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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Jul 07. 2021

포레스트 검프

자기화해

시네마 천국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봤던 영화들을 지금 다시 보면 모든 해석이 과거와 달라진다는 것이 놀랍다. 그만큼 삶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는 말이 되겠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다. 젊은 시절에 이 영화를 봤을 땐 영화가 왜 이렇게 흘러가는 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는데 결국 이 영화는 [삶을 대하는 태도, 소통, 자기화해]를 골자로 이야기가 짜여 있는 느낌이다.


영화의 시작은 세상과 삶이 원래 부조리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이 전제는 세상이 아무리 더 좋아져도 바뀌지 않을 삶의 조건이다. 인생을 살기 위해서 누구나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


포레스트는 타고나기를 약하고 지능이 조금 떨어지게 태어났다. 어머니는 포레스트에게 다른 아이들과 너는 똑같다고 말을 하지만 인간이라는 가치에서는 똑같지만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똑같은 인간이 하나도 없다. 다 개성이 있고 특성이 있으며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다른 것이지 좋고 나쁨이 아닌데 세상은 우열을 만들고 선악을 만들어서 다른 것들이 서로 계속 대립하도록 만들어 간다. 그런 차별의 인식이 지배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포레스트의 삶은 시작부터 고달프다.


하지만 그런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포레스트는 지능이 떨어지지만 세상을 보통의 사람보다 훨씬 단순하게 해석하는 재능이 있다. 그는 태어나기는 약하게 태어났지만 자신의 한계를 믿지 않았고 만약 지능이 높은 아이였으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달리기를 제니의 말에 따라 시작하면서 다른 누구보다 높은 잠재력을 거의 극한까지 끌어내고 그 달리기 재능 하나만 가지고 사람들과 협력 공생하면서 인생의 모든 문제들을 헤쳐나간다. 그의 삶은 단순하지만 사람 자체를 믿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은 항상 명확하게 구분한다. 제니를 향한 폭력에는 언제나 과감하게 앞으로 나서는 포레스트, 그는 무엇을 무리하게 욕심내지 않고 그냥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려 한다. 지금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지금의 성공에도 도취하지 않으면서 계속 열심히 앞을 보면서 뛰어간다. 그의 삶에서 제니는 또 하나의 커다란 의미이고 그녀에게 닿고 싶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이 인생이다.


제니는 착하고 친절한 아이였지만 그렇다고 그에 걸맞은 환경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상처 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에도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서 씻지 못할 상처를 남겼고 어린 제니는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생을 몸부림친다. 남들 눈에 모자란 포레스트와 상처 받은 제니는 서로를 챙겨주면서 성장하게 되고 인생은 이제 분기점에 들어서게 된다. 제니는 어릴 때 받은 마음의 상처가 전혀 아물지 않고 있다. 그래서 대학에 가서 연애도 하고 가수가 되겠다는 꿈도 키우면서 어떻게든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그런 외부적 조건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


망가진 마음으로 인해 점점 나쁜 선택을 하게 되는 제니. 포레스트는 위기에 빠진 제니를 구해주고 제니에게 사랑한다 말하지만 제니는 포레스트에게 넌 사랑을 모른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제니가 말하는 사랑은 자신을 심적 고통에서 꺼내 줄 사랑을 말하는 것일 테고 포레스트는 그런 제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녀가 아픔을 극복하게 만들어줄 능력은 없었다. 그래서 엇갈리는 둘. 포레스트는 전장으로 제니는 히피 생활을 시작하면서 각자 자신들의 길을 가지만 둘 다 왜 자신들이 그런 곳에서 그런 삶을 살고 있는지는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시류에 의해 방황하는 영혼들이 함께 휩쓸려 춤을 춘다.


포레스트가 군에서 만난 덴은 인생에 정해진 목적이 있다고 믿고 삶을 살아가는 캐릭터다. 전쟁터에서 영광스러운 죽음을 꿈꾸지만 그것이 좌절된 덴은 불구의 몸으로 살아남은 자신의 삶도 자신을 구해준 포레스트도 모두 원망한다. 인생을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가장 일반의 사람을 상징하는 인물로 계속 포레스트와 삶이 겹쳐지게 된다.


