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갚을 수 없는 빚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를 온통 사로잡는 것이 죄책감이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뒤돌아 보려고 할 때마다 나를 무너뜨린 것은 이 죄책감이었다. 나 살고 싶은 대로 살겠다고 그렇게 도망을 치고서도 아직도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떠 도는 들개, 목줄을 칭칭 감고 낑낑대고 아파하면서도 자기 살던 곳을 아주 떠나지는 못하고 항상 그 주위를 맴 돌게 되는 바보 같은 짐승. 길 들여진 짐승은 그래서 슬프다.
어머니가 태어난 집은 가난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집이 가난했다. 외할아버지는 고지식하셨고 외할머니는 생계를 위해 행상을 하셨다. 여자가 공부하는 것을 마뜩잖게 생각하신 외할아버지는 어머니가 학교 가는 것을 반대했고 어머니는 그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가기 위해 주변에 알음알음하여 필요한 교과서를 물려받기 위해 선배들을 찾아다녔고 그렇게 모은 책을 집에 몰래 숨겨놓고 할머니가 행상 갔다가 어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셨다. 당시 학교교육은 지금 같은 무상교육이 아니었다. 월사금이 필요했고 그 금액은 가난한 집에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의 초조함이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낙인처럼 흉터가 되고 말았다. 가장 어린 동생은 업고 또 한 명은 손을 잡고 외할어머니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기 위해 집 밖에서 서성이는 어머니의 모습은 어느 순간 그 모습 그대로 내 안에 들어와 내재화되었다. 어머니에게 학교 그리고 교육은 그 자체로 꿈이었고 한이었다. 원하는 것을 했다면 삶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어머니는 항상 생각하셨고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좌절된 꿈이 계속 어머니를 힘들게 하고 부모님을 원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힘들게 산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되어 죄책감으로 되돌아오는 악순환이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끝내 어머니가 진학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모아둔 책은 쓸모없게 되었다. 정말 외할아버지가 책을 찢어버렸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 당시 어머니가 받은 상처가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 가족이 고향을 떠난 것은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그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부모님의 위급한 마음 때문이었고 지금의 많은 학부모들도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하는 모습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위기의식… 놓친 기회에 대한 의기의식.
못살던 시절의 보릿고개 그리고 그 시절을 지나오면서 좌절된 꿈은 부모님을 초조하게 만들었고 계속 거기에 있으면 결국 제자리걸음만 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뭘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그렇게 부모님을 몰아붙이고 있었고 그 불안감에 밀려 우리 형제는 정말 낯선 곳으로 그렇게 밀려서 올라왔다. 외할머니는 어릴 적 어머니의 꿈이 좌절된 것에 미안함을 가지고 계셨던 것인지 그 늙고 지친 몸을 이끌고 생전 해보지 않은 대도시 생활을 4형제를 데리고 그렇게 시작하셨다. 당시 외할머니와 우리 형제의 생활은 모든 것이 서툴고 이상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다 이상하게 꼬여가고 있었다.
시골에서의 어머니의 결혼생활도 절대 녹록하지 않았다. 농기계 수리를 하는 일은 농번기에 일은 많았지만 돈은 항상 나중에 추수철이 지나서 받게 되는 경향이 있었고 각종 용품과 부품을 주문하기 위해 집과는 먼 시내까지 나가는 일과 아버지의 기름옷을 세탁하는 일은 모두 어머니의 몫이었다. 게다가 나중에 외상값을 받기 위해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일도 어쩔 수 없이 어머니의 몫이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남들 앞에서 돈 이야기를 하는 것에 몹시 서툴렀고 셈도 지금 와서 생각하면 정확하게 맺음을 하지 못했다. 항상 받아야 하는 것보다 시골사람들은 후려치는 경향이 있었고 아버지는 그런 상대의 말에 계속 휘둘려 어머니가 속상해하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아버지는 술도 약했고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막걸리와 소주를 사 가지고 와서 아버지와 마시면서 돈 이야기를 계속 무마하고 빚을 갚는 것을 미루었는데 그래서 언젠가 어머니를 따라 다른 동네까지 외상 수금을 간 일이 있었다. 날은 어둑해지고 어머니는 낯선 집 안으로 들어갔고 이야기는 길어졌다. 부품값 등의 외상값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사정이 급한 것은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지만 시골에서 돈이 돌아가는 상황은 궁핍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그 집도 여기저기 주변에서 돈을 빌려오기 시작했고 그 일이 길어지자 어머니와 대화하는 목소리가 점점 퉁명스럽고 사납게 되었다. 난 밖에서 왜 그런 상황이 일어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주변 이웃과 싸우는 일은 거의 본 적이 없는 난 그냥 무섭고 이상했다. 그 이상했던 기분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렇게 돈이 오가는 일은 어디서든 참 불편한 상황을 만든다. 누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외상을 받으러 가는 어머니도 힘들고 또 돈을 빌려서 갚아야 하는 상대도 쪼들리는 상황 때문인지 맘이 좋지 않고 언성도 높아진다. 어머니는 그 후 나를 데리고 수금을 다니시는 일이 없었다.
