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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Jul 16. 2021

미묘한 글쓰기

덜거덕거리는 내면의 흐름들

글쓰기를 이렇게 꾸준하게 오래 해본 적이 없어서 요즘은 모든 것이 새롭다. 특히 같은 주제로 여러 개의 글을 쓴다거나 나 자신의 내면을 글로 탐구해본 적이 없기에 이 모든 것이 생경하고 또 신기한 경험을 하는 중이라 해야겠다.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의 사용법을 새롭게 알아간다는 것도 재밌는 점이다. 어떤 특정 주제를 가지고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글을 뽑아낼 수 있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 과정에서 글이 쓰이는 방식도 지금까지 내가 글을 써온 일반적인 패턴과는 많이 다르다. 나는 원래 글을 요약하고 핵심정리를 하는 것에 약점이 있었다.


학교에서 무언가를 필기할 때도 다른 아이들은 차분하게 체계를 만들어 요약을 하는 것에 능통하고 나중에 그 필기를 보면 복습하고 외우기가 쉬웠던 반면 나는 모든 필기가 오히려 훨씬 장황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짧게 요약된 내용도 길게 풀어쓰고 이야기 형식의 설명을 덧붙여서 필기를 했기 때문에 나중에 그것을 보면서 시험공부를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되었던 적이 많았다. 시험공부는 결국 양을 최대한으로 줄이는 것이 핵심인데 나의 노트 필기는 그 방향성이 정반대였으니 말이다. 항상 스스로도 이상하다는 느낌은 있었다.


하지만 당시엔 그것은 그냥 나의 능력이 요약정리에 특화되어 있지 않다 정도로 납득하고 지나갔을 뿐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한 번도 깊게 따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결국 어느 순간까지도 모든 사람의 내면세계는 제각각이며 그 특성과 기질에 맞게 세상을 다르게 인식하고 해석한다는 것을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데이터보다는 이야기로 세계를 이해하는 타입이고 그 이야기가 쌓여 하나의 세계관이 만들어지면 그 세계관을 컴퓨터 프로그램인 언리얼 엔진처럼 하나의 핵으로 사용하여 모든 해체된 데이터를 새롭게 조합하고 이해하는 타입이라는 것을 글을 쓰면서 조금씩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


나는 무언가 적은 키워드를 가지고 양을 늘려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는 장점이 있지만, 대신 데이터 자체를 가지고 큰 그림을 이해하는 능력이라든지 아니면 세세하고 정밀한 정보를 통으로 머릿속에 유지하고 활용하는 능력은 엄청나게 떨어진다. 아무리 붙잡아 두려고 해도 몇 달만 다른 것에 신경 쓰고 몰두하고 있으면 기존에 힘들게 쌓아 올렸던 모든 정보들이 통으로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리는 듯한 감각은 특히 전문기술을 익히는데 큰 단점으로 작용했다. 익히는데 들이는 시간에 비해 까먹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돌면서 공회전을 하는 감각에 빠져들기 쉽고 남들과 비교해서 무능력하다는 자학도 항상 같이 따라온다.


나 같은 타입이 딱 나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런 타입이 있다는 이야기를 어느 글에서도 쉽게 찾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항상 고장 난 머리를 가진 사람처럼 인식했다. 그런데 지금 보면 나는 나대로의 장점은 분명히 있다. 단지 보통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부족하여 기능형 인간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요즘에야 받아들이고 나름 나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학습법과 활용법을 스스로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며 이 글도 그런 과정에서 내가 느끼는 것들을 그냥 대략적으로 그리고 비과학적으로 기록해두는 것이다.


최근 또 하나 특이한 경험은 안데르센 프로젝트와 관련된 글쓰기를 하고 느낀 점이다. 안데르센과 관련된 재해석의 글을 딱히 써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단지 미운 오리 새끼라는 제목의 글을 쓴 이후에 이 프로젝트를 발견했고 그 과정에서 다섯 가지 이야기 중에 하나가 미운 오리 새끼라는 것을 알았을 때 갑자기 나머지 이야기들도 그것에 대한 재해석의 방향성이 머릿속에 잡혀버렸다. 그래서 그냥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를 죽 써내려 갔다. 문제는 글을 올린 이후 차분히 다시 글을 재검토하고 업데이트를 하려고 이틀이 지난 뒤 글을 읽어보니 내가 어떤 감각으로 이 글들을 썼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안데르센 글을 쓴 이후에 내가 평소에 쓰고 있는 특정 방향성의 글에도 잡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뭔가 글이 계속 꼬이고 집중이 되지 않고 산만하게 흩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글쓰기의 흐름을 잡기가 갑자기 힘들어졌다. 아마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내가 평소에 글을 쓰는 세계관의 감각과 안데르센 프로젝트의 세계관 사이에 알 수 없는 꼬임이 일어난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런 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가끔 드라마에서 작가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이상하게 글 쓰는 동안 예민하게 굴고 작은 것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막연히 웃기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그게 그냥 재미를 위한 상황 설정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최근에는 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긴 글을 긴 호흡으로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생활을 관리하고 또 무엇을 읽고 생각할 것인가 하는 것까지 다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나의 글이라고 할만한 것에 도전할 최소한의 자격이 주어질 것이라는 자각이 생겨난다는 것. 그래서 글쓰기라는 것이 얼마나 미묘하고 또 정교하며 까탈스러운 작업인지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로 요즘의 일상이 나를 많이 깨우쳐주고 있다. 나를 알고 글쓰기를 알고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되면 그때는 정말 좋은 글쓰기를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기를 정말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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