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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Jul 16. 2021

댓글을 달다.

봄날님, 영화평론가 홍수정님

이 글은 어떤 비평이나 비판을 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경계석으로 삼아 항상 조심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요즘 유튜브 시대에는 무언가를 까는 것이 대세이고 유행이다. 남을 아주 조리 있게 잘 까면 그것은 곧 인기가 되고 다시 인기는 돈이 된다. 그렇게 돈이 벌리게 되면 사람들을 더 고용하여 영상 퀄리티를 높이고 구성도 짜임새를 갖춘 하나의 사업이 되고 그렇게 되면 이제는 그 흐름은 멈출 수 없게 된다.


그것을 멈춘다는 것은 수입이 없어진다는 것이고 그 말은 자신의 삶이 붕괴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자신 한 명이면 상관이 없지만 딸린 식구들이 늘어나는 순간 그 영상들은 이제 자체로 산업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업은 멈추는 순간 수많은 비극을 야기시킨다. 시작할 때는 좋은 의도로 시작해도 산업이 되면 그 좋은 의도는 절대 그대로 유지될 수 없다. 구글의 모토가 ‘Don’t be evil’이었다가 그것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다른 모토들로 대체되어 가는 것은 산업의 기본 속성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법 벌이를 하는 곳은 어디든 살벌한 전쟁터이고 사냥터이다. 그 한복판에서 혼자 ‘정의’를 외친다고 다른 이들이 쉽게 그 가치를 수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공개된 모든 글에 반대 의견 또는 다른 의견을 다는 것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누구를 공격하기 위해서 이 글을 적는 것도 아니다. 그냥 서로 다른 의견들은 교환될 수 있고 서로 다른 생각의 파편들은 합쳐져서 더 큰 덩어리를 이루어 낼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조심스러운 시도를 서툰 몸짓으로 한 번 해보는 것이다.


이제는 나도 공개된 장소에서 무언가를 적는 사람이다. 작가라는 직함을 달기에는 너무 낯부끄럽지만 공개된 장소에 자기 개인 의견을 내놓기 시작하는 모든 사람은 그와 동시에 책임의 무게를 항상 느끼면서 감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감각을 익히기 위한 작은 발판으로 이 글을 따로 쓴다.



봄날 [밤하늘에서 어둠을 보든, 별을 보든 그것은 네 몫이다.]


“저는 원래는 반대 의견 또는 다른 의견을 본 글에 댓글로 잘 남기지 않습니다. 그것이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여 더 큰 함의의 이야기로 발전하기보다는 대부분은 서로의 다름에 대한 감정적 대립으로 종결되는 경우가 많고 그렇게 되면 댓글을 다는 의미 자체가 퇴색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봄날님같이 모자란 제 글을 읽고 라이킷이라는 응원을 보내주시는 분의 글에 댓글을 다는 것은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첫째로 저는 최근 제 속이 시끄러워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끄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안으로 들이면 그 생각만으로 제 하루가 온통 소비되어버릴 것을 알기 때문에 쉽게 답이 날 수 없는 세상 이야기에는 조금 거리를 두려 합니다. 하지만 글의 첫 부분이 재난 지원금의 분배 방법이니 그것에 제 취향을 이야기하자면 저는 보편적인 지원을 더 선호하는 편입니다. 정교하게 타깃을 맞출 수 있는 행정 기술이 이미 완비되어있다면 피해 소상공인만을 두텁게 지원하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에 관한 기준을 만들고 실행을 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정보격차는 좋은 의도와는 상관없이 정보를 더 잘 활용 쪽이 더 많은 이익을 취하고 정보 접근성이 약한 사람은 제도가 있어도 그것에 부합하는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쉬운 이유로 저는 이 위급한 상황에서는 보편적 지원이 큰 말 없이 시중에 돈을 돌게 만드는 유용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아주 작은 일도 크게 부풀려지는 ‘침소봉대’의 시대입니다. 작은 행정오류 하나로 정책 전체의 방향성이 매도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특정 대상을 더 크게 지원하는 것은 행정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무수한 오류를 유발할 수 있고 그것은 사회 통합이 아니라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합니다. 이것은 제 개인적 의견입니다.


