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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Jul 02. 2021

메멘토

도돌이표

사람들은 영화를 어떤 식으로 감상하고 책을 어떻게 읽을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요소들이고 나도 무척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은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고 있는지, 아마 이것도 사람들의 지문만큼이나 모두 개성이 있고 특색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 경우 독서와 영화를 감상한 이후 그 내용을 통으로 기억하고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다. 나는 기억하는 것보다 잊는 것에 특화가 되어있는 사람이라 사람들의 이름이나 그 밖의 정보들을 머릿속에 넣고 술술 다시 토해내는 것을 보면 거의 마법처럼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개인적인 좌절도 많았다. 하지만 나의 잊는 능력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도움이 된다. 바로 정보의 해체와 재결합이라는 부분에서 그렇다. 나는 기억할 수 없는 디테일한 설정에 집착하지 않는다. 주로 이야기의 큰 흐름을 따라가고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동화되어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경험하는 간접체험에 집중하면서 나머지는 그냥 잊어버린다. 일상의 일들을 대게 잊는 것처럼 그렇게 흩어지고 지워지는 것을 나는 내버려 둔다.


그럼 때로 아주 예기치 못한 순간에  영화의 단편적인 장면이나 분위기가 그대로 내 삶에 전이가 되는 경우가 있다. 나의 삶이 영화나 책에서 본 장면과 완벽하게 겹쳐지며 아! 이게 그거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경험하고 감각하여 내면화하지 못한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영화나 독서의 많은 부분에서 피상적으로 흐르듯 우리 안을 스치고 지나간 정보들은 다 사라지고, 어느 순간 생활에서 특정한 상황 하나가 내가 읽고 본 내용들과 우연히 겹쳐지면 그제야 흩어졌던 정보들이 새롭게 생명을 얻어 깨어나게 되고 그런 식으로 체득된 정보들은 완전히 나의 것이 되어 이후로 내 안에서 영원히 머물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정보를 얻고 내재화 하기에 영화 감상에서도 전체적인 줄거리나 연출기법 그리고 그 밖의 디테일과 테크닉은 제대로 된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영화 이야기하다 보면 내용을 전혀 엉뚱하게 알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전에는 그런 디테일에 착오를 일으키는 것을 엄청 부끄러워하였는데 나중에는 디테일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영화의 해석에서는 큰 자유를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나의 단점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난 자유로운 해석을 좋아하는 편이다.


과거 학창 시절 시를 하나하나 분해하고 분석해서 배운 기억들이 모두 있을 것인데 나는 그런 수업이 별로였다. 살아있는 생물을 해부해서 하나하나 지적하고 이것은 무엇이고 저것은 무엇이다 하는 식으로 다른 사람의 정신을 분해해서 평가하고 박제하는 기분이 들었으며 해석을 하나로 고정하는  같아 싫었다. 물론 이것은 그렇게  경우 외워야 하는 것이 너무 많은  상황적 번거로움이 싫었던 부분도 있었겠지만 나의 기질이 그런 것에 맞지 않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 안에 있는 삶의 경험의 변화로  우리는 같은 영화시간이 흐른  다시 보게 되면  감상이 크게 달라지는 경우 허다하다. 시는 특별히  그렇다. 너무 기계적으로 주입된 정보들은 감정적 공감을 일으키기 힘이 든다. 같은 장면도 삶의 각도에 따라 무수히 많은 색깔로 변화하고 시는 함축성으로 인해 마음의 겹침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냥 무덤덤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말이 길어졌다. 사실 이 영화의 줄거리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서 말이 많아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나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남긴 영화다. 처음 봤을 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그 복잡한 연출법에도 불구하고 인간 본연의 모순적 심리를 너무나 잘 표현한 것이 마음속에 크게 와닿았다. 이 영화는 이후에도 나에게 정말 많은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영화인데 인간 자체의 불연속성 같은 개념을 이해하기에 정말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큰 변화 없이 계속 연속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연속적인 존재가 아니다.


나 같은 경우 최근 매일 눈을 뜰 때마다 악몽 같은 기분을 맛보는데 그건 글쓰기 때문이다. 오전에 기분을 정리하고 오후에 글을 쓰는 동안에는 나는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나의 작업에 열중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런 흐름이 끊어지고 잠을 자고 난 이후에 찾아오는 미칠듯한 허무감 그리고 모멸감이다. 내가 쓴 글이 너무 쓰레기 같이 느껴지고 나 자신도 뭔가 결함이 있는 듯 느껴져서  마치 발가벗겨져 거리에 내쫓긴 그런 심정이 되는 것이 나의 최근 일과이다. 나는 그래서 요즘 글을 바로바로 쓰는 대로 오픈하고 있다. 뭔가 상황을 바꾸고 패턴을 바꾸지 않으면 과거에 했던 일을 또 되풀이할 그런 징조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것이 잘못인지 알면서도 계속 같은 짓을 되풀이할 때가 있다.


약한 내면으로 인해서 자신의 단점이나 잘못 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무의식에 의한 의식의 지배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메멘토는 그런 상황에 대한 인간의 모순적 모습을 너무 잘 보여주고 나는 그 장면들에 나의 현재 상황을 그대로 투영하여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래서 나는 어떤 영화든 쉽게 비판하고 평가하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의 전체 짜임새가 어찌 되었든 영화의 특정 장면이 누구에게는 그 사람의 인생의 장면이 될 수도 있고 그렇다면 그 영화는 그 사람의 인생의 영화가 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연기, 좋은 구성도 물론 영화감상의 주요 포인트이겠지만 때론 삶에서 진정 도움이 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닌 엉터리 영화에서 봤던 특정 장면이 인생의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어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책이든 영화든 반드시 명작과 고전만을 고집하고 그것들을 다 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자기 삶과 접점이 없는 내용들의 정보는 우리 안에서 다른 것들과 융합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소멸되어 버린다. 아무리 고전을 읽어도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읽는 사람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거의 의미 없는 독서가 되고 나중에 삶의 경험과 내적 갈등 등의 문제로 많은 자기 고민을 한 이후에는 딱딱하던 고전들이 부드럽게 풀어져 내 안으로 술술 넘어오는 경우들이 있는 것이다.


마음이 복잡하고 눈 뜰 때마다 혼란한 상황이 나에게 메멘토란 영화를 환기시킨 것 같다. 사람은 내적으로 명암의 밸런스를 잘 유지해야 하는데 그동안 나는 그 밸런스가 무너져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해 이런 혼란스러운 감정에 휩싸이는 것이고 나만의 ‘정의’에 심취한 만큼 그것을 중화하는 과정이 힘이 든다. 치우친 마음은 항상 왜곡을 만든다. 그것을 바로 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 영화는 그 점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영화와 책이 자신의 일상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는 것일까? 그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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