언제나 집안일은 끝이 없다. 특히 빨래가 그랬다. 아버지의 기름 빨래는 양도 많았지만 세탁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세탁을 포기하지 못했다. 왜인지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행상 나간 집에서 어릴 때부터 살림을 도맡아 해왔기 때문에 집안일에 대해서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빨래는 세제가 많이 들어갔고 연탄불 위에서 자주 삶아졌다. 어느 날 인가 부엌에 빨래를 삶기 위해 올려놓고 어머니는 시냇가로 빨랫감을 들고나가셨다. 집에도 수도가 있긴 했지만 빨고 헹구고 하는 일이 그 작은 곳에서 하기에는 너무 버겁기만 했고 그래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다리 밑에서 빨래를 하셨다. 뭐가 원인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날 형과 나는 크게 투닥되고 있었고 그 정도가 심했는지 밖에서 작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용접을 하시다가 용접봉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오셨다. 너무 화가 난 아버지가 형과 나를 매질하기 시작했고 우리 형제는 동네가 떠나가라 크게 울어 댔다. 특히 내가 심하게 울었고 형은 나를 가로막고 아버지 앞에 막아서는 모양이었다. 그때 어머니가 빨래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셨고 마루에 세탁물을 놓아두고 급히 방 안으로 들어와서 아버지를 말리셨다. 그 상황이 아버지는 왠지 모르게 너무 맘에 들지 않았고 어머니가 자꾸 아버지를 말려서 아이들의 버릇이 나빠진다고 타박을 하시다 밖으로 나와 마루 위에 놓인 세탁물을 기름과 흙이 범벅인 바닥에 그대로 쏟아버리셨다. 빨래 좀 그만하러 다니고 제발 아이들 좀 보라는 것이 아버지의 원성이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버리셨다.
그날 아무 말 없이 그 세탁물을 다시 하나, 하나 줍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집 안에서 거의 막내셨고 어머니는 장녀였다. 이 조합에서 아버지는 쉽게 쉽게 화를 내고 때론 물건을 부수곤 하셨다. 어머니가 교육 등의 문제에서 너무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이 계속 불만이었고 어머니는 그 투정과 화를 모두 받아내시면서도 너무 묵묵하셨다. 너무 독한 빨래를 오래 하셔서 손끝이 다 갈라지고 있었기에 밤마다 아린 고통에 힘들어하는 어머니와 그런 상황에서도 너무 집안일에만 매달리는 것이 속상한 아버지는 서로 맘이 상한 채 어떻게 화해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 관계에서 항상 아버지는 원망하고 어머니는 묵묵하게 듣고만 계시는 상황이 고착화되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에 나는 이런 상황을 다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런 장면을 머리에 담아두고 내면화한 채 자라나 버린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세탁기를 돌리고 밖에서 빨랫줄에 세탁물을 널고 있으면 그 당시의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을지 그 감정이 나에게 그대로 살아나서 마음이 싸늘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상하게 공감이 시간을 넘어 나에게로 그렇게 넘어오는 것이다.
아버지는 여전히 어머니를 원망하신다. 4형제가 모두 맘에 안 드는데 그것이 어머니 잘못이라고 아직도 말씀하신다. 그 고달픈 삶을 함께한 두 분, 아버지도 어머니의 고단함을 너무 잘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그 말을 하는 것은 자신 안에 고통을 담아두지 못하는 약한 마음 때문인 것이다. 어머니는 허물어져 가는 몸으로 그 원망을 다 듣고도 여전히 아들 걱정뿐이다. 4형제를 낳은 이유도 딸을 한 명 갖고 싶어서 계속 낳은 거라고 하시는데 어쩌면 정말일지도 모른다. 그 무섭기만 하던 외할머니의 호통 속에서도 어머니는 그 곁에서 안정감을 느끼셨고 또 딸이 있으면 모녀간의 그 애착이 자신을 지탱해 줄 것이라고 믿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언제나 난 어머니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진 기분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냥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