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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Jul 15. 2021

거짓말

책임을 배우다.

아이들은 언제부터 거짓말을 하게 되는 걸까? 아이들은 상상과 거짓말을 잘 구별하지 못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자기의 상상을 이야기할 때는 그것이 거짓이라는 의식이 거의 없다가 어느 순간 어른들이 자신들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결핍된 무언가를 얻기 위해 서서히 거짓말을 배우고 익숙해져 가는 것 같다.


처음엔 그냥 칭찬 그 자체가 좋았다. 그러다 아버지가 아들들의 좋은 성적에 흥이 겨워 형과 나에게 이것저것을 약속하시기 시작하고 그중에 컴퓨터를 사주겠다고 약속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컴퓨터는 이제 베이식 언어를 돌릴 수 있는 그런 모델이 막 등장한 시기였기에 당시 시골에서 그것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냥 형이 옆집에서 빌려온 잡지에 그런 내용이 실렸고 그것에 관심이 있었던 형이 이야기를 꺼내자 아버지는 그게 뭐지도 모르고 약속부터 하신 것이었다. 문제는 형제는 그 약속을 너무 철석같이 믿었고 그 컴퓨터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면서 1년 내내 컴퓨터로 무언가를 하는 상상을 하면서 온갖 꿈을 꾸었고 나름 공부도 열심히 해서 가장 좋은 성적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이다.


약속이 단기간에 깨진 것도 아니고 너무 오랜 시간 소망한 약속을 이룰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주변 아이들에게 온갖 이야기를 만들어 자랑을 하고 난 이후에 그냥 안된다는 말 한마디로 모든 상황이 종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때 난 정말 처음으로 거짓말이라는 것의 개념을 확실하게 인식하게 된 것 같다. 무언가 내 것을 빼앗긴 채 돌려받지 못하는 기분. 딱 그런 기분이었다. 그때 이상하게 상실의 기분을 나는 알아버린 것 같다.


그리고 이건 아마 내 기질이나 성격 때문일 수도 있는데 나는 약속과 거짓말에 관한 어릴 적 기억을 여러 가지 가지고 있다.


그중 첫째로 생각나는 것은 유치원에 다닐 적이었다. 그 당시 유치원은 내가 1기생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절이 넘어가는 시기였는지 날씨가 갑자기 엄청 쌀쌀해졌는데 어머니가 유치원복 말고 따뜻한 옷을 입고 나가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굳이 유치원복을 입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하얀 스타킹에 반바지 그리고 셔츠를 입고 모자를 쓴 딱 그런 모습이었는데 그게 규칙이니까 날씨에 상관없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나는 끝내 떼를 썼고 어머니는 할 수 없이 나를 그대로 보냈다.


유치원에 가는 그 긴 길에 내내 얼어 죽을 것 같으면서도 나는 참으면서 간신히 유치원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아이들은 다 따뜻한 옷을 입고 난로 주위에 모여있었고 난 그 모습을 보고 갑자기 추워서 언 얼굴이 빨개졌다. 뭔가 어마어마한 사기를 당한 기분이 들었다가 어머니 말을 듣지 않고 혼자 떼를 부린 게 갑자기 창피하게 느껴졌다. 선생님이 내 모습을 보고 놀라서 쫓아오고 담요를 덮어주면서 난로가로 데려가셨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어머니가 두꺼운 옷을 가지고 유치원을 찾아오셨다. 그때 유치원에서 옷을 갈아입으면서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난 그런 면에는 또 고집 센 아이였다.


둘째로 저학년에 있었던 일이다. 무슨 약속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어머니가 무언가를 약속하고 그것을 안 지키셨다. 너무 기대를 하고 있던 약속이었던지 난 속이 상해서 혼자 시냇가를 따라서 하릴없이 걸어갔다. 그때 어머니에게 뭔가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일부러 걱정을 끼쳐드리겠다고 난 정말 내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까지 물가를 따라 걸어갔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내 걸으면서 오늘은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해가 떨어지고 어두워지자 갑자기 물소리가 덜컥 무서워졌다.


도저히 그 무서움을 참을 수가 없어서 나는 갑자기 울상이 되어 정말 미친 듯이 뛰어 왔던 길을 돌아왔는데 해가 지고 낯선 주위 풍경이 나를 잡아먹을 것 같이 느껴져서 그냥 정신나간 듯이 달렸다. 주위에 불빛 하나 없다가 저 멀리 동네의 전봇대 불빛을 보고 그게 너무 반가웠다. 심지어 싫어하던 동네 개들의 짖는 소리도 반가웠다. 집에 왔을 때 나는 엉망이었는데 불도 다 꺼져서 조용했다. 조용히 대문을 열고 들어설 때 ‘끼이익..’ 하던 문소리에 속이 덜덜 떨렸는데 빛이 없어서 엉금엄금 기어 마루로 올라섰고 그때 갑자기 안방에서 불이 켜지고 어머니가 나 오셨다. 난 그 자리에 딱 얼어붙었고 어머니는 ‘빨리 씻어.’ 한 말씀만 하셨다. 씻는 동안 어머니는 저녁을 준비해 주셨고 난 그냥 앉아서 식사를 했다. 그때 밥을 먹으면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감정인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억울함인지 고마움인지..