둘째로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지난 이야기는 지금 시점에서 보면 잔혹동화입니다. 그 안에는 지금의 기준으로 무수한 오류를 지적할 수 있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고 한때나마 즐거워했던 저는 그럼 어떡해야 할까요? 아 내가 범죄 동화를 읽고 즐거워했었다니 참 어리고 어리석었다. 하면서 반성을 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런 동화가 이제는 세상에 돌아다닐 수 없도록 불매운동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어릴 때 즐겼던 이야기가 어른이 된 관점에서는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이렇게 잔혹동화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선녀와 나무꾼이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버전의 이야기도 있고 그 속에서 둘은 서로 사랑했고 그 가정은 화목했었다고 묘사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지금의 관점과 법규에서 보면 범죄가 되는 행위라는 이유로 과거의 기준으로 써진 모든 이야기를 잔혹동화로 재해석하는 것은 저는 솔직히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사람들이 과거사람보다 더 지혜롭다는 증거가 하나도 없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저렇게 살고 저런 이야기가 내려오는 이유는 저 시대의 기술과 환경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저들보다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면 우리가 더 지혜롭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시대의 혜택을 받아 보다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정 환경 안에서 그 환경을 벗어난 생각을 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거 지구가 둥글다는 개념과 지구가 돈다는 이야기를 사악한 생각으로 생각한 것처럼 저 시대의 흐름에서 사악한 노루가 하는 이야기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이 나무꾼에게 정말 쉬운 일이었을까요? 지금 시대에도 우리는 ‘너는 왜 남들처럼 못 사니?’라는 이야기를 듣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 시대의 못 배운 나무꾼이 좋은 신부를 얻어 부모님께 효도하고 자식 낳고 살 수 있게 해 준다는 이야기를 흘려듣고 딱 떨어지는 사리분별을 하는 것이 정말 쉬울까요?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관점에서 쉽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모든 것은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해석의 차이입니다. 그것에 일방적인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그냥 서로 다름만이 존재할 뿐이죠. ‘밤하늘에서 어둠을 보든, 별을 보든 그것은 네 몫이다.’ 이 제목이 뜻하는 큰 맥락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목을 다신 맥락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제 이야기를 풀어보고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밤하늘에서 어둠을 보든, 별을 보든 그것에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별을 보면 아름다움에 취할 수 있고 세상이 더없이 황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둠을 보면 아무것도 없는 어둠을 통해서 우리는 외부가 아닌 자기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도 있습니다. 어둠은 사람을 외롭고 고독하게 만들고 그 고독이 무심했던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쏟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모든 해석은 읽는 이의 마음에 따른 것이겠죠. “



영화평론가 홍수정 [서연은 어떻게 돌아왔을까, <건축학개론>]


“일단 인사부터 드립니다. 브런치 추천으로 오늘 처음 이 글을 읽고 나름 깊은 생각에 빠졌던 관계로 댓글을 남기고자 합니다. 영화는 하신 이야기처럼 모두 나름의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저는 제 생각의 해석을 댓글로 남겨볼까 합니다.


서연은 어떻게 승민에게 돌아왔을까? 저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이 삐거덕거리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에 무신경하게 지내면서 일생을 살던 대로 살아갈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럼 결국 자신을 한번 되돌아볼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죠.


