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위로

by 피터피터

아버지와 나는 알게 모르게 닮아 있다. 그것이 서로를 향한 공감과 이해가 되면 좋겠지만 우리의 같음은 같은 극성으로 작용하여 N극이 N극을 밀어내듯 서로 밀어낸다. 끌어안으려고 하면 할수록 반발력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을 느낀다.


그러니 내가 아버지에게 가기 위해서는 나의 극성을 지우면 된다. 나라고 생각하는 아집을 조금만 더 지우면 그러면 되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이제 유튜브는 일상이다. 아버지의 삶에도 유튜브가 일상이 되었다. 청력이 좋지 않아 보청기를 하셔야 하는 귀임에도 불구하고 이어폰을 꼽고 큰 볼륨으로 유튜브를 보시는 것이 삶의 낙이 되었다. 작고 초라해진 아버지, 그토록 식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이제 어디 한 곳 안 아픈 곳이 없이 다 아프다고 하시면서도 여전히 가족 걱정이 한가득이다. 그리고 형제들의 모습이 불안하다. 그것이 마음을 초라하게 만들고 자신을 움츠려 들게 만든다. 움츠려 드는 마음은 자신을 패배자로 만든다. 어릴 적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한 허기짐이 그를 그토록 열심히 살도록 만들었는데 그래서 열심히만 살면 모든 것이 좋아지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보니 행복하시지가 않은 것이다.


문제가 뭘까? 문제에는 반드시 해답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버지의 믿음이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방황하신다. 그리고 그 해답 비슷한 것을 어딘가에서 찾으셨다. 유튜브다.


그곳에는 당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소리가 있다. 다른 누군가가 세상을 망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너의 가족들은 그런 나쁜 소리에 물들어서 자기 말을 듣지 않고 인생을 망쳤다고 그렇게 말해주는 소리가 그곳에는 있다.


자식들 누구도 해주지 못하는 큰 ‘위로’를 건네는 유튜브, 세상에 다시없는 효자다. 나는 해주지 못하는 것을 저것은 해주고 있다. 그것에 빨려 들어가는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한다.


어릴 적 내가 그렇게 잡다한 것에 탐닉한 이유는 지금 보면 ‘도피’였다. 나는 시스템에서 찌그러지는 것을 아주 민감하게 느끼는 타입이었고 그것에 대항할 방법을 어딘가에서는 찾아야 했다. ‘오락’, ‘만화’. ‘소설’ ‘프라모델’ 등등… 그런데 잘 보면 나는 보고 수집하는 것에는 즐거움을 느끼지만 실제로 플레이하는 것에는 그렇게 열중하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오락실에 50원짜리 동전을 몇 개 가지고 가서 한번 플레이하고 난 이후에는 나머지 하나의 동전을 나보다 잘하는 아이에게 슬쩍 건네고 그 애가 플레이하는 것을 나는 보고 즐겼다. 지금은 유튜브를 통해 각종 먹방과 게임 플레이 등을 돈을 내고 응원하면서 시청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이지만 그때에는 나의 저런 행위는 그냥 호구 중의 호구가 하는 짓이었다. 그런데 난 그렇게 누군가 무엇을 하는 것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게 이상하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이해한다.


시대가 요구하는 성공의 기준이 있다. 우리는 시스템 안에서 그 규격에 맞추어서 찌그러진다. 그러면서 자신이 규격에 맞지 않을 때 엄청난 내적 고통을 느낀다. 그 순간 그것을 마비시킬 진통제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어린 나에게 그 진통제는 저런 잡다한 것들이었고 아버지에게는 유튜브다. 아버지가 어릴 때 나의 저런 짓에 화를 내시고 매를 드셨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죄의식을 점점 내재화하곤 했다.


이제 난 같은 입장에서 아버지를 보고 있다. 아버지가 듣고 있는 유튜브의 공격적인 목소리와 메시지가 너무 싫다. 그것 자체로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아버지는 나의 딴짓이 너무 싫었고 그것을 가만 두면 내가 망가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럼 나는?


아버지의 내면은 이미 하나의 완성형이다. 그것은 망가지고 더 나빠지고 할 무엇이 아니다. 저것을 더 듣는다고 아버지의 본질 자체가 변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아버지의 연세에서 새로운 것을 배워 세상이 돌아가는 복잡함을 정교하게 이해하시기에는 너무 많은 삶의 에너지를 소비하시고 이제 지쳐 저렇게 낙을 찾고 있는 것이 전부이다. 그것을 바꾸려고 하는 나의 이 이기심이 오히려 더 큰 문제이다. 항상 아버지에 대항하고 싸우고 더 바른 것을 추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다. 아버지와 나는 다른 것이다. 옳고 그름의 완벽한 잣대는 없다.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니 이것이 있는 것이다. 나의 옳음도 더 밝은 옳음 옆에 서면 그름이 된다. 난 나보다 밝고 깨끗한 옳음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같은 것을 아버지에게 강요한다. 아버지의 강요가 그렇게 싫었으면서 그것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


난 성장하지 못했다. 내면의 성장이 참 빈약하다. 이런 나를 연민하고 나의 아버지를 연민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사랑한다. 이건 어떤 경우에도 변할 수 없는 나에게는 가장 확고한 진리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조금은 더 좋은 아들이 될 수 있을까?

이전 04화길들여 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