세째는 형과 관련된 일이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큰 분기점이었다고 생각하는 사건이다.


내가 어릴 때 동네에 처음으로 오락실이 생겼고 그곳에서 갤러그 같은 전자오락이 들어오면서 동네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아이들은 항상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어울려 술래잡기 등의 놀이를 하던 것에서 아이들이 성별로 완전히 분화해 버린 것이었다. 고무줄과 공기 놀이를 하는 여자아이와 구슬치기, 딱지놀이 그리고 오락실을 다니는 두 집단은 어느 순간부터 서로가 서로의 놀이에 상대를 끼워주지 않았고 함께 놀고 구경하던 어울림도 묘하게 무너져 버렸다.


어쨌든 당시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오락실의 문이 열리면 그날의 최고 스코어를 누가 따느냐 그리고 어떻게 이름을 새길 것인가 하는 것이 주요 화제였다. 나는 사실 어릴 때부터 오락을 하는 것보다 보는 것을 더 재미있어했었고 그 이유는 내가 새로운 장면을 보고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지 뭔가 감각하고 조작하는 것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면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게임들을 아주 잘하기는 했어도 그것은 내가 머리로 이야기를 끝없이 만들어내는데 도움을 주는 게임들이었다. 그런데 나와 달리 우리 형은 일반적으로 게임을 잘하는 편이었다. 나보다 반응도 좋고 순발력도 좋아서 당시 갤러그에 올라오는 이름 새기기에 형의 이름은 항상 거의 맨 위쪽에 있었다. 그게 그냥 좋았다. 몰려다니는 또래의 친구들에게 그걸 보여주면서 나름 뿌듯하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형이 가지고 있는 최고 기록보다 훨씬 높은 기록을 가지고 최고 기록이 쓰인 날이 있었다. 나와 그것을 구경하던 한 녀석이 ‘야 이제 너의 형도 한물갔어.’라는 식으로 말을 했던 것 같고 나는 그 도발에 완전 걸려 넘어갔다. 내가 내 실력도 아닌 형의 실력으로 뽐내는 것을 아니꼬워했던 아이가 한마디 한 것이었는데 그것에 내가 괜히 너무 분해서 흥분을 해버렸고 나는 그 기록을 어떻게든 깨고 싶어 졌다. 그래서 도랑에서 빨래를 하는 엄마한테 가서 아버지가 담배 심부름을 시켰다고 거짓말을 하고 돈을 타서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형을 꼬셔 오락실로 직행해 버렸다. 그게 지옥문으로 가는 길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형과 나는 오락실에 들어가서 기록을 깨기 위해 정신없이 게임에 집중했다. 그리고 꽤 시간이 흐르고 갑자기 오락실에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그리고 우리 형제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회초리로 엄청난 매타작이 시작되었고 나는 정말 종아리가 까매지도록 맞고 또 맞았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도대체 누가 이런 거짓말을 지어냈냐고 우리 형제를 추궁하셨다. 나는 정말 더 이상 맞을 자신이 없어서 그냥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주르륵 흘렸다. 그러자 형이 ‘제가 그랬어요.’라고 손을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니가 맏이가 되어가지고 애들을 데리고 거짓말을 해? 니가 그래도 돼?’ 아버지는 형이 그랬다는 것에 더 화가 나서 그날 형에게 정말 크게 매질을 했다. 난 형의 종아리에 회초리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덜컹덜컹 내려앉았다. 그렇지만 차마 내가 이 모든 거짓말을 짜고 실행했다는 말은 할 용기가 없었다.


그때 우리 형제는 거의 매일 ‘톰과 제리처럼 아웅다웅거렸지만  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었다. 나는 그때 맏이가 뭔지 확실하게 알아버린 것이었다. 그것은 책임이었다. 맏이는 항상 뭔가를  많이 받지만 대신 뭔가 책임을 훨씬 크게 져야 한다는 것을 형이  맞는 소리를 듣고 나는 깨달아 버렸다. 나는 항상 형과 나를 고만고만하다고 생각했었지만 그 어린 나이에도 형은 자기가 하지 않은 일조차 때론 가장 맏이로서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후로  형의 맏이 자리를  번도 욕심을  적은 없다. 이것으로 이후 나의 가치체계는 많은 방향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 역시  당시에는  길이 없었다. 그냥 그날은 거짓말의 대가가 얼마나 혹독할  있는지 그것을 체감한 날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의 욕구가 모두 연기처럼 사라질  있겠는가? 아니다. 그냥  사건이후 이제는 거짓말은 들키면  되는 무엇이 되어버렸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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