‘어디서부터 나의 인생이 잘못되었을까?’ 누구나 질문의 시작점은 여기입니다. 그럼 그 순간부터 사람은 자신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굴곡이 심하고 내적 요동이 컸던 어느 부분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고 그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그것을 직접 확인하고 손을 봐야겠다는 충동과 욕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서연은 첫사랑과의 이별이 서로 간의 미스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그 당시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내면을 후벼 파는 말로 자신을 비난했을 때 그것에 용감하게 맞서서 오해를 풀 용기는 내지 못했죠. 그냥 하나의 흐름처럼 자신의 곁을 흘러가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젊음의 미숙함과 비겁함이라고 할 수 있겠죠. 자신의 내면을 그나마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서연은 판단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서연이 납득할 수 있는 ‘이별’이 아니었죠. 결국 납득이 없는 시간의 흐름은 인간의 내면에 후회와 집착 그리고 무기력함을 만들어내게 되는 것이죠. 한번 납득하지 못한 인생은 무엇인가에 최선을 다는 것을 주저하게 만듭니다. ‘최선’을 다하고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 그 자체로 자신을 쓸모없는 인간처럼 느끼게 만들 것이라는 공포를 선사하게 되고 그 무의식은 항상 자신도 모르게 자기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죠.


서연이 꿈꾸던 아나운서도 되지 못하고, 더 이상 피아노도 치지 못하고, 전 남편과의 결혼생활도 좋지 않았던 것이 어째서 그녀의 불행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불행이라는 것은 결국 운, 뭔가 당연히 되어야 할 것들이 외부조건에 의해 결과가 틀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불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연은 어느 순간 그냥 무기력해져 버린 것입니다. 첫사랑의 이별통보를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인 그 순간부터 상처 받지 않는 삶을 선택하면서 그녀의 삶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나의 최선을 다해도 상대에게 나의 진심은 가 닿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냥 대충 살자.’ 이런 내면의 속삭임이 그녀 안에서 자라난 것이고 결국 그것이 그녀의 비극이 되어 삶이 갈수록 힘들어진 것이죠.


그러다 어느 순간 그녀는 이대로 무기력하게 이런 삶을 계속 살 수는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녀가 다시 돌아보고 고쳐야 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오류가 시작된 그 부분입니다. 그 시도가 정말 그녀의 삶을 바로 잡아 줄까요? 그건 모르는 일이죠. 하지만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으면 삶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녀는 실패를 무릅쓰고 인생 처음으로 과감한 도약을 시작했습니다. 이 영화는 그녀의 그 도약으로 시작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녀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든지 이 영화의 본 주인공은 서연입니다. 그녀의 첫사랑이 이제 미국으로 떠나서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할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혼자 남겨진 서연이 비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매듭짓지 못하고 있던 마음의 문제를 이제 스스로 풀어내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이제 자유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아무것도 없는 실패한 이혼녀 일지 몰라도 그녀는 자신의 삶과 자신의 안식처와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 그리고 자기 자신을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된 하나의 계기를 스스로 개척한 당당한 여성입니다. 그녀가 왜 같은 여성에게 처연한 느낌으로 동정을 받게 된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지만 제게 그녀는 그 자체로 충분히 훌륭한 캐릭터이고 성공한 여성 주인공이며 영화의 메인 테마입니다.


이것으로 저 역시 매우 사랑하고 좋아하는 건축학개론의 서연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저 개인의 감상을 마감해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계속 부탁드립니다. 그럼.”



 생애 가장 힘든   편을 마쳤다. 다시는 이런 댓글을 글감으로 이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래는   없으니 나중에는  다른 말을 할지도 모르지만 현재의  감상은 그렇다.   편의 글을 읽고 너무 많은 생각을 했고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다. 그리고  본인의 글은  이것으로 조금 어그러질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이런 댓글을 글로 옮기면서 더욱 분명 지는  같다. 나는 사람들의 생각과 이야기에 엄청나게 영향을 받는 사람이다. 이제 한동안은 남의 글을 읽는 것도 조금  주의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아주 충분하게 배웠다. 이래서 내가 하나의  흐름을 따라서 나의 주제를 올곧게 추진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의 뇌는 이야기를 너무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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