고 아버지의 용접작업에 우리 집 길 건너편의 작은 동산에 신기한 그림자 형상이 계속 생겨나는 것을 보는 것은 무섭고 가슴 떨리는 일이었지만 그래서 좋았다. 그 신기함에 빨려 들어가 한없이 보고 있다가 눈이 빨갛게 변하는 눈병이 왔고 아픈 눈 때문에 내가 미쳐 날뛰었던 기억도 이제 갑자기 떠오른다. 그 눈병은 며칠은 갔던 것 같고 한번 매운맛을 제대로 당했던 것이다.
아! 매운맛은 하나 더 있다. 아버지는 용접을 하다가 종종 담배를 태우셨고 그러다 피우던 담배를 철재 위에 놓아두고 다시 작업을 하러 가시곤 했다. 그 연기에서 나오는 냄새는 역했고 그래서 큰 호기심은 가지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아버지가 그 담배를 너무 맛있게 피우셨기에 왜 저 냄새나는 걸 저렇게 피우실까? 하는 궁금증이 나를 사로잡았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기회를 엿보는 길고양이처럼 아버지가 피우던 담배를 놓아두고 가기를 기다렸고 그 기회가 왔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담배를 들어 올렸다. 처음에는 그냥 입에 대고 가만히 빨아 보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입안에서 연기도 나지 않고 그냥 조금 쓴 맛뿐, 특별히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입에서 연기가 나지 않는 것이 불만족스러웠던 어린 나는 담배를 겁도 없이 크게 빨아들였고 연기는 기도를 타고 순식간에 내 안 깊숙이 파고 들어왔다. 순간 사래가 들리고 콜록콜록 소리를 내면서 눈물, 콧물을 쏟아내던 내 모습은 정말 우습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순간 세상에서 가장 매운맛을 나는 보아버린 것이고 담배라는 것이 정말 다시 없이 몹쓸 물건이라 것을 그렇게 체득한 것이었다.
이렇게 나에게 아버지는 그 자체로 신기하고 든든한 존재였다. 형제는 많았고 아버지가 표현할 수 있는 애정은 한정이 되어 있었기에 형제들 사이에는 알게 모르게 경쟁이 있었을 것이다. 형제들의 다툼이란 결국 애정을 갈구하는 애착에서 시작되는 것이지만 어린 영혼들에 그런 인식이 있을 리는 만무하다. 시골에서 아버지가 파란 오토바이를 사신 것은 이제 생각해보면 나름의 허세 비슷한 것이었겠지만 그 오토바이에서 아버지 앞에 앉아 기계가 전해주는 진동과 소리의 느낌을 즐기는 것은 정말 행복했다. 늦은 밤 동네 한쪽 편에 있는 소나무 숲길을 아버지가 오토바이로 질주할 때면 그것이 너무 신기한 느낌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어둠은 항상 어린아이를 무섭게 압박한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시골 담배가게에서 담배심부름을 하기 위해 어두운 밤길을 질주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렇게 항상 쪼그라진 심장으로 도망치듯 달려가던 그 길에서 조금 더 떨어진 소나무 숲은 밤이 내린 이후에는 온통 나를 잡아먹을 것 같이 위악스러웠고 그곳을 쳐다보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나는 얼어붙었다. 그런 그 길을 오토바이의 헤드 라이트를 켠 채 질주하는 느낌이란 어린 나에게 하늘을 나는 기분 비슷한 것이었다. 자라면서 오토바이를 타지는 않았지만 자전거를 타는 것을 좋아했고 지금도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느낄 때 심적 안정감이 찾아온다.
차가운 겨울, 일이 없는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개구리를 잡겠다고 나섰던 기억도 떠오른다. 겨울에 개구리가 있나? 모르겠다. 차가운 그날 아버지와 밖에 나가서 무척이나 고생한 기억은 분명히 있다. 그리고 큰 비료 봉투에 개구리를 잡아와서 그것을 튀겼던 것 그리고 징그럽다고 생각하면서 개구리 뒷다리를 하나 힘겹게 먹었던 기억은 나는데 이것이 연결된 기억인지 아니면 편집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기억은 징그럽다는 느낌만 분명할 뿐 다른 느낌은 다 흐릿하다. 이런 기억들은 모두 다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기억들이다.
그리고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 우리 동네에 큰 물난리가 있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집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어린 마음에 무섭다는 생각보다는 들어온 물 위에 신발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이 신기하고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그 신발들을 붙잡아뒀어야 하는데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고 부모님은 어느 순간 윗동네로 피난을 가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 판단하셨다. 집을 나서는데 차가 지나던 앞길은 이미 물이 어른 무릎 이상으로 올라와 있었다. 신발은 떠내려가 신고 나오지 못했고 아버지의 품에 안겨 길 건너편의 앞동산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온통 젖어 오들 거리면서 아버지의 등에 붙어 그 온기를 느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의 따뜻함이 그렇게 간절했던 적이 없던 그 절박함, 난 그렇게 필사적으로 달라붙어서 무언가에 애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섭다는 기분은 아주 오래전에부터 내 안에 깊이 들어와 있었던 너무나 친숙한 감정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내가 따뜻함은 잊은 채 불안만 너무 키워버렸다.
아버지는 감정 표현이 많은 분은 아니었다. 우리 형제들이 자주 싸웠기 때문에 화를 내는 모습은 자주 보여주셨지만 그 외에 다른 표현은 본인 스스로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가 내가 학교에 들어가서 성적표를 받아올 때면 크게 소리 내어 웃고 안면 전체가 환해지도록 표정이 바뀌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자주 볼 수 없는 그 표정이 나는 너무 좋아서 어느 날 학교에서 성적표를 받아서 학교부터 집까지 그 긴 길을 거의 한 번을 쉬지 않고 내내 달려서 돌아왔던 기억도 난다. 난 그때 정말 아버지가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사랑했기 때문에 그냥 무조건 그것을 쫓아 움직였다.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어른의 욕망을 쫓아 그렇게 길들여지는 것을 어린 나이에 난 스스로 선택해 버렸다.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나 우리가 부천에 올라왔을 때 우리 식구들은 나름의 배수의 진을 친 것이었다. 모두가 절박했고 성공해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렸다. 그렇게 아버지는 묵묵히 그 무거운 짐을 끌고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같이 그 길을 쫓아갔다.
난 도망갈 수가 없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난 죽어버릴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던 것 같다. 난 이 길을 쫓아가기에는 너무 예민한 동물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불만이 많다. 자식을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매가 부족해서, 자기 말을 안 따라서 형제들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매일 어머니에게 타박을 하신다. 아버지의 시각에서 그리고 생각에서 아버지는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는데 그런데 뭔가 잘못되었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도 농사는 망할 수 있다. 외부환경의 변화에 의해서도 망할 수 있고 너무 농사가 잘돼서 기른 농작물이 똥값이 되어서도 농사는 망할 수 있다. 누가 꼭 잘못해야 농사가 망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잘못을 찾아내서 심판하지 못한다면 그 고단한 삶을 살아온 아버지의 노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보상을 받는다는 말인가? 세상이 가리키는 데로 살았는데 이상하게 삶이 너무 팍팍한 아버지는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프시다.
나도 그래서 너무 아프다. 추억이 따뜻한만큼 그래서 더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