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터피터 Jul 16. 2021

생각의 늪

다른 생각에 물들다.

보통 사람들은 본인이 자기 자신을 세상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요즘에 내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는 화두는 이것이다. 내가 나를 얼마나 바라보고 관찰하고 탐구하여 나라는 ‘자아’를 잘 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일까? 글로 쓰여 나 자신과 조금 거리를 두고 관찰하기 시작한 나의 모습은 그냥 낯설다.


그리고 세상 누구보다 내가 나를 잘 몰랐다는 것을 그리고 스스로에 한없이 무심했음을 고백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한 중요한 원인이었다는 것도 인정한다. 내가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은 나름대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생각이 아니라 무수한 형태의 이야기였으며 스스로와 하는 대화였다는 것은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자꾸만 만들어내는 나의 기질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한동안은 나의 글을 쓰는 것에 분주하였기에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두루 살펴보지 못했다. 그러다 이런 식으로 나의 글만 쓴다고 충분한 경험이 쌓이고 방향성이 잡히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자각이 들어 내 글에 집중하고 빨려 들어가는 것을 조금 멈추고 다른 글을 읽기 위해 여러 시도를 요즘 해보고 있다. 그러면서 나라는 존재가 어떤 사람인지 나조차 몰랐던 부분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고 이러한 기질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었는지 스스로 분석하고 다른 분들께도 드러내어 여러 충고를 받아볼까 하고 이 글을 써본다.


나는 하루에 많으면 두 분정도의 브런치 작가분들의 글을 읽는다. 많이는 절대 보지 않고 딱 두 편이나 세 편정도를 보고 그만두는데 다른 사람의 생각과 글을 읽으면 그것이 바로 내 속으로 들어와 거대한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딱 두 편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런데 그 두 편이 모두 내 안으로 들어와 거대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나는 일과를 처리하면서 내내 이 이야기에 매달렸고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이 일어나고 또 사라졌다. 그러면서 잠깐 하는 사이 뭔가 내가 요즘 공들여 쌓아가고 있는 밸런스를 깨뜨린다는 감각을 느끼게 되었다.


한정된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 내가 원래 하려던 일의 궤도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곳까지 흘러가버렸던 것이다. 물론 이것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주요 주제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주제에 가까웠기에 나의 내면이 이 이야기를 내 속으로 깊이 끌어들이고 나는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1도씩 본 궤도에서 벗어나는 상황이 계속 누적되면 어느 순간에는 나 자신이 본래 원했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 가서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을 탐구하면서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바람직하지 않다. 난 능숙한 글쓴이가 아니다. 글의 바다를 항해하는 기술과 경험이 너무 미천한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는 나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내가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그냥 직감한다. 지금 상태에서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너무 많은 것을 듣는 것은 좋지 않다. 지금은 내 안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통제하고 내 안에 쌓여서 밖으로 나오기 위해 몸부림치는 내 속에 쌓인 소리들 자체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일단 그것들을 다 꺼내어서 내 본 형태가 어떤 것인지 내 스스로 실감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그때에야 나의 글은 첫발을 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학습법이 잘못되었다는 것. 너무 욕심이 많았다는 것. 그리고 항상 꾸역꾸역 무언가를 내 속에 주입하는 것에만 신경을 썼지 한 번도 내 속에 쌓인 소리를 밖으로 빼내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사라지는 모든 나의 내면의 소리를 스스로 붙잡지 못해 안타까워하였기에 그렇게 계속 방황하고 있었다는 걸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안에 있는 것들은 다 사라진다.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소용없는 짓이다. 그것들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면 꺼내서 기록하고 나의 지난 흔적으로 삼으면서 항상 내가 살아가는 방향성을 새롭게 고민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게 나다.


그런 내가 때론 한없이 창피하지만 그것들을 내 안에만 숨겨놓고 은폐하기 시작하면 나의 내면은 성장할 수 없다. 성장하지 않는 나의 내면은 너무 나약하다. 그래서 항상 외부에 너무 공격적이었다. 세상을 따뜻하게 품을 수 없는 마음은 결국 나 자신의 내면을 차갑게 얼어붙게 만든다. 밖은 불같이 뜨겁고 맹렬하지만 나의 내면은 항상 얼음보다 차다.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밖과 좀 더 부드럽게 소통할 수 있는 대화의 기술을 익힐 시간이다.  

작가의 이전글 미묘한 글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