이 영화는 주인공인 포레스트를 가장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그의 캐릭터는 우직함을 상징하고 엄마의 말처럼 인생은 누구도 모르는 것이니 결국 자신이 선택한 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는 캐릭터이기에 사실은 제니를 중심으로 영화를 해석하는 것이 큰 틀을 이해하기 더 쉬운 영화인 것 같다.


제니의 방황은 계속된다. 반전 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에도 뛰어들어 활동해보지만 사회의 발전과 자신의 내면의 상처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니 그녀의 내적 아픔은 전혀 아물지 않고 그 아픔을 마비시키기 위해 각종 약물에도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삶은 점점 황폐 해져 간다. 그녀는 어떻게 해도 그녀의 내면을 짓누르는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포레스트가 각종 좌충우돌 후에 삶이 안정기에 들어갈 쯤에 그와 함께 온갖 난관을 함께 했던 덴 역시 포레스트의 영향으로 삶이 특정 목적이나 운명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의 삶을 긍정하면서 살아나가는 것이라는 깨닫게 되고 몸의 장애뿐만 아니라 마음의 장애도 이제 극복한 채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쯤 포레스트의 어머니가 암에 걸리고 포레스트는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어머니의 임종 후 오랜 방황에 지친 제니가 포레스트를 찾아오고 둘은 다시 재회하게 되지만 포레스트 곁에 돌아온 제니의 마음에는 아직도 어릴 적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다. 그런 제니에게 다시 청혼하는 포레스트, 하지만 제니는 포레스트에게 후회하게 될 거라고 말을 한다. 제니는 자신도 포레스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둘은 함께 하룻밤을 보내지만 제니는 평생을 괴롭혀온 자신의 내면의 상처가 결국에는 포레스트를 상처 입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것이 무서운 제니는 다시 도망치게 된다. 제니는 어떻게 해도 자신의 내면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포레스트에게 받은 훈장도 놓고 그렇게 사라진다.


포레스트는 이후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끝없이 뛴다. 삶은 어쩔 수 없이 계속되어야 하니 그는 그냥 달린다.


이후 갑자기 제니에게서 연락이 오고 둘은 다시 재회한다. 이미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제니, 그 아이는 포레스트의 아들이었다. 제니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말하고 포레스트는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서 다시 청혼한다. 그리고 제니는 그 청혼을 받아들인다. 즉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고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에야 그녀를 그토록 괴롭히던 마음의 고통에서 제니가 해방되었다는 말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 부분으로 어떠한 것도 인간 내면의 고통을 치유할 수 없다. 그 스스로 그것을 돌아보고 치유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제니가 그토록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그를 그녀의 가슴속에 계속 존재하게 만든 것은 결국은 그녀 자신이다. 그 마음을, 미움을, 증오를 놓지 않고 그녀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었는데 그것이 이제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야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이 부분을 어린 시절에는 전혀 해석할 수 없었다. 제니는 과거의 내 눈에는 그냥 노답으로 보였던 것이었다. 온갖 사고를 치고 돌아다니다가 죽기 전에 아이를 맡기기 위해 나타나는 여주인공이라니.. 비호감의 극치였는데 지금 와서 다시 보면 그냥 내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지 못해 평생을 고통받은 불쌍한 영혼이었다. 결국 이 영화는 부조리한 세상에 불행한 운명으로 태어난 두 사람이 자신의 한계와 내적 고통을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겨내고 마침내 서로의 마음이 소통하게 되는 그 과정을 격동하는 시대상과 함께 섞어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과거보다 감동이 훨씬 커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해석의 방향성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이 영화도 시네마 천국과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영화는 보는 사람이 관점을 바꾸어 보게 되면 전혀 다른 장면을 보여주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어릴 때는 아이가 아버지를 떠나 구출되는 순간부터 아이의 문제는 모두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제니가 돌아와 자기 집에 돌을 던질 때도 그 순간 잠시 생각이 났던 거라고 이해했다. 그랬던 것이 생각난다. 자기 안에 없는 경험은 이해할 수도 볼 수도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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