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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Jul 11. 2021

미운 오리 새끼

이과생의 탄생

나는 공대를 나왔다. 적성에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도 스스로 이과생 임을 부정해 본 적은 없다. 그러다가 최근에야 비로소 내가 이과생이 아닐 수 있음을 자각했다. 이렇게 오래 살면서 이제야 이런 각성에 도달하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뭐 공대생도 글은 쓸 수 있으니 글을 쓰고 싶다고 문과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내 안에 무언가 쓰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것이 나 자신의 이야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단지 다른 여러 가지 정보와 시대가 흘러가는 시류 그밖에 소소한 내적 단상들에 대한 감상을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것은 그냥 자기 메모장에 적어두면 되는 것이었다. 일기장을 공개적으로 타인과 공유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며 그런 것이 적성에 맞지도 않는다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 글을 쓰고 싶다는 내적 욕망이 일어날 때 그에 대한 내 감상은 ‘일기를 반년 이상 써본 적도 없는 놈이 매번 참 끈질기게 지랄도 한다.’ 이것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글을 쓰면서 느끼는 의문은 왜 어떤 이유로 나는 스스로를 이과생으로 정의하고 살아왔는가 하는 점이었다. 결국 이것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이야기다. 그럼 결국 가 닿는 곳은 아버지다. 나는 약했고 그래서인지 어릴 때 아버지를 동경하고 집착한 것은 분명하다. 그럴 때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결국 형이었다. 나와 형의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톰과 제리’였다. 매일 싸우고 장난치고 잠시도 둘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투닥거렸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이 내 질투로 인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형은 정말 자기 띠인 소처럼 우직한 부분이 있었다. 그 우직한 부분을 나는 아주 교활하게 놀리고 자극해서 형이 결국 폭발하게 만들었고 그럴 때면 항상 난리가 나는 것이었다. 형과 나는 덩치 차이는 많이 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완력에서 형을 당해내지 못하는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난 언제나 형을 자극하기 전에 미리 도망갈 수 있는 루트를 준비해 두었다. 마루 밑에 내 신발을 신기 좋게 정렬하고 형의 신은 마루 깊숙이 숨겨 놓고 형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로 앉아 있을 때 바로 도발을 시전하고 당시 형이 싫어하는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하면서 놀린 기억이 있는데 그 행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난 형이 싫어하고 질색하는 것은 뭐든지 했다. 나 자신이 벌레라면 질색하는 편임에도 형이 벌레를 싫어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가지고 가서 형을 놀라게 할 정도로 당시에 나는 형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상당했었다.


어린 형에게 아버지는 맏이로서 책임감을 항상 강조했고 그런 아버지의 요구를 형은 나름 잘 따라갔었던 것이다. 그래서 형이 칭찬받는 것을 나는 항상 주시하고 있었고 공부를 잘하고 말을 잘 듣는 것이 아버지의 관심을 차지할 수 있는 핵심 요소라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형을 그냥 따라갔다. 형이 반에서 1등을 하고 칭찬을 받고 과학자가 되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그냥 말하고 아무 생각 없이 이과생의 궤도에 올라서 버린 것이었다. 형은 진짜로 과학 자체에 흥미가 있었지만 나는 당시 과학자가 그냥 로봇을 만드는 사람인 줄 알았다. 당시 아이들 사이에 마징가를 비롯한 각종 로봇 만화가 유행하던 시절이니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과학자라고 단순하게 이해했고 그 이후 자라는 내내 나의 꿈은 이과생이라고 신앙처럼 믿어버리고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연구가 아니었다. 꾸준하게 한자리에 앉아서 관찰하고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 이과생의 덕성은 나에게는 처음부터 없었다. 내가 끌리는 것은 언제나 이야기였다. 스토리 자체가, 판타지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던 것인데 어린 시절의 나는 그것의 차이를 전혀 인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언제나 스토리에 빠져 살았고 각종 잡지에 나오는 ET부터 호러까지 판타지에 관련된 이야기는 다 섭렵을 했으며 당시에 동그란 딱지에 그려진 그림으로 온갖 망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노는 것을 즐겼다. 그래서 다른 형들이 가진 특이한 그림의 딱지를 보면 그것이 갖고 싶어서 안달이 나서 하루 종일 그것만 생각하고 돌아다녔던 적도 있었다.


거기에 반해서 형은 공작하는 것을 좋아했다. 무언가를 조립하는 것을 좋아했고 조작하는 것을 좋아했다. 물건의 작동원리를 뜯어보고 관찰하는 것이 형이라면 나는 그것보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았다. 아버지가 외판원의 설득에 어린이 전집을 사주었을 때 그것은 형의 독점물이었지만 나는 그중에 서유기, 톰 소여의 모험, 알리바바와 50인의 도적 등 모험에 관련된 이야기를 형 몰래 훔쳐보면서 즐거워하곤 했다. 당시 형은 깔끔한 성격에 책을 구기는 것을 무척 싫어했는데 나는 책을 꼭 크게 펴서 읽는 습관이 있었고 이 점이 형의 맘에 들지 않아 나의 책 읽기는 장애가 많았다.


하지만 나의 책 읽기는 편식이 심했는데 그 많은 전집 중에서도 모험에 관련된 스토리에만 끌리고 다른 것은 내내 시큰둥했기 때문에 스스로 나에게 문과적 기질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 이후에도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었다. 나의 특기는 망상과 공상이었다. 로봇과 관련된 것, 그리고 당시 정기적으로 배달되는 형의 학습지의 마지막에 2줄인가 3줄짜리로 그려진 SF에 관련된 만화 (그 만화 풍은 한국의 만화 풍은 아니었다. 아마 일본의 만화를 무단으로 도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에 특히 심취했는데 그 스토리의 뒤편이 궁금해서 얼른 다음 편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학습지는 형의 손에 들어가서 한참이 지난 이후에야 볼 수 있는 것이어서 형이 얼른 문제지를 풀기를 기다렸지만 형도 꼬박꼬박 문제지를 풀지는 않고 묵혀두는 경우가 많아서 나는 그것을 부모님께 고자질했다가 나중에 형에게 엄청 맞은 기억이 있다.


당시에 동네의 아이들 사이에 고자질은 정말 나쁜 짓이었고 그것은 지금 말로 하면 국룰이었다. 어기면 안 되는 짓을 해서 나는 형에게 엄청 맞고도 그 뒤편을 보고 싶어 안달하고 같은 짓을 두어 번 더해서 형과 크게 싸우고 형이 학습지를 풀고 바로 숨겨버리는 통에 나중에는  형에게 안 그러겠다고 사과도 했었던 것 같다. 당시에 형은 아버지가 만든 목재 책상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칸에 자물쇠를 잠가 두었는데 그것은 시골에 있는 내내 형의 권위의 상징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정보통제와 독점의 원형이 되는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무언가를 통제하고 그것을 권력화하는 것은 누가 꼭 가르쳐서 하는 것이 아닌 그냥 인간의 본능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당시 아버지가 문과를 엄청나게 싫어하셨는데 이유는  벌어먹고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과를 나와서 자격증 하나만 있으면 이후에는 평생 안정적으로   있다는 것이 아버지의 믿음이었고 다른 것은 그야말로 쓸데없는 것이었다. 시골에서는 당시 육사를 나오는 것이 엄청 대단한 출세로 여겨졌다. 윗동네의 아버지 친구 아들 중에 당시 육사를 들어간 동네 형이 있었는데 겨울의 어느쯤에 우리  앞을 지나면서 아버지에게 인사를 들린 적이 있었다.  당시 육사의 정복을 입고 서있는 모습을 아버지가 엄청 좋아하셔서 나중에 우리에게 육사에 가는 것도 괜찮다는 말을 하셨는데 나는 어른과 아이들에게 군대가 엄청 끔찍한 곳이라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듣고 질색을 다. 그래서 거기에  바에야 어떻게 해서라도 이과에 가서 과학을 하겠다는 결심을 굳혀가고 있었다.


당시에는 여러 가지 소문이 뒤숭숭하던 시절이었다. 우리 동네에도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있었고 누군가는 데모를 했다는 이유로 수배를 당하고 쫓기는 이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대학에 가서 하라는 공부는  하고  빨갱이 공부만 하는 녀석들이 문제라고 말씀하시면서 너는 절대로 대학가서도 데모는 하지 말고 공부도 그런  말고 과학을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셨기 때문에 나는 어느 순간부터 문과는 뭔가 사상적으로 대단히 불온한 무엇을 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뭔가 내가 이해할  없는 난해한 관념을 다루는 것이 문과의 일이라는 그런 편견을 깊숙이 내재화했었던  같다. 어쨌든 그때 그렇게 주입된 생각들은 아주 뿌리 깊게  안에 똬리를 틀었고  이후 여러 단계를 거쳐서 나의 사고를 계속 마비시키면서 나에게 혹시, 설마 있었을지도 모를 문과적 재능은 그렇게 